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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14 알투디투
작성
15.05.09 12:00
조회
3,227

제목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

작가 : 하담하 

출판사 :  문피아 공모전 연재


작품 링크 : http://novel.munpia.com/32867


1. 序 ; 감상과 비평의 애매한 경계에서


본 글은 하담하의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에 관한 감상이자 비평이다. 이 글을 굳이 비평 게시판에 올린 건 글의 범주가 감상의 틀에 담기엔 너무 넓어졌거니와 부분적으로는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작품을 조망하는 얘기도 다뤄야 하리란 판단에서다.


이 글은 물론 비평으로 보기에는 이론적 정치精緻함도 결여되었을 뿐더러 굳이 비평의 형식으로 끌어가려는 의도도 강하지 못하다. 당장 필자는 본격적인 비평 이론을 학습한 전공자가 아니거니와 비평을 풀어내기에는 여러모로 이 장르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부족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느낀 바, 살핀 바를 감상이란 틀에 갇히지 않고 최대한 객관화해 풀어보려 한다.


문피아에서는 감상과 비평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인식하지 못하고 비평을 단지 부정적인 감상 즈음으로 판단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 이도저도 아닌 이 글이 어찌 받아들여질 지는 알 수 없지만, 혹 비평에 정통한 분들께서는 이 글에 부족함이 보이더라도 아무쪼록 너그러이 살펴주시길.



2. 작품에 대한 개괄.


아이를 배신한 어미는 문피아 공모전을 통해 공개된 작품이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 공개된 편수는 65편. 매 편의 분량은 약 3~4천자 정도로 생각되는데 각 편마다 소제목이 있다. 큰 분류로는 장章을 두고 있고, 현재는 제 4장의 연재가 진행 중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탈고 후 퇴고를 거쳐 연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집필과 연재를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미 상세한 혹은 대강의 플롯(줄거리가 아님)이 짜여져 있는 상태이고, 또 작품을 위한 자료 조사와 수집 역시 이미 그 단계를 마쳤거나 상당히 진행된 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글이 다룰 범위는 그 가운데 연재가 진행 중인 4장을 제외한 1장에서 3장 말미까지이다.


글은 기본적으로 미스테리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되 비현실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 이는 글을 쓴 작가의 후기에서 ‘스릴러 추리 판타지’로 자가 정의한 부분에서도 확인이 된다. 따라서 작품을 보는 관점도 가급적 그 틀에 맞춰가려 한다.



3. 기본적인 얼개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의 개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79년 개척교회의 목사인 김 목사의 아들 소국이가 실종된 뒤 시체로 발견된다.

아들을 죽인 범인을 추적하던 김 목사는 수벌이라는 노인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아들을 살려낼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현재.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자폐아 늘해랑이의 실종사건이 일어난다, 정도령의 부활과 늘해랑의 실종을 두고 아이의 부모인 정우와 준희 그리고 연쇄살인마인 승려 원정이 사건에 얽혀들게 된다.



4. 本 ; 이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


우선적으로 돋보이는 작품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소설의 형식을 빌린 극화의 인상


얘기의 흐름은 아무래도 단막의 영화보다는 짧은 시리즈물에 가까운 인상이다. 그리고 또 문피아란 매체에서 연재되고 있는 여타 작품 일반과 크게 대별되는 점으로는 다음의 사항들을 추려보았다.


소품 활용의 극대화

문학적 감수성


물론 이 외에도 여러 특성들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본 글에서는 이상의 세 가지 특징을 중심으로 이 글을 전개해 나갈 요량이다.



4-1. 壹; 소설의 형식, 극화의 느낌


(전략)... 예배당 처마에 빗물을 받는 수로관이 떨어졌다. 김목사는 교회건물과 경사진 비틀에 비스듬히 사다리를 세웠다. 올라가 보니 지빠귀가 둥지를 틀었다. 그 알을 먹기 위해 들고양이들이 지나다니다 보니 플라스틱 수로가 반쯤 내려앉은 것이었다. 둥지를 깨끗이 제거하고 물받침 홀더를 쳤다. 그 위에 새로 사온 철제 수로통을 얹혀 철사로 꼼꼼하게 동여맸다. ... (후략)

(하담하,『아이를 배신한 어미』 제 1장 선샤인 피플 中)

정갈하고 세련된 필치의 문장들을 활자로 표현한 이 작품은 뜻밖에도 스크린에 영사되는 듯한 극화의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에 재차 거론할 내용이지만 이 작품은 여러 묘사 간에 있어 대단히 효율적이고 치밀한 소품 활용을 하고 있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제 1장을 예로 들면 박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한 계엄사의 시해사건 조사, 영동 지구 공무원 아파트 공사 현장, 포드 마크 V, 힐튼 호텔 공사 현장, 쌕쌕이 선물 세트와 같이 시대상을 그려낼 만한 굵직한, 혹은 소소한 소품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이런 소품들은 전개와 연관을 지어 활용될 수도 있고, 단지 정경을 묘사하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소품 활용의 결과는 다양히 살필 수 있지만, 일차적인 효과는 시각화다. 근래 웹소설이란 형식을 내세워 서사의 스피디한 전개에만 주안점을 두는 글들은 전개와 관련된 인물과 소품에만 묘사를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주변 소품과 여타 정경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지나가는 길목의 신전들은 대부분 반쯤 무너져 버려졌고, 아이들과 개들만 포장도로 위를 싸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오른쪽, 공회당으로 가는 입구에 총독의 보좌관과 두 명의 관리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후략)

(윌리스 브림, 『눈 속의 독수리』 中)


보라. 그 시대, 그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은 그 시대에 실재했던 포장도로와 무너진 신전으로부터 비롯된다. 더불어 우리는 로마 제국의 쇠퇴와 몰락의 징조를 읽는다. 마찬가지로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에서는 김 목사가 스스로 범인을 찾아 나서야 하는 1970년대를 그려낸다. (이 경우는 80년대이지만)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보이는, 선량한 시민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의 흔적이 엿보인다.


앞서도 말했듯 이러한 소품들이 채워내는 공간은, 읽는 독자에겐 그대로 시각화된 형상으로 다가온다. 또 여기에 더해 작품의 갈등 전개가 영화나 TV 드라마의 그것을 보듯 명료하고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흔히 이런 작품들이 소위 말하는 '페이지 터너‘가 될 요인이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조금 먼 예로는 움베르트 에코의 작품들이나 윌리스 브림의 『눈 속의 독수리』 같은 작품을, 비근한 예로는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를 들고 싶다.


일종의 시대극이라고도 볼 수 있는 에코의 작품이나 브림의 『눈 속의 독수리』같은 작품에서는 그 시대상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묘사들이 엿보인다. (물론 거장의 작품답게 그 묘사가 작품의 본질을 벗어나진 않는다.)


마틴의 작품에서라면 그의 방송 작가로서의 이력이 보여주듯 글이 주는 시각적 형상화와 분위기를 연출하는 솜씨가 뛰어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하담하 작가 역시 시나리오를 공부했거나 준비하는 사람이리라 생각하고 있다.)


이렇듯 수월한 시각화에 더불어 극화로서의 인상을 한층 짙게 만드는 건 작중의 갈등과 긴장을 조율하는 솜씨, 즉 구성의 힘이다.


제 1장에서는 아들을 잃은 김 목사의 추적으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이 갈등은 아들을 죽인 유괴녀에 대한 ‘복수’라는 단선적인 구조를 갖고 있지만, 여기에 수벌과 청선녀가 개입하면서 ‘소국의 부활’이라는 좀 더 음험한 갈등으로 발전한다. 이는 소국의 부활을 위해서는 매개가 될 육신이 필요한 까닭이다. 눈물겨워야 할 부정父情이 섬뜩한 여지를 남긴다. 김 목사는 점차로 비정해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 긴장은 읽는 이들을 작품의 흐름 속으로 더욱 깊이 함몰시킨다.


이 여자는 최고의 살해감이였다.

지금까지는 몸이 살의殺意를 가져다 줬다면 지금은 의식이 살의殺意를 부추기고 있었다.

(하담하, 『아이를 배신한 어미』中)


제 2장은 단연 늘해랑의 실종이 갈등의 중심에 있다. 늘해랑의 어미인 준희에게는 갈현과의 연결고리가 있다. 여기에 연쇄살인마 원정이 이야기의 타래 하나를 잡아 들어선다. 사이코패스인 원정의 살해 욕구를 ‘탄하’로 구체화시켜 독자에게 제시하는 작가는, 영리하게도 아이를 찾아야 하는 준희의 갈등에 덧대 살인현장의 목격자인 준희를 맛좋은 ‘살햇감’으로 여기는 원정과의 긴장 구도만이 아니라, 원정 내면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 새로운 긴장의 진원을 마련한다.


그러나 늘해랑이를 찾기 위해 서로 협력하게 되는 순간 이 관계가 주는 긴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제 2장에서 ‘늘해랑이의 아버지’로서 배경이 되던 정우를 3장에서 갈등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정우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메타픽션으로서 제시한 건, 청선녀 및 김목사의 존재와 더불어 독자를 작가가 구상한 전개와 함정으로 끌고 들어가기 위한 적절한 포석이 된다.


향후 갈등 구조를 심화시키리라 기대되는 송 팀장의 귀추가 주목된다.



4-2. 貳; 소품과 자료 활용의 극대화


『아이를 배신한 어미』에서 보여주는 소품의 활용은 놀랍다. 앞서 말했듯 시대상을 표현해 그 분위기를 전달해낸다거나 작품의 시각화를 돕는 소품의 활용은 그 일례에 불과하다.


(전략)... 흔한 난초 하나 없었고 기관에서 주는 상패나 관료와 악수하는 사진도 없다. 그나마 그 방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것은 너무 커서 불안해 보이는 어항과 사과마크가 선명한 맥북 뿐이었다.

(하담하,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 中)


정우의 사무실에 대한 내부 정경 묘사다. 이 인테리어 소품들에 관한 언급을 통해 정우란 인물의 성격과 그 인물이 뿜어내는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다.


또 역사적 소품들은 작품의 리얼리티를 부각시킨다. 이 리얼리티는 곧 개연성이다. 개연성이 꼭 사실에서 비롯될 필요는 없다. 작가가 제시한 상황이 작품 내에서 논리만 갖추면 된다.


잠시 얘기를 돌아가면, 문피아의 감상/비평란에서는 이 개연성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 예가 많다. 개연성이란 말이 종종 오해되고 있는 것도 본다. 개연성이란 작품이 배경으로 하는 세계 내에서의, 혹은 그 세계 자체의 논리를 뜻한다. 그건 물리법칙일 수도 있고 인물의 행동 패턴일 수도 있다. 혹자는 개연성을 따지면 판타지와 SF는 성립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건 사실과 허구의 문제를 개연성과 혼동한 경우다. 『드래곤 라자』에서 테페리의 가호를 빌어 지진을 일으키는 것이 작품의 개연성에 위배되는가? 아니다. 『드래곤 라자』의 세계는 테페리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은 성직자가 성표를 손에 들고 소리를 질러 산을 무너뜨릴 수 있는 세계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와 그 후속편에서 하늘을 걸어 올라가는 행위도 그렇다. 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작품의 세계 속에서 하늘치로 오를 수 있도록 허용된 법칙, 즉 논리적으로 허용된 행위가 된다. 다만 허구일 뿐이다.


혹자는 개연성은 결여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물론 결여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여된 작품이 결코 좋은 작품은 될 수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현대 배경의 미스테리 스릴러는 사실 이 리얼리티의 제약이 더욱 심해지리라 본다. 작품 속에서 허용이 되는 논리를 독자들에게 암묵적으로 주입시키거나 설득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이런 현실감의 부여가 가능할까?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움베르트 에코의 뻔뻔한 거짓말 『바우돌리노』는 『전날의 섬』이나 『장미의 이름』보다 픽션으로서의 허구성이 더욱 심하다. 실존하지 않는 요한 사제왕(프레스터 존)의 왕국을 작품 후반부에 태연하게 등장시킨다. 그러나 작품은 그 허구를 개연성 있게 풀어나간다. 심지어 그 허구에 치닫기까지 개연성을 마련해주고 독자로 하여금 납득하도록 하는 건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상황들이다.


이러한 시도는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와 이순신 동상이 그렇다. 여기에 이르기 위해 무궁화 마크를 이용했고, 제조산업이 부흥하던 시기 수출품으로 좋은 세월을 누리던 비단 방직에 대한 썰까지 풀어냈다. 또 작품 속에서 더 멀리 나아가면 정감록, 정도령에까지 이른다. 그 놈의 정감록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가?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는 뜻밖에도 허구가 아니다. 대형 조직화되어 세간에 노출된 JMS를 들지 않더라도 아직도 계룡산 곳곳에는 영의정, 좌의정을 거느리고 사는 정도령들이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한, 카리소프로돌의 부작용, 실로시빈의 효과와 같은 약학 관련의 지식이라든지, 법의학에 대한 설명과 묘사는 일반인의 상식 범주를 벗어나 좀 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이다. 여기에 덧대 이 작품은 각종 종교와 설화를 섭렵하고 있는데, 필시 ‘에베소 교회’가 모티브가 되었을 엘베소 교회며 외경 등에 대한 기독교 제반의 지식보다 더욱 깊고 풍부한 건 불교에 대한 여러 제반 지식이다. 일견 놀랍기까지 하다.


특히 제 3장에서는 이 작품의 원형이라 할 아기장수 설화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이 뒤로 이어지는 후속의 논의는 아무래도 비교종교학의 영역으로 치닫게 된다. 이 작품의 장르로서의 양식과 소재의 유사성을 생각하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 물론, 이편은 장르문학으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갖추고 있지만.


이런 역사적, 종교적 소재 내지 소품의 활용은 내용과 관련이 없는 문장에도 자주 활용되고 있는데, 요컨대 ‘수레에서 버려지는 유대인’이라든지 ‘그것은 윤회를 타고 넘어오는 마라식에서 울부짖은 요동과도 같았다’ 같은 은유의 표현조차도 일면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종교적 소재들을 부각시켜주고 있다.


이중에도 특히 눈 여겨 봐야 할 소품은 ‘해인’, 혹은 ‘미륵의 눈’으로 이름 지어진 소품이다. 이 소품은 단연 작가의 창작이다. 그리고 작중 사건들의 접점이 된다. 소국과 늘해랑의 실종 사건을 연결시켜주는 접점은 다른 인물들에 앞서 바로 미륵의 눈이다. 또 작중에 등장하는 아기장수 설화와 메시아, 정도령의 예언의 접점이 되는 것도 바로 미륵의 눈이다. 공통되는 지점을 찾아 이를 형상화시키고 구체화된 상징으로 내세운 이 미륵의 눈은 작가가 모아온 가지각색의 자료들을 한데 모아 용융시켜 나온 결과다. 여러 소재를 모아 짜집고 거기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가의 힘 또한 바로 이 미륵의 눈을 통해 구체화 되어 작품 속에 현현하고 있다.



4-3. 參 ; 문학적 감수성


맨 처음 언급했던 작품 속 인용문을 다시 가져와보자.


예배당 처마에 빗물을 받는 수로관이 떨어졌다. 김목사는 교회건물과 경사진 비틀에 비스듬히 사다리를 세웠다. 올라가 보니 지빠귀가 둥지를 틀었다. 그 알을 먹기 위해 들고양이들이 지나다니다 보니 플라스틱 수로가 반쯤 내려앉은 것이었다. 둥지를 깨끗이 제거하고 물받침 홀더를 쳤다. 그 위에 새로 사온 철제 수로통을 얹혀 철사로 꼼꼼하게 동여맸다.

(하담하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中)


문피아에서 흔히 보게 되는 조언들을 살피다보면, 사실 이런 묘사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문제점으로 지적될 소지가 있다. 얘기 전개와 크게 연관이 없으니 불필요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건 일종의 환기다. 그리고 작품의 속 정경을 그려내고 분위기를 전달하는 매개이다. 앞서 언급했던 에코의 작품을 보자.


(전략)... 그는, 돼지 모으는 까닭을 묻는 나에게, 기슭의 골짜기로 내려가 송로(松露) 버섯을 캘 작정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세베리노는 송로버섯이 이탈리아 반도에서만 나는 귀물(貴物)이라고 말해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송로버섯은 베네딕트 수도회의 고위 수도자들이 특히 즐기는 ... (중략) ... 후일에 나는 많은 귀족들이 족보 있는 사냥개 대신 돼지를 앞세운 채 괭이 든 하인을 거느리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때 세베리노로부터 송로버섯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심이 괴이하게 생각했을 터이다... (후략)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中)


도대체 송로 버섯이 무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게 ‘나’와 윌리엄 수사가 파헤쳐야 할 수도사들의 죽음 및 금서의 비밀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위의 묘사가 보여주는 건 시대의 정경이고, 작품 배경 속 세상과 그곳의 삶이다.


바로 이 주변을 돌아보는 데에서 문학적 감수성은 출발한다. 이 주변은 단지 주변이 아니다. 그것이 이야기와 맞물려들어 분위기를 만들고, 때로는 이야기 자체를 끌고가는 동력이 된다.『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에서는 현실에서 부副가 되고 마는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과 시선이 엿보인다. 이건 이 작가가 갖고 있는 중요한 강점 중의 하나이다.


자, 어린 아이들을 모아놓고 개미를 그리라 부탁해보자. 아이들은 대개 점 세 개를 그린 뒤 막대기 여섯 개를 붙일 것이다. 막대기를 같은 간격으로 점 세 개에 나눠 그린 아이도 있고, 좀 나은 아이는 가운데 동그라미에 막대기 여섯 개를 모아그릴 것이다. 거기에 더듬이 두 개를 붙이는 아이가 있다면 조금은 박수를 쳐주고픈 마음이 인다. 그런데 그 와중 어떤 아이는 세 절로 된 다리와 두 절짜리 더듬이 그리고 날카로운 턱을 그려넣는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저 개미를 보았고, 마지막 아이는 개미를 관찰한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겐 이 관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은 사물이 갖는 모양, 이름 그리고 그 쓰임새를 고민한다. 사람으로 넘어오면 사람의 작은 몸짓, 얼굴 근육의 미묘한 움직임 그리고 그것이 커져 나타나는 표정, 미세한 억양 변화, 눈빛을 살피게 된다. 이 작품에서 그런 관찰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이 갖는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문장과 어휘이다.


사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어휘는 우리 일상 언어의 범주를 종종 벗어난다. 때로는 불가피하게 (특히 법의학, 약학, 종교와 관련해) 전문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던적맞다’, ‘무춤하다’ 처럼 사어가 되다 시피한 단어를 훑어가기도 한다.


연재를 따라가며 작가의 후기를 보면 이런 작품 속 문장들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생각을 풀어놓은 일이 있는데, 사실 이 작가의 문장 구조는 전체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리 복잡한 편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문장이 어렵다’ 하는 건 어휘의 문제로 결착될 것이다.


잠깐 여기서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보자.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쉬운 글은 좋은 글이다.’


그런데 이 ‘쉬운’이란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교조적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러다보면 어째서인지 장문이나 복문보다는 단문이 좋은 글이고, 어려운 어휘보다는 가급적 비슷한 뜻의 쉬운 어휘를 쓴 문장이 좋은 글이 된다.


그게 맞는 말일까?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장문, 단문의 문제가 아니라 문장 요소간 호응이 잘 맞고 호흡이 좋은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어휘의 난이 문제가 아니라 적확한 어휘가 사용되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 일반 도미니크 회 수도사에 대해, 나는 항상 어떤 의념(疑念)을 품고 있었다. 그 의념은, 세간에 널리 유포되어 여기저기서 은근히 소삭거리는 염소담(艶笑譚)류의 풍설에 따른 건 전혀 아니다. 모모(某某)라는 마을의 아무개라는 부인네가 도미니크 회의 설교 수도사에게 ’아무래도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는 애긍(哀矜)을‘ 베풀엇노라는 따위의 이야기는 분명 적잖이 들려온다...

(히라노 게이치로, 『일식』中)


게이치로의 『일식』은 어휘에 관한 예로는 상당히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고어 투성이인 이 작품은 그러나 사실 각 어휘의 쓰임새가 적확한 편이다. 또 거기엔 고어를 사용한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 있다. 따라서 『일식』은 하나의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하담하 작가의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어휘의 면면을 보면 그 쓰임은 적확하다. 정확한 게 아니라 적확하다는 표현에 유의하자. 그 어휘들은 다른 대체 단어(일명 쉬운 단어)보다 더 알맞게 쓰이고 있다. 난 여기에서 분명 이 작가의 관찰, 공부, 노력을 엿보게 된다. 작문에 취미를 둔 사람으로써 그가 거둔 성취가 부럽기도 하고 또 자극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추천 글에서 이 작품을 순수문학에 가깝다고 한 평에 대해서는, 이 작품이 갖는 이러한 문학적 감수성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반대 의견을 내고 싶다. 문피아의 이른바 펄프픽션류의 작품들에 대비 된 까닭이리라 생각하지만, 이 작품을 순수문학에 가깝다고 하는 건 오해이고 한편으로는 이 작품에 대한 비하가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뛰어나고 철저한 장르물이다. 다만 문피아의 여러 연재작들이 좀처럼 갖추지 못하는 문학적 기본기와 소양이 풍부한 것이다. 문학으로서의 기본적 미덕 위에 세운 이 작품의 장르물로서의 특성을 꼽아보자면, 사건의 전개와 갈등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의 전개와 인물간 갈등에서 드러내야 하는 주제의식에 욕심을 내는 법이 없다. 이 작품은 사건 전개 그 자체에 집중하며 퍼즐을 맞춰가는, 그리고 복선을 깔고 반전을 준비하는 미스테리 스릴러물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라가고 있다. 또 소설의 낯설기 과정에서 채택한 건 비현실적(판타지로서의) 요소로, 이는 작품의 장르적 풍미를 강화시키고 있다. 사건의 과정에서 인물들은 그 인물들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기 보다는 사건의 흐름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5. 添; 이 무결해뵈는 작품에 보완해야 할 점은 없는가?


사실 작품 전반을 살피면 이렇다 할 흠결을 찾기 어렵다. 다만, 몇 가지 세부적인 부분에서 굳이 지적을 하자면, 연재작품 감상간에 댓글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다음의 사안들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필요하지 않은 가 하는 편견어린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를 당부하고 싶은 건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라는 사실이다. 내 편견이 다른 독자에게 전이되어 같은 관점에서 해당 부분을 독해하진 않았으면 한다.


① 도입부에서 주거 침입자에 대한 김 목사의 태도는, 극 전개를 이어가기 위한 별다른 대안이 생각나는 바는 없으나 부자연스러운 면면이 느껴졌다.


② 우선 청선녀의 첫 등장과 김목사와 행동을 함께한 시점에 약간의 이질감이 엿보인다.


③ 원정에게 주어진 플롯쿠폰은 작품 전반의 리얼리티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사건은 완점범죄를 구성하는 데 있어 CCTV라는 거대한 걸림돌이 존재하고 있다. 난제가 된 사건이 CCTV를 활용한 노가다식 수사로 해결된 전례도 여럿 존재한다. 이런 와중에 연쇄살인마인 원정을 위해 작가가 제시한 플롯 쿠폰은 휴대용 EMP다. 물론 여기에 당위를 부여하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하긴 했으나, 사실 작품 전반에서 보여주는 리얼리티에 비해서는 그 격이 떨어진다.


④ 극중에 등장하는 게임에 대한 현실적인 설명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가입자 수 20만명의 게임에서, 게임 속 통화가 현실 통화로 대체되어 통용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현실감 있는 설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6. 結 ; 공모전과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


나는 기실 이 작품을 읽으며 이 작품이 얼마만큼 문피아 독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흡인력이 있는 스토리와 그를 뒷받침하는 풍부하고 깊이있는 자료와 배경의 설정, 탄탄한 플롯과 기본기가 있는 작품인데 반해, 그 표현의 방식이나 어휘 수준, 장르의 특성을 따지면 문피아 주류(?) 독자층으로부터 호응이 예상외로 적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보자면 후자가 되었지만, 이것이 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든가 대중성이 떨어진다라는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결과의 의미는 ‘문피아 주류 독자에 대한 적합성이 떨어진다’의 선까지 축소되어야 한다.


연재 어느 회에선가 댓글간 대화로 한 독자와 작가의 대화에서도 언급한 바도 있지만, 사실 문피아에서 정의되거나 통용되는 장르의 폭은 생각 외로 협소하다. 문피아 내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는 작품들에 대한 반응은 의외로 적대적인 경우도 있다. 일반문학에 반감을 갖고 배척하는 사례를 봐왔으나, 문피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장르나 작품에 대한 일반문학의 시선은 차라리 같은 장르 문학을 다루는 문피아보다 온정적이다. 물론, 문피아가 생각하는 장르와 일반문학에서 바라보는 장르는 조금 다를 것이다.


문피아는 대단히 규모있는 장르 포탈이긴 하지만, 사실 제반 독자나 이 매체의 성향이 장르 전반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로 SF, 공포, 미스테리 스릴러 등의 장르는 문피아에서 주류가 되기 어려울뿐더러 별도의 커뮤니티들이 존재하고 있고, 흔히들 경계문학으로 정의 내리곤 하는, 문학적 감수성을 유지한 작품들도 웹진 거울 등에서 활발히 공개되고 논의되고 있을 뿐 문피아에서는 주류로 수용되기 어렵고 사실상 그 교류도 없다시피다.


앞서 4-3의 주제를 연관지어 여기에서 한 가지 덧대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독서는 결국 훈련이라는 사실이다. 훈련이 된만큼 더 많은 글을 읽을 수 있다. 이제 갓 디즈니 동화책을 읽은 유치원생에게 이문구의 작품을 권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그런데 같은 이문구의 작품을 두고 보더라도 그렇다. 그의 대표작 『관촌수필』은 중고생에게도 권할 법한 글이다. 그런데 동작가의 다른 작품 『토정 이지함』은 『관촌수필』을 읽고 기대에 찬 많은 학생을 좌절시킬 것이다. 그런데, 이런 훈련은 애초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문학이란 것은 원체 스펙트럼이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넓기 때문에 어떤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일정한 훈련과 경험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라면 남미 문학이나 일본 작가들의 미스테리 물에 훈련이 잘 안 되어있는 편이라고 본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영도의 작품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전민희의 작품을 읽을 준비는 되어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애초 어떤 작품을 읽을 생각이 없다면, 그런 훈련은 필요가 없어진다. 이렇게 보면 이건 결국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가 된다.


자칫 독자의 수준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이 민감한 얘기를 굳이 꺼내는 건, 공모전에 출품한 작가들이 자기 작품에 대해 비감을 표출하는 걸 자주 봐온 까닭이다. 찾아가 읽어보면 개중에는 여러모로 개선이 필요한 작품들도 있었고, 문피아 주류 독자층을 노렸으나 실패한 듯 보이는 작품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작품들은 단지 문피아에서 주류가 될 수 없는 작품이어서 그 한계를 돌파하지 못했을 뿐 작품의 완성도나 흡입력이 좋은 예도 있다. 그렇게 느낀 작품의 제목들을 여기에서 언급할 생각은 없다. 해당 작가들에겐 격려가 되겠지만 그 또한 내 취향의 편협함을 드러낸 일례가 될 테니.


다만, 나는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를 비롯한 해당 작품들이 아무쪼록 그 여정을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한다. 타인의 얘기에 귀담아 들어야 할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무소의 뿔처럼 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또 누구의 말처럼 정말 좋은 돌은 어떤 여건에서도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천기와 시운이 잘 맞는다면 말이다.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이 공모전에서 부디 좋은 성적을 거두길 빌며.


Comment ' 8

  • 작성자
    Lv.14 구작가
    작성일
    15.05.09 12:06
    No. 1

    완벽한 비평입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작품의 전반적인 면모를 투창으로 정확하게 찔러서 팔딱팔딱 살아숨쉬는 구조를 깔끔하게 드러내는 명문입니다. 이런 멋진 글을 써 주신 알투디투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MirrJK
    작성일
    15.05.09 12:31
    No. 2

    와. 공부가 되는 비평이었어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클라우드스
    작성일
    15.05.09 14:44
    No. 3

    재미있기까지한 비평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이경훈
    작성일
    15.05.09 18:23
    No. 4

    진짜 성의있고 잘 쓰신 비평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5 하영민
    작성일
    15.05.09 23:06
    No. 5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하담하
    작성일
    15.05.09 23:28
    No. 6

    안녕하십니까...[아이를 배신한 어미이야기]를 쓰는 하담하입니다.
    이런 글을 받고 그냥 있는 것은 비평을 하신 알투디투님께 큰 결례가 되기에 부끄러움을 참고 글을 적어 올립니다.
    부족하고 졸속인 글을 이렇게 훌륭한 형식으로 언급해주셔서 부끄럽고 도망가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감사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 숨만 삭히고 있습니다....

    그저 드릴 수 있는 것은, 제 깜냥에서 열심히 해서 알투디투님의 이런 비평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좋은 5월 되시기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장과장02
    작성일
    15.05.10 02:55
    No. 7

    내용을 떠나서 정말 간만에 보는 깔끔한 글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5.05.12 23:35
    No. 8

    많은 생각과 물음을 주는 비평입니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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