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두렵군요. 열렬한 팬들에게 혼날 거 같아서...
비평 Low란을 보니, 이영도 씨의 글에 대한 비평(?)이 몇개 있던데... (저도 그 비평글엔 공감이 가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제 나름대로 한번 써볼까 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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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드래곤 라자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고 한국 판타지계에 큰 획을 그은 작품이었다. 발상도 독특하고 매력적이고 전개도 흥미롭다.
그런데... 뭔가 마음에 걸렸다.
뭐랄까... 등장인물들이 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예를 들면, 성직자.
세계관 자체가 신이 존재한다는 게 명확한 그런 세계이긴 하다만, 그래도 그렇지 어쩜 그렇게 나오는 성직자마다 조금의 의심도 흔들림도 갈등도 뭣도 없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교리에 푹 젖어서, 그리도 신을 잘~~ 따를 수 있단 말인가.
현실적으로 인간이란 존재는,
공부 열심히 하면 성적이 더 오를 테고,
성적이 잘 나오면 대학도 더 좋은 데 갈 수 있고,
방심하지 말고 꾸준히 자기계발 잘 해야 하고,
어쩌구 하는 걸 잘 알고 있어도 실천이 잘 안 되는 존재가 아닐까?
설령 실천이 잘 되는, 의지 강한 사람들만 교단에 모아놨다고 해도,
또 살다보면 나태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바뀌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가. (명문대 들어가자마자 공부는 때려치고 논다든가... 분명 착실한 아이였는데, 몇년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덧 정신 차리고 보니 일진이 되어 있다든가... 기타 등등)
그리고 실천 문제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마음 깊숙한 곳까지 그렇게 교리에 맞게 되기는 힘들 텐데...? 예를 들면, 어쨌든 납득하고 공부는 할지라도 사실은 노는 걸 더 좋아한다든가, 마음 속으론 놀고 싶어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말이다.
백보 양보해서, 그런 성인으로 당장 칭해야 마땅할 대단한 성직자가 있다고 치자. 근데 드래곤 라자에 나오는 성직자들은 다 그런 타입이다. ;;;;
아아, 그래도 드래곤 라자 때까지는 이런 거슬림을 뛰어넘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그 뒤의 작품으로 거듭해가면 갈수록 점점더 납득이 안 가서 읽기가 괴롭게 되었다. 초반까지는 봤는데 결국 끝까지 못 본 소설도 많다.
이영도씨 소설 중 가장 최근에 본 그림자 자국만 해도(최근이라고 해도 몇달 전이라 기억이 좀 가물가물함) 역시 그런 문제가 있었다.
정형화된 인간들. 실제 인간과는 너무도 다른 인간들. 이영도 씨의 이상(?)이랄까 주제의식에 맞게 일그러진 듯... 그런 이상화된 세계....
예를 들자면, 왕비가 자기 자식을 인질로 잡고 예언자를 붙잡으려들 때, 이루릴은 자신은 제3자라 어쩔 수 없다며 방관한다. 왕비가 친어머니이기 때문에 자기 자식을 인질로 잡고 위협해도 어쩔 수 없단다. 심지어 이 친권(?)에 반박하는 사람(혹은 드래곤)도 없다.
아니, 왜?
어째서?
이루릴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자식을 죽이든 잡아먹든 볶아먹든 그건 부모의 권리?) 그렇다 치더라도, 어찌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게 전 세계 모든 인간들이 다 그렇게 생각할만한 그런 합당한 상식이란 말인가?
지금 이 글을 보는 분들도 다들 친부모라면 자식을 갖고 뭘 하든 아무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우리나라가 가정내 아동학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라라고 할지라도, 이 정도까지는 허용하지 않을 텐데?
(하기야 신문기사를 보면, 지체장애가 있는 십대 소녀를 일가족이 몇년에 걸쳐 성폭행했는데도, 그 가해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피해자를 돌봐야하기 때문에"!! 도대체가 가해자더러 그냥 계속 강간하라는 건지... 십대소녀를 계속 돌보라며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니까... 좀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난 문피아 사람들을 믿겠다)
심지어 이런 우리나라에도 친권박탈에 대한 조항이 있는데... (법조항은 있다. 별로 제대로 뭐가 실행되는 것 같진 않지만 존재는 한다.) 우리나라에서조차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운동 벌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몇년 전에 버스 내리는 문에 아동폭력 신고 전화번호 안내 스티커 있는 걸 본 적 있다)
이루릴 같은 이상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는 건 그럴 법하다. 문제는 그와 다른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거다. 이게 바로 내가 느끼는 이영도 씨 소설의 비현실성이다.
인간에 대한 폭이 좁다...
(이루릴은 엘프고, 드래곤들도 소설엔 나오지만, 아무튼 이성과 감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A라는 주제의식이나 인간은 A다!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건 좋다.
다만 B도 있고 C도 있고 D도 있고.... 등등 이러하나
나는 A가 옳다(혹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게 정상 아닌가? 인간이 모두가 A일 수는 없지 않나?
이영도 씨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모두 백퍼센트 똑같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기보단 A, A', A'', A''' 이런 느낌이랄까.
또 다른 예로,
예언자가 참혹한 미래를 예언하는 부분도 그렇다.
이쯤 되면 집단 자살이라든가 포기하는 인간들도 많이 있는 게 정상 아닐까? 충격과 혼란이 더 커야 하지 않을까? 드래곤에게 쳐들어간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게 보통일까?
세상엔 심지어 말세를 즐기는(?) 그런 인간들도 적지 않다!
세기말 시절에 쏟아져나온 책들이나 종교단체 집단 자살 등을 생각해보라.매저키스트들이 왜 고통을 즐기는지 아는가? 통제된 고통에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_-; 종말을 기다리는(기대하는?) 그런 인간들도 진짜 존재한다!
게다가 더 간단하게는, 그냥 바이서스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바이서스를 그냥 그만두고 이름 바꿔서 다른 나라인 척 하면 되지 않는가. 뭐하러 드래곤에게 쳐들어가나? 솔직히 우리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해보자. 쳐들어갈지?
백보 양보해서, 바이서스 왕가 입장상 왕가를 지키기 위해 드래곤에게 쳐들어가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현실적으론 그냥 외국으로 달아나거나 인류를 배반하고 드래곤 편에 붙어 나만이라도 살 수는 없을까 궁리하는...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텐데...
이렇게 몇분만 생각해도 금방 떠오를만한 그런 사회현상이 소설 속에선 이렇게도 약할 수가 있는지. 소설 속의 인간이 현실의 인간과 너무 거리가 멀다.
다른 책과 비교하자면, 외국 작가가 쓴 "세계전쟁 Z"라는 소설이 있다. 좀비가 되는 전염병이 전세계에 퍼져나가서(상처를 통해 병균이 옮음) 인류가 처참한 지경까지 몰렸다가 간신히 조금(?) 일어서는 그런 이야기인데...
정말 다양한 지역의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나온다.
1) 초기에 퍼져나갈 때 본인의 얄랑한 부와 권력을 위해 황당한 소문(?)은 무시하는 권력자와 일반시민들
2) 심지어 초기에 발병자를 직접 목격했으면서 입을 꾹 다물고 본인 안위만 챙겨 도망간 의사
3) 그 와중에도 가짜약을 팔아 백만장자가 된 뒤 남극으로 피난간 사기꾼 (대신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지 않았느냐고 뻔뻔스레 주장한다;)
4) 영웅적인 희생과 싸움을 하는 사람들
5) 달아나다가 더 처참한 처지가 되는 사람들
6) 자기 가족을 챙기기에도 험난하기에, 좀비균 보균자일 위험이 있는 이웃과 주변인간들을 노골적으로 경계하는 사람들
7) 공포 때문인지 인간 주제에 지가 좀비라도 되는 것처럼 황야를 떠도는 정신병자들;;
8) 부모와 마을을 잃고 야생화된 아이들이 목격되고..
(이 소설도 문제는 있다. 미국 작가라서 그런지 후반에 좀 미국적인 냄새가...) 그래도 정말 다양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좀비라는 판타지스러운 것이 소재로 나오지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현실적이다.
결론적으로, 이영도 씨 소설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1) 등장인물이 평면적인 걸 뛰어넘어 비현실적이다. (예, 성직자)
2) 다양한 인물군상을 느낄 수 없다. 전반적으로 나오는 인간들이 비슷비슷하다. (예, 성직자 등등)
아마 작가가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그 흐름에 완전히 몸을 맡기고 읽는다면 아마 그다지 거슬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사람이 나와도 작가 한 사람의 한 가지 면을 되풀이하고 있다. 웅변대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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