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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에 대한 비평과 감상

작성자
Lv.14 쿠틀리쿠어
작성
19.08.19 09:56
조회
371

제목 : 경성활극록

작가 : PKKA

출판사 :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문피아에서 연재되는 대체역사소설들을 잘 읽지 않았다. 흔히들 언급되는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나 <명군이 되어보세> 같은 빙의물은 취향이 안 맞아서 아예 손을 대지도 않았고, 최근 화제작이 된 <내가 스탈린이 되었다?!>와 같은 소설은 초중반, 그러니까 30화 정도까지는 재밌게 따라가다가 전개가 너무 뻔하고 예상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유료화를 따라가지 않게 되었다. 나도 가끔 소설을 올리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죄책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취향에 안 맞는걸. 그래서 최근에 큰맘 먹고 보기 시작한 게 이 <경성활극록>이라는 소설이었다.


작가분이신 PKKA님은 8월의 폭풍이라는 책으로 잘 알고 있고(집에도 소장중이다) 소련 전문가로서 나와 같은 밀리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름이 높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일제강점기 경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심지어 문피아에 연재한다니! 어머나 이건 꼭 봐야해! 라는 마인드를 처음엔 가졌었지만 처음에는 역시 딱히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프롤로그를 보고 덮긴 했다. 하지만 다시 용기내서 읽기 시작하고 오가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읽다보니까 소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샌가 나는 다음화, 다음화를 애절하게 갈구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만에 읽을 만한 소설이 나왔다고 개인적으로도 만족했다.


<경성활극록>은 오락물과 국뽕물이 판치는 이 혼란한 대체역사물 시장에서 - 엄밀히 말하면 '대체역사' 소설이라고 부르긴 뭐하지만 - 가장 문학적 가치가 뛰어다나고 난 생각한다. 먼저 작가의 글솜씨가 뛰어나다. 가끔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기들이 거슬리긴 했지만(제발 빛이랑 빚을 헷갈리지 맙시다 작가님) 비문도 없는 편이고 무엇보다도 일제강점기 시절 소설들을 재현한 듯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들의 대화 역시 살짝 빠른 감이 있지만 유려한 전개 솜씨를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역사물 말고 다른 장르로 글을 썼다면 이것보다 흥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로맨스물을 썼다면 이미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르셨을지도 모르겠다.


문학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본 두번째 이유는 이것이 단지 국뽕물에 지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왕 채주 말마따나 '경성팔협'이라고 불리우는 한인애국단 경성지부 단원들은 제각기 특징이 있고(물론 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정우나 확실한 캐릭터성이 있는 종팔이나 대석을 제외하고는 유별히 튀어보이는 캐릭터는 없었지만) 소설에서 악역으로 설정된 관동군 장교들과 종로경찰서 고등팀, 그리고 여주인공 한주리의 주변 인물들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려고 한 작가의 세심함이 돋보였다. 캐릭터성을 버리고 고증이나 쾌감만을 중시하는 현대 대역물과도 이 점에서 차별성이 나온다. 이 두 가지 점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높게 평가될 만한 작품이고 또 여기에서 감상을 끝내도 족하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탄성을 내지르긴 했지만 동시에는 많은 불편함 역시 느껴졌다. 물론 이것이 작품의 단점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그것이 이 소설을 잡을 때 꺼려지는 요소로서 작용했다. 가장 큰 장벽은 이 소설은 선역과 악역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시와라 간지를 보스로 하는 관동군 장교들은 거의 악의 사자처럼 묘사된다. 종로경찰서 순경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건 구시대적인 무협소설이나 군담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클리셰로 작가의 역량 부족인지 아니면 일부러 노리고 썼는지는 불명이지만, 개인적으로 이시와라 간지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는 나는 이 점에서 살짝 불쾌감까지 느껴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감상이니까 너무 괘념친 마시길.


현대 소설 장르로 피카레스크라는 장르가 존재한다. 주인공이 무조건 선역에 머물지 않고 악한 기질을 가지고, 그 주변 인물들 역시 그런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인애국단 단원들이 무조건적으로 선한 행동만을 한다면 그들이 절대 선으로 묘사되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인애국단 단원들은 상대 단원들을 두들겨 패고, 한밤중에 탈을 쓰고 친일파들의 가옥을 털러 다니며, 사기 역시 서스럼없이 자행한다. 물론 내가 그들의 행동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들의 행동을 살짝만이라도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혹은 범인을 잡으려는 순경들의 순수한 노력을 부각시켰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이시와라 간지의 세계최종전쟁론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하느라 역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한인애국단 단원들의 역시 범죄행위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거나 단원들의 죄책감을 묘사해서(비록 정우의 죄책감이 극초반에 나오긴 하지만) 어두운 면을 조명해봤으면 어떨까 싶다.


역시 비슷한 연유에서 나온 비판으로 주인공들이 지나치게 완전무결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혜월 스님과 천남건 지부장이다. 혜월 스님은 강철과도 같은 멘탈과 거울처럼 깨끗한 심성을 갖고 있으며, 천남건 지부장 역시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철두철미한 판단력으로 경성지부를 이끄는 데 큰 기여를 한다. 그러나 같은 연유로, 나는 그들의 불완전성을 오히려 부각시켰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물론 제목이 어디까지나 경성'활극'록이므로 작가로서는 한인애국단의 활약상을 묘사해야 하고 그에 따라서 주인공들을 유능하게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가 꽤나 심하다고 생각한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경성지부의 활약만 보면 얘네는 천황까지 암살하고도 남을 것 같다. 작가가 참고했을 셜록 홈즈나 에르퀼 푸아로 역시 완벽한 인물로서 창조되지 않았다. 물론 이들이 하는 행위 자체가 일본 제국에 반하는 범죄니까 모른체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캐릭터상들이 작품의 가치를 오히려 떨어트린다고 생각하기에 살짝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이유이지만, 이시와라 간지의 세계최종전쟁론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특히나 니치렌의 가르침과 엮어서 이를 설명하는 이시와라 간지를 극중 주인공과 통하는 인물들은 모두 극혐하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 사상처럼 등장한다. 물론 니치렌은 이단이 맞고 불교의 원론적인 가르침을 모독한 사이비 종교라고도 본인은 생각하지만, 적어도 이시와라 간지의 이념 그 자체로서는 설득력이 있고 또한 당시 일본에게 적당한 해결책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이 사실을 나카하라 히로요시가 언급하긴 하지만서도). 세계최종전쟁론을 작가도 역시 탐독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이건 지나치게 해당 사상을 작품에 써먹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깎아내렸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역시 아쉬운 부분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들은 이 작품의 가치를 깎아내릴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경성활극록이 좋은 소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본인은 지금까지 역사소설들을 매우 싫어해왔고 대체역사소설이라고 해서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경성활극록은 오랜만에 시간을 투자해서 읽을 가치가 충분했던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주제넘은 말이지만 위에서 말한 말들을 작가가 어느 정도 수용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받아들이지 않아도 딱히 상관없다.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 소설이 부디 끝까지 연재되어 나중에라도 인기를 끌게 되었으면 하는 독자로서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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