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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당신은 나쁜 환타지를 주는 것은 예술로 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답변 1:
정확히 말하면 나쁜 예술의 속성 가운데 하나를 나쁜 환타지로 본 것이었다. 나쁜 환타지 때문에 나쁜 예술은 물론 순수예술에도 있을 수 있다.
질문 2:
일단 좋다/나쁘다는 개인이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에 "나쁜"을 강조하는 것에 동의하기가 힘들다. 잠깐의 쾌락을 주는 식의 예술이 나쁜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답변 2:
좋다/나쁘다는 판단은 얼핏 개인이 내리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개인은 특정한 사회와 문화와 집단 속에서 살아온 개인, 그 사회와 문화와 집단의 취미와 감수성과 가치관과 상식과 세계관을 내면화해온 개인이다. 예술에 대한, 순수하게 개인적인 평가적 관점은 있을 수 없다.
개인이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 예술작품의 질에 대한 보편타당한 평가기준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함축하는 것이라면, 비평이라는 것이 왜 있는지,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이 왜 위계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지, 왜 '더 많은 개인들'이 좋아하는 예술작품들보다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좋아하는 예술작품들이 교과서에서 거론되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예술에 대한 개개인들의 저마다의 취향이 존중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존중이 반드시 모든 예술작품들의 '질'이 동등하며 비평이란 그저 지식인-권력자들-체제가 말발과 글발로 특정한 예술취미를 타인들이나 대중에게 교묘하 설득하는 짓거리이기'만' 하다는, 일종의 헤게모니 확보를 위한 실천이기'만' 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잠깐의 쾌락을 주는 예술이 나쁜 예술이라고 단정한 적은 없다. 킬링 타임, 즉 심심풀이나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즐거움을 주지만 나쁜 환타지를 수반하지는 않는 예술이 대중예술의 대부분을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물론 실제로는 대부분의 대중예술작품들은 나쁜 예술일 수도 있다.
질문 3:
대중예술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큰 기능이 오락 즉 쾌락을 주는 기능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나쁜기능이라고 표현하면 안될것 같다. 선남선녀들의 로맨스를 보면서 우리가 감정이입을 하고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며 그들에게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그 컨텐츠가 우리에게 현실을 잠시 나마 잊게해주며 나름의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이고, 현실에서 우리가 이룰 수 없는 것을 가상적으로나마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것이 아닌가 한다.
답변 3:
사랑에 대한 나쁜 환상을 심어주지만 않는다면, 순수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부추킨다면, 선남선녀들의 로맨스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잘못된 것은 없다. 또 현실적으로 그런 사랑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들에게 대리충족을 주는 것에도 나쁜 것은 없다.
사랑이라는 것이 아주 복잡하고 모호하고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삶의다른 양상들과 얽혀 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심지어는 꽤 불순한 현상이라는 것을, 따라서 사랑의 그런 현실성에 충실한 로맨스가 많을 수는 없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적인 상이 각인되어 있고 선남선녀들이 언제나 미남미녀들이고 그들이 나누는 사랑이 그들의 삶 전체와 갖는 연관이 보이지 않고 사랑에 과도하게 삶의 구원자의 역할을 부여할 때, 사랑을 사랑스럽게만 그릴 때, 그 로맨스는 사랑에 대한 나쁜 환타지를 심어줄 수 있다.
질문 4:
당신은 대중예술을 감상하는 대중들은 어리석으며 현실과 대중예술 컨텐츠와의 괴리에 불만을 갖거나 혹은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전제를 깔고 얘기하는 것 같다(예전에 온라인게임 '에버퀘스트'를 하던 미국의 9살짜리 소년이 자기 동생을 게임에서처럼 도끼로 죽였다는 그런 식의 가상을 현실화하는 나쁜 영향에서의 환타지성향). 하지만 대중예술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을 갖고 있으며 어느정도의 판단능력이 있고 대중예술 컨텐츠를 하나의 휴식처로 여길 경우 (그리고 그것을 그것자체에서만 만족했을때) 그것은 좋은 환타지가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다/나쁘다의 환타지는 제3자의 입장, 대중예술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판단할 문제가 아닌것 같다. 개인에 따라 다를수도 있고 어쩌면 아예 그러한 가치판단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환타지를 심어주는 기능 자체로만 접근해야지 만약 "'러브레터'가 나쁜 환타지를 심어주는 영화다" 라는 식으로 가게 되면 그 반발이 무척 클것이라 생각된다.
답변 4:
대중이든 아니든 인간이란 투명한 의식적 주체가 아니고 이성적 판단과 감수성이 언제나 일치하는 존재도 아니고 그 판단능력을 언제나 최대한 발휘할 태세를 갖춘 의지적 존재도 아니다. 게다가 대중예술은 기획단계부터 대중의 능력과 수준을 고려하여 교묘하게 환타지를 구성할 수 있다. 실로, 우리가 이미 충분히 유능한 감상자이기에 감상 행위로 충분하다면, 감상 행위에 대한 논평, 즉 '메타 감상'으로서의 비평이 존재할 이유는 없다.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이미 온갖 차원의 한계들과 모순들에 조우하고 언제나 그것들에 능숙하고 조리있고 진정성있게 대응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영화나 TV 드라마를 볼 때도 충분히 반성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대중]예술에 대한 비평과 학술적 접근은 바로 그 가능성을 물고 늘어진다.
환타지를 나쁜 환타지와 좋은 환타지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환타지를 심어주는 기능 자체로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물론 구분의 기준이, 보편타당한 구분의 기준이 있을 수 있느냐가 문제된다. 나는 심지어 나쁜 대중예술조차도 못되는 [극악한 환타지로서의] 포르노그라피와 대중예술을 질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환타지의 질을 기준으로 해 [내러티브 위주의 대중] 예술작품들의 질을 위계적으로 구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말해 마초적 감성이 교묘하게 형상화되어 있거나 신데렐라 컴플렉스에만 의존하는 로맨스물이 있다면, 그것들을 '나쁜예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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