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감상. 비평, 비판, 비난 등의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기에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의 목적은 각 개념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돕고자 함이며, 다른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그러므로 이 글의 성격은 사실을 설명한 '설명문'이며, 조금도 토론의 의사가 없음을 또한 밝힙니다.(질문은 수렴하지만 반의가 있을 경우 응대하지 않습니다)
이곳은 문피아. 우리나라 최대의 장르문학 사이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 사이트의 비평란에서조차 위의 개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작성된 글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비평란 공지.
공지에서조차 각 개념에 대해 잘못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문제의 심각성을 재인식,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 1항. 비평의 개념과 비평행위의 방법
'비평'이라 함은 비평대상의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분석하고 지적하여 알리며, 잘된 점은 더욱 더 잘될 수 있도록, 잘못된 점은 수정하여 다음에는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데 그 의의를 가지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비평을 행하는 데에는 몇 가지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1. 잘된 점에 대한 칭찬 및 그 근거를 제시하여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 그 비평은 비평이 아닌 비판이 됩니다.(제 2항 '비판의 개념과 비판행위의 방법' 참조)
2. 잘못된 점에 대한 지적 및 그 근거를 제시하여야 합니다. 비평에 있어서 이것은 중요한 행위로, 이것이 빠지면 그 비평은 목적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본연의 기능을 완벽히 수행했다고 보기 어려워집니다. 분명 그 비평은 추천이나 감상에 더 가까운 것이 될 것입니다.(제 3항 '감상의 개념과 감상행위의 주의점' 참조)
3. 잘된 점, 잘못된 점을 포괄하여 향후 발전을 위한 대책이나 대안, 혹은 진로제시와 같은 조언이 '반드시' 제시되어야 합니다. 많은 비전문 비평가들의 경우 이 부분이 빠져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전문 비평가들 중에도 간혹 있더군요),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이것이야말로 비평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이것이 빠질 경우 그 비평은 순식간에 비난이나 비방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입니다.(제 4항. '비난의 개념과 비난행위의 주의점' 참조)
비평은 결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데 그치거나, 잘된 것을 잘되었다고 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비평행위를 할 때 반드시 기억하셔야 할 점은, 비평이란 비평대상과 그 작자의 '발전'을 기대하고 돕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3번은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됩니다. 비평행위의 의무인 것이죠. 비평자가 그 스스로도 대책을 제시할 수 없으면서, 비평대상을 일방적으로 잘못되었다 꼬집는 것은 부당한 행위입니다. 자신도 어떻게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대상을 비평하거나 비판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제 2항. 비판의 개념과 비판행위의 방법
'비판'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비평과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 성격이 보다 잘못된 점의 지적과 개선촉구에 치우쳐 있다는데 차이가 있습니다.
비판은 결코 잘못된 것을 욕하고 채찍질하여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행위가 아닙니다. 비판 역시 비평과 마찬가지로 비판대상의 발전을 기대하며 돕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비판이 비평과 구분되어 필요한 까닭은 도저히 '잘된 점'에 대해 어떻게 말하기 곤란한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판은 보다 부정적인 대상을 향해 이루어지는 행위입니다. 좋다고 보기 힘든 대상, 그러나 그 취지나 가능성 등이 맹목적으로 나쁘다고 볼 수 없는 대상에 대하여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는 행위가 바로 비판입니다.
이때에 비판자는 대상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알리며, 그 근거를 제시하여 자신의 비판이 정당하고 올바른 것임을 밝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판 역시 그렇게 문제점을 알리는 데에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1. 잘된 점이 충분히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비판은 자칫 대상의 잘된 점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잘못되었다는 편파적인(객관적이지 않은)시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잘된 점이 충분히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비판보다는 비평을 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보아 올바른 태도입니다.
2. 잘못된 점을 알리고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되, 비판대상을 향한 최대한의 예의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지켜지지 못할 경우 그 비판은 비판이 아닌 비난이나 비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제 4항. '비난의 개념과 비난행위의 주의점' 참조) 비평과는 달리 비판은 보다 공격적인 성향을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므로, 보다 철저한 예의가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3. 앞서 말한 모든 잘못된 점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여, 문제점을 수정할 수 있도록 충분한 만큼의 대책이나 대안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여의치 못할 경우에는 자신의 비판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생각해 보고, 자신의 비판행위가 정당한 것인가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책이나 대안의 제시는 비평과 비판 모두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행위이며, 빠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판 역시 그 대상의 발전을 기대하고 돕는다는 입장의 행위인 만큼 대책, 대안의 제시는 필수불가결하며, 만약 제시할 수 없을 경우에는 비판자 스스로에게 아직 대상에 대한 비판행위를 할 자격이나 실력이 없음을 깨닫고 즉시 비판을 철회하여야 합니다.
제 3항. 감상의 개념과 감상행위의 주의점
'감상'이란 대상에 대하여 자신이 느끼고 체험한 바를 되도록 실감나게 설명하는 행위입니다. 감상은 그 개념 자체에서 어떤 특정한 성격이나 성향을 가지기 보다는 감상행위 개체에 따라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또한 그 목적성이 여타 다른 개념에 비해 매우 불분명하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재미있다, 없다, 좋다, 나쁘다, 의 한 마디만으로도 감상행위는 성립합니다. 단, 그 한 마디가 자신의 모든 경험을 대변하기에 현저히 역부족이며 더 나은 감상이 충분히 가능했을 경우 그 감상은 성의가 없는 것이 되며, 감상대상에 대한 예의가 부족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성격이나 성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감상은 어떤 대상을 한정지어 그것에 대해 말하는 행위이니 만큼, 신중히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감상에도 몇 가지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있습니다.
1. 감상대상에 대해 필요한 선에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그 필요한 만큼의 예의를 갖출 능력이 부족하다면 함부로 감상을 말해선 안 되며, 누군가 그것을 요구할 경우 거절해야 합니다.(다른 개념에도 통용합니다)
2.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확실히 전달해야 합니다. 감상은 특별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으나, 이것은 감상자가 그 감상을 공유하고자 하는 상대에 대한 예의로써 필요한 행위입니다. 강요되는 항목이기 보다는 스스로 유념하고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항목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상의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성격이 변질되진 않습니다)
3. 선택적인 행위지만, 감상행위를 하는 의의나 목적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좋습니다.(학교 숙제, 등과 같이 이미 그 목적이 뚜렷한 경우에는 필요치 않습니다) 이것은 감상을 공유하는 상대에게 있어 해당 감상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본디 목적성이 뚜렷하지 않은 행위이기에 필요한 요소입니다.
감상을 함에 있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감상 행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는 것이 첫 번째이며, 자신의 감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감상은 누구나 자유로이 할 수 있으며 최소한의 인격적인 예의를 갖출 수만 있다면 실력이나 자격이 중요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이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 감상대상이나 그 작자가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감상행위를 원치 않을 경우에는 금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제 4항. 비난의 개념과 비난행위의 주의점
'비난'이란 대상을 부정하고 반대하며, 배척을 도모하는 극히 공격적인 행위입니다. 비난은 대상에 대해 어떠한 발전도 기대하고 있지 않은 행위이며 심할 경우 대상의 제거, 파괴, 소실, 고립 등을 목표하기도 합니다.
매우 극단적이며 공격적인 행위인 만큼 비난행위를 하는데 있어서는 다른 어떤 행위보다도 신중해야 하며, 행위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각오 역시 확고해야 합니다.
또한, 그 성격상 많은 경우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가능하다면 예의를 갖추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비난행위의 부정적인 면을 조금이나마 보완해 주며, 비난자 스스로의 인격을 최소한 보호합니다.
비난은 그것이 모욕이나 명예훼손 등과 같은 범법행위에만 속하지 않는다면 금지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당연한 역반응이며, 무조건적으로 불필요한 행위 또한 아닙니다. 비난 그 자체는 법적인 제제를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난행위는 극단적인 입장에서 대상을 공격하는 행위이며 그 구제를 목표하고 있지 않은 만큼, 비난자 스스로에게 비난행위의 결과를 강하게 책임추궁할 수 있으며, 그 외에 비난자를 향한 또다른 비난을 불러오는 등 스스로의 입장을 매우 불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더 넓은 시각에서 보아 신중하지 못할 경우, 신중하다 하더라도 너무 잦을 경우에는 다른 모든 이유를 무시하고서 반사회적 거동자로 인식되며 비난대상과 비난자가 포함된 사회 분위기를 흐릴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비난은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도 가능한 자제하는 것이 이롭습니다. 정말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정말로 최소한의 비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최소한의 경우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해를 끼치기 때문에, 여러 단체나 사회(문피아 등과 같은)에서는 이런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난이 꼭 필요한 경우는 어떤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구제나 발전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대상이 구제나 발전의 가능성을 거의, 혹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제나 발전의 가능성을 기대하기 힘들며 또한 그 대상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2차적 대상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판단되는 경우 시급히 배척, 고립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이것은 모든 행위적 고려를 염두에 두지 않고 우선적인 결과도출을 위해 간편하며 즉각적 반응을 얻을 수 있는 비난행위가 필요해집니다.
하지만 비난이 아무리 행위적 고려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비난은 그 대상을 배척한다는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느니 만큼 그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비난은 하나마나가 될 뿐 아니라 괜히 비난자의 입장만 난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비난을 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비난자는 비난대상이 비난 받을 점과 그 근거에 대해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서 벗어나는 점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비난의 정당성을 확보하여 주며, 따라서 비난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결과를 더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게 해줍니다. 만약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그 비난은 비난이긴 했으나 아무런 쓸모도 없는 헛고생에 지나지 않게 되겠지요.
2. 단순 배척을 목적하는 까닭에 대책이나 대안의 제시는 불필요하나,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한다고 한다면, 비난보다는 비판을 하는 편이 이상적입니다.
비난은 필요악입니다.
가능한 하지 않는 것이 좋으나 꼭 필요할 땐 해야할 것이기도 합니다. 구제나 발전의 여지를 기대하기 힘든 무조건적 악을 배척할 때(연쇄살인범에 대한 비난 등), 즉각적인 배척을 시급히 요하며 다른 행위적 고려를 계산할 여유가 없을 때(전쟁반대 등), 영향을 받을 수 있는 2차적 대상들에게 간접적 경고의 의사를 전달할 때, 비판만으로는 필요한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어 더 강력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히 요구될 때(비난을 받으면 사람들은 위축되어 자신의 진로를 수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판과 비슷한 효과), 뚜렷한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아 단순 토론, 대립만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사회적 통념을 지킬 수 없을 때(남녀 동거문제, 동성애 문제와 같은, 기존 사회 분위기를 깨뜨려 혼란에 빠지게 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그래서 그것을 사수하는 마지노선으로서 기능할 필요가 있을 때, 우리는 비난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난행위는 조금만 노력하면 비판으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은 무분별한 비난을 일삼고 있으며 동시에 무분별한 비난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필요악이라는 것은 제대로 사용될 수 있을 때에만 '필요'의 가치를 지니고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사용되지 못한다면, '악'의 요소로서 당연히 배척 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네 가지 개념(감상, 비평, 비판, 비난)에 대해서 설명드렸습니다. 더 나은 비평문화가 문피아에,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에 정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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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 강조해야 할 점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비평이나 비판을 하는 데에 있어서 근거를 제시할 때는 그것은 누가 보아도 합당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 있어야 합니다.
'주인공이 너무 먼치킨이다. 말도 안 된다'와 같은 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왜 주인공이 먼치킨이어선 안 되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올바른 근거를 제시한 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그 과정에서 예의를 갖추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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