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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케니지의 음악이 퓨전이든 아니든 재즈라고 말하지 않는다. 케니지 자신도 언젠가 자신의 음악이 재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케니지 음악보다는 조금더 재즈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그래서 케니지와는 달리 퓨전재즈라고 '일컬어지기는 하는' 경우들도 대개는 재즈라기보다는 팝이나 무드음악에 가깝다. 거기에는 80년대 이후의 대부분의 퓨전재즈가 속한다. 퓨전재즈가 재즈에 섞인 다른 어떤 것보다는 여전히 재즈에 더 가까웠던 적은 70년대 말까지이다. 그 섞인 다른 것들도 대개는 기왕의 수용대중에게 익숙치 않은 것들, 때로는 비대중적이기까지한 것들이었고 그 섞는 방식도 대단히 실험적이었다. 이런 것들이 그 시기의 퓨전재즈가 아방가르드 재즈라고 불리워졌던 이유이다. 물론 기존의 정통재즈가 어떤 한계에 조우했다는데도 퓨전재즈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퓨전재즈는 기존의 정통재즈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그것에 대한, 기본적으로 안으로부터의 혁신이었기에 그 전의 정통 재즈(비밥이나 하드밥)을 어느정도라도 즐길 수 있던 이들만이 혹은 그들이 '가장 잘' 이 새로운 퓨전재즈 역시 즐길 수 있었다. 퓨전무협의 경우도 마찬가지 얘기를 할 수가 있다. 섞이는 요소들이 수용대중에게 얼마나 낮선것 혹은 새로운 것이냐, 기왕의 무협에 퓨전화를 요구하는 한계가 얼마나 뚜렷해졌느냐, 퓨전(섞는 방식)이 얼마나 독창적 내지는 실험적이냐,퓨전화에도 불구하고 무협이라는 장르의 독자성 내지는 개성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퓨전무협이 무협의 역사 '속'에서의 필연적 현상인 것인지 단순히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상업적인 '잡종화'인지를 가려낼 수있다. 내가 보기에는 기왕의 정통무협은 충분히 다양했고 그 한계도 뚜렷하지 않다. 여전히 와룡생처럼 쓰면 진부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고룡이나 금룡처럼이라면 아직도 쓸만하고 운중악이나 황역처럼 조금 새롭기도 하다면 얼마든지 더 쓸만하다. 만약 그들에게 주인공의 자의식이라든가 한줄 한줄이 단단하고 맛깔스러운 문체라든가 사람살아가는 이야기의 총체적 국면에 대한 주목, 한마디로 문학성을 지향하는 요소가 부족하다면 좌백 등등이 있다. 퓨젼적이라고 할것까지는 없는, 운중악에서 좌백에 이르기까지의 그 새로움만으로도 충분히 무협은 새롭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에 더 새로운 것이 요구된다면 나는 그것이 맹목적인 대중추수주의와 작가로서의 자의식 및 역량 부족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
어떤 내러티브 장르든지 간에 그 장르의 컨벤션만으로도, 혹은 그 컨벤션의 기본은 유지하면서 살짝 비틀거나 덧붙이는 것만으로 무궁무진하게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는데, 짬뽕을 하는 것은 작가적 성실성과 능력이 부족한 것이고 독자들을 끌어모으려는 욕심이 앞선 것이다. 판타지든 무협이든 본격적으로 한국의 작가들이 등장한 것이 얼마 안된다면 더욱 더 그렇다.
3
순수 장르와 퓨전 장르의 차이는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즉 흑백사진보다 컬러사진이 예술적이 되는데 더 많은 창의력이 요구되는 것처럼, 여전히 흑백 사진이 더 예술적인 사진으로 인정되는 것처럼, 퓨전 장르는 순수 장르보다 좋은 작품을 낳기가 더 힘들다. 컨벤션이 다른 두 개의 세계를 하나의 공간 속에 종합하는 것은 말 그대로 종합해내는 능력, 종합되기 전의 그 어느 세계와도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다른 새로운 세계는 종합되기 전의 그 어느 세계보다 더 복잡한 세계인 동시에 더 풍부한 세계이어야 한다. 이것이 쉬울 리 없다. 컬러 사진에는 흑백 사진보다 더 많은 이미지 정보가 들어 있지만 이 정보의 더 많음이 자동적으로 이미지를 더 복잡하고 더 풍부한 것이 되게 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작가가 그토록 어려운 짓을 한다면 작가는 창작 에너지의 고갈을 새로운 컨벤션의 기계적 추가로 돌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거나 단순히 그 두 세계가 통합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에 호소하고 있거나 성공하기 힘든 엄청난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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