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영도
작품명 :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출판사 : 황금가지
이 작가는 환상소설이 아니라 철학소설을 쓰는게 아니냐는 평을 들을 정도로 소설 속에 자신의 생각을 진하게 묻혀 글을 써냅니다. 몇 년동안 고민한 후에도 답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묵직한 철학이던, 보면서 간단히 즐겁게 고민할 수 있는 가벼운 철학까지 섞어 넣으면서 이를 어색하지 않도록 쓰는 이 분의 재주는 취향과 상관없이 존경스러운 솜씨입니다.
전 문학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할 정도로 지식 단계가 낮습니다. 그래서인지 환상문학으로서는 처음으로 잡은 이 눈물을 마시는 새는 당연스럽게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한번 잡은 책은 억지로라도 읽자는 생각에 어거지로 마지막장까지 읽긴 했지만 여운도, 내용 갈무리도 전혀 안되더군요. 그래서 반년 후 다시 1권을 집어들고 읽었습니다. 이번에는 무리없이 읽히더군요.
많은 환상문학은 모든 주제를 '인간'에 담아 표현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다른 종족 역시 겉모습만 다른 인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간적'입니다.
그러나 눈물을 마시는 새, 그리고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인간이란 네 선민종족 중 하나일 뿐이고, 이를 섬뜩할 정도로 잘 소화했습니다. 인간 외의 다른 종족을 '이름만 다른' 인간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정말 우주 저편에는 이런 성격과 특징을 가진 종족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잘 표현하고, 지켜냈습니다.
예를 들어 구출대가 나가인 륜을 구하러 무룬강을 지날 때 '레콘' 티나한은 불안감을 느낍니다. 왜나면 레콘들은 물을 끔찍히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 케이건이 사냥감을 가져와 고기를 손질할 때 '도깨비' 비형은 조용히 다른 곳으로 나갑니다. 도깨비들은 피를 끔찍히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면 작가가 설정했으니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이런 세세한 부분을 스스로 놓치는 작가는 안타깝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영도는 자신의 설정에 충실함은 물론 이를 보충할 관용어까지 만들었습니다.
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들의 언어수단인 '니름'이 있기 때문이지요.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건 '인간'과 강력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겐 박수와 음악이 없습니다. 따라서 찬사를 보낼 때는 '화로가 식는다'는 관용어를 사용합니다. 미미한 청각대신 온도까지 볼수 있는 성능좋은 눈이 있기에.
이렇듯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보여주었던 인상적인 종족들은 후속인 피를 마시는 새에서 완전히 바뀝니다.
물을 싫어하는 레콘인 쵸지가 두려움을 잊고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킬 때는 저도 충격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충격을 느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그 장면에 충격을 느꼈다는 것은 전작에서 레콘의 특징을 완전히 각인하고 이를 고정관념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티나한이 레콘의 용기를 발휘하여 무룬강변을 걸으면서도 당당했다면 이 상황에 제가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실 살펴보면 이영도의 세계관은 설정 하나가 전부를 뒤엎을 정도로 조잡하기도 합니다.
가장 강력한 레콘이 세상을 지배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지독한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이고 불사에 가까운 나가들이 마찬가지로 그들의 공간에서만 머무는 이유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조잡하게만 보이는 세계관은 잘 살펴보면 허술하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설정을 위해서 다른 부속적인 몇몇 설정을 추가해야 하고, 이런 추가된 설정들이 기존의 설정과 모순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두 새 시리즈에서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모순이 없습니다.
종족 뿐 아닙니다. 이영도는 정치적인 관점에서도 다른 소설과 차별을 보입니다. 환상문학의 세계관을 작성하라고 말해보면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국가와 왕부터 설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눈마새의 세계관에서는 왕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왕의 역할이 왜소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왕이 없기에 왕에 대한 열망이 두드러지게 표현됩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피마새의 황제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소설에서 좋은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 스스로도 서술하기 힘든 부분이나 스토리의 진행을 위해 억지로 진행시킨 부분도 눈에 띕니다.
하인샤 대사원에 군웅들이 모이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단지 유학생들의 말만 듣고 큰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각 지방의 호족들이 순식간에 집결하는 것은 서술은 둘째치고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케이건의 과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왕을 선언하기 전 발케네 도둑들과 싸울 때 케이건은 자신의 수많은 과거를 받아들이고 드디어 자신을 용서했다고 서술했지만, 쓰는 작가분인 이영도는 알고 있을지 몰라도 독자들로서는 과거에 대한 지식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서 가장 인상적인 절정부분일 그 장면에서 독자는 반쪽의 여운밖에 가지지 못합니다.
나가들의 사모에 대한 태도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텐그라쥬의 유명한 인사로 취급되었던 사모가 륜 페이를 쫓아 한계선을 넘고 북부의 왕으로 추대되었을 때 나가들은 사모를 완전히 망각합니다.
무사장의 실수로 죽을 상처를 '꿈'을 이용해 살아났다는 정우도 악의적인 시선으로 말하자면 어거지의 집결체 입니다.
그러나 모든 단점을 이고도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가 읽어서 손해볼 작품은 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지 않고 빌려서 읽은 제가 부끄러워질 정도니까요. 만약 이 책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설사 부정적인 감정일지라도) 나지 않는다면 저처럼 두번, 세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비평은 처음 해보는군요. 형식이나 글에 못마땅한 점이 있어 집어주시면 다음 비평글을 쓸 때는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Ps. 비평란을 들어오고 전 비판란.....인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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