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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답변

궁금함을 질문하고 답변하는 곳입니다.



Comment ' 4

  • 작성자
    아비달짐
    작성일
    03.06.26 00:57
    No. 1

    소설이 픽션이다 보니 작가는 뛰어난 거짓말 쟁이인 것입니다.
    대표적인 뛰어난 거짓말 쟁이를 꼽으라면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들겠습니다. 그의 소설에는 70년대 팝송에 대해 자주 나오는데 진짜 있는 것인줄 알고 찾아 보다가 ... .. 아뭍튼 쪽 좀 팔렸습니다.
    직접 자료 찾아보면 무당파는 무당산에 그전부터 도관이 쭉 있었더라고 본 기억도 납니다.
    결론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웃으며 글을 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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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Personacon 금강
    작성일
    03.06.26 02:11
    No. 2

    거의 허구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무당파의 기원은 여러가지이고... 사람마다 다릅니다.
    물론 아미파도 다릅니다.
    조금 유력하기는 사성거사가 아미산에 나오는 호랑이를쫓아낸 자리에 복호사를 지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이도 명확한 근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몇군데 문헌을 발견했지만 너무 미약해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아비달짐
    작성일
    03.06.26 02:16
    No. 3

    무당파는 장삼봉이 세운 문파가 아니라 적어도 당나라 말기에는 성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교의 일파로서의 무당도는 원나라 말기에 전란에 의 해서 거의 파괴되었다가 명나라 성조 영락제에 의해서 부흥되었다. 성조는 1412(영락 10)년 칙령을 내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당산은 천하의 명산이고 현천상제를 모시는 곳이라 도관이 있었는데 원말의 소란으로 모두 타 버리고 말았다. 자신은 즉위할 때 신명의 가호를 받았기때문에 무당산에 도관을 건립하여 태로부처의 영을 위로함과 동시에 천하만민의 복을 기도하려 한다고.... 성조는 삼십여 만명을 동원하 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현천옥허궁(玄天玉虛宮), 흥성오룡궁(興聖五龍宮), 대성남암궁(大聖南巖宮), 태현자소궁 등 네 도 관을 건립했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이 외에도 다섯 개의 도관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도관에는 많은 전답이 하사되고, 면세특권이 주어졌다고 한다. 성조가 이런 일들을 한 것은 사실 무당도에 귀의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저명한 도사였던 장삼봉을 자신의 측근에 두려했다는 설이 있다. 확실히 장삼봉은 무당파와 관계가 있었고 벽곡에도 뛰어났기 때문에(즉 도력이 높았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또 그가 무당파의 부흥에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성조는 호북성 방면의 인심을 사려 했는지도 모른다. 무당파는 성조의 도관 건립에 의해 경제적 기초가 확립되고 동시에 도록사(당시 도교의 관리를 맡았던 관청)의 한 자리에 무당파의 도사가 임명되어 도교의 관리 행정면에도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무당파는 연단과 구사(驅邪)를 본령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영종 때부터는 환관이 무당산을 관리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이용을 당하기도 했다 (<도교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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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둔저
    작성일
    03.06.26 08:01
    No. 4

    그러고보면......
    무협소설 읽는 사람들 중에서, 심지어는 쓰는 작가들 중에서도 무당파는 장씨 할아버지가, 아미파는 곽씨 할머니가 세웠고, 무다은 특히 소림무공 들어갔다~~이니.....
    으음~~ 무협소설 사상 최대의 거짓말쟁이 김용아찌~인건가..
    대단하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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