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을 읽은지 꽤 되었다. 김용은 물론,운중악,소슬,고룡,와룡생,양우생까지 중무도 나온건 거의 읽어보았다. 구무협은 안본건 드물정도로 봤고, 신무협은 2000년대 임준욱을 거의 마지막 기점으로 보면서 생각한다.
뭘 말하고 싶은지 서두를 길게 쓴 이유가 있다. 무협 밖에서도 많은 책들을 보았다.명작,고전,철학,경제서적,전문서적........
흔히들 무협에서 비평을 할때 좀 읽었다 하는 친구들은 김용을 든다.김용은 잘 썼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잘 썼다함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나는 김용을 들면서 다른 걸 비웃는 사람들을 보면 우습게 보인다. 나 또한 어디가서 누구에게 질만큼 책을 적게 읽지는 않았다고 자부하지만, 산넘어 산이라, 천외천이라는 말이 괜히 생겼을까?
수많은 책과 작품이 있다. 하버드대학의 도서관에는 몇백만권이라는 책이 있다고 하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들어보았다.어쨌거나 김용을 들어서 장르소설을 질타하는 수많은 분들을 보았다.
거참! 질린다. 왜?!
권위에 의존해서 다른 것을 깔아뭉개는 것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김용의 소설에 그 탁월함에 빗대어 다른 것을 깐다.그게 좋은가? 난 반대다. 소설은 항상 그자체만으로 두고 판단하는 것이 좋다. 사람이 타인과 비교해서 열등함을 느끼거나 우월함을 느끼는 것처럼 바보스러운 작태도 없을 터, 물론 개개인의 실력,능력,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미련스레 남에게 있는 장점이 자신에게 없다고 비하하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이는 그런다. 김용은 위대하다. 한국무협은 저열하다. 누구에게 말함인가? 교화의 대상이 누구인가? 작가? 독자? 누구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가? 목적이 작가라면, 웃기는 작태이고, 대상이 일반 무협 독자라 치자. 무협독자들 나름의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영향을 주고 싶을 터, 그런 비평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누가 누구보다 낫다만큼 주관적인 게 어디 있을까? 이거야 말로 취향이 되어 버린다.
문학에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 점수가 어떻게 존재할까? 일정부분을 객관화 시킨 지표가 만들어 진다고 할지언정, 그게 모든 것 대변화,일반화 할 수 있을까?
어떤이는 그런다. 한국무협은 김용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 과연 그런가? 90년대 신무협 작가중 정진인이 있었다.그는 술법무협을 구체화 시켰다. 하지만, 김용의 어떤 작품에서 어떤 부분에서 술법이라는 것이 나왔는가? 다른 이야기로 설봉의 산타를 들어보자. 산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정말 그럴듯하게 글을 썼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치열함과 사실감, 김용의 글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글을 나는 본적이 없다. 또 한상운의 독비객이나 무림사계처럼 톡톡 튀는 개성을 나는 김용의 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김용이 지금도 글을 잘 썼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용이 최고니 다른 것들은 무시할만해 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는다. 제각각의 특색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이것을 어찌 한 울타리에서 누구야 말로 천하무쌍 무림지존이라고 칭하기만 하는게 우스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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