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참글
작품명 : 말코도사
출판사 : 작가연재란
우선 글을쓰기전에 나도 최담천이라는 이름으로 군웅천하라는 글을 연재중임을 밝힘니다. 즉 작품이나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편의상 존칭을 생략하겠으니 이점 또한 이해 하시기 바랍니다.
말코도사는 소설인가? 이야기인가?
문학 수업 특히 소설을 공부할때 초입부에 듣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 대하는 질문은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거의 학설로 인정받고 있는 정의는 소설이란 인생(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왜 소설을 쓰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두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폭력과도 흡사한 그 무엇이 내부로 부터 쏟아져 나와서라고 한다. 그리고 좀더 들어가보면 소설이란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날수 있는 일을문자의 배열과 조합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서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다.
즉, 1. 왕이 죽었다. 그러자 왕비도 죽었다.-정의 :이것은 (소설이 절대 아닌,)이야기다.
2. 왕이 죽었다.그러자 그 슬픔에 왕비도 죽었다.-정의 :이것은 소설이다.
3. 왕이 죽었다. 그러자 왕을 사랑했던 왕비는 그 슬픔에 죽고 말았다.-정의 이것은 (그냥 소설이 아니고) 훌륭한 소설이다.
위 예문을 살펴보면 똑 같은 하나의 사건이 서술 되었을뿐이다. 그런데 왜 서로 다른 의미로 정의 되고 있을까?
그것은 단 하나의 이유일뿐이다. 예문1에는 왕비의 죽음이라는 결과는 있으나 그 원인이 없다는 점이다. 즉 아무리 재미있고 누구 말대로 유쾌통쾌,상쾌하면 소설이라고 할 수 있고 나는 장르문학, 무협소설작가입니다라고 할 수 없다는것이고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기만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2와3에 대한 평가에 큰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무엇때문인가? 여기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지 않은가. 즉, 죽음의 원인이 슬픔이라는점은 밝혀졌으나 슬픔의 원인이 3에서는 밝혀 졌으나 2에서는 밝혀 지지 않았다는점이다.
나도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작가가 독자들로부터 받고있는 호응이 질투심을 느끼고 싶을 정도로 부럽다. 그런데 절대 달 수 없는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무협도 무협지를 써놓고 대가연하고 스스로를 작가라고 하는 사람들보다는 진정으로 소설을 쓰고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그래서 머지않은 장래에 무협소설이 고급 독자들의 서가에 당당히 자리잡고 가끔가다 다시 꺼내보는 책으로 성장 발전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음기회에 금강의 비평에대한 비평을 올리면 나의 뜻이 좀더 자세히 밝혀지겠지만 )
현재의 조회수는 하나의 통계,상업적 출판을 하는(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참고 자료일뿐이라는 이야기다. 옆으로 나간김에 한 마디 더하자면 지난 여름 논쟁이 되었던 두 권의 책, 그것은 절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책이다. 왜? 유쾌,통쾌, 상쾌하니까?'" 이것은 소설가가 할 소리가 아니고 소설이 무엇인가를 공부해야 할, 즉 소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의 소리에 불과하다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코도사로 돌아가보자.
1. 인과관계가 정확히 드러 났느가?
2. 일어날만한 일이었느가? 참고 삼아서 한 마디 하자면 중국은 공산당이 들어서기 전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100이내에 한 번 정도의 난리가 있었다고 한다.
3 .어떤 부모가 자식을 주고 받은 댓가에 그토록 정신을 잃을 수 있을 까?
4. 소설은 스스로 발전해서 나가야 한다. 그 발전의 수단은 서술, 묘사, 대화이 외에는 없다.
5. 위4항의 방법을 통해서 작가는 독자에게 정보를 주거나 주제를 드러내게 된다.
1,2,3의 질문에 대해서 작가는 이미 스스로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답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4,5항을 통해서 묻기전에 우선적인 궁금증을 좀 털어놓아야 할 것 같다.
-무당의 두 도인은 사람인가? 허수아비인가?-사람을 움직이게하는것은 생각이다. [감정] 그런데 그 두 사람은 강 씨 부부에게 가진 것을 몽땅 줘버리는 것은 무엇때문이었는가? 아이가 불쌍해서? 이미 자식을 바꿔서 먹기로 한 그들이 그 돈으로 다른 아이를 사서먹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즉 이말이다. 두 도사가 틀림없는 사람이고 도인이라면 가던 길을 멈추고 사람들을 모두 모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모든것을 가지고 마을 사람 모두가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범을 찾았을것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한 사람에게 줘버리는 것보다는 더 일어날 가능성이 많을 뿐만아니라 사람답고 도인다운 행동일 것이다.
길을 가던 두 도인이 기생집으로 들어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가 내민 이유에 아! 그래서 들어갔구나(갈 수 밖에 없었구나)라고 (정신 온전히 박힌 사람 중에서) 고개를 끄덕여 줄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을까?
주인 기생은 사람인가? 사람이면 혹시 미친년인가?
대한민국 술집 주인이 혹은 (과거의) 포주가 (돈을 줄지 안줄지도 모르고 술도 시키지 않은) 중(도사)를 불러서 술을 준 일이 단 한 번 이라도 있었을까?
젊은 도사는 주책없이 아랫도리가 흐물거렸는데 대한민국의 모든 수행자(신부 수업이나 절집에서 수행하는 분들)들 이 예쁜 여자만 보면 다 그럴까?
소설에는 전형적인 인물(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거의 모든 수행자(당시 중국에서 그랬다면)가 그랬거나 그러고 있다면 전형적인 도사상을 그린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작가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보고 아쉬움을 느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삼일 굶으면 담을 넘는다는 속담도 있는데 아이를 잡아먹을정도면 차라리 남을 죽이지 않겠는가.
즉, 아들을 바꿀수밖에 없는 환경(원인)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모두가 슬프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섯살짜리 꼬마. 모자라서 동생을 제치고 먹이가 될뻔한 아이가 표국으로 간지 한달여만에 갑자기 논검을 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천재가 된것인가?
천재가 되는 약을 먹은 것인가?
부모이상 자식을 잘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있는데 그 말은 틀린것인가?
강씨부부는 자기 새끼도 알아보지 못할정도의 바보들이었는가?
나는 진심으로 작가에게 권고한다. 그 좋은 문장력을 빛내기 위해서라도 소설창작에 대한 책을 일독 하실 것을 그리고 설봉님의 남해36검과 이재일님의 쟁선계, 다로의 칠등만세(현제 고무림에 연제중임)을 일독하시길를,
내 개인적인 소망은 위에서 말한 세권의 책 수준이 한국 무협소설의 평균치가 되었으면하고 소망해본다. 작가의 발전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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