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Comment ' 18

  • 작성자
    Lv.1 가일
    작성일
    08.04.18 14:37
    No. 1

    귀족들의 주요 수입은 토지에서 나옵니다. 중세시대와 근대의 귀족들이 지닌 차이를 조금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화 시킨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세 귀족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서 수입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곳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행사하는 공권영주이기도 했습니다.
    절대왕정기의 귀족은 대체로 국왕의 근처에 모여살고, 그 조상들이 행사하던 권력을 잃어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토지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산업화 이전에는 어느시대, 모든 농경 문명권에서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귀족은 많은 토지를 재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대지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발달로 일어서는 상공업에 종사하여 부를 축적한 사람들과 대비시켜 볼 수도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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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3 유랑낭인
    작성일
    08.04.18 14:38
    No. 2

    멋진 작품이 나올 것 같네요.

    저 역시 예전에 생각해 둔 것 때문에 장원제에 대한 논문까지 보고 했는데 말이죠.

    (문헌은 없지만요)
    이것저것 끼워 맞추다 보니.
    녹봉만으로는 정말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기본 생활비도 안 나오니 말이죠.
    그렇다고 전적으로 영지에만 의존하는 것 같지도 않구요.
    경우에 따라서는 무역에도 손을 데는 사람도 있고
    영지에서 광산이 있다면 그것에서 수익을 얻기도 하구요.

    하나...
    거의 대부분은 허울뿐인 귀족이라는 이름을 위해
    고리대를 쓰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사채..... 파멸의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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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짬냥
    작성일
    08.04.18 14:39
    No. 3

    영주=귀족 인가.. 몰락귀족이면 토지가 없어서 주수입원이 끊겨 거지된건가.. 으음.. 막상 돈 얘기 나오니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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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가일
    작성일
    08.04.18 14:43
    No. 4

    그리고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라는 것은, 하나의 폐곡선을 경계로하는 단순한 '영지국가'의 형태와는 다릅니다. 수입을 내는 사유지들은 농장이나 장원등으로 부를 수 있는 형태로 각지에 흩어져있죠. 그리고 이러한 토지는 결혼시 지참금 형태로 소유권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소유주를 기준으로 경계를 정하면 굉장히 복잡한 모습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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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6 비공
    작성일
    08.04.18 14:43
    No. 5

    정금 유착으로 귀족들의 자금은 대부분 은행에서 나왔습니다. 프랑스 왕이 가장 큰 빚더미였습니다. 그렇다고 은행이 왕이나 귀족에게 돈달라고 할 입장도 안돼니 당근 은행에 엄청난 이권이 돌아갔고, 당시 은행은 고리대금업자들의 연합 비슷하기 때문에 모든 피해는 국민들이 입었습니다. 중간에 은행이 낀 것만 다르지 고세금 정책이나 마찮가지입니다.
    마리앙트와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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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5 正力
    작성일
    08.04.18 14:46
    No. 6

    혹은 귀족이 용병단을 결성해 돈벌러 전쟁뛰기도 합니다.
    주변의 산림이나 광산이 있어도 그건 영주꺼고..
    (나무도 함부로 못뱁니다.)
    나라에서 월급도 나오고.
    인두세도 자체적으로 주민들에게 인두세도 걷습니다.
    (이거야 나라에 얼마 주긴하지만 역시 남는 돈도 있다는..)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돈 잘버는건 전쟁이지요.

    변경에 졸라리 싸움나게한 다음 세금걷고 약탈한거 수도로 끌고와서 사치사치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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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달빛밤
    작성일
    08.04.18 14:48
    No. 7

    이 글을 읽고나서............
    공부하러가야겠다는 생각이.............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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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6 비공
    작성일
    08.04.18 14:48
    No. 8

    로코코 시대는 중세 사회에서도 특이할 정도로 사치가 심했던 시대로 봉건제가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도중의 반동적인 시대로 보입니다. 이후 금융이 정치에 강한 참여를 하게 되면서 서서히 자본주의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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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7 janggun
    작성일
    08.04.18 14:58
    No. 9

    헉 이렇게 빨리 뎃글이 달리다니
    여러분들이 달아주신 뎃글들을 보니 생각보다 생각보다 여기저기 수입원이 많네요

    여러분이 달아주신 뎃글만으로도 벌써 이것저것 이야기에 들어갈 소스를 얻었습니다

    뎃글 달아주신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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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8 힘내웃자
    작성일
    08.04.18 15:01
    No. 10

    로코코 시대라는 용어가 생소해서, 어 그런 시대가 있었나? 언제를 말하는 거지?? 라는 의문으로 잠시 검색을 해 보니, 17~8세기 절대왕정 시기가 무너지는 시기를 말하네요. 세계사 접한 지 10년이 넘어 전혀 기억에 없었나 봅니다. ㅡㅡ;;;

    대충 이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가 싹 트는 시기가 되겠네요.
    중세 봉건시대의 경제와는 확실히 다르죠.
    중세 봉건시대라 하면, 아시다시피 봉건영주가 각 영지의 작은 왕으로 군림하는 시기이지요. 정치, 경제, 사법 모든 것을 관장하고요...
    이 시대에는 영지에서 나오는 토지수입이 대부분이겠네요...

    절대왕정 시기를 보면, 자본주의가 싹트기 시작하죠...
    생산의 증가가 급속도로 향상되고, 화폐가 본격적인 경제의 주역으로 등장하네요. 그 당시 귀족들은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외무역이 활발히 전개되던 시기이기도 하지요. 영국과 스페인의 무적함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가 해상무역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었죠. 해상무역을 통해 동양의 특산품을 서양으로 가져가 값비싸게 팔아 중계차익을 얻기도 했구요, 신대륙의 황금이 유럽에 대규모로 유입되어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기도 했던 시대입니다.

    대충 제가 가진 지식을 짜깁기 해 봤는데,(오류가 있으면, 죄송합니다)
    절대왕정 시기를 서술하신다면,
    일단 수입은 1차적으로 대규모(이 규모가 실로 엄청납니다. 그 규모가 큰 것은 하나의 작은 나라와 맞먹을 정도라니까요..) 토지 소유에 따른 생산수입과 지대가 있겠고요, 해상무역으로 벌어들이는 중계수입, 그리고 엄청난 양의 황금 등이 있겠네요...
    절대왕정 시기가 산업혁명 시기 이전이니, 대충 이렇게 보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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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 캄파넬라
    작성일
    08.04.18 16:40
    No. 11

    로코코시대 라는 말 보다 '절대왕정' 이라는 말이 옳다고 생각 됩니다.
    로코코니 바로크니 고딕이니 ... 이것은 건물 , 문화 양식을 뜻하는 말이지요.

    그리고 절대왕정은 '중세시대' 입니다.

    그리고 '절대왕정' 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전제주의' 와 다른 것으로 국왕의 권력이 영주권에 의해 제약을 받았던 이전과 비교하여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는 겁니다.

    즉 절대왕정 이라고 영주들의 봉토가 없던 것이 아니었고 그에 따른 세금 역시 영주들이 취할수 있었습니다.

    '절대왕정' 은 근대적인 국가가 형태가 아니라 봉건 체제의 말기 형태, 또는 시민 사회로 전환되는 과도기라 보시면 됩니다.

    절대왕정을 유지 하기 위해서는 국왕에게 엄청난 돈이 필요 합니다.
    당연하겠죠?

    그래서 절대군주제는 신흥 시민 계급과 결탁하여 대상인, 금융업자 등의 시민 계급은 급속도로 발전 하게 됩니다.
    즉, 중상주의 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식민지 개척 활동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절대왕정의 첫 개척자는 '에스파냐' 였고 에스파냐의 '무적함대' 는 유명하다 못해 전설 이지요.
    이때가 바로 '절대왕정' 입니다.

    그후 영국의 해적 드레이크 (엘리자베스 여왕때)에 의해 격파 되기 전까지 에스파냐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며 무적함대 격파후 영국이 해상권과 식민지를 독차지 함으로서 해상 강국이 되었습니다.

    실제 엘리자베스 여왕은 식민지 에서 나오는 자금 만으로도 귀족 의회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마음껏 정치를 하고 중앙집권을 지킬수가 있었다네요.

    절대왕정 에서 국왕이 휘두른 '돈지랄' 은 귀족의 영지 세금을 수탈해서 이뤄진게 아니라 신흥 시민계급과 결탁, 식민지 활동으로 얻어 집니다.

    즉 귀족들이 절대왕정이 되었다고 영지의 세금을 몽땅 국왕에게 바치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계사 본지가 하도 오래되서 ... 가물가물한 기억과 함께 검색을 좀 했으므로 틀린 지식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감사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힘내웃자
    작성일
    08.04.18 16:52
    No. 12

    아나타문님/
    딱히 수정할 곳 없는 잘 설명된 글이네요.
    절대왕정 시대를 중세봉건 시대로 확정하시기 보단, 후술되어 있듯이 중세봉건 사회에서 근대로의 이양기에 나타나는 과도기로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중상주의 말씀인데요. 절대왕정 시대를 획일적으로 중상주의 시대라 말씀하시는 것은 오류입니다. 각 국가의 사정에 따라 중상주의도 있었고, 중농주의도 있었습니다. 주로 중상주의는 상공업이 발단 된 이 시대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영국 등에서 취한 경제정책의 명칭이구요, 이 시기에 후발 주자인 독일 같은 경우에는 중농주의를 취하며, 자국 상공업 육성을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취합니다. 선진국들은 자유무역 정책을 주장하지요.

    절대왕정 시기에는 영지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네요. 절대왕정 시기는 봉건시기와는 정치적인 근본 형태가 완전히 다릅니다. 아실 것 같아 상술은 않겠지만, 봉토, 영지라 함은 전형적인 중세시대에 어울리는 표현이지 모든 권력이 국왕에 집중된 절대왕정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다고 보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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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 캄파넬라
    작성일
    08.04.18 17:28
    No. 13

    그렇군요.

    추가 설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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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2 한가장주
    작성일
    08.04.18 18:09
    No. 14

    환타지를 쓰려고 세계관을 만든다는 말이 항상 이해가 안되요. 세계관을 만들어놓으면 없던 줄거리가 튀어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짜고 거기 어울릴 세계를 만드는게 바른 순서가 아닐까요?

    그리고 조금 쓴 소리이지만.. 자기가 만든(혹은 만들)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하고, 직접 공부하거나 깊이있게 자료를 찾아보지 않고 게시판에 덜렁 질문을 올리시는 걸로 보아, 막상 글을 쓰셔도 대단히 곤욕스러우실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짜시면 세계관은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환타지죠. 역사소설 쓰는게 아니잖아요. 이 세계에서는 귀족이 되면 신들이 월급준다고 해도 큰 탈없이 넘어가는게 환타진데요 (다만 대단한 글재주가 필요함).

    음... 이글은 욕먹을 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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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2 한가장주
    작성일
    08.04.18 18:14
    No. 15

    잡담인데 풍속의 역사란 책을 보시면 절대왕정 시절 (머 그 이전에도 그랬지만서도), 수입만으로 살림을 꾸려나갈 수 없어서 귀족부인들이 매춘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다만 대놓고 매춘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연애를 한다거나 애인을 만든다고 하죠. 남편들도 알면서 넘어가죠, 당장 돈 쓸데는 많고 나올 구석이 없으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캄파넬라
    작성일
    08.04.18 18:59
    No. 16

    딴소리교주님

    보통 모든 귀족이 영지를 하사 받는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후계자가 되어 가문을 승계 하지 못하면 한단게 낮은 작위를 받고 가문에서 떨어져 나가니까요.

    설마하니 쓸만한 영지를 지닌 가문 에서도 귀부인들이 몸을 팔았다고 생각 되지는 않는데요(... 확실히는;)
    만약 쓸만한 영지를 지닌 가문에서도 돈이 없어 몸을 팔면 ...
    대체 그 몸을 사는 자들은 누구 입니까?(.....)

    제 생각 으로는 ... 후계자가 되지 못해 돈 몇푼과 땅 몇평 받고 쫒겨난 하급 귀족의 부인들이 영지가 있는 귀족 가문에 몸을 팔지 않았나.. 싶네요.

    당장 백작의 아들만 해도 ... 승계를 못하면 하위 귀족인 자작이 되어 버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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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2 한가장주
    작성일
    08.04.18 19:40
    No. 17

    아나타문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잘 안되요. 제가 언제 모든 귀족이
    다 영지를 받았다고 했지요? (물론 세습귀족들은 영지를 받고 시작하지만요). 몰락하거나 지참금으로 넘기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해서 땅없는
    귀족도 좀 될걸요.

    그리고 제가 언제 귀족부인이 몽땅 다 매춘을 했다고 했나요? 그리고
    쓸만한 영지를 가진 귀족가에서도 제법 했을지도 모르지요. 더 좋은
    보석 더 좋은 옷, 돈 들어갈 곳이 한두군데도 아니고요. 그리고 과거에
    도 지금처럼 매춘이 항상 불법/비도덕적/창피한일이었던건 아니거든요.

    몸을 살수 있는 사람은 많죠. 대귀족, 대자본가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법이고, 당장 집에선 먹을게 없어도 애인을 위해서
    라면 쌈지돈을 푸는 남자들은 언제나 사방에 널렸지요.

    풍속의 역사, 저책 어렵지도 않고 전래동화책처럼 술술 넘어가니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듯(다만 미성년자에게는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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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 캄파넬라
    작성일
    08.04.19 01:30
    No. 18

    음 .. 나름대로 자문자답식의 서술 방식을 취한다는게 필력이 딸려 오해를 불러 일으켰나 보군요.

    하긴 ... 그러고 보니 그시대 사람들 ... 친남매 끼리는 기본에 아버지와 딸끼리 성관계를 맺는 것도 심심찮게 목격 되었고 ...

    심지어 수간까지 보고된 바가 있어 기록에 남아 있을 정도니 뭐 ...

    애인 만들어 몸을 파는것 정도는 애교라 볼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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