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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이라는 단어가 사실 저는 조금 낯섭니다.
장르문학이 판타지적 요소를 포함한, 소위 ‘판타지 소설’과 ‘무협 소설’ 그리고 그 계보를 타고 있는 몇몇 새로운 장르의 소설들, ‘퓨전’ ‘게임소설’ ‘대체 역사물’등을 총론하는 개념이라면,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아마도 장르 문학 보다는 ‘판타지 소설’에 가까울 것입니다.
시간은 벌써 거슬러 올라가 거의 10년이 다되어 가는군요. 그때 저는 창창한 대학 새내기 였더랬죠. 지금 밝히자면, 저는 통신 보안의 암호학을 연구하는 공학도입니다. 전자 정보 통신 공학과를 나왔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즉, 저는 굉장히 ‘문학’과는 거리가 먼 과를 전공했지만, 저의 꿈은 판타지 소설가였더랬습니다. 10년 전, 그렇죠.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이라고는 정말 전무한 실정이었습니다. 퇴마록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죠. 그때만 하여도 인터넷 보다는 PC 통신이 참으로 인기가 좋았더랬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때가 아마 맞을 것입니다. 시간이 오래되어 시기를 정확히 짚기가 힘들군요. 로도스 도전기와 임달영님의 레기오스란 소설로 판타지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런 멋진 소설을 한번 써보는게 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분위기에 휩쓸려 ‘남자는 공대를 가야해!’라는 말에 공대를 지원했지만 책을 보는것을 워낙 좋아했고, 글을 적는 것도 좋아 했었죠.
그래서 문학동아리에 들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제가 2학년, 군대를 가기 전에 일어났습니다. 그게....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는데 ‘소설가 연합회’ 같은데서 공문이 하나 내려왔습니다. 말하자면 ‘단편 소설’을 공모 하여 대회를 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부 조건으로는 ‘리뷰’ ‘재구성’ ‘패러디’가 붙었습니다. 즉, 원래 있는 이야기나 소설을 리메이크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로미오와 줄리엣’을 리메이크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썼습니다. 줄거리는 ‘줄리엣’이 이탈리아의 고급 장교인데, 로미오가 그녀의 부하로 들어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줄리엣은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패배한 이탈리아는 프랑스 왕이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장교인 줄리엣을 처형하는 것을 항복의 조건으로 내 걸어 죽을 위기에 처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같이 도망을 치다가 장렬히 죽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뭐 중간에 여러 가지가 있었더랬죠.
놀랍게도 ..... 그게 무슨 상인지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는데(어떤 시인의 이름을 따온 것 같았습니다)한 중간 정도의 상에 당선되었습니다.
그 공모전의 시상 내용은 이랬습니다. 그 작품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소위 ‘문단 작가’가 대학생 문도들에게 그 글을 비평한 것을 써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물론 상장과 상금도 약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비평글은 황송하게도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하지만 맨 마지막, 아직도 제 뇌리에 남아 있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어찌어찌 하여 참으로 감탄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단점은 역시나 팬터지적 요소가 짙다는 것이다. 나는 ‘만점’으로 가려는 내 팬을 팬터지적 요소 때문에 그 옆으로 옮겨야 하였다. 하지만·······”
팬터지적 요소. 그렇습니다. 소위 문단작가라는 분이 하신 이 말은 역시나 ‘판타지적 요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만 하여도 우리나라에 소설책으로 나온 판타지는 정말 몇권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소위 ‘순수 문학’을 하는 분들은 ‘판타지’에 대한 본능적인 공격과 멸시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상금으로 온 것을 몽땅 그날 동아리 사람들과 ‘한잔’하는데 쏟아 붙고 손을 털었지만 도무지 기분이 상하여 몇 일이나 그 일이 뇌리속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군대를 다녀오자 세상이 많이 바뀌었더군요. 우리나라 작가님들이 쓴 판타지 소설이 많이 출간이 되어 있었고, 참으로 그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책방에 가면 훌륭한 작품들 천지였더랬습니다. 드래곤 라자, 하얀 로냐프강, 불멸의 기사, 바람의 마도사······
그렇게 저는 판타지 소설에 푹 빠졌습니다. 사실 저는 무협소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무협소설을 주로 보았을 때는 제가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당연히 제일 처음 본 작품은 영웅문이었고, 그 다음 녹정기, 대도무문을 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사마달님의 소설과 와룡강(.....크흠)님의 소설, 그리고.... 이름이 잘 생각이 안나는데 돌아가셨는데 수백편의 무협을 남기고 가셔서 하나하나씩 무협이 출간되던 그분의 필명이... 하여간 그런분들의 소설이나 금강님의 소설도 본 것 같군요.
여하튼 그때만 해도 무협은 지금과 같지 않았습니다. 3권이 기본이고, ‘신무협’이라 불리는 것은 나오지도 않았었죠.
제가 복학을 하고 동아리 회장이 되었을 때 행사처럼 하여 소위 기성작가, 시인분을 몇분 모셔서 발표회와 강좌도 열고 토론회도 했었더랬습니다.
그때 저는 한 소설가 분과 거의 ‘격론’에 가까운 토론을 했었습니다. 바로 판타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소설가분은 지독하게도 판타지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평가하는 기준은 이랬습니다.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소재를 사용하는 소설은 다 쓰레기다! 소설은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것을 상상하는 것이지 일어날 리도 없는 얼토당토 않는 환상을 가져다 붙이는건 옳지 않다.’
저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 그리스 신화와 일리아드, 오딧세이아, 괴테의 파우스트, 아라비안 나이트와 구운몽이 모두 문학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은 그분이 흥분하시는 차례였습니다 ㅡ_ㅡ;
그것은 순수 문학의 약점이었던 것입니다.
문학이란 결국은 돈을 벌기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문학가는 그것으로 돈을 벌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문학도 아니다’라고 폄하하고 있는 ‘판타지 코드’의 소설들이 ‘상업’ 적으로는 성공하자 그것이 그들에게는 비수와도 같았던 약점인 것입니다.
그분과 저의 토론은 굉장히 격렬했고 30분이 넘게 이어졌습니다. 저는 충분히 반박할 소재를 가지고 있었고, 그분은 저보다 높은 학식과 언어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말하자면 스킬이 상쇄 되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판타지 코드를 가진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의 작품성 논란에 대한 문제는 결론이 날 수 없는 영원한 숙제입니다.
순수 문학은 패배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외국의 판타지 소설들은 날개를 달고 그 돈의 갈코리를 들어 마구 돈을 긁어모으고 있습니다. 스타워즈, 쥬라기 공원, 반지의 제왕, 헤리포터. 우리는 쉽사리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판타지 코드를 떠올릴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문학은 아직도 서슬퍼런 칼날을 장르문학의 목젖에 갖다 대고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고급스럽다’는 인식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문학성’ 내지는 ‘작품성’입니다. 그들은 판타지 코드의 소설에 열광하는 젊은 사람들이 ‘큰일’이라고 걱정하며, 그러한 코드에 열광하는 어른들을 비웃습니다. 그리고 팔리지 않는 순수 문학의 미래를 꼭 모든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식으로 역설합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르문학의 ‘문학성’으로 순수문학을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르문학을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논문 자료를 돌아다니다가 ‘인터넷 게시판 소설의 문학적 의의’라는 논문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모 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순수 문학이 가지고 있는 ‘전설의 검’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우습게도 ‘사회적인 지위’입니다. 순수 문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학 박사, 대학교수, 학교 선생님 등의 존경받는 직위에 있습니다. 그들은 소드마스터 들입니다. 우리는... 한 마리의 오크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작품이 시장에서 팔리지는 않지만, 우리의 칼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을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도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도 ‘전설의 검’을 가지는 것입니다. 도저히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그런 작품들을 만들어낼 환경을 만들어 훨씬 높은 레벨을 가진 그들에게 떳떳이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데도 이게 문학이 아니냐? 쓰레기냐?”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런 검을 많이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럼에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장르 문학에서는 재미만 찾자’는 말이 들려와 안타까운 마음에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제가 올리는 부족한 글이 장르 문학에 누가 되는 것은 아닌가.
좀 더 좋은 소설을 쓰고, 좋은 소설을 사주고, 좋은 소설을 칭찬해야 계속해서 좋은 소설을 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부족한 저의 실력도, 가난한 주머니도 (T_T)도 저를 안타깝게 만듭니다.
그럼에 저는 여러분들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로 재미만 있고 작품성이 없는 글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그런 글은 없습니다. 우리가 재미 있다고 느끼는 글들은 모두 작품성이 있는 것들입니다. 문학은 어차피 상대적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재미 있고 훌륭한 글은 없습니다. 취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 저는 ‘재미’와 ‘작품성’중 어떤 토끼를 잡겠느냐? 라는 화제 자체가 모순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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