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포효
작가 : 고룡생
출판사 : 문피아 연재중
포효는 어색합니다.
사실 이 한 마디로 비평을 정리해도 될 것 같지만 이야기를 좀 풀어보겠습니다.
굳이 비평 씩이나 남기는 이유는 제가 포효를 예전에는 꽤 재밌게 봤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때도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글이 전개되면서 어색함이 쌓이고 쌓여 폭발하고 있기에 비평을 적습니다. 작가님. 이거 보시면 내 글은 종이책 스타일이라서 그렇다라고 쿨하게 넘기지만 마시고 진지하게 감안해주세요. 서로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남의 생각에서도 건질만한 부분은 아마 있을 겁니다.
포효의 주인공은 관룡입니다. 어릴 때 별명은 아돈이라고 하는군요. 포켓몬 말고 돼지 돈 자입니다. 적당히 감이 오시죠? 엄청나게 살이 찐 친구입니다. 관우의 44대손이라는 걸 작중 몇 번씩 강조해서 이제 드디어 저도 외웠습니다. (사실 제 기억이 틀려서 44대 아닐 수도 있지만 너그러이 넘겨주시길) 관룡은 무공을 배우기 위해 저 멀리서 온 소년인데, 무려 아버지가 지게에 짊어지고 왔습니다.
무관의 사람들은 도저히 저놈은 써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의 노력을 봐서 관룡의 입문을 허락하지요.
이렇게 시작되는 글입니다. 무난하게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1. 관룡이 잘 나가는 부분부터 본격적으로 어색해진다.
주인공은 뚱뚱류 주인공이 대부분 그렇듯 극적인 변신에 성공합니다. 살을 쫙 뺀 호남이 되어서 쩌는 무공실력으로 사문의 영웅이 됩니다. 뭐 약속된 전개이고 무방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 번 포효라는 글을 이 시점에서 끊었습니다. 너무 어색해서요.
이유가 뭘까요? 우연히 포효의 업데이트 현황을 발견한게 일주일 전이고 그래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에 예전 읽었던 부분부터 이어 보면서 고민했습니다. 혹시 제가 사실은 마조히스트라서 주인공이 찌질거리지 않으면 쾌감을 못 느끼는 변태일까요?
그것도 가능성이 있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저 시점에서 제가 한 번 글을 끊은 이유는 글의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관룡이 무시당하는 뚱보이던 시절에는 글의 시야가 좁았습니다. 조명되는 것이 기껏해야 문파 내부의 사람들, 우리 룡이는 잘 해낼거다! 라고 믿는 헌신적 아버지 정도였죠.
그래서 이 글이 가지는 문제점이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판이 커지면서 이것저것 드러나는게 많아지고 여러 인물이 나오면서 문제가 폭발한거죠. 그럼 제가 생각하는 글의 문제점들은 무엇이냐
2. 인물 & 갈등구조
우선 인물상이 문제입니다.
이 글의 인물상은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뉩니다. 적, 아가 그것입니다.
다만 이 적아는 다른 소설의 적아와는 조금 다른데 주인공과 대립하는 적, 주인공을 지지하는 아가 아니라 주인공에게 찌질거리는 적과 주인공을 지지하는 아로 나뉩니다. 세력의 대립이 아니라 인간관계적으로 양분되지요.
달리 말하면 주인공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와 찬양을 보내는 아군들과 주인공을 부당하게 핍박하거나 주인공에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찡찡거리는 인물들만 남는다는 뜻입니다. 지나치게 피해망상적 구성입니다. (물론 후자에 속했던 인물들이 전자로 돌아서기는 합니다. 대표적으로 주인공이 살 쫙 빼고 간지나는 문파의 영웅이 되는 시점에서요.)
그럼 진짜 제대로 된 아치에너미는? 아직 안 나왔습니다. 현재 한 90화쯤 진행되었습니다. 아 물론 작가님은 나중에 나온다고, 혹은 이미 나왔는데 아직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지 않은 거라고 하시겠지만 그건 잘 모르겠고 일단 제가 본 바로는 아직 주인공의 아치에너미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 구조가 지금 되풀이 되는 경향이 있다는게 문제입니다.
정확히는 주인공을 핍박하는 인물들과 절치부심하여 수련에 몰두하는 주인공.
처음 무공에 입문했을 때가 스테이지 1이라면 지금은 소림의 속가문파 대표주자끼리 모인 스테이지 2인데 스테이지 구성이 동일합니다. 스테이지 1에서는 살 때문에 씹혔다면 스테이지 2에선 익힌 무공이 별볼일 없어서, 우리 중엔 니가 제일 쪼렙이다! 여서 씹히죠.
스테이지 3, 4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일단 한 번 극복한 갈등구조와 거의 동일한 구성이 되풀이될 뿐이란 건 조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3. 디테일
포괄적이고 소소한 의미에서 디테일도 문제입니다. 우선 진행상의 디테일. 오사(五邪)라는 인물들이 언급됩니다만 그 과정이 굉장히 작위적입니다.
소림사에서 속가들을 옹기종기 데리고 바깥구경을 하고 오는 챕터가 있습니다. 네 편인가 다섯 편 정도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용은 딱 하나입니다. 비록 막내일지언정 소림사 나한승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도 오사의 이름은 무겁다! 왜 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딱 저거 하나 하고 다시 소림사로 돌아옵니다.
...뭐지 이 작위적인 전개는? 심지어 직전, 직후의 스토리와 긴밀히 연결되는 무언가도 없습니다. 독자 입장에선 갑툭튀도 이런 갑툭튀가 없습니다.
강호의 기인이사는 바다의 모래알만큼 많다고들 하죠. 그런데 그 챕터에서 한 도시에 모인 무림인들이 전부 설설 기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아직 강호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초짜 우리의 주인공 관룡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마 이 도시에 강호오사가 있어서 다들 이렇게 겁을 먹은 거겠죠! 코난 같은 놈.
또 단어선정도 문제가 됩니다. 대표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천문학적 단위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를 설명하며 천문학적이라는 수식어가 등장하는데 제가 알기로 고대 중국의 천문학은 몇 광년, 수 억 톤을 가늠하는 학문이 아니라 점복의 일종이며 기상학이었습니다. 과연 천문학적이라는 말이 어마어마한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게 언제부터일까요? 고대 중국은 아니라는데 한 표 던집니다.
그리고 지금 수십 화 째 분량을 잡아먹고 있는, 어디서 갑툭튀한 주인공의 소꿉친구 미녀의 처녀 논쟁도 불편합니다. 거의 주인공이 입문해서 살 뺀 분량만큼 쭉 진행된 것 같은데 (물론 이게 메인으로 계속 수십 화 째 다뤄진 건 아닙니다. 다만 계속해서 계속해서 진짜 계속해서 사골처럼 수십 화 째 우러나고 있습니다.) 이게 또 가관입니다.
어떤 싸가지 없는 여자 잘 후리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또 한 명 있습니다.
편의상 순서대로 철수 영희 길동이라 부르겠습니다.
어느날 길동이와 철수가 씩씩댑니다. 뭔 일인가 해서 반 애들이 전부 모였습니다. 뭐야 뭐야 했더니 누군가 비분강개해서 외칩니다. “뭐긴 뭐야 철수가 영희랑 잔 거지!” 저 누군가가 아마 길동이로 기억합니다. 다만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기에 제 이성은 아마도 제가 잘못 기억하는 것일거라고 주장합니다. 뭐 누가 주장했건 상관은 없습니다. 막장이란 건 동일하니까요.
정조관념이 고대보다 많이 덜 중요해진 현대입니다. 뭐 그렇게들 말하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자기가 누구랑 자고 안 자고 했다는게 공개적으로 드러나는데 좋아할 여자는 없습니다. 굉장히 절제된 표현으로, 그런 여자는 절대 없습니다.
그런데 작중 누구도 저런 막장스런 말을 공개적으로 외친, 그것도 반 애들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저런 소리를 한 인간을 질타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 팝콘 먹으며 봐야할 희대의 막장 스캔들에 헐ㅋ 엌ㅋ 아니면 으앙ㅠㅠ 할 뿐이죠.
그리고 길동과 철수가 대립하자 그걸 가로막으며 영희가 하는 말이 또 죽여줍니다.
영희가 길동을 보호하며 철수에게 “죽여봐, 침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하하. 아주 쿨한 여자에요 정말 멋져요. 엄지 척.
(덧붙이자면 영희-철수 스캔들에 대해 주인공이 자기의 소중한 추억 속 소녀의 “수궁사를 찢었다”는 맥락의 발언을 합니다. 디테일은 틀렸을지 몰라도 수궁사 찢음은 기억합니다. 수궁사는 처녀막도 아니고 무슨 혈관도 아닙니다. 팔뚝에 찍는 점이죠. 여자아이가 순결을 잃으면 저 수궁사가 사라진다는 미신입니다. 팔뚝을 찢는게 아니면 점이 찢기지는 않죠.)
그리고 지금 수십 화째 아직도 저러고 있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소꿉친구인 영희는 저 아웃팅 사건 이후 주인공에게 흥흥 거리면서 괜히 관심 좀 달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주인공과 무관하게 철수와 길동이는 아직도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글의 제목인 포효 옆에 한글로 으르렁이라고 번역하셨더군요.
진짜 자기가 더 맹견이라고 자랑하는 개들이 으르렁대는 스토리라는 표현이었나?
4. 종이책 스타일
이 모든 비판에 대한 작가님의 멘트는 아마 제 글은 종이책 스타일이라 그렇습니다. 로 귀결될 겁니다. 포효의 작가 고룡생 님은 종이책 스타일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정말 많은 댓글에서 저 단어를 찾아볼 수 있고 공지글에도 등장합니다.
누군가가 상당히 공감이 가는 비판을 댓글로 올렸었는데 거기에 대한 답변도 내 글은 종이책 스타일이라 그렇다였습니다. 한 마디로 권 단위로 빵빵 터뜨릴 거니까 답답해도 이해가 안 가도 참고 따라올 사람에게만 맞는 글이다 라는 뜻이겠지요. (제 짐작입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도 맞을 겁니다 이런 뜻.)
그런데 독자는 읽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 종이책도 언제든 덮습니다. 혹은 다음 권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포효는 지나치게 중구난방입니다. 이 이야기 했다가 저 이야기 했다가 각 이야기의 연관성에 대한 최소한의 맥락도 없이 멋대로 이것저것 삐져나옵니다.
복선, 떡밥, 거시적으로 진행되는 스토리라인. 그런게 보여야 다각적인 전개가 마침내 좀 있어보이고 깊이있고 폭넓은 글이 되는거지 그냥 이것저것 던진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작가님은 종이책 스타일이라는 철벽의 브랜드 네임 안에서 이러한 비판들에 대해 그냥 취향차이, 혹은 종이책이 아니라 아쉽다는 듯이 받으시더군요.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종이책이 아니라 목각판으로 나와도 재미가 떨어지는 요소들은 여전할 겁니다. 오히려 저런 부분은 인터넷 연재에서 작가님이 덕을 좀 보고 계시는 겁니다. 종이책으로 엮어서 보면 저거 진짜 속터집니다. 작가가 혼자 자기 썰 푸는데 문제는 그게 긴밀히 연관된 것도 아니고 뜬금없고 챕터 하나를 통째로 작위적으로 이런 대단한 인물이 있다 한 마디 하려고 써먹고.
가끔가다 한 편씩 보는 인터넷 연재니까 이런게 눈에 확 안 들어오는거지 종이책이면 더 잘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요?
처음에 상당히 괜찮게 보았던 글이 점점 재미가 없어져서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씁니다. 한 번만 진지하게 글 내용을 쭉 훑어보시고, 뭐 이 글도 제 주관적 평가이니 취향이 아닌 부분도 있을 것이고 작가님이 수용할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여튼 반영할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겁니다.
재밌는 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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