김현영의 만선문의 후예 1-5, 2부 2권까지를 읽고.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하나.
이유는 이 글이 기존의 흐름으로 보자면 혹평을 받아야 할 수준이었
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상으로 만선문의 후예에 관한 여러 가지
평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호의적이다.
그리고 총판과 대여점등, 여러경로로 조사해 본 결과, 이 만선문의
후예는 상당한 부수가 판매된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대체로 잘 본
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내면을, 현재 무협의 현주소를 깊이 있게 성찰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 하여 따로 글을 쓰고자 준비중이다.
이 글에서는 무협의 전체적인 틀보다는 만선문의 후예라는 글에 대
한 장단점만을 논해보고자 한다.
먼저 고전적인 무협소설 상의 기준으로의 평가와 현재의 조류라는
측면에서 장단점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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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이 책은 만화방이나 책방 같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보시면 절!대! 안 됩니다. 혼자서 웃으며 발광을 하기 때문에 딴 사람
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님을 쳐다 볼 것입니다.'
위의 인용한 글은 만선문의 후예 표지 뒷장의 카피중 일부다.
표지의 카피라는 것은 그 책을 독자에게 알리는 중요한 자리다. 그
러므로 카피라는 것은 그 책의 컨셉이 이런 방향이라는 해설이며, 독
자는 그 카피를 보고 어느 정도 그 책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카피대로 만선문의 후예는 가벼운 터치의 코믹무협이다.
간단하게 내용을 살펴본다면,
만가지 善을 행해야만 한다는 문중의 일맥단전(一脈單傳) 계승자로
서 주인공이 선택이 된다. 그는 그러한 과정에서 여러 가지 기행을 저
지르면서 하나하나 자신이 물려받은 무공을 터득해나가고, 또한 사건
들을 해결해가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소개하지 않음이 원칙이라 여기서 그치기로 한다.)
만가지 선을 행하면서 무공이 완성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을 알아가면서 덕행이 쌓여야 완성이 될
수 있다라는 기발한 설정을 가지고 이 글은 시작된다. 그 자체가 문제
가 될리는 없다.
이 만선문의 후예를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인 것은 무리한 설정이었
다.
문장의 훈련과 단어의 적절한 쓰임새, 기타 문맥의 흘러감 등은 첫
번째의 글인만큼 넘어갈 수는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준비를 갖춘 다
음의 등단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본인조차도 그런 모든
준비를 갖춘 채로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은 문장이나 기타
의 글을 다룬다는 것은 글을 쓰면서 좋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계속해서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이란 전제하에서.
하지만 글을 쓸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스토리상의 흐름이다.
어떤 스토리이건 간에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야 할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을 만들기 위한 설정에는 누구라도 소위 트
집(?)을 잡을 수 없는 사전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전준비하에 들어간 글이라 할지라도 보편타당한 개
연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럴 수 있다! 라는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말은 누구
라도 그 글을 읽으면서 말도 안돼! 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는 말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글의 격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면에서 만선문의 후예는 몇가지 오류들을 범하고 있다.
왕거지로서의 주인공이 행하는 기행들.
그 상황은 매우 적나라하여 누구라도 느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
다. 그러나 그 자체는 무리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을 지어낸 것이 아
니다. 하지만 거기서 비롯한 무리한 과장은 설명의 범주에서 벗어난
다.
---때를 밀어 간단히 몽둥이를 만들어낸다.
사람의 몸은 7년을 주기로 하여 세포가 모두 바뀌게 된다. 완전히
다른 세포가 몸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피부는 계속해서
벗겨져 나가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매일 때가 만들어진다. 또한 외
부의 먼지도 그중 일부.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때가 생길 수가 없
고, 살아있다면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움직인다면, 옷을 입고
움직인다면 때가 쌓이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스치면서
부서져 떨어져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낙양성의 모든 개를 지배한다.
그런 설정도 그 개연성이 매우 취약하다. 개 모두가 군대처럼 움
직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왕거지에 대한 공포로 가능하다. 몇가
지의 장치가 있지만 모두 억지설정이다. 훈련도 받지 않은 개란 동
물을 모조리 그런 정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과연 그럴 수 있겠군.
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족함이 여실히 눈에 보인다.
---과일색마.
색마가 나올 수도 있다.
성적인 변태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여자를 강간한 다음에 성
기에 과일을 집어넣고, 그곳을 접착제로 붙인다는 발상은 매우 난감
했다. 기본적으로 접착제가 발달한 상태가 아닌 시대다. 그리고 현
대라고 할지라도 순간접착제를 사용해도 붙이기 힘든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왜인지는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문제다. 굳이 그런
식으로 무리를 하면서 설정을 해야만 했을까?
만선문의 후예는 이런 식으로 실현가능한 형태보다는 거기에서 보다
더한 과장을 보태어 진행이 된다.
위와 같이 무리한 설정은 상당히 여러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더욱이 본인은 그러한 논리적인 과장들을 스스로 배제하였다고 5권
의 후기에 굳이 기록을 하였음은, 스스로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설
명을 하려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말은 결국 하려 했지만 하지 못
했다는 의미다.
이러한 내용들은 얼핏 지나칠 수도 있는 문제일 듯 보이지만 실제로
는 그 자체가 바로 작가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간단히 지나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신진들이 공통적으로 범하는 오류들이 한자의 남용내지는 잘못된 쓰
임들이다. 이 만선문의 후예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남용보다는 오히려
너무 없는 것이 조금 문제가 될 듯 하고 잘못된 쓰임들은 여러군데에
서 눈에 띠었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천라지망(天羅地網)이 天羅蜘網이라고 하여 땅
이 거미로 둔갑한 상태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이름을 여기저기에서 차용한 흔적이 눈에 띠는데 그
것이 명확한 어떤 흐름이나 패러디가 아니라, 그저 그때의 흥취에 따
라 써둔 것 같은 느낌들이라 일관성이 없었다.
글로서 사람을 웃긴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만화나 TV등에서 사람을 웃기는 것은 시각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단순히 글로서 사람을 웃기는 것보다 쉽다. 그러므로 글만 가지고 독
자를 웃길 수 있다면 그는 매우 훌륭한 능력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웃음이 절로 터져나오게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임은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선문의 후예는 그러한 웃음이라기 보다는 조금쯤은 웃음을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거의 같은 패턴을 반복하기 시작하는
후반부로 가면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후반으로 가서 양정이 다시금 거지가 되는 패턴은 단조롭기 그지없
다. 만선문의 후예가 5권으로 끝이라면 그도 괜찮을 패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뒤를 이어쓰면서 또 거지생활로 돌아갔다는 것은 작가의 상
상력이 떨어졌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더 이상의 변화를 줄 수 없었다.
쓰다보니 결국 그때가 재미있더라.
다시 돌아가자.
못다한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을 더 해보겠다.
이런 유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작가의 횡포다.
독자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지난 것을 다시 보기 원하지 않는다. 정
말 볼 것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지난 것을 다시 볼 수 있어도 더 좋
은 것이 있는데, 누가 지난 것을 보고자 할 것인가?
결국 작가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는 이야기.
독자가 언제까지나 관대하게 자신을 봐줄 것이라는 착각은 정말 금
물이다.
독자는 냉정하다.
작가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독자는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는 것.
그렇지 않을 경우에 기다리는 것은 참혹할만큼 무자비한 외면 뿐이
다. 80년대의 찬란한 영광을 가졌던 그 많은 작가들이 왜 지금에 와서
외면 당하고 있는가?
새롭지 못하고 구태의연했기 때문이다.
공부하지 않아서다.
여기까지 읽어본다면 김현영의 이 만선문의 후예는 그야말로 별 볼
일이 없는 쓰레기처럼 느껴질런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읽을 필요조차 없는 글임에도 독자가 그 글을 읽고 재미있다고 했을
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럴리는 없다. 아무 것도 아닌 글이, 그
책이 상당한 수준까지 팔릴 수가 있었을 것인가?
단순히 무협이 아니라 판타지라는 형태를 취하는 출판사에서 무협
아닌 무예라고 이름 붙여 나갔다고 해서?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 무슨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일까?
만선문의 후예는 쉽다.
다시 말해서 아무런 생각없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뜻이
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작가로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독자로서 부담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독자 또한 부담없이 그 글을 읽고 즐길 수가 있다.
그것은 독자들의 지금 경향과 매우 맞아 떨어진다.
백경의 에이허브가 보인 광기어린 집념.
불타는 노을 속에서 살아숨쉬던 스칼렛 오하라의 열정.
개선문에서 라비크가 창녀들의 속살을 헤집던 허무.
백치가 가졌던 그 신필의 의미...
이런 고전들을 청소년들이 읽지 않고, 재미없어 한다. 책을 보고 고
뇌하고 사색할 시간에 휴대폰을 들고서 모바일 게임에 열중한다. 그런
세대가 커오고 있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면서 지난 세대
조차도 책과 가까이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글을 쓰는 본인조차도 전보다 책 읽는 시간이 줄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지만, 책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무거운
책을 읽기가 힘들다.
가벼운 에세이가 잘 팔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 면에서 만선문의 후예는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부담이 없이
읽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거기에 단순히 부담이 없었다기 보다는 그
렇게 읽어나갈만한 재미가, 사람을 끌고 나갈만한 흥미요소가 여기저
기에 배치되어 있기에 현재가 가능했다.
본인도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면 7권이나 되는 글을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과연 이제부터 김현영이 어떻게 할 것
인가라는 물음을 담고 있다.
그가 이 만선문의 후예로서 글쓰기를 마친다면 지금까지의 잔소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계속해서 글을 쓰겠다면
상기한 문제점들이 보완되어야만 한다는 의미다.
독자로서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었다면...
그러한 형태는 한 번만 가능하다.
(독자로서 그저 글을 써보고 싶어서 썼다는 형태.)
글을 한 번 쓰고나면 이미 프로가 되고 작가가 되어 독자는 아니다.
출판을 염두에 두지않고 부담없이 글을 쓸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
고 코믹이란 장르는 자칫 잘못쓰면 천박해지기 쉽고, 비슷한 형태로는
같은 내용을 다시 쓸 수가 없는 법이다.
끊임없는 자기개발과 방향모색.
거기에 김현영의 고민이 숨어있다.
단기 4334년 연화정사에서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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