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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 상업성, 작품성

작성자
Lv.1 칼도
작성
06.08.03 21:30
조회
3,264

작가명 :

작품명 :

출판사 :

1. 대중성, 보편성, 훌륭한 예술

훌륭한 예술은 사회와 관습을 앞서나가고 기존의 인식과 통념과 감수성의 지평을 확장하는 예술이다. 심지어 훌륭한 예술은 불순하고 불온해야 한다. 순수하다거나 온전하다는 것은 많은 경우 '관습적으로 정당화되어 있는 나쁜 것들', 또는 같은 말이지만 '보편적인 것을 가장한 특수한 나쁜 것들'을 보전하고자 하는 맹목적 지향, 이데올로기적 지향의 이면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훌륭한 예술은 일단은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특수한 것, 더 나아가서는 불가해하거나 불쾌한 것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것은 주어져 있는 (편안한) 관습이고 인식이고 감수성이고 통념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예술이 보편성을 지향한다면, 그 보편성은 보편적인 것, 심지어는 자연적인 것을 가장한 '특수한 나쁜것들'을 들쳐내는 과정에서 열리기 시작하는 '진정한' 보편성이다. 이를테면 성애에 대한 어떤 사회적 금기들이 그런 특수한 나쁜것들일 수 있을테고, 따라서 <소년은 울지 않는다>나 <로드 무비>같은 영화는 우리에게 성애의 가능성이 확장되는 경험, 더 보편적인 성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이다(물론 어떤 사람들은 혐오감만을 느끼며 그 경험의 의미를 자기화하지 않거나 그 경험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단, <올드 보이>도 이 경우에 속하는지는, 즉 <올드 보이>의 대중적 성공이 일반적으로 당연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대중이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성애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자극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대중성과 '진정한' 보편성을 그 자체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많은 대중들은 보편적인것이라고 통념화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진정하게 보편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만 보편성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들이 환호하는 대중예술작품들일 수록 나쁜 예술작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떤 예술작품의 대중성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그 예술작품의 휼륭함이나 보편성(보편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가치를 형상화함)을 증거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흥행이나 판매부수만 따지면 되지 비평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고 대중성이 희박한 순수예술이 일반적으로 대중예술보다 더 고급한 예술이라고 통념화되어 있다는 사회적 사실 또한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2. 대중의 흐름에 따라가지 않는 작품의 가치

질문:    

    

대중의 흐름에 따라가는 않는 예술은 어떤 존재가치가 있는가? 대중 속에 살아 숨쉬지 않는 예술은 죽은 예술이 아닐까?

답변:

여러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꼭 좋은, 혹은 더 좋은 것이라는 법은 없다. 얼핏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진리 가운데 하나는 '훌륭한 것은 드믈다'는 것이다. 그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훌륭한 - 즉 어느정도 수준있는 - 예술 취향을 가진 이들도 드믈 것이고 훌륭한 예술도 드믈 것이다. 반면 그저 그런 예술과 그저 그런 예술취향을 가진 이들은 많을 것이다. '대중'에는 다수의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지금까지 한말이 어느정도 맞는 말이라면, 대중이 좋아하는 예술은 그저 그런 예술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고 이 말을 대중이 즐기지 않는 예술일 수록 더 훌륭한 예술이다는 말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또한 대중이 즐기는 예술 가운데는 절대 훌륭한 예술이 있을 수 없다는 말로 이해해서도 안된다. 나는 어떤 모더니즘 미술이나 음악보다 카펜터즈의 노래나 일본의 어떤 만화가 더 예술적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예술이 드믄 이유 가운데 하나는 훌륭한 예술을 만드는데는 더 큰 재능과 이용하고 자극받을 수 있는 훌륭한 것들의 전통과 창조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사회역사적 조건/상황이 요구 되기 때문에, 더 나아가서는 그 훌륭한 예술을 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훌륭한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적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훌륭한 예술일 수록 정교하고 난해하고 복잡한 경향이 있는 반면 그 정교함, 난해함, 복잡함을 이해하고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의 교양을 갖춘 이들은, 아무리 대중교육의 수준이 높은 사회라 하더라도, 갖추지 않은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이 말을 훌륭한 예술은 반드시 정교하고 난해하고 복잡해야만 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된다. 정교하고 난해하고 복잡한 허접쓰레기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3. 대중예술과 상업적 지향

대중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상업성이라기보다는 접근용이성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순수예술보다는 대중예술에 상업적 지향이 더 강하다든가 적어도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위계적으로 구분하여 보는 이들은 그렇게 본다고 얘기할 수는 있다. 내 자신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위계적으로 구분하여 보는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순수예술보다는 대중예술에 상업적 지향이 더 강하다는 견해에 동조하는 편이다. 그러나 '순수한' 대중예술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즉 강한 상업적 지향은 '많은' 대중예술작품들을 특징짓는 것이기는 해도 대중예술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실로 상업적 지향을 전혀 하지 않는 예술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예술가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작품이 '상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 사실은 개개 예술가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회제도적 사실이다. 예술작품을 시장에서 팔지 않고서는 (또는 예술작품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고서는) 의식주 해결도 어렵고 예술가로서의 자기를 재생산하기도 어렵고 예술가로 인정받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문제는 '정도'이다. 어떤 정도의 상업적 지향은 창작의 자유라든가 작가의 표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순수한 측면을 과도하게 희생하지 않고도 예술작품의 기획과 제작에 개입할 수 있다. 또한 얼마나 팔릴까를 '거의' 고민하지 않은채 내 작품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지만 그 전에 먼저 '내' 작품이어야 한다는 태도로 작업하는 대중예술가들도 있고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맘껏' 발휘하면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자동적으로 좋은 의미에서의 대중성을 갖게 되고 따라서 강한 상업성 또한 수반하게 된다고 '믿고'작업하는 대중예술가들도 있으며 아예 처음서부터 소수의 매니아층만을 염두에 두고, '소수에게만 팔려도 별 문제없다, 오히려 그게 내 작품의 진정성에 어울린다'고 믿고 작업하는 대중예술가들도 있다. 우리가 흔히 '훌륭하다', 심지어는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대중예술가들, 몇십년의 세월을 거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작품을 즐기는 그런 대중예술가들은 '거의' 모두 이 범주들에 속한다.

상업적 지향이라는 것은 '지향'이라는 말 때문에 예술가 자신의 의도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오해될 수 있다.그러나 누가 무엇을 의도했느냐 하는 것은 주로 그 의도를 갖고 행해진 행위의 결과를 보고 확인되는 것이지 무엇을 의도했다는 말 자체만으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선물도 안주고 달콤한 말도 안해주고 애뜻하고 뜨거운 눈길도 안주고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법도 없고 내 말을 경청하는 법도 없는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의도가 아니라 특정한 표현적 행위이니까. 마찬가지로 상업적 지향을 하느냐 않하느냐의 문제도 그 예술가의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진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예술가의 의도나 얼마든지 거짓말일 수 있는, 그 의도에 대한 예술가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완성된 작품속에 얼마나 상업적 요소가 들어있느냐를 따져 확정되어야 한다. 많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대중예술작품들에 공통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든가 (대중이, 그 환타지가 일말이라도 갖고 있을 수 있는 나쁜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반성적 거리를 두고 보게끔하는 장치는 전혀 혹은 거의 갖추지 않은 채) 대중들의 환타지를 가상적으로 실현시켜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그 예술작품은 상업적 지향의 산물이고 상업적 지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뿐이 아니고, 양심적으로 실제로 상업성을 배제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양심적으로 실제로 상업성을 배제했는지 안했는지는 예술가의 양'심'이 아니라 작품에 물어보아야 한다. 물론 작품에 대고 묻는다고 해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답변이 나올 가능성은 있다. 어떤 요소들이 '상업적 요소'인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상업적 요소가 얼마나 있어야 상업적 지향이 강한 것인가에 대한 견해 차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어떤 답변이 다른 답변들보다 더 정확한 것일 테고 비평가들 사이에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개입해 있지 않다면 상당한 정도의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4. 접근용이성과 대중예술

어떤 예술작품이 접근용이성을 갖는다는 것이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그 예술작품을 즐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혈기왕성한 나이일 때 로맨스물이나 멜러물에 대해서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 없었는데,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어떤 예술작품은 접근용이성과 기타 몇가지 부수적인 대중예술의 필요조건(상업적 성공이 '제일' 중요한 목표들 가운데 '하나'라든가, 그 예술작품의 최종 모습이 무엇이 될지에 대해 거의 배타적인 결정권을 가지는 '창조자'로서의 예술가라는 면과 예술가의 '표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면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든가, 전파에 실리거나 대량으로 복제되어 공급되는 등 많은 사람들에 의한 수용이 용이한 형태를 취한다든가, 대중이 사회현실속에서 느끼는 모순이나 불만을 가상적으로 충족시켜주는 환타지를 제공해주는 면이 크다든가 등등) 을 갖춘다면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즐겨지지 않으면서도 대중예술에 속한다. 즉 흥행잠재력이 큰데도 홍보가 미숙했다든가 개봉이나 출시시기를 잘못 맞추었다든가 해서 본전도 못건진 영화도 여전히 대중예술에 속하고, 접근만 용이할 따름이지 대중의 '즐김'까지도 끌어낼 수 있는 요소를 갖추지는 못해서 흥행에 실패한 영화도, 심지어는 시사회만 마치고 개봉을 못한 것은 물론이고 비디오로 출시되지도 않은채 필름 창고로 들어간 영화도 대중예술에 속한다. 모든 대중예술이 성공한 대중예술이기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소수의 매니아만을 위해 만들어진 예술작품이 대중예술이냐 아니냐는 흥미로운 쟁점이다. 그런 예술작품일 수록 상업적 성공에 대한 지향이 크지 않고 (따라서 자본의 요구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예술가가 마음껏 자신의 의도와 역량을 살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번 째로 고려해보아야 할 문제는 접근이 용이한 정도이다. 소수의 매니아만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것이 반드시 소수의 매니아만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와 동의어는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해되는 될 수 있지만 그중 일부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를 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소수의 매니아'라는 말도 상대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소수의 매니아'라는 말로 작가는 '많아봐야 몇 만명 정도'를 의미할 수도 있을텐데, 순수예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몇 만명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엄청난 다수는 아니어도 꽤 다수이고 뜻하지는 않았던 것이라도 상업적인 성공을 보장해줄 정도의 다수이다.


Comment ' 10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08.04 01:17
    No. 1

    칼도님에게
    몇가지 반박을 좀 하겠습니다.

    1.훌륭한 예술,보편성,대중성
    가)훌륭한 예술
    훌륭한 예술이란 어떤 것인가? 이문제에 대한 님의 의견에 일부 추가하고 싶군요. 훌륭한 예술은 불안과 충격과 고통을 주고 적극적인 자세와 긴장, 비판 및 자기반성을 자극하여 기존의 인식, 통념,감수성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에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이것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대중을 위로하고 격려할 줄도 알아야 된다고 봅니다. 즉 훌륭한 예술의 개념을 보수적인 관점만으로 한정하지 말고 문화적 문학적 다양성과 대중성까지로 확장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님께서 본문중에 "나는 어떤 모더니즘 음악과 미술보다 카펜터즈의 노래나 일본의 어떤 만화가 더 예술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훌륭한 예술의 개념은 보수적인 고급예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대중예술의 영역까지 포함되어야 합니다.
    나)보편성
    이 부분은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되는 군요. 예술이 보편성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자극을 준다는 점은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할려면 작품 속의 표현이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선행조건이 붙습니다.대중이 공감할 수 없는 보편성의 확장은 방종일 뿐입니다. 예로드신 근친이나 타부같은 비보편적인 표현을 하였다하여 이것을 예술행위로 이해한다면 곤란합니다. 이는 "보편적이지 못하다"라고 표현할뿐 "보편성의 확장"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보편성의 확장으로 이해될려면 근친과 타부를 통해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이끌어 낼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올드보이"의 경우 근친이 묘사되었지만 이것을 보편성의 확장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작가의 의도 즉 올드보이의 주제는 복수이고 복수를 통한 용서와 사랑입니다. 육체적 근친이 아닙니다. 올드보이의 대중적 성공을 근친의 대중적 공감으로 이해한다는 말씀은 도저히 찬성할 수 없군요. 우리사회는 여전히 근친과 타부를 거부하고 있으며 이것 자체의 확장을 거부합니다.다만 소재로써 사용될 뿐이며 이것을 통한 다른 영역에서의 확장을 시도할 뿐입니다 .
    다)대중성
    대중성과 보편성은 그 자체로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근사치에 가깝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중에 "많은 대중들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통념화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진정하게 보편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만 보편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신 말씀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대중성과 보편성은 근사치에 가깝고 특수하게 예외가 있을 것입니다. 이 예외가 예술가들의 영역에서 다루어질 때 보편성의 확장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2.상업적 지향
    상업적 지향이냐 예술적 지향이냐 이것을 따지는 것은 작가의 머리속이 아니라, 작품자체에서 따지는 것이고 읽는 독자의 머리속에서 따지는 것입니다. 작가가 아무리 자신의 고상한 의도를 피력할지라도 작품을 통해서 그 의도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다면 작가의 의도는 실패한 것이고 의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상업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작품활동을 할 수는 없기에 "정도" 혹은 "수준"의 차원에서 판단될 것입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칼도
    작성일
    06.08.04 03:05
    No. 2

    1. 대중예술과 훌륭한 예술

    올린 글에 함축되어 있듯이 저는 [대중예술 = 저급예술, 순수예술 = 고급예술 또는 훌륭한 예술]의 도식을 의심합니다. 위로나 격려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어느 한쪽에만 있어야 하거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예술이든 순수예술이든 훌륭한 것들은 모두 우리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줍니다. 다만, 대중예술, 특히 영화와 소설은 순수예술보다 내러티브가 확실할 수밖에 없고 계몽적 성격 및 오락적 성격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순수예술에 속하는 훌륭한 예술은 주로 기존의 지평을 확장하거나 비판하는데 관심이 있고 그래서 난해하고 복잡할 수 있는 반면 대중예술에 속하는 훌륭한 예술은 주로 우리가 이미 좋은 것이라고 느끼고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는 못하는 것을, 평균적인 지성인이 수용할 수 있는 형식으로 감동적이고 흥미롭게 예화합니다.


    2. 대중성과 보편성

    성애는 중요한 인간적 진실 가운데 하나이며 따라서 예술적 형상화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우리 다수는 알게 모르게 이성애만이 유일하게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즉 보편적인 성애의 형태라고 믿게 됩니다. 비록 수적으로 다수이기는 하나 성애의 특수한 한 형태에 불과한 것을 성애 자체와 동일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성애들을 비인간적인 현상으로 매도하는 것이고 그 다른 성애에 울고불고 하는 동료 인간들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예술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보편성을 자임하는 특수성을 폭로하고 무시되고 주변화되었던 다른 특수성들을 전경화하므로서 다양한 특수성들의 조화로운 공존으로서의 진정한 보편성을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의 예로 든것이 <소년은 울지 않는다>와 <로드 무비>이며 <올드 보이>에 대해서는 확정적으로 한 말이 없습니다.

    대중예술이 순수예술에 비해 불리한 조건 한 가지는 대중적 기호에 영합할 것을 요구하는 상업적 지향의 압력이 상대적으로 더 커서 대중들이 관습적으로,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받아아들이고 있는, 보편성을 자임하는 이데올로기적 특수성들을 그 자임 그대로 형상화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즉 대부분의 나쁜 예술은 대중예술에 속합니다. 순수예술에도 나쁜 예술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순수예술의 나쁨은, 순수예술을 즐기는 이들이 극소수라는 사실로 말미암아, 별로 영향력있지 않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생각은 지배 이데올로기 개념과 통상 언제나 그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각인 된채 별 생각없이 살아가는 '평균적' 대중 개념을 전제로 합니다. 나쁜 대중예술은 언제나 평균적 대중에게 호소합니다.


    3. 상업적 지향

    이 점에 대해 하신 얘기는 제 주장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즉 제 얘기가 바로 그 얘기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08.04 11:59
    No. 3

    칼도님에게

    1.대중예술과 순수예술 그리고 훌륭한 예술
    우리가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을 분류함은 그 특징적 요소를 따지는 행위입니다. 표현 방식의 정도 차이를 구분한 것일 뿐, 예술적 가치 즉 "지평의 확장"이나 "위로와 격려"는 양자 모두에 존재할 것입니다. "지평의 확장"과 "위로와 격려"중 어디에 더 주안점을 두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칼도님의 의견과 동일합니다. 다만 제가 언급하고 싶은 점은, 본문의 첫 단락에서 보시다시피, 훌륭한 예술의 개념을 피력하시면서 오해의 소지를 남겼습니다. 훌륭한 예술의 개념을 "지평의 확장" 즉 순수예술의 특징적 요소를 강조하셨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고, 이에 "위로와 격려"라는 대중예술의 특징적 요소를 추가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훌륭한 예술이란 순수예술뿐만 아니라 대중예술을 포함해서 사람들에게 미적 감동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2.보편성과 대중성
    가)보편성
    보편성은 그야말로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성애는 이성애입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예술적 형상화를 거쳐서,동성애의 공존 즉 특수성의 공존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특수성의 공존을 수용하는 조화로움일 뿐 이것이 보편성으로 확장될 수는 없습니다.특수한 사실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과 이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릅니다. 보편적인 것은 다수가 인정하고 "행하고" 수용하는 보편성입니다. 동성애는 특수성으로 남아서 공존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대중성
    대중예술이, 순수예술에 비해서, "세계를 향한 비판적 해석"이 부족함은 사실입니다.이는 대중예술이 앞으로 갖추어야 할 과제이겠지요. 그러나 앞서에서도 밝혔다시피, 훌륭한 예술의 판단 기준을 "지평의 확장"에만 둘 수 없습니다. 대중을 향한 위로와 격려 또한 중요한 기준입니다.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이러한 비판 기능만으로 판단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보편성 속에서 소외되는 특수성들을 폭로하고 이를 위로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대다수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입장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는 이러한 보편적인 것들이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님께서 대부분의 나쁜예술이 대중예술에 속한다고 하셨는데요, 여기서 나쁜예술은 "대중기만(mass deception)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평균적 지성을 가진 대중"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대중은 예전과 달리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를 통해서, 인터넷과 각종 통신매체를 통해서 끊임없이 정보를 수용 비판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추세에,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예술가들 또한 이에 부응해서 어떤 미적 가치를 형상화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3.상업적 지향
    이 부분은 칼도님의 글에 반박한 것이 아니라 제 나름대로 요약한 부분입니다. 위에서 칼도님께서 언급하셨듯이 나쁜예술이 대중을 기만한다는 점을 한번 주목하고 싶습니다. 장르문학의 경우 저는 여기에 들어맞지 않는가 생각해 봤습니다. 장르의 주독자층이 10대이고 그들의 지적수준과 인생의 경험 그리고 비판력은 대중의 평균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됩니다.여기에 상업주의가 끼어들어서 생산해 내는 작품들은 10대들을 영합하고 기만하고 있습니다. 이는 평균적인 대중을 소외시키고 10대들만의 장르문학으로 장르문학 스스로를 대중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칼도
    작성일
    06.08.04 15:28
    No. 4

    보편성과 관련해 예술이 훌륭해질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이미 벌써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을 생생히 형상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편적 가치를 참칭하는 특수성들을 제 자리로 돌려놓으면서 보편적 가치를 구성하는 다른 특수성들을 조명하고 복권시키는 것입니다. 대중예술에도 후자까지도 해낸 작품들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중적 수용을 고려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뛰어나게 잘 해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더 사례가 많고 통상적이라는 것과 보편적이라는 것은 같이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동성애의 특수성의 인정은 그것이 이성애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성애로서의 동일성의 인정이라는 조건에서만 의미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성애의 입장에서 동성애는 '관용'이나 '배려' 대상일 뿐인 것, 구획된채 감시되어야 할 것일 뿐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인간으로서는 동일하기에 동일한 존엄성을 지니는 것처럼 이성애와 동성애도 성애로서는 동일하기에 동일하게 인간적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모두 우리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비극조차도 재미만 있다면 우리를 위로해주고 격려해 줍니다. 다만, 대중예술이 특히 잘하는 위로와 격려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쉽게 '별로 해롭지 않은, 삶의 고난함에서의 일순간의 도피를 허용해주는, 상상적 대리충족의 제공'으로 규정합니다. 비유컨데, 그것은 깨어난 이후의 생활에 아무런 지장도 안주는 시원하고 달콤한 꿈, 건강에 지장을 안 줄 정도의 술이나 담배같은 것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08.04 18:48
    No. 5

    칼도님에게

    사례가 많고 통상적이라면 이는 보편적이라고 해야 합니다.사례가 적고 통상적이지 않다면 이는 특수성입니다. 다만 보편성 혹은 특수성이 미화되거나 비하되는 부분이 존재한다면 이는 문제의식 제기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는 죄악이다"라고 비하되고 있다면 이는 문제 제기가 이루어 져야할 것이고, "이성애만이 절대적 사랑의 방식이다"라고 미화된다면 이 또한 비판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제기가 바로 문학속에서 작가들이 발견하는 주제이겠지요.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가"라는 방식에서 순문학과 대중문학이 분류됩니다.
    순문학과 대중문학은 제각기 장단점이 있습니다. 서로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릴려는 시도가 있어야 겠죠. 또는 순문학은 순문학대로의 장점을 대중문학은 대중문학대로의 장점을 독자적이고 개성적으로 본래의 영역에서 발전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경계를 무너뜨릴 수도 경계를 명확히하고 개성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관심사인 장르문학은 대중문학입니다.또한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장르문학은 문학의 범주에서 보면 보편적이기보다는 특수성이 강합니다. 마치 "동성애"처럼 특수하고 별난 곳입니다.그래서 장르문학은 제대로된 평가를 못받고 있고 비하되는 면이 많습니다. "장풍과 마법이 나오는데 무슨 문학성을 갖출수 있느냐 오직 순문학만이 절대적인 문학성을 구현할 수 있다"라고 한다면 저는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칼도님께서 "이성애"와 "동성애"에서 성애로서의 동일성을 언급하셨듯이 장르문학 또한 순문학과 비교해서 문학으로서의 동일성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순문학에서 치열하고 격정적으로 문제제기를 깊게 파고들어 수술을 한다면, 장르문학 내지는 대중문학에서는 상처를 조심스럽게 가볍게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보듬어서 치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각기의 본연의 역할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칼도님께서 언급하신 "대중문학이 주는 위로와 격려를 소극적인 자가도취 내지는 도피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는 특수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이며 비하된 특수성을 복권시킨다는 논리에도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칼도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장르문학이 제 본연의 소임을 다 하지 못하고 상업주의와 왜곡으로 스스로 대중으로부터 소외되고 있기때문입니다. 장르 본연의 역할에 부합하는 수준의 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고 이것에 대한 해결책 내지는 미래에 대한 비젼 또한 제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심정으로 표류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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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Cyrano
    작성일
    06.08.04 19:09
    No. 6

    논의를 쭉 지켜봤습니다만, 머라고 할까요...
    제 생각으로는 두 분의 생각이 그리 다르지 않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당위 혹은 현실, 둘 중에 어느 쪽에 무게중심이나 방점을 두느냐의 문제로 보이는군요(제가 오독을 하는 것입니까?...) .

    단지,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용어의 합의에 관한 문제입니다. 온라인 상에서의 토론이란 것이 토론 당사자 쌍방이 처음 얻고자 했던 결과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버리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이런 것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경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오프 사이드는 A이지만, 상대방이 생각하는 오프 사이드는 B라는 이야기입니다.

    두 분께서 동시에 사용하는 용어 중에 '보편성', '대중' 등의 용어에서 느껴지는 의미 차이가 이런 말을 하게 된 연유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데굴데굴
    작성일
    06.08.04 22:31
    No. 7

    1. 대중성, 보편성, 훌륭한 예술

    굉장히 눈돌아가는군요. 빙글빙글...아니지, 구르자! 데굴데굴...그러니까 요컨대 문학적인 말이 상당수 섞여 있어서 오랜만에 머리가 드르륵드르륵 하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훌륭한 예술에 대한 정의 아마도 문예이론을 한 번쯤 들춰 본 사람이라면 너나없이 공감했을 대목이로군요. 그것에 대해 특별히 소감 같은 건 없습니다. 다만 이 대중성 혹은 보편성 혹은 훌륭한 예술이라는 테마가 현재 시장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는 무협소설이란 장르에 어떤 참조적인 효과가 있을지 어떤 개연적인 설명이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있다고 해도 지극히 작은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 옛날 무협소설에 있어 신무협의 시기에도 여러 가지 혁신적 변화는 있어왔지만 모두에 밝힌 것에 부합하는, 뜻을 둔 이는 혹은 작품은 어쩌면 '호접락어수상'을 쓴 문재천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모두에 밝힌 테마가 가지는 가장 위험한 함의는 작가와 소설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지을 것인가 하는 제 3의 시각입니다. 또한 잘 아시겠지만 이른바 '재미'나 '대중성'의 영역에 있어서의 규정은 문예이론에서 일반화하는 시각과 장르 내재적으로 사용하는 어법과의 차이는 일정 거리 이상 분명히 존재하므로 역시 모두의 이야기는 일견 높게 평가될지언정 실정적으로 무협 시장 혹은 무협소설에 반영될 여지는 극히 부분적이다라는 소감이 드는군요.

    2. 대중의 흐름에 따라가지 않는 작품의 가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읽어보건대 특별히 언급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단어를 치환하여 대중의 흐름에 따라가지 않는 무협소설은 어떤 존재가치가 있는가? 대중 속에 살아 숨쉬지 않는 무협소설은 죽은 예술이 아닐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요. 첫째, 대중의 흐름은 곧 시장의 소구력이 미치는 영역이므로 특히 왜곡되이 직접적으로 소비자의 유통에 간섭하고 있는 무협소설 시장이 과연 건전한 부분이 많은가 아닌가 하는 작업 조건이 선결되어야 하겠고 둘째, 무협소설이 어떤 존재가치가 있다면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에서인가에 대한 가벼운 문제제기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예가 간단히 필요하겠고 셋째, 대중 속에 살아 숨쉬지 않는 무협소설이 있다면 그것은 작자의 자의식에서 비롯된 것일진대 작자는 왜 그렇게 썼을까 그에 대해 과연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란 독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3. 대중예술과 상업적 지향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개인적인 첨언이나 견해가 많아지는군요. 대중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상업성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계적으로 구분하기 이전에 사람에게 느껴지는 감각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것도 일선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감각적인 부분은 더 강하게 인지된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어떤 현상에 관계가 멀면 먼 위치일수록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마련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님의 글이 일반론적인 표현을 빌었다손 치더라도 무협소설이라는 무협시장이라는 함의 내에 재출발하고 재생산되고 재부정되지 않으면 곤란하므로 현실적으로 지금 상황에서는 '순수한' 대중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리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문예사회학적인 측면에서도 순수하면서 동시에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각 예술 분야들, 간단한 예를 들어 20세기초 록 장르를 풍미했던 얼터너티브의 너바나와 펄 잼 등의 성공을 과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분명 여기엔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순수한' 대중예술이 존재함을 드러내는 근거가 있을 순 있겠으나 실상 그러한 현상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굉장히 감정적으로 격렬하면서도 동시에 상호 모순된 인간의 이기적인 면모가 맞물려 빚어낸 합작품이다 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카오스를 향해 문예이론적으로 정연하게 '순수한' 대중예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깁니다. 논리나 이론 이전에 개인의 좋고 나쁨을 따라 만들어내가는 그러한 우연과 필연의 조우를 문예이론적으로 패턴화 해서 말할 수 있음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맛이 가버린 자칭 천재에 대해서 특히 더더욱)

    4. 접근용이성과 대중예술

    별다른 소감은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누가 한 번쯤 꺼냈어야 할 이야기라는데서 좋은 정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네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자몽
    작성일
    06.08.05 17:45
    No. 8

    "장풍과 마법이 나오는데 무슨 문학성을 갖출수 있느냐 오직 순문학만이 절대적인 문학성을 구현할 수 있다"라고 한다면 저는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 라는 말이 와닿는군요.

    전 대중예술은 결국 다수의 대중에 의해 예술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봅니다. 그럼 양산형 판타지의 경우 대중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그 역시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누가 썼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조동일할배의 한국문학통사에서 할배는 문학의 장르를 네가지로 규정짓죠. 그 중에 교술문학이 있지 않습니까? 현대에 와서는 문학의 장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할 수 없는게 사실입니다만- 양산형 판타지에도 그런 '교훈적 성격'이나 사회비판, 현실의 반영이 담겨있다면 대중예술로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 앞서 말한대로 다수의 대중에 의해 예술이냐 아니냐가 결정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금의 문예이론이나 비평이론들도 결국 그 커뮤니티의 구성원의 다수, 즉 지식인 할배들의 총체적인 결론을 바탕으로 쌓여온 것 아닙니까. 순수예술과는 달리- 그런 이론적 체계에서 조금은 많이 떨어져 있는 대중예술에서는, 슬프게도 결국 대중이 모든 것을 규정 짓겠죠. 어디까지나 대중예술이니까요.

    얼마 전 이슈가 되었었죠. 이영도님의 드래곤라자가 문학으로 인정되어 고등교과서에 실렸습니다. 그럼 그 작품을 문학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 역시 인정할 수 있다 봅니다. 왜? 결국 문학의 출발은 신화였다고 보는 제 견해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되는군요. 그럼 그것을 순문학으로 규정지을 수 있느냐?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통신을 통해 대중에게 보급되었니 아니니를 떠나서,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순문학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하나의 소설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천장의 파지쯤이야- 별 거 아니죠. 이제껏 쌓아온 순문학의 금자탑에 대중문학이 무임승차하기에는 질적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죠.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은 있겠군요. 장르문학 지식인을 떼거지로 문학계에 진입시켜 보편적 이론을 만들고 가치를 인정 받으면 결국 순문학이 되겠죠. 역사적으로 볼 때도, 의식있는 소수도 결국 다수를 선동해 다수의 인정을 받아야만 물 밖으로 머리를 디밀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디까지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겠죠. 한국에서 환상문학이 인정받기에는 기존의 기득권층의 힘이 너무나 막강하니까요. 또 의식있는 소수를 받쳐줄만한 작품도 그닥 존재하지 않고요.

    잡설이 길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대중예술은 대중예술, 순수예술은 순수예술이지 상업성이 덜하고 더하고, 매니아층이 많고 적고로 대중예술이 순수예술도, 순수예술이 대중예술도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은 못하겠군요.

    어느 만화에서 등장인물이 주인공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죠.
    "양다리를 걸칠 만큼 이 세계가 만만해 보였냐" 고.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자몽
    작성일
    06.08.05 17:48
    No. 9

    그래도, 이렇게나마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앞으로 더 나아지겠죠.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라이락스
    작성일
    09.02.18 15:58
    No.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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