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함을 질문하고 답변하는 곳입니다.
3사의 역할은 다음과같습니다
같이 묶이지만 이들 관청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고 합니다.
사헌부는 관리의 감찰을 단속하는 기관인만큼 부서 내 기강이 다른 관청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엄격했다. 매일 조회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이를 다시(茶時)라 했으며, 밤에 특별히 여는 다시는 야다시(夜茶時)라 했는데 이는 누군가 곧 잡혀 들어갈 것이라는 암시라고 한다. 장은 대사헌(大司憲)으로 종2품에 해당했다.
반면 사간원은 근무 분위기가 자유분방하기로 유명해서 업무 시간 중 음주가 가능한 유일한 관청이었으며, 임금의 금주령을 무시할 수 있었다. 술기운이라도 없으면 전제군주제 하에서 깡 좋게 상소를 올릴 수도 없으니 그에 대한 배려인 셈이다. 조회가 끝난 후 가장 나중에 나가는 이들이 사간원 관헌들이었으며, 품계가 높은 자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관청이었다. 장은 대사간(大司諫)이며, 정3품으로 삼사의 장관들 중 가장 품계가 낮았다.
홍문관은 명목상 성균관과 같은 학교였다. 즉 그냥 문치적 분위기. 성균관은 대과 치를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반면, 홍문관은 정치를 연구하는 연구기관인 게 차이점이다. 사실 홍문관은 세조 때 폐지된 집현전의 실질적 후계자나 마찬가지의 위치에 있었다.
성종이 집현전을 부활시키려고 해도 명분상으로 조부인 세조가 폐지한 것을 바로 부활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기능과 관직을 옮긴 것이 홍문관과 예문관인데, 일단은 집현전의 정통후계자가 되어야 하는 예문관이 실제로는 춘추관과 함께 있던 시절처럼 실록 편찬 쪽에 주로 관여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홍문관이 집현전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삼사 중에서 홍문관만은 직계아문(直啓衙門)이 아닌 예조의 속아문(屬衙門)이다. 실질적인 장은 정3품 부제학(副提學)이며 그 위의 종2품 제학(提學), 정2품 대제학(大提學)은 다른 관청의 관리가 겸직하며 정1품 영사(領事)는 의정부의 의정(議政)이 겸직한다. 이들은 파직되어도 파직기간이 일종의 휴가로 취급되며, 관직 경력이 중지되지 않았다. 삼사 관헌들도 자신의 임기를 채워서 끝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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