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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1 칼도
작성
06.10.03 15:39
조회
1,904

작가명 : 목영

작품명 : 칠등만세

출판사 : 문피아 정규연재

1

<칠등만세>는 전형적인 무협소설에서 쑥 한걸음 나와 있으면서도 튄다거나 어색하다는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머물러 있는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이음매가 말쑥하고 매끈하기 때문에, 양자가 자연스럽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무협소설 작가들에게 가장 애용되는 명초를 시대 배경으로 해 소림, 무당, 개방, 사마, 세가 등을 등장시키고 영약과 비급을 출연시켜 전통적인 무협소설의 컨벤션을 유지하는 한편 그 각각을 더 구체이고 현실적이고 신선하게 형상화하고 새로운 설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야기를 더 생생하고 흥미롭게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다. 단순히 물욕에 치우쳐 악한 짓을 할 뿐만 아니라 돈놀이를 하기도 하고 서로간에 인간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 티걱대기도 하고 성격화된 신조 때문에 3류잡배들에게 어이없이 당하기도 하는 도사들, 완전히 세속에 초탈했다고 하기에는 강직하고 단호한 언행을 하는, 실제 무공은 갖고있지 않은 선승, 낮에만 활동하는 거지의 습성상 밤의 정보에 어두운 개방, 단순한 비급이 아니라 한 민족의 자긍심이 걸려있는 비서, 그 비서가 오랜 세월 동안 해독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 고려인 주인공과 고려인들로만 구성된 문파,그 문파의 색다른 무공, 본국과 그 문파 사이의 갈등, 주인공과 연정을 맺을 운명이든 아니든 꽤 여러회 연재가 되었으면서도 아직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절세 미녀 등 - 만의 하나 조연희와 잘될 수도있지만 갈 길이 멀다 - <칠등만세>는 컨벤션을 존중하는 속에서도 혁신할 수 있다는 점을, 무협소설도 자꾸 자꾸 더 사람 살아가는 모습의 총체적 양상에 더 세부적으로 접근해야 1회용 이상의 읽을거리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천명해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사건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행로에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녹아있게끔 명초의 경제 실정을 세세히 묘사한 대목들이다. 무협소설에서 다음과 같은 수준의 역사적 고증을 만나기를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팔만냥이 많은 돈이긴 하지만 지전이 아직 통용되고 있다면 종이 몇 장으로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원이 멸망한 이후로 지전은 아직껏 다시 통용되지 않고 있었다.사실 실물거래가 원칙이 되어버린 당금의 법제 하에서는 은자의 유통도 불법이나 마찬가지였다."  

                

2

어느 정도든 주인공이 변모를 겪지 않는 무협소설은 없다. 그러나 타락했던 주인공이 정신차리는 식의 변모는 드믈며 대부분은 더 강해지고 노련해지는 정도의 변모, 소협에서 대협이 되는 정도의 변모이다. 사람이란게 실제로도 그런 정도로 변모하는게 쉽지 않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 과정을 말이 되게 서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말이 되기 위해서 주인공은 아주 충격적인 경험을 해야 하고 애초 그런 경험을 각성적 변모의 씨앗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성정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럴듯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칠등만세>는 밝혀지는 아비의 과거, 상처를 준 이의 원한에서 비롯된 것을 포함한 죽음의 위기, 타인의 희생을 통한 구사일생, 애초에 행동만큼 인지상정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이고의 변모를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그 설득력은 이고가 애초에 몰인정하고 거의 위악적인 인물이 되었던 것은 가족이 파탄난 비극적 경험과 아비에 대한 원망, 거의 타의로 빠져든 3류생활 때문이었던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에 더 배가된다. 그리하여 이고가 운치있게도 하늘의 변화를 유비삼아 자신의 변모를 힘차게 긍정하는 다음 대목에서 우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늘 그렇듯이 하늘의 변화는 그렇게 무쌍했다. 칠흑같이 까맸다가 눈이 아릴 만큼 파랗게 변하고선 어느새 또 연한 물빛을 닮아가곤 하는 것이다. 그러다 이내 눈부신 태양을 가슴에 안고나면 감히 바라볼 수도 없게 만드는 그런 존재가 바로 하늘 인것이다. '또 어떤 땐 잔뜩 찌푸리고만 있거나 뇌성을 때리며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지.' 참으로 그러했다. 그토록 외경스러운 존재인 하늘조차 그런 것이다. 그럴 진대 그 하늘 아래서 살아가는 고작의 한 사람에 불과한 자신이 어찌 변하지 않으랴. 더불어 그런 변화를 자신의 마음이라 하여 어찌 감히 거부할 수 있으랴."

3

조연들이 자신의 당당한 목소리를 내서 주연을 잡아 흔들지 못한다면, 주인공과 대조되는 자신만의 당당한 개성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면, 주인공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변모하고 각성하는 살아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작가가 도식적으로 꾸며놓은 설정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칠등만세>는 조연들과 그들이 주인공과 맺는 관계에 대한 형상화에서도 탁월하다. 그들 모두는 생생하게 개성화되어 있고 주인공과 상호작용한다. 어여쁘고 독한 조연희부터가 그렇다. 어차피 걷기로 되어 있는 행로쪽으로 주인공을 밀어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이들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자신만의 마음의 움직임, 자신만의 행태와 말버릇, 눈에 선하게 연상되는 자신만의 외관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강익이 죽었을 때 상처를 입게 되고 그들 중의 누군가가

이봐!, 중. 왜 그래? 대가리가 미끌미끌하니까 혓바닥도 그런거야? 뭐 땀에 그딴 소릴해, 엉?

같은 걸죽하고 재치있는 입담을 선보일 때 절로 공감의 미소를 짓게 된다. 아마추어 무협작가들, 이름만 무협작가인 이들은 조연이 빛나지 않으면 주연도 빛나지 않으며, 주인공만큼은 아니더라도 독자들을 강력하게 끄는 조연이 없으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허술한 이야기의 징표라는 사실을 <칠등만세>를 통해 생생하게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한다.

4

<칠등만세>의 정확하면서도 표현적인 문장들은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거나 엄했던 습작 훈련을 말해준다. 이야기 전개가 막히는 기미도 없어 전반적인 구도가 완결을 가능하게 할 정도 이미 잡혀있다는 느낌을 준다. 정통 '대협' 무협이 엄정하면서도 신선하게 재구축되는 느낌을 주었던 <대협심>이 연중되고 이어 살아있는 세부, 풍부한 인물 묘사, 정감과 운치가 넘치는 표현들, 흥미로운 수다, 생각의 깊이, 대하같은 전개의 가능성을 고루 갖춘 <검의 연가>와 <공산만강>도 연중되어 문피아에 들어오는 재미가 반감되었다가 <풍진기>와 이 <칠등만세> 때문에 다시 문피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있는데, 다른 서 너편과 함께 연재작 중 최고의 반열에 오를수 있는 작품의 질에 비해 반응이 너무 저조하다.

    

  


Comment ' 10

  • 작성자
    펜잡은노새
    작성일
    06.10.03 16:17
    No. 1

    비평이 대단히 훌륭하군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86 샤르웬
    작성일
    06.10.03 18:38
    No. 2

    그러게요.요새 비판같은 비평만봐서리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Cyrano
    작성일
    06.10.03 18:40
    No. 3

    시간이 나는대로 급하게 쓰신 글인 것 같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10.03 19:27
    No. 4

    "아마추어 무협작가들, 이름만 무협작가인 이들은 조연이 빛나지 않으면 주연도 빛나지 않으며, 주인공만큼은 아니더라도 독자들을 강력하게 끄는 조연이 없으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허술한 이야기의 징표라는 사실을 <칠등만세>를 통해 생생하게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한다. "

    특히 이대목이 공감이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10.03 19:27
    No. 5

    그리고 시간나는대로 급하게 쓴 글이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에 뜻이 담겨있는 글입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Juin
    작성일
    06.10.03 20:36
    No. 6

    재밌을 것 같네요. 풍진기와 칠등만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Juin
    작성일
    06.10.03 20:37
    No. 7

    추천 누르려고 했는데 반대를 눌려버렸네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해모수아들
    작성일
    06.10.03 21:07
    No. 8

    한편의 멋진 평론을 보고갑니다. 누가 보더라도 칼도님의 마음이 잘 담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칼도님 같은 분들이 좋은 작품들을 많이 소개시켜 줘야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좋은글을 외면하는 시기이니.... 그래도 칼도님같은 분들이 열심히 활동하시면 언젠가는 서서히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좋은글 감사하게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o마영o
    작성일
    06.10.03 23:49
    No. 9

    한동안 유행해온 독고다이 류의 주인공...
    자기 혼자서만 잘난 존재죠. 주변의 인물들은 그에 대해서,,,
    여자들은 매달리지만, 남자들은 그를 질투합니다. (간혹 안그런 남자도;)
    그리고 그의 적들은 무뇌아죠.
    뭘해도 어설퍼서 주인공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는거죠. OTL
    .......이젠 정말 그런 글들을 더이상은 보기 싫네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남훈
    작성일
    06.10.04 23:09
    No. 10

    칼도님의 글을 다 읽어보았습니다...감탄이 절로..^^;;
    작가분이신지..정말 왠만하면 인터넷으로 소설 안읽습니다만..
    칠등만세와 풍진기..이번 추석기간에 꼭 한번 봐야겠습니다.
    멋진글들 많이 추천해주시길..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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