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武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이 글은 웹진 무적에 금년 1월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그때의 예측과 지금 상황을 보면서 한번쯤 돌이켜 볼만도 하다 싶어서 굳이 가지고 왔으며,첨가외에 수정을 하진 않았습니다.)
서(序).
무협이 달라졌다.
전과는 참으로 많은 점에서 달라졌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고, 단순히 부인한다고 해서 달라진 것이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될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달라진 점을 그냥 인정하고 수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기에 과연 무엇이 달라졌고, 왜 달라졌으며 현재의 무협이 어디에 있으며 앞으로의 무협은 어떨 것인가를 한 번 쯤은 짚어보고 지나가야 할 때로 보여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지난(至難)할 뿐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쓴 내일이라는 것은 다분히 금강이란 작가가 추측하는 미래상임을 감안하고 봐줄 것을 부연코자 한다.
또한 이 글에서의 논점은 지금 현재가 주이므로 다른 세대는 간략히 서술할 것임을 미리 말해둔다.
1. 무협초기(번역무협시대).
이 땅에 무협이라는 형식의 소설이 처음 소개 된 것은 모두가 인정하듯 고 김광주님으로부터이다. <정협지(情俠誌)>가 먼저일지 <비호(飛虎)>가 먼저일런지는 명확하게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 시기가 60년대 초라는 것을 감안하여 본다면 이 땅에 무협이란 장르가 생겨난 것이 40년 전이라는 의미가 된다.
(정확히는 정협지는 1961년 6월 15일부터 1963년 11월 24일 까지 경향신문에 810회로 3년 간 연재되었고, 신태양사에서 1962년 출간된 한국 최초의 무협소설이다.)
결코 적지 않은 세월이다.
그럼에도 무협이 끊임없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저력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의 손에서 바람이 뿜어져 나오고, 새처럼 하늘을 훌훌 날아 오른다. 뿐인가. 그가 검을 휘두르면 단순한 검이 아니라 검기가 만장(萬丈)하여 천하의 군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미인들이 그를 사모하여 가슴을 졸인다. 기인괴협이 천하에 가득하며 현대에서도 보기 힘든 기관진식을 비롯한 영약과 무공들, 그리고 기진영수들까지……
무협은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여주었다.
새마을 운동이, 보릿고개가 무엇인지 아는 그 세대에게 무협이 가지는 의미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 고단한 삶을 대리만족이라는 크나큰 행복으로 채워줄 수 있었던 것이 어찌 작은 것이었으랴.
경향에서 동아에 이르는 많은 신문들이 무협을 연재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찬란했던 무협은 <침사곡(沈沙谷)>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시작해서 서점에서 밀려나 대본소로 자리를 옮기면서 어둠의 길로 들어선다. <침사곡>이란 작품 자체는 훌륭한 글이었지만, 그때부터 무협은 사보는 책에서 빌려보는 책으로 전락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그렇게해서 중국무협은 쓰레기라 할만한 것까지 다 번역하여 더 이상 할 것이 없을 때까지 이어지면서 번역무협 시장 자체가 괴멸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나타난 것이 바로 번역을 가장한 창작무협이다.
정리:
번역무협시대는 특별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말 그대로 중국 것을 가져와서 번역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작가는 와룡생(臥龍生)이 유일하다. 지금에 이르러 모르는 사람이 없는 김용등은 아예 이름조차 내지 못했었다. 무협이 처음 번역되면서 소개된 작가가 와룡생이고, 그의 초기 걸작들은 모두가 선풍을 불러 일으켜 번역된 수많은 작품들이 다 와룡생의 이름을 달고 나온 까닭이다. 그 두 번째는 진청운(陳靑雲)이며, 고룡(古龍)이나 몇몇 이름들이 보이지만 거의 이야기할 정도가 되지 못했다. 매니아나 알 정도랄까.
2. 창작무협 1세대.
본인을 비롯한 80년대의 무협작가들을 일러 창작1세대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창작무협을 시작한 것은 전기한 바와 같이 번역을 가장한 창작무협들이었다. 그것은 본인보다 조금 더 일찍 시작되었지만(실제로는 본인을 비롯한 상당수의 1세대들도 처음에는 본인이 쓴 글을 번역으로 필명을 사용하여 시장에 내놓았었다.) 스스로의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는 특수성으로 인해 0.5세대라고 불린다.
창작무협의 시작은 번역할 것이 없다는 것에서 비롯되었지만, 당시의 작가들은 모두가 독자에서 출발하였으므로 그간 중국무협의 독자의 입장에서 모자랐던 점, 넘쳤던 점들을 작가나름대로 취사선택하여 한국형으로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0.5세대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지속기간이 매우 짧았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시작한 창작1세대들의 경우는 근 10년간을 풍미하면서 일반 작가들보다 오히려 더 좋은 대우를 받았다.
당시 4대작가를 포함한 무협소설의 작가들이 300명이 넘었다는 것은 그 당시 무협의 인기를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구태의연한 발상에다 남의 것을 베끼는 표절을 거리낌없이 기본으로 하는 작가들이 판을 치면서 1세대 무협의 몰락은 시작된다. 소위 10대작가로 꼽히는 사람들까지도 절반이상이 그 대열에 속해 있었으므로, 당시의 상황은 한심하다 해도 좋았다.
그 마지막을 장식한 결정타는 당시 최고의 인기작가였던 사마달의 이중계약 파문으로서 그로인해 창작1세대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리:
이 시기는 창작무협의 황금기였다.
권리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의무가 뒤따른다. 명예는 얻기 힘들었지만 부를 가질 수는 있었던 것이 창작1세대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가들이 작가로서의 의식결여로 인하여 표절을 기본으로 하여, 사실상 명예를 논하기 힘든 시대가 또한 이 시대이기도 하다.
본인을 비롯한 정말 소수의 몇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글을 표절하지 않았을 뿐,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그것이 무협의 몰락을 자초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사대작가중 쌍두마차로서 창작1세대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사마달이 이중계약이란 악수를 자초하므로서 그렇지 않아도 무너지고 있던 무협시장은 치명타를 입었다. 사마달의 이름을 단 무협이 봇물처럼 양쪽 출판사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그로인하여 무협시장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모든 작가들이 만화스토리 작가로 전업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당시 무협작가들이나 글들이 정말 참혹한 수준이기만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중 상당수가 대단히 훌륭한 재질을 지니고 있었고 훌륭한 글도 적지 않았음은 또한 사실이다. 다만 당시의 상황이 지금과 매우 달랐다는 것이 당시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 가장 큰 요인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특기(特記)할만한 것은 바로 이 시기 후반에 요즘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김용의 영웅문이 나왔다는 것이다. 본인의 발해의혼이 나온 것도 이즈음이었다. 무협의 새로운 중흥을 시도할 수도 있는 때였는데 여러 가지 여건이 그를 뒷받침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3. 창작무협 2세대.
이 시대는 본인을 비롯한 몇 작가들이 시작한 뫼에서 비롯한다.
지루한 암흑기를 이어온 몰락한 무협시장에 90년대에 들어(94년 경) 뫼를 필두로 한 예전 무협작가들의 출판사가 새로운 작가들을 영입해들이면서 이루어냈다.
대표적인 작가가 1.5세대라고 할 수 있는 용대운과 2세대 기수인 좌백등이라 함은 무협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일 것이다. 용대운은 1세대에서 시작하여 그 위치가 조금 특별나지만, 지금에서는 그를 1세대로 구분하기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어 1.5라고 함이 옳을 듯 하다.
이 2세대는 확실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1세대에서 영웅과 기연, 미녀로 축약되던 흐름을 부정하고 잘 생기지 않고, 기연도 배제하고 삼처사첩을 백안시한다. 그리고 다분히 현실적이며 그러기 위해서 고증을 철저히 챙겼다.
일견 바람직한 태도이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무엇은 쓰지 않는다라는 제약을 걸고 나타난 작풍이었기에 그 발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쓰는 속도가 대단히 느려졌고, 그 결과로 독자들은 볼 책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볼만한 책이 없었다고나 할까?
1세대 작가들이 쓰레기들을 양산하면서 스스로 몰락한 것과는 달리 좋은 책을 내기 위해 고심하다가 스스로 무너진 정 반대의 케이스가 바로 이 창작 2세대라고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선두주자 몇의 인기는 변함이 없는 듯 한데도 전체적인 시장은 급격한 몰락을 보였다는 점이다. 시장 자체가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몰렸다는 의미다. 역시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선두주자들도 잘해야 하지만 그를 뒷받침하고 시장의 활력이 되는 중견작가들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 명백하게 입증된 실례라 할 것이다.
창작2세대 무협이 1세대의 10년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4,5년 만에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단초를 이 2세대는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정리 :
이 시대를 정리하기에는 아직은 조금 빠르다. 위축된 시장이지만 아직 창작1세대처럼 완전히 정리되고 무너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이 시대 또한 정리되고 있는 중으로 보여진다. 이 시대의 특성은 이미 상기(上記)하여 크게 추가할 것은 없는 듯 하다.
다만 이 시기에서 덧붙일 것은 1세대 작가들의 무분별함이다. 그들은 지난날의 자신의 글을 수정조차 없이 무차별 재간함은 물론이고, 당시 1세대 무협몰락의 단초를 제공했던 사마달은 아예 자신의 이름을 출판사에 팔아버렸었다. 출판사에서는 당연히 수많은 쓰레기들을 쏟아내어 2세대 무협의 몰락을 부채질하는데 일조했다.(묘한 상황으로 그 필명은 다시 본인이 소유하게 되었지만.)
물론 여기에는 2세대 작가들의 과작이, 악화를 구축할 양화가 너무 모자랐다는 점이 컸다는 점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4. 창작무협 3세대.
이 세대는 2000년에 시작되었으며, 2세대에서 나타났던 통신상의 흐름을 아주 명확히 드러내는 특징을 가진다.
일컬어 통신무협이라는 형태다.
2세대가 채 개화도 하기 전에 스러지고, 나타난 이 제3세대는 단순히 무협이라기 보다는 <드래곤라자>이후 자리매김 한 환타지와 더불어 오리엔탈 환타지라는 형태로 자리한다.
그 의미는 대단히 크다.
기념비 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무협이 무협자체로서보다는 환타지와 같이 병존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협이 단순하게 무협이란 타이틀로는 생존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하여 씁쓸하기 그지없으나,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이 그 환타지 시장에서 틈새를 차지하던 무협이 이제는 전체 환타지,무협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무협이 몰락하면서 1세대 무협작가들은 만화 스토리 시장으로 진출했었다. 그리고는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만화 스토리시장의 90%이상을 장악한 적이 있다. 현재의 시장추이로 본다면 이 시장 상황도 같은 상태로 진행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환타지로 시작된 이 시장에서의 주도권은 이미 무협으로 넘어와있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그 현상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추가:이 예측은 이미 명확하게 시장에서 드러나고 있어 판타지는 거의 팔리지 않는 상황까지 와 있는 상태이다.)
그 이유는 작가들의 역량과 오랜 전통에서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환타지라는 장르의 본격적인 창작은 반지전쟁이후가 아니라 <드래곤라자>이후부터라고 해야 될 것이고, 환타지의 국내창작이란 면에서는 역사가 대단히 일천하다. 그러나 무협은 그에 비해서 훨씬 긴 흐름을 가지고 있다.
무협을 쓰던 사람은 쉽게 환타지를 쓸 수 있다.
그러나 환타지를 쓰던 사람은 결코 무협을 쓸 수 없다. 그 의미는 흉내는 낼 수 있으되, 시장에서 인정받는 무협을 쓸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결코 간단히 보기 힘든 것이다. 자유자재로 변신 가능한 쪽과 한쪽만 주력해야 하는 양자의 대결은 시작도 하기 전에 승부가 이미 나 있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무협시장에서는 5천을 팔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환타지시장에서는 1만부를 팔기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현재 잘 팔리고 있는 것들은 1만을 넘어 2만부도 있다. 그만큼 저변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이 지금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다.
현재까지는 무협을 쓰기 위해서는 습작기간을 거쳐야 했고, 또 판매는 일괄이었다. 1권이건 6권이건 전체가 한꺼번에 나간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는 책들은 사전에 걸러낼 수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걸러지면 좋겠지만 말도 안되는 글들이 나온 것이 사실이므로, 그 성과는 그리 좋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 권을 쓰면 그 한 권이 먼저 나가게 된다.
또한 그 대부분은 통신상에서의 연재라는 기반하에서 뒷부분에 대한 검증을 받지 않으므로 과연 뒤를 어떻게 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통신이라는 특수한 매체를 매개로 하여 발표되는 이 글의 주된 독자층은 지난날 무협을 사랑하고 좋아했던 그 무협팬들이 아니라, 새롭게 형성된 환타지를 보던 세대들이 주를 이룬다. 무협을 보는 세대가 10대에서 60대까지 대단히 다양한 반면, 그 세대들은 10대에서 20대가 그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현재 통신상에서 보여주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들이 그 글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가벼움. 위트, 개그화된 여러 가지 현상들과 아예 초기(80년대 초) 창작무협 형태까지……
소재가 다양하고 독창적인 듯 하며 또 참신해보인다. 전혀 제도권의 간섭을 받지 않았기에 말 그대로 때묻지 않은 갖가지 시도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참신성은 신세대들에게 환영을 받으면서 현재의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바로 묵향을 필두로 한 이후의 신무협들이다.
이 3세대 무협은 단순 무협도 있고 환타지와의 접목을 시도한 것도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아직 끝난 것이 없을만큼 대단히 장편이라는 것이 그 특징 중 하나다. 글이 성숙되지 않은 신인이 열 편에 가까운, 혹은 그 이상의 대장편을 쓰면서 나타나는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개연성의 결여와 구성력의 부족등이다. 끌고 가기는 하되, 제대로 된 틀을 가지고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결점이라고 치부하기 보다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처음 글을 써보는 사람이 열 권이나 되는 장편을 쓰면서 제대로 마무리 해낼 리가 없을 것이고 그럴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대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현재까지 공통으로 나타난 결과는, 거의 모든 인기작들이 권을 거듭하면서 독자가 늘어나기 보다는 오히려 읽다가 마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이다.
제3세대의 무협이 안고 있는 과제는 바로 그러한 스스로의 단점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라는 명제를 과연 어떻게 소화를 해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가:이 현상은 지금에 이르러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듯 보인다.)
정리 :
소위 말하는 신세대들은 기성과는 명백히 다른 점을 가진다.
자신의 주장이 명확하다. 그러므로 좀 더 타협적이기 보다는 뜻밖에 배타적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모든 지식을 배양하기 보다는 잘못된 교육체제 때문에 입시위주의 교육을 받아 독해력이 뜻밖에도 대단히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이해함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보다는 자신의 감성에 맞는 것을 우선한다.
복잡한 것도 싫고 복선을 깔아 이해하기 어려운 글도 싫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반응이 좋은 글 대부분이 가벼운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이런 글을 본 기성독자들은 왜 이런 글을 좋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머리를 젓게 된다. 물론 기성작가들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세대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정상일 것 같기도 하다.
이 3세대 무협의 정리부분은 결에서 마저 다뤄야 할 것 같다.
결(結).
2세대와 3세대가 공존하는 현재의 무협.
3세대가 자신의 자리를 쉽게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2세대 작가들이 너무 과작(寡作)을 하였던 것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 통신이라는 정말 특이한 매체가 개입한 것도 전과는 다른 점이다.
2세대 작가들이 다시 글을 내놓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3세대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가는 이제부터 생각해야 할 화두(話頭)일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감안하여 보건데, 전체적인 환타지 시장의 주도권은 시간이 갈수록 무협으로 넘어 올 것이 확연한 듯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환타지가 전몰(全歿)하여 자취를 감출 것이냐? 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게임과 일본만화세대가 주축인 현재의 체제에서 거기에 기반을 둔 환타지가 아예 없어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승부는 어느 쪽에서 먼저 대가(大家)를 배출할 수 있는가이다.
그런 면에서 환타지는 매우 불리한 것으로 보인다.
무협쪽에서는 이미 대가라고 불릴 사람들이 여럿 있고 신인 중에서도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보이지만, 환타지는 대작이라기 보다는 소품을 가지고 그저 하나를 쓰고 말 작가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래곤라자이후, 환타지에서는 인정받을만한 대작이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환타지 자체의 특성에도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세대의 무협이 가고 있는 방향이 과연 옳은가?
혹은 그 무협이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3세대 무협의 수명은 그리 오래지 않을 것으로 본다이다. 기본적으로 3세대 작가들의 글쓰기 능력은 취약한 상태이므로, 시장상황의 변화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현재의 3세대 무협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참신성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무협의 참신성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 써 본 것을 재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무협을 보는 세대가 많이 바뀌어서 그것이 그들에게는 처음 보는 것으로 생각되기 점이 있는 까닭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글들이 간혹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자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제3세대 작가들이 글 하나를 완결하고 난 다음부터가 아마도 그들이 여전히 작가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가 결정이 나리라고 보여진다. 그 시기는 금년(2002년) 후반기일 것으로 보인다. 그때즈음이면 무협에 처음 입문했던 독자들도 이제는 무협을 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단순히 아이디어 하나가 아니라, 작가의 능력이 말을 하게 된다.
과연 그러한 변화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 것인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 같다.
오늘의 독자가 가벼운, 감성적인 글을 좋아한다고 해서 내일도 그러리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바보일 것이다. 끊임없이 발전된 모습을 요구하는 것이 독자이기에.
Comment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