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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세 가지 계기

작성자
Lv.1 칼도
작성
06.08.10 00:46
조회
1,411

작가명 :

작품명 :

출판사 :

역시 체계적인 글이 아니라 단상의 기록입니다. 장르 소설 비평에만 해당되는 얘기도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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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기술(description), 해석, 평가라는 세 가지 계기로 이루어 진다. 기술은 작품 속의, 그리고  작품을 '둘러싼' 사실(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두 사실은 가끔 작품을 둘러싼 사실이 작품 속의 사실이 어떤 사실인 지를 확인시켜주는 방식의 관련을 맺는다. 정신을 바짝 집중하고 눈과 귀를 긴장시킨다고 해서 작품 속의 사실이 다 확인되는 것도 아니고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무수한 사실들 중에서 어떤것(들)이 '진짜'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사실들인지 식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눈은 고호의 <성월야>에서 구비치는 언덕/하늘/나무들과 숨죽은 듯 조용한 마을의 대립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만도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성경과 중세 도상(icon)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은 성상들에서 아주 표피적인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게르니카>가 바스크족 마을을 독일 공군기들이 폭격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눈은 그렇지 못한 눈보다 작품 속에서 더 많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사실들을 더 잘 해석할 수 있다. 아니, 그 그림에 대한 감동의 수준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모네의 다른 그림들이나 모네의 생애나 모네가 살았던 당시의 유럽 사회에 대해서 더 잘알고 있는 눈은 그렇지 못한 눈보다 <언덕 위의 부인>을 더 잘 보아 낼 수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더 잘'이라는 상대적 비교사를 썼는데, 예술작품을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순수한 눈과 귀와 머리로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끔 사실과 해석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거나 작품을 감상하는훈련이 되어 있는 이에게는 사실인 것이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해석이거나 사실이 아니다. 모짜르트의 음악들은 화려하고 명랑하면서도 살짝 애조를 띠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사실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리 들어봐도 긴가민가인 것이다. '이 필치나 구도의 리드미컬함, 혹은 역동성'은 어떤 이들에게는 자명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논란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흔히 어떤 사실은 논란이 가능한 해석의 결과로만, 불확실하게만  정립된다. 해석의 논란성이 증폭될 때 사실은 끝나고 의미를 따지는 일, 즉 본격적인 해석의 작업이 시작된다.

해석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문장의 줄임말이다. 왜작품, 혹은 텍스트의 의미가 자명하지 않은가, 왜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인가는 언어를 비롯한 의미의 매개체들이 단의적이지 않기 때문이고 시대와 문화와 사회가 달라지기 때문이고 그 작품, 혹은 텍스트가 만들어지는 순간에 작가의 순수한 창작 의도와는 별다른, 수 많은,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는 사회적 힘들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우리의 말과 행동이 우리 자신에게도 이해하기 힘들거나 오해되고 꿈 속의 내가 꿈 밖의 내게 잘 이해되지 않듯이, 그래서 면밀한 반성이나 정신분석학이 필요하듯이 작품, 혹은 텍스트도 힘겨운 해석의 작업을 거쳐야만 불확정적으로나마그 의미를 우리에게 드러낸다.    

해석이 부분적으로 이미 해석적인 성격을 띠는 기술 작업을 거쳐 밝혀진 사실들의 (재)구성체로서의 작품에 대해 그 의미, 혹은 '내용'을 따지는 작업이라면, 그리고 흔히 얘기되는 '형식'이 이 사실들 사이의 유의미한 짜임관계라면, 평가는 '그 내용'에 대한 '그 형식'의 적합성(그 형식에 대한 그 내용의 적합성이 아니라)을 따지는 동시에 그 의미, 혹은 내용의 사회적/역사적/윤리적 적합성을 따지는 것이다. 결국 비평가가 - 물론 우리 모두는 아마추어든 프로든 비평가이다 -  예술작품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듣는 눈과 귀를 더 밝고 깊게 해주는 의미를 생생한 체험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당연히 비평가는 이 의미를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의미를 진리로 확정해 주는 사회적/역사적/윤리적 '지식'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  


Comment ' 4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08.10 17:24
    No. 1

    칼도님에게
    먼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본문 글에서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몇 가지 묻고 싶습니다.

    1.기술(description)
    문학작품 속에서의 기술(description)은 서술 또는 묘사로 이해할 수 있는데요,그 문학작품에 대한 비평글 속에서의 기술(descripion)은 "사실의 확인 즉 작품 안팎의 사실에 대한 확인"으로 칼도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안팎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인지 "안과 둘러싼"이라고 본문의 표현 그대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궁금하게 여기는 점은 작품속의 사실과 작품을 둘러싼 사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개념을 잘 모르겠습니다. 예로 드신 고호의 <성월야>에서 작품을 둘러싼 사실(밖으로 드러난 사실)는 [구비치는 언덕/하늘/나무, 숨 죽은 듯 조용한 마을]이고, 작품속의 사실은 밖으로 드러난 사실들의 [대립]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2.해석
    "성경과 중세의 초상화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은 성인의 초상화에서 표피적인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다"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쉬운말로 "아는 것만큼 볼 수 있다"와 일맥상통하며, "사물의 아름다움은 대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뇌속에 있다는 신경미학이론"과 일치합니다.또한 사람은 배워야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어른들의 평범한 말씀이 평범하기만한 것이 아님을 일깨웁니다."돼지목에 진주 목걸이"가 생각나며, 주식투자에서 돈 버는 사람과 몽땅 날리는 사람의 차이를 절감하게 합니다. 10승투수와 3할타자에서도 발견되며 맨날 노력해도 삼류 선수로 평가되는 사람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깨닫게 해줍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세계의 안팍을 관찰하고 해석하여 나름의 미적가치를 작품 속에 담아넣어야 할 작가분들에게 더욱 절실히 요구될 것입니다. 고호의 <성월야>에서 안팍을 볼 수 있듯이 장르작가의 작품 속에도 세계의 안팍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야 할 것입니다.그래야 비평하는 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3.평가
    "평가란 작품의 의미 혹은 내용에 대한 형식적/사회적/역사적/윤리적 적합성을 따지는 것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요, 여기서 [형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형식이 사실들과의 유의미한 짜임관계라는 표현에서 유추해보면 <구성>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용에 대한 형식의 적합성(형식에 대한 내용의 적합성이 아니라)" 이 부분에서 보면 <표현기법 혹은 이론>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 단락은 문학에 한정해서 설명하신 듯 한데요 정확하게 칼도님께서 의도하신 형식의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칼도
    작성일
    06.08.11 03:07
    No. 2

    1
    작품을 둘러싼 사실로 저는 그 안에서 작품이 출현하고 작품에 의해서 서사된 세계(그서사의 결과물인 작품 속의 세계가 아니라)를 의미합니다. 작품을 텍스트라고 한다면 그 세계는 콘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지요. 허균의 홍길동전은 허균을 포함한 당대 조선이라는 콘텍스트 속에서만 그 출현과 의미작용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겠지요. 홍길동전이 21세기 한국을 사는 우리에게도 의의를 갖는다면 그것은 21세기 한국이 16세기말 17세기 초 조선과 어떤 공통점과 연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테구요. 단, 콘텍스트나 어떤 공통성이나 연속성은 자명한 것이 아니라 역시 기술과 해석과 평가를 수반하는 학술적 활동에 의해 구성되거나 규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평이 끝내 일반적인 의미의 과학적 활동처럼 객관적일 수는 없음을 함축합니다.

    구비치는 언덕/하늘/나무와 숨죽인듯 조용한 마을의 대립은 작품 속의 사실입니다. 다만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인 이 사실에조차도 착안하는 것이 어떤이들에게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빤히 드러나 있는 사실도 확인못하는 이들이 복잡한 세부적 사실들을 충분하게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2
    형식은 작품을 감상한 후 작품의 의미작용이라고 느낀 것을 설명하기 위해 구사되는 사후적이고 분석적인 개념입니다. 그 작품은 나에게 이런 의미작용을 했는데(그 작품은 나에게 이렇게 해석되었는데), 그것은 그 작품의 이런 저런 요소들이 이러 저러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때, 그 요소들과 결합방식들에서 그 작품의 가장 분명한 서사적 내용이나 줄거리를 뺀 나머지가 형식입니다. 가장 분명한 서사적 내용이나 줄거리를 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굳이 지적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의미작용을 설명해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의미작용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
    답변이 원래 글 만큼이나 추상적입니다. 이것은 제가 비평 이론에는 관심이 있지만 그 관심에 상응하는 정도의 비평 실천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08.11 15:10
    No. 3

    칼도님의 설명을 들으니 확실히 제가 잘못 해석한 것이군요. 아마 제가 이렇게 잘못 해석한 이유는 비평에 대한 지식이 짧음에 기인한 것이지요. "성경과 중세의 초상화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은 성인의 초상화에서 표피적인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다" 라는 본문글이 다시 한번 느껴집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다른 이에게는 긴가민가하고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본문글이 생각납니다.

    1.텍스트와 콘텍스트(context)
    작품을 텍스트라 했을 때 이 텍스트에서 발견된 사실을 "작품속의 사실"이라하고, 이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가 존재한 시대적 배경 혹은 작가가 작품을 창조한 정황적 배경(세계에 대한 해석) 등 작품외적으로 작가와 관련된 사실을 "작품을 둘러싼 사실(context)"이라 이해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콘텍스트를 확인하는 이유는 콘텍스트로부터 텍스트를 정황적으로 혹은 주관적으로 기술/해석/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 이해했습니다.

    2.형식적 평가
    형식적 평가라고 하니 안 좋은 느낌이 팍 드는군요. 마치 말맹이는 쏙 빠뜨리고 대충 건성으로 평가한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물론 뒤에 사회적/역사적/윤리적 평가인 알맹이가 뒷받침될 때 형식도 그 의의가 있을 터이지요. 작품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형식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칼도님께서 말씀하신 답글에서 짐작컨데 <이론적인 표현기법 혹은 틀>정도가 아닐가 생각해봤습니다.
    예를들어 작품 속에 강간장면이 있다 할 때, 이것의 사회적/역사적/윤리적 평가는 적합판정을 받았지만 표현기법 혹은 묘사의 저급성 혹은 비사실성이 그 본뜻과 언발란스하므로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라이락스
    작성일
    09.02.18 15:59
    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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