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삼류비평에 의해 개,돼지가 된 사람의 입장으로서
변론을 올려봅니다.
장르소설은 제게 있어 놀이터와 같은 곳입니다.
놀이터를 갈 때 그 곳에서 어떤 무엇을 얻으려 생각하시나요?
저는 단지 즐기러 갈 뿐입니다.
다만 놀이터를 갔을 때 기본적인 시설장치가 미흡 하다면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되겠죠.
또 시설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미끄럼틀의
기울기가 평탄하다면 그 재미없는 놀이터에 왜 가겠습니까?
기본과 재미만 갖추어져 있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용의가
있습니다.
다만 재미있게 즐긴 시간속에서 어떤 무엇을 얻었다면 최상의
시간을 보낸겁니다.
놀이터를 재미 있게 즐기려는 자가 과연 개,돼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문화님은 현재 재미성과 작품성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
십니다.
여기에 의문을 다는 사람이 있을까요?
최고의 이상론......누구나 바라는 일입니다.
처음부터 삼류비평 따위 말고 이런식의 주장을 하셨다면
모두다 문화님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며 승복했을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내공을 가지신 독자분들이라면 처음 글이 이리
저리 꼬인 글이라는 것을 발견하실겁니다.
왜 그런 헛소리를 하느냐 반문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 조목조목
설명해 보겠습니다.
문화님이 만약 재미와 작품성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계셨다면 '영혼의 물고기'를 예시로 들어선
안되는 것입니다.
본인이 말씀하셨다시피 위의 작품은 재미성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아래의 비평글을 보면 칭찬일색의 문장들과 본인 스스
로가 엄청나게 감동한 듯 보입니다.
그는 재미성이 결여된 작품에서 엄청난 감동을 얻으셨던 것입
니다.
명작이라 추켜세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재미성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짐승취급 했죠.
강호정담에서 제가 물었습니다.
문화님의 글을 읽으니 재미보다는 문학적 가치를 우선시 하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문학적 가치보다는 재미를 우선시 하는 독자도 있으니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강호정담에 글을 올리신 시라노님의 의견도 저와 같은 것이었
습니다.
그러나 문화님은 시라노님의 본 뜻을 오해한체 단지 일부분의
문장만을 가지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삼류비평을 늘어놓으며
재미성과 작품성이 함께 하여야 된다는 누구나 다아는 이야기
를 비평란에 올려 놓으셨죠.
분명 재미성과 작품성은 함께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명작이라 부르죠.
저는 재미성이 작품성을 능가한다는 건방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작품성이 재미성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라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훌륭히 양립한다면 더이상 좋을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론......
작품성을 재미성보다 추구하는 소설이 분명 존재하고
재미성이 작품성보다 앞서는 소설도 분명 존재 합니다.
어느 소설을 선택하느냐는 독자의 취향일 뿐 자신의
의견에 반한다 해서 개,돼지 취급을 하는 삼류비평은
없었으면 합니다.
Comment '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