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작품명 :
출판사 :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
장르문학 비평을 쓰면 '취향차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니가 뭐라 해도 난 재밌다, 니가 아무리 칭찬해도 난 재미없다,
이런 것의 근거가 「내 취향이니까」라는 문장이다.
그렇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누가 뭐라 해도 재미난 건 재미난 거고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거다.
아주 가끔은 감평글을 보고 새로운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기존에 갖고 있던 호오가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문 경우라 하겠다.
『내 취향이니까』
좋은 말이다.
개인의 주관적 영역은 지켜져야 하며,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건 끝난다.
내 취향이다. 어째서 좋은지는 모른다.어째서 싫은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취향이다. 네가 아무리 뭐라 해도 내 취향이다.
여기서 사고는 끝난다. 상대가 어떤 논리를 들어도 먹히지 않고,
상대방과 의견을 교환하고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
'왜 내 취향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왜 취향에 차이가 생겼나'에 관심이 없다.
모든 것은 주관적인 영역에 두리뭉실하게 남은 채로 끝나버린다.
각종 개념과 장치를 들어
논리정연하게 비평하는 수준까지는 필요없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어째서 즐겁고 어째서 불쾌한지,
그 원리가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무림사계가 정말 재밌었다. 그래서 높이 평가한 거다.
왜 나는 무림사계가 재밌을까?
어째서? 난 수백번도 더 나에게 물었다.
그냥 『내 취향이니까.』 한마디면 끝난다.
하지만 그걸론 모자라다.
내가 왜 무림사계를 좋아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이 글이 얼마나 뛰어나고 재밌는지,
외치고 싶어서 좀이 쑤실 지경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이와 토론을 나누고 싶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를 발전시키고 더 나은 독서를 하고 싶다.
그렇다면 무턱대고 '내 취향이니까 재밌어!'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생각하는거다. 왜 재밌는지. 어째서 좋은 글인지.
궁리하고 궁리하다보면 내가 어디서 즐거움을 느끼고,
어디서 불쾌한지 알 수 있다.
책을 가만히 읽으면서 나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찬찬히 살피는 거다.
난 석방평 이야기에서 너무나 감탄했다. 왜 그랬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유가 나왔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조역인데도 깊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필력 때문이었다.
게다가 짧은 분량으로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으로
그의 인생을 조명해서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몰두할 수 있게 해주는 점이 좋았다고 느꼈다.
나는 서브캐릭터들이 난입해서
많은 페이지 잡아먹는 건 싫어한다.
더군다나 할머니와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또다른 석방평의 면모를 알 수 있었고,
두 노부부의 정에 감화되어 버리기도 했다.
이것은 사실 모두 내 취향이다.
다만 좀 더 자세히 들어간 것 뿐이다.
조연에게도 쉽게 감정이입을 시켜준다
→ 더 재밌다 → 높이 평가한다.
짧은 분량으로 효과적인 사이드스토리
→ 몰입을 깨지 않는다 → 높이 평가한다.
할머니를 등장시켜 입체적으로 인물을 보여준다
→ 감정이입이 잘된다 → 높이 평가한다.
이런 식이다. 모두 내 주관적인 호오가 들어간 판단이다.
그러나 어쨌든 분석을 하니 단순한 취향차이가 아니라
적당한 비평이 되었다.
나는 『비판적 읽기』 를 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읽기라는 게 책을 삐딱선 타면서 보라는 의미가 아니다.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의도를 갖고 글을 썼는지,
나는 어디서 즐거움을 얻고 어디서 슬프고
어디가 마음에 안드는지, 끊임없이 궁리하면서
독서를 하자는 의미다.
이것은 '취향차이'라는 주관의 영역을
점점 객관의 영역으로 끌어내어 준다.
좀 더 자기에 대해서 잘 알게 되고,
나의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되며,
타인과 상호발전적인 토론을 할 수 있게 되고,
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책을 볼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내 취향이니까』한마디로
끝내는것보다는 훨씬 유익하다.
난 육하원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왜(WHY)라고 생각한다.
왜? 어째서? 무슨 이유로? 어떤 연유로?
현대인은 머리 쓰기를 싫어한다.
정보량은 폭주하지, 스트레스는 쌓이지.
그럴 수록 더욱 더 『왜』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그저 휩쓸리고 흔들릴 뿐이다.
모든 장르문학의 독자들이 확고한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주체적인 독서를 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21057311
Commen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