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누가 살인자인가.
출판사 : 문피아 연재작
저자 : 주아인
- 우선 잘 보았습니다.
다 읽고 나서 보니, 이 작품은 재작년부터였던가 문단에서는 물론 각종 영화 및 드라마 등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던 소재인, 사이코패스 등에 관련된 이야기 같더라고요. 비평신청 글에 보고, 저는 이 글을 반사회적 인격장애애 즉, 소시오패스 주인공이 사이코패스로 거듭나는기까지의 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하며 읽었네요.(착각이라면 죄송합니다)
이야기는, 그 자극적인 소재에 걸맞게 ‘나를 죽이는 살인마’라는 화두를 던지며-거창한 시작점을 알리더군요.
‘나를 죽이는 살인마’ 단순히 자살?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철학 혹은 문학적으로 본다면 이데아의 소실, 정신적 살해, 자가실존의 위협 등과 같이 다양한 해석을 담은 상징성 깊은 말로 보여, 시작으로 삼기에는 매우 좋은 화두의 던짐으로 보여졌어요.
그런데 이런 좋은 시작과는 달리, 그 뒤 이어지는 본내용은 아쉬움이 심하게 남더라고요.
우선, 왜 굳이 1인칭을 사용하신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1인칭 시점이 주는 효과가 글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네요. 1인칭이란 것이 자연스럽게 주인공 화자의 감성이 풀어지고, 그것을 통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시점인데 그러한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아요. 주인공의 감성이 주를 이루지 못하는 서술식의 문장에 1인칭 시점은 맞지 않는 거 같지 않나, 생각하게 되네요.
물론 이것은 작자의 선택이니, 독자가 왈가왈부할 부분은 아니긴 하죠. 하지만 굳이 1인칭 시점을 선택하셨다면 감성은 둘째 치더라도, 그 연령대에 맞는 목소리로 극을 전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1인칭 시점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 글에서 가장 문제는 그 연령대 성별 등을 무시하고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주인공이 천재성을 띄고 있다고 하지만 (현재는)어른이 아니죠. 그렇다면 천재성을 지닌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극을 진행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글을 읽는 종일 주인공의 나이며, 성별 등을 서술의 목소리만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문제점이라고 보아요.
천재니깐, 천재니깐 충분히 어른스러워(딱히 어른스러워 보이지도 않는 평이한 문장이라는 게 조금 그렇지만)하며 합리화 할수도 있겠지만, 조금 지나친감이 없지 않네요.
물론 그 연령대 등에 맞는 목소리로 문장을 구성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이 작품처럼 주인공이 아주 어린 시점부터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경우는 특히 그렇지요. 그래서 이런 경우 어지간하면 3인칭으로 전개, 혹은 ‘미래의 나’가 과거의 나를 회상하듯 하는 전개 등의 요령을 부리기도 해요.(‘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머니의 앙칼진 목소리 내리쳐지는 몽둥이질 속에 숨고, 숨으며...’ 등으로요) 이 이질적인 부분에 대한 좀더 깊은 고찰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네요.
* 그런데 이 글에는 끝없이 ‘나’가 강조되네요. ‘나는’ ‘나를’ 등을 이처럼 끊임없이 강조하실 필요는 없어요. 어린시절 일기 쓰는 법을 처음 배울 때 강조하는 거 있잖아요- 이미 일기는 너라는 ‘나’가 쓰는 걸 충분히 알고 있는데 ‘나’를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요. 1인칭 또한 마찬가지에요. 굳이 필요 없는 부분까지 ‘나’를 강조하는 것은 문장을 유치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 있어요.
다음으로 주인공이 지나치게 평면적이에요. 현대소설에서는, 특히 1인칭에서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솔직히 작가들이 피하는) 일이죠. 평면적 인물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은 철저히 사회에 고립된(반사회적이라고 명백히 밝히셨으니) 인물을 내세워서 글을 전개하는데, 그 고립만큼 주인공이 무게를 담고 자신의 고립감을 독자에게 알려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그런데 그런 주인공이 안개처럼 존재감 없이 흐리게 표현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대체 누구를 보면서 이 글을 봐야 하는가 하는, 혼란을 가중시키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이 글에서 가장 중요시 다루어져야 할- 주인공이 ‘반사회적 인물상’에 독자가 전혀 개입하지 못하는 결과를 내비치며, 속되게 말한다면 안 읽히는 글이 되버리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거라 짐작해요. 좀더 주인공을 ‘살아있게’ 만드는 게 어떨까? 싶네요.
또한 주인공이 반사회성을 갖도록 만드는 ‘계기’라 볼 수 있는 주위의 자극이 지나치게 일반화되어 있고, 딱히 저정도로? 라는 의문을 들게 만드는 문제점을 이 글은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소시오패스가 부모의 일관성 없는 학대가 주된 원인이라는 점을 볼 때 그 부분이 내비쳐지긴 했어요. 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한(솔직히 부모의 학대도 딱히 대단해 보이지 않네요. 아마도 표현의 부족함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주위의 모습이 너무 소극적이에요. 무언가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사회에 고립되었고, 그래서 반사회성을 지녔다’라는 단순한 플롯을 글로 풀어쓰면서 깊은 공부 없이-이쯤하면 그 의미가 전달될 거야, 어서 나이를 먹여서(..) 본편으로 가야지! 라는 다급함이 느껴질 정도로 급하고, 소극적이며 두리뭉실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요. 솔직히 읽어내려가며 당혹스러움이 들었네요. 지나치게 가볍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주인공의 주된 성향을 결정하는 주위의 모습인 만큼, 좀더 확실한 표현이 필요하다고 보네요.
이 작품과 비슷한 성향의 소설을 떠올리자면, 카뮈의 이방인(반사회적 성향의 인간이 어떤 것인가를 정말 제대로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이 작품과 유사한 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향수’라는 상징과 당시 시대의 암울함이 깃들며 주인공이 미쳐가는 과정은 정말 잘 그렸다고 봐요), 같은 1인칭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2000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바늘을(소시오패스 등보다는 복수라는 관점이지만 이 글도 극의 분위기만 보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떠올렸어요. 굳이 이런 소설을 읽어 보시지 않더라도, 비슷한 류의 소설을 찾아 한 번쯤 깊이 보신다면 이 글의 가벼움의 크기와 극복해야할 부분이 보이지 않을까 싶네요.
반사회적, 그리고 천재성까지. 이런 소재는 굉장히 자극적이고, 조금만 잘 써도 굉장히 잘 읽히는 소재가 되는 놀라운 힘을 품고 있죠. 하지만 그만큼 작가 자신이 반사회적, 천재적인 인물이(극안에서) 되어야 해요. 그런데 그러한 모습을 내비치기는 커녕- 1인칭이라는 시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그로인해 평면적으로 전락한 주인공, 주위의 소극성, 또한 극의 진행의 가벼움으로 전혀 빛을 못 보는 거 같아 안타까워요.
이미 연재하신 글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의 전개 속에는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 하기 위한 공부와 문장의 숙달에 한 번쯤 깊은 노력을 기울여 보시는 게 어떨까 싶네요.
*문장의 숙달은 꼭 필요하다고 봐요.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다음날> 등으로 시간의 지나감 등을 알리는 부분이 보이는데, 이건 정말 좋지 못한 습관이에요. 이런 것은 작지만 민감한 부분인데- 특별한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꼭 문장으로 표현하셔야 되요. 딱히 효과를 노리신 거 같이 보이지 않는데, 굳이 이렇게 표현하시는 것은 이 작품이 소설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행위처럼 보여요.
ps. 제가 이런 소재를 무척이나 좋아하다 보니- 이 소재를 조금만 더 잘 살려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되지도 않는 말을 길게 늘어놓은 거 같아요. 무시하셔도 좋지만, 한 번쯤 다른 비슷한 류의 소설, 혹은 소시오패스 등에 관련된 논문 등을 접하시고 조금 더 발전된 글을 쓰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나쁜(그것도 솔직히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억지로 늘린) 말만 늘어놓은 거 같아 죄송합니다.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의 한 독자의 투정으로 봐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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