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비평란

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좋은 비평의 조건

작성자
Lv.1 칼도
작성
06.08.16 08:03
조회
2,026

작가명 :

작품명 :

출판사 :

역시 추상도가 높은 글, 그러나 문학성을 넘보는 수준의 복잡하고 정교한 쟝르 소설에 대한 비평이라면 분명 해당사항이 있는 글입니다.

=================

질문 1:

당신은 좋은 비평의 조건으로

1) 그럴듯 하고

2) 일관성 있으며

3) 수사(학)적으로 효율적일 것

을 들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와 남성 우월주의자에게 세가지 모두가 성립할 경우 당신은 '논거'라는 것이 그 차이를 갈라 놓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답변 1:

상대적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라면 2)와 3)에서는 같아도 1)에서는 차이가 나야 할 것이다. 1)은 얼마나 많은 양의 논거에 의해 얼마나 강하게 지지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다. 동일한 작품에 대한 전형적인 잘쓰여진 자유휴머니즘적 비평과 전형적인 잘쓰여진 페미니즘적 비평에서 후자가 더 낫다고 결론내리려면, 후자의 해석은 전자의 해석보다 많은 양의 논거에 의해 더 강하게 지지되어야 한다. '더 많은 양의 논거'는 '하나의 전체로서의 작품에 더 충실함'으로 대체될 수 있을 듯 하다. 작품을 구성하는 사실들 가운데 더 많은 것들을 설명해준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질문 2:

앞의 기준들은 '논리적'이고 '형식'에 관한 기준들이다. 다시 말해서 '메시지', '의미'에 대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다원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내재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위와 같은 기준에 뛰어나게 만족한다 하더라도 좋은 비평이라는 필요조건은 될지 모르나, 충분 조건이라고 말하긴 힘들 것 같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은 형식이나 논리들은 도구화 되버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진정으로 좋은 비평과 그렇지 않은 비평을 골라내는데 불충분하다는 느낌을 준다.

답변 2:

위 논의가 하나의 전체로서의 비평에 대한 것이 아니라 비평의 한 계기인 해석, 그 중에서도 더 그럴듯한 해석과 덜 그럴듯한 해석을 준별하는 기준에 대한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해석된 내용은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해석이 그럴듯 하지 않다면 그 해석을 가지고 비평의 평가적 계기로 넘어가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질문 3:

'포괄적인 논거, 해석'이라는 기준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포괄적이기는 하지만 일관적인 해석이라는 것은 작품이 '다면적인 자아를 담지하고' 있거나 더 나아가 작품을 감상하는 '비평가', '관람자'가 융해하기 힘든 다면적인 면을 담지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 기준은 그런 다면적인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는 위험의 소지가 있는 듯 하다.

답변 3:

사실은 위 기준들에 의거해도 논거들의 상대적 비중이나 신뢰도에 대한 의견불일치로 인해 제일 그럴듯한 해석을 가리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해석이 제일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계속 주장할 수 있다. 아니,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고 이미 벌써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내 해석이 더 그럴듯 한 해석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을 아예 닫아놓은 것이 아니라면, 권력을 이용해 내 해석만을 교과서에 실리게 하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내가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해석이 권력을 등에 업고 더 큰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면 나는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당신 해석도 내 해석만큼이나 그럴듯하다는 다원주의적 관용은 포우즈로만 가능하다. 그것은 실제로 당신이 갖고 있는 표현의 형식적!!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 이상은 아니다.

나는 제일 그럴듯한 해석을 가리는 것이 내 자신이 해석자인 경우에도 무망한 경우들이 있을 수 있음을, 더 그럴듯한 해석과 덜 그럴듯한 해석의 차이가,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작은 경우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또한 내가 덜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이들의 해석들을 이해하려고, 왜 그 해석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내 해석보다 더 그럴듯하게 보이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즉 나의 해석(이론)은 다른 이들의 해석조차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그리고 가끔 더 그럴듯한 해석보다는 더 재미있는 해석에 몰두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질문자의 첨언:

위의 질문 2는 다원주의적 접근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이고,  (왜냐하면, 사람들은 뭔가 특정 감수성과 가치관을 갖기 마련이기 때문에) 질문 3은 다원주의의 필요성에 가까운 논의였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한 가지 이상의 다면적인 자아를 갖기 마련이므로) 사람들 자신이 특정한 사회와 문화적 맥락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볼 때, 다원주의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 반면에, 그 특정한 사회와 문화적 맥락이라는 것 또한 한 가지로 획일화 되었다기 보다, 지배적인 것들의 투쟁의 장이 될, 또는 지배적인 헤게모니와 인간의 욕망 사이의 대립의 장으로서 다면적인 자아가 형성되고, 감수성이 형성되는 상황에서 예술작품이 소통되고 해석, 비평되는 것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한 다원주의적 틀의 가능성. 다원주의적 해석을 가할 때, 이 두 가지 가능성과 한계를 인지하는 것이 다원주의라는 이름의 '덧없는 틀'을 잘 써볼 수 있는 최소한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첨언에 대한 답변자의 코멘트:

내가 하고 싶고 해왔던 바로 그 얘기이다. 우리는 어떤 실현가능하고 바람직한 다원주의도 특정한 하나의 조직원리를 갖는 사회,즉 단원적 사회에서만 가능함을 인식해야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다원들은 언제나 백화점이라는 단원 '안'의 스토어들이다. 다원적인 것은 언제나 최소한의 어떤 보편성과 공통성의 원 속에서의 다양성이다. 좋은 삶에 대한, 상정할 수 있는 모든 의견들의 평등한 표현과 그 의견에 상응하는 삶의 실천을 '모두' 혹은 '평등'하게 허용해준다는 의미에서의 다원주의 사회는 불가능하다. 다원주의는 언제나 특정한 사회에서의 제한된 다원주의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스스로를 자유다원민주주의 사회라고 칭하는 후기자본주의 사회는 유일하게 가능한 그런 다원주의 사회조차도! 아니다. 이 사회는 다원주의를 실질로서가 아니라 포우즈나 표현의 자유라는 형식으로만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서 우리 역시 그 '아님'을 직시하고 다원주의 사회를 만들어내는 투쟁의 이데올로기로서만 다원주의를 견지해야 한다. 어떻게 실질적인 다원주의 사회를 만들어낼까라는 고민에 의해 한정되지 않은, 표현의 자유 그 자체를 절대시하는 다원주의는 이 사회의 나쁜 단원성을 은폐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할 뿐이다. 내가 굳이 비평에서 더 그럴듯한 해석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가능성의 인정과 실현이 그 고민이 비평에 가하는 한정의 내용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나쁜 (다원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단원성에 대한 더 그럴듯한 이론, 실질적으로 다원주의적인 사회의 구성원리에 대한 최소한의 더 그럴듯한 청사진은 예술작품의 진실과 가치를 더 잘 보게 하는, 더 그럴듯한 해석이론과 평가이론을 함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백화점과 다원주의에 대한 답변자의 보충:

다원주의에 대한 나의 정확한 유비는 '한 백화점 안에 있는 다양한 스토어들'이다. 나는  이 유비를 부정적인 뉘앙스로, 즉 다문화주의가 실제로는 말그대로 상호평등한 다양한 문화들(특수한 것들)의 공존보다는 특권적인 하나의 문화(보편적인 것)의 틀 속에서 그 틀에 의해 관용되고 제한되는 다양한 문화들을 가리키고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쓴다.  중립적인 뉘앙스를 준 채로 다원주의의 유비로 쓸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백화점은 특권적인 단원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다원주의 사회도 최소한의 공통원리나 통일적인 사회형태를 가져야 한다고 할때의 그 공통원리나 통일적인 사회형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진정으로 다원주의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이 비유를 써서 표현하자면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백화점의 허울일 뿐 백화점은 아니다'가 될 것이다. 물론 계속해서 '백화점'을 허울뿐인 다원주의에 대한 비유어, 즉 다원들을 실체가 없게끔 자신에 종속시키고 있는 [자본의 논리로 소급되는] 실체적인 단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쓸 수도 있을 것이고 백화점의 이미지가 자본의 논리와 갖는 친근관계상 어쩌면 이 용법이 직관적으로 더 어울릴 수도 있다.


Comment ' 8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08.16 14:58
    No. 1

    칼도님에게
    먼저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된 글인데요 실제로 질문자와 답변자가 각기 존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칼도님께서 임의로 만든 형식인지 궁금합니다. 어쨌던 답변자가 칼도님과 더 근접한 견해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군요.

    1.작품에 대한 비평글과 그 비평글에대한 재비평
    앞서 칼도님께서는 작품에 대한 비평의 관점에서 기술/해석/평가의 세가지 계기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평가는 형식적/사회적/역사적/윤리적 적합성을 따지는 것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비평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기술/해석/평가해야 하는가 즉 재비평의 관점을 제시하셨습니다.재비평이란 "작품에 대한 비평글"이 얼마나 제대로 잘 평가되었나를 따지는 것이기에 재비평의 기준은 비평의 기준과 동일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본문글은 이러한 재비평의 계기중 "해석"과 "평가"에 집중해서 논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2. 형식적인 기준
    가)그럴듯함(양적-질적인 논거의 뒷받침)
    나)일관성(명확한 주장)
    다)수사적 효율성(군더더기 없는 표현)
    저는 질문2와 답변2를 보면서 가)나)다)가 '해석의 기준'인지 '평가의 형식적기준'인지 헷갈립니다. 질문2에서 보시다시피 가)나)다)가 "어떤 메시지나 의미에 대한 기준이 아니라 형식적 기준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질문자는 가)나)다)를 평가의 형식적기준으로 이해하고 질문함), 답변2에서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이 언급되지않고 가)나)다)를 해석의 기준임을 명시하면서 질문자의 의도를 빗겨나갔습니다. 해석과 평가의 경계가 모호하군요. 만약 질문자의 의도를 수용해서 가)나)다)를 "평가의 형식적기준"이라고 한다면 사회적/역사적/윤리적 적합성을 함께 따짐으로써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데요.

    3.다원주의
    질문2는 질문자의 표현처럼 "다원주의의 한계에 관한 것"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즉 질문자가 잘못 표현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질문2의 요점은, 어떤 형식적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다원주의의 원리에 위배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즉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다원주의를 옹호하고 형식적기준의 약점을 들춘 것입니다.필요조건을 만족할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음은 형식적기준의 약점입니다.이는 다원주의가 필요한 이유이지요.
    질문3은 다원주의의 한계가 있지만 여전히 필요함을 주장합니다."이러한 기준은 작품의 다면적인 자아와 독자의 다면적인 개성을 억압할 위험의 소지가 있다"에서처럼 다원주의를 옹호함으로써 이는 질문2와 같은 맥락이 됩니다.
    이에 대한 답변3은 질문3에서 제기한 다원주의의 원리에 대해서 "다원주의는 상대방의 논리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표현의 자유를 수용하는 매너있는 생각일 뿐이다"고 또 다른 한계적 단면을 지적합니다.

    형식적기준(불완전성)-->작품에 담지된 다원성과 독자의 다원적인 개성-->다원주의에 대한 의미 로 토론이 전개된 양상입니다. 저는 다원주의가 왜 생겨났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다원주의는 민주주의와 거의 유사한 개념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나와 생각이 다른 타인을 인정한다는 것" 이것은 단순히 매너혹은 표현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매너나 표현의 자유수준에서 인정한다면 이것은 인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사람의 논리와 행동까지도 수용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무척 힘든 일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수용한다는 것은 속상하고 열받는 일입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또는 집단으로 구성된 조직 자체가, 어떤 틀 속에서 문화의 힘에 의해서 전승되고 교육되고 학습되기에 그 틀속에서 틀 밖의 존재를 바라본다는 것은 대단히 이해할 수 없는 속상한 일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이 틀 혹은 원의 격리를 이미 알고 있고 그 한계성을 알고있는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 속상하고 열받을 때 비로소 다원주의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08.16 15:11
    No. 2

    법과 도덕 보편적인 상식까지 깨뜨리면서 다원주의를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칼도
    작성일
    06.08.16 21:55
    No. 3

    1.실제로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둘 다 수사학적 효율성에 문제가 있으나 질문자를 다시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답변만 개정하면 불공평해서 그냥 올렸습니다.

    2. 세 조건은 좋은 비평의 조건이라기 보다는 좋은 비평의 한 계기로서의 그럴듯한 해석의 준별 기준입니다. 하지만 그럴듯한 해석은 잘되어있는 기술을 전제로하고 평가의 대상에는 해석된 의미도 포함되므로 그럴듯한 해석은 좋은 비평의 주요 요소일듯 합니다.

    3. 해석의 문제에서 다원주의에 대한 제 관점은

    1) 여러 해석들이 동일한 정도로 타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텍스트가 수용되고 생산되는 맥락으로서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의 무망함과 불가능성을 함축하며 이 함축은 다시 국지적이고 미시적인 사회적 실천들만을 정당화한다는 것

    2) 다원주의를 자처하는 현실이 실제로는 별로 다원주의적이지 않으며 텍스트의 해석(과 평가에서의) 다원주의는 그 별로 다원주의적이지 않은 현실을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

    3) 다원주의적 비평은 결국 자유민주주의적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내용이나 의미작용이나 주제의식의 우위를 나누어 텍스트들을 위계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배제하고(왜냐하면 그것들 각각은 저마다 타당한 하나의 '원'들이고 그것들 사이에서 일등을 가려뽑을 수 있는 '단원'적 기준은 없으므로) 내용 등등에 대한 형식의 적합성만을 따지자는 관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3은 실제로 실천이 불가능하거나 별로 실천되지않는 관점입니다.


    --
    제가 생각하는 비평 모델에 가장 가까운 것은 프레드릭 제임슨이라는 사람 것인데, 저술들이나 입문서들이 별로 번역되지 않아서 접근이 어렵고 저도 사실 감만 잡고 있습니다. 번역만 잘되었다면 입문서로는 아래 책이 적당합니다. 다른 번역서들은 이 책보다 번역이 더 나쁠 가능성이 큽니다.


    정치적 무의식을 위한 서설
    William C. Dowling 지음, 곽원석 옮김 / 월인 / 2000년 11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08.17 01:25
    No. 4

    칼도님에게

    1.해석과 다원주의
    1) "여러해석이 천차만별로 다를 수 있다는 생각" 이것이 다원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것에 그치지않고 그 다름을 실질적으로 인정할 때만이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인정할 때만이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다원주의는 타당성의 검증이 아니라 다름의 인정이며 이것을 기초로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기에 가치있는 이념입니다.칼도님께서 말씀하신 "여러해석들이 동일한 정도로 타당할 수 있다는 생각" 이 표현은 결국 내가 상대를 인정할려면(다원성을 인정할려면) 상대의 해석이 타당하다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들 때만 가능하다라는 주장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화와 타협은 불필요한 것이 됩니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내 마음속의 타당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원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단원주의 혹은 독선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2) 모든 이념은 그 근본취지는 좋으나 실제 현실의 실천은 항상 과제를 남깁니다.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실제 권력을 가진 해석이 주류로서 왜곡될 수도있고 유행따라 흐름따라 특정한 해석의 방법이 부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으로 쏠리면 언제나 균형을 잡기위해서 반대쪽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모든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들 속에서 하나의 통일된 의견을 도출해내야 한다" 다원주의는 어쩌면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도구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칼도
    작성일
    06.08.17 03:20
    No. 5

    대화하지 말고 타협하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대화와 타협만으로 움직이고 바뀌지는 않지만 대화와 타협은 가장 먼저 시도해볼 만한 것입니다. 제가 가장 그럴듯한 해석을 확인하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해석 다원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해석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누군가가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하는 것도 아니고 저와는 다른 해석을 표현하거나 발표할 누군가의 권리가 제약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비평의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막을 권리가 저의 입장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비평의 영역에서 제일 그럴듯한 해석과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일 뿐이니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08.17 11:19
    No. 6

    칼도님에게
    저는 비평에 대해서 관심이 그렇게 없었습니다.순수한 독자로서 솔직하게 자기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정도에서 만족합니다. 그런데 칼도님의 글을 읽으면서 무관심하게 넘어갔던 사소한 사항들이 사실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추천하신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항상 옳지 않다는 것 이것은 민주주의의 약점이면서 다원주의의 결점이기도 합니다.소수의 지혜로운 사람의 철학이 다수의 논리에 묻히거나 또는 지혜로운 철학이 빛을 보기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것, 대화와 타협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며, 비평의 영역에서 어떤 해석의 형식적 기준이나마 제시하는 이유는 이러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이것이 칼도님께서 의도하시는 본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칼도
    작성일
    06.08.17 21:27
    No. 7

    비평에서 왜 합의가 불가능한가, 비평이 왜 싸움이기도 한가를 논하는 보론입니다.
    --------------


    진실게임이자 헤게모니 쟁투로서의 비평


    1) 어떤 맥락 - 비유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어떤 거울이나 문법 - 을 어떻게 들이대느냐에 따라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은 달라진다.

    2) 아무 맥락이나 혹은 아무렇게나 들이댈 수는 없다. 즉 들이댈 수 있는 맥락의 종류나 맥락을 들이대는 방법은 비평 '이론'으로 정리되어 있다. 예술가가 말로 밝힌 창작의도는 '어떤 비평이론에서도' 특권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3) 비평이론들은 서로 대립할 수도 있다. 작품을 그 안에 끼워 맞추어 작품의 의미가 해석될 수 있게 하는 맥락이라는 것 자체도 세계에 대한 해석의 결과물인데,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4) 비평은 작품의 진실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그래서 세계에 대한 올바른 해석의 결과물인 올바른 맥락을 작품에 들이대는 비평이 작품의 진실을 찾은 비평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작품의 진실을 찾은 비평이 언제나 득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진위를 판가름하는 경험적 및 논리적 기준이 상대적으로 잘 합의되어 있고 삶 전체의 외연과 일치하지 않는,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의 진실을 따지는 어떤 과학(예를 들어 수학)과는 달리 비평에서는

    (1) 진실을 확인하는 입장들이 합의되기 힘들고

    (2) 예술작품의 외연이 삶 전체의 외연과 일치한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각각의 입장들간의 차이가 삶 '전체'를 바라보는 가치관/세계관에서의 '근본적' 차이를 함축하고

    (3) 이렇게 '큰 진실이 걸린' 문제일 수록 사람들은 진실게임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면서 자신의 입장이 '어떻게 해서든' 이기기를 바라게 되기에

    (4) 더 권력자원에 근접해 있는 입장은 자신의 입장이 [진실게임에서] 승리하는데 그 권력자원을 동원하는 경향이 있는데 권력자원에 근접해 있는 입장이 진실을 찾은 입장이라는 보증은 없기 때문

    이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라이락스
    작성일
    09.02.18 16:00
    No.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평란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찬/반
542 무협 벽력왕- 직선 아우토반을 달리는 기분... +4 Lv.83 놈팽 07.06.19 2,913 6 / 1
541 판타지 [삼류용병]과연 신인베스트9위가 맞나? +20 Lv.56 KYO 07.06.19 4,014 8 / 1
540 무협 마신(魔神)... ㄱ- +20 Lv.13 은검객 07.06.18 3,184 5 / 10
539 무협 요도님의 빙마전설 - 나만 그런가? +16 Lv.71 뇌뢰腦雷 07.06.18 5,984 11 / 3
538 판타지 트루베니아 연대기 - 양판소의 미덕 +29 독존독행 07.06.18 4,266 20 / 7
537 무협 임영기 님의 쾌검왕을 읽고... +5 Lv.38 일십백 07.06.16 2,666 1 / 3
536 무협 나한님의 작품 +6 Lv.1 천하무림 07.06.16 2,379 1 / 0
535 무협 무림해결사 부제:고봉팔 전기 +21 Lv.76 새벽고양이 07.06.15 3,603 15 / 15
534 판타지 더 레드 +9 Lv.1 알세스트 07.06.14 2,462 2 / 0
533 기타장르 검의전설 +2 Lv.99 사람입니다 07.06.14 1,721 4 / 0
532 판타지 고스트아머..아 눈물이 나온다... +5 Lv.1 하양노을 07.06.13 3,341 7 / 1
531 무협 정구의 박빙을 읽다. +18 Lv.13 은검객 07.06.13 2,781 5 / 5
530 기타장르 효우 -누구냐, 넌?!(게시판 이동) +15 Personacon 별가別歌 07.06.13 3,375 16 / 2
529 판타지 더 로그 -카이레스, 너는 남자다. +48 Personacon 별가別歌 07.06.12 4,377 5 / 11
528 무협 新무협이야기(4) - 협객이란 무엇인가? +14 Lv.1 소혼검 07.06.11 2,377 20 / 0
527 판타지 하울링... 과연 풀메탈패닉의 표절작인가.(수정) +28 Lv.26 레피드 07.06.11 3,302 29 / 13
526 판타지 세븐메이지를 읽고 대실망(미리니즘주의) +29 철신박도 07.06.11 4,017 6 / 21
525 무협 허부대공을 읽고 느낀 방수윤 님에 대한 비평 +19 Lv.43 幻龍 07.06.11 3,613 10 / 2
524 판타지 트루베니아 연대기를 일고/// +15 창염의불꽃 07.06.11 2,016 2 / 6
523 무협 新무협이야기(3) - '포영매'와 먼치킨 +30 Lv.1 소혼검 07.06.08 3,060 21 / 1
522 무협 무협소설을 읽으면서 하나의 의문점.... +39 Lv.81 흑구청구 07.06.07 3,479 9 / 0
521 무협 新무협이야기(2) - '진가소전'과 클리셰 +11 Lv.1 소혼검 07.06.06 2,609 28 / 1
520 무협 新무협이야기(1) - '대도오'와 新무협 +14 Lv.1 소혼검 07.06.06 2,742 33 / 1
519 판타지 디멘션 레이더스(미리니름의 홍수) +3 Lv.66 신기淚 07.06.06 3,088 2 / 0
518 기타장르 COD .. 이건마치.. +1 Lv.86 비노동인 07.06.06 3,042 0 / 2
517 판타지 ㄷㅓ레드를 읽고 나서 +37 Lv.1 권 s 2 왕 07.06.05 3,021 12 / 10
516 판타지 프루나 최고의 판타지소설 '샷건' 1부 +18 최적 07.06.04 4,765 7 / 2
515 무협 권왕무적을 읽고... +12 Lv.83 놈팽 07.06.02 2,650 21 / 3
514 무협 호중지천에 대한 약간의 비평 +8 Lv.43 幻龍 07.06.01 3,058 1 / 1
513 판타지 이계진입자. 실패한 균형 +9 고요한아침 07.06.01 3,028 26 / 2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