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누군가가 장르문학을 이야기 하며 사용한 킬링타임이란 단어. 이 단어가 일면 장르문학의 현실을 꿰뚫는 듯 하다고 느껴 점차 많이 쓰이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런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 안 하셨습니까? 왜 무협 소설이나 환타지 소설을 읽는 행위를 킬링타임이라 비하할까요? 킬링타임은 시간낭비를 의미합니다. 시간을 무가치하게 소모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그 단어 이면에는 장르문학에 대한 냉소와 비하가 들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러한 비하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는 의문입니다.
그것은 장르문학이 존재하는 목적과 가치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생겼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필요할 때 즐길 만큼 즐겨 놓고서 배부르면 딴 말하는 표리부동함은 거부합니다.
우리가 게임을 할 때나, 번지점프를 하거나, 노래방에 가거나, 당구장에 가거나, 나이트클럽에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우리가 공부나 생계, 인생공부, 인간관계의 생산적 증진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모든 즐기기 위한 행위들은 따지고 보면 킬링타임이 아닐까요? 생산적이지 못한 것이니까요.
우리들이 그곳에 갈 때 무언가를 공부하기 위해 갔습니까? 그 목적이 뭐였을까요? 즐기기 위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간 것 아닙니까? 심심해서 시간 보내려고 하는 경우는 없었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기다리는 시간을 빨리 넘기기 위해서 DMB나 소형 게임기를 이용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즐기기 위해 존재하는 여러 서비스들을 가지고 킬링타임이라며 비난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장르문학에 대해서 킬링타임이란 말이 점차 활기를 띄는 걸까요?
문학의 한 분야인 장르소설로서 요구하는 기대치가 크기 때문에 킬링타임이라는 비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너무한 것입니다.
우리가 장르문학을 읽는 목적, 우리가 읽으며 얻길 원하는 것이 분명 있을 겁니다. 우리는 장르문학을 읽으면서 우리가 원하던 바로 그 것을 충족합니다. 아마 장르소설의 팬이라면 정신적 만족감과 배부름을 느끼기 위해 자주 무협소설과 환타지 소설을 탐독하고 있을 것입니다.
장르문학에는 인간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지친 수험 기간의 활력소가 되어주기도 하고 장르소설이 없으면 삶의 낙이 하나 줄어드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 이러한 "상상의 즐거움"을 엄연히 돈을 내고 사서 즐기고 있음에도 "남는 게 없다.", "시간 죽이기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왜 돈 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건가요? 그냥 필수 영양분만 꿀떡꿀떡 섭취하면 돈낭비도 시간낭비도 아닐 텐대요. 왜 외식을 나가나요? 그냥 비타민이나 탄수화물, 단백질 들어있는 약만 먹지 그러나요? 이건 킬링머니 아닐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장르문학은 우리가 여가를 보낼 수 있는 한 방법입니다. 킬링타임이라 부르는 것은 먹고나서 입 싹 씻는 듯한 단어 아닐까요? 이상하게 킬링타임이란 단어는 이런 느낌을 줍니다.
'내 수준은 이게 아닌데 시간 때울려고 읽어 준다.'
그렇다면 그것을 읽고 즐거워 한 그의 수준은 무엇일가요?
장르문학을 비하하고 평가절하한다고 해서 자신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킬링타임이란 단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재미없고 염치가 없을 정도로 수준 낮은 소설이라면 아마추어의 설익거나 탄 음식처럼 상품가치 없는 돈낭비겠지만 만약 우리가 읽고나서 재미를 느꼈다면 그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라 우리가 돈을 내고 재미를 샀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작가의 즐거운 상상력을 돈을 주고 구매한 것입니다.
분명 즐거움을 얻었으면서 마치 그 즐거움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듯이 킬링타임, 즉 시간죽이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킬링타임이란 표현. 장르 문학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합니다. 장르문학 매니아라면 그 표현을 장르문학을 일컫을 때 사용하는 것은 우리와 작가 얼굴에 스스로 먹칠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킬링타임 판타지란 자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없는 소설을 하품하며 시간 때우기 위해 읽었다면 킬링타임이겠지만, 분명 그 소설을 읽고 즐거워한 누군가는 그 시간은 "재미, 상상력"을 소비한 행복한 여가시간일 것입니다. 재미없는 소설을 하품하면서도 시간 때우기 위해 읽는 사람이 있긴 할까요. 아마 바로 책을 덮어버릴텐대요.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분노를 참는데 사용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ㅡ_- 그런 의미에서 장르문학에 킬링타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상상력"을 구매하는데 있어 불만족한 소비자와 만족한 소비자가 있을 뿐.
또한 "킬링타임"이란 단어의 의미를 다르게 쓴다고 하더라도 원래의 뜻인 "시간 죽이기"가 얼마나 좋게 탈바꿈 할 수 있겠습니까?
킬링타임은 아무리 좋게 말하더라도 장르소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용어임에 분명합니다. 지금 잠시만 눈을 감고 킬링타임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 지 생각해 보세요. 단지 표면적인 뜻이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속의 의미를 느껴보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눈치챌 수 있을 것입니다.
근래 여러 시민 단체에서 "개선해야 할 용어" 및 "사라져야 될 용어"를 뽑으며 바꾸고자 주창하는 이유도 부정적인 뜻을 가진 단어가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 지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른 좋은 단어들도 얼마든지 차용할 수 있을테니 킬링타임이 아닌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킬링타임이란 단어가 장르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장르문학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선전을 해주는 단어일까요 아닐까요? 다른 단어로 바꾸거나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무협지라는 표현을 문피아에서 없앴듯, 킬링타임이란 단어도 개선해야 할 용어라고 저는 보는데 당신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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