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Comment ' 13

  • 작성자
    Lv.99 이통천
    작성일
    15.10.16 08:41
    No. 1

    잘못 올렸다 앱만 쓰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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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2 대법원
    작성일
    15.10.16 10:54
    No. 2

    마가 우가 구가 등은 고구려가 아니라 부여 아닌가요?고구려는 상가 고추 대로 패자 등 인걸로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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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99 이통천
    작성일
    15.10.16 11:52
    No. 3

    역시 틀린 부분이 그럼 부여 잔존세력을 호태왕이 통합으로 수정해야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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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62 대법원
    작성일
    15.10.16 20:54
    No. 4

    부여의 완전정복은 장수왕의 손자인 문자왕 때입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 집권시기에 신라는 고구려의 사실상 식민지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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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6 풍장1988
    작성일
    15.10.16 13:22
    No. 5

    고려ᆢ보다는 조선이 훨씬 낫죠 고려 통치구조 자체가 당나라꺼보다도 뒤쳐지는 구조(귀족가문 몇개가 다해드시는구조)라 일정이상 팽창이 불가능했던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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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99 이통천
    작성일
    15.10.16 13:32
    No. 6

    기록에 남은것보단 강했을 가능성이 보인다는거죠 원에 굽힌후 고려의 처분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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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76 풍장1988
    작성일
    15.10.16 13:43
    No. 7

    원에 굽힌후 고려의 처분은 당시 강화도에 피난해있던 고려정권이 원나라 항쟁 중 한계에 부딪쳐 원나라에 항복사신보낼 때 당시 칸자리를 놓고 원나라 내전중 ㅡ 쿠빌라이칸이 엄청 밀리던상태였는데 고려사신이 고민하다가 아릭두케였던가? 하여튼 그쪽에 항복하러가기엔 거리가 너무멀어서 쿠빌라이칸에게 항복전달 ㅡ 쿠빌라이는 한창 어려울 때 고려 혼자 사신보낸거에 정말기뻐하고 후에 내전이겨서 칸되고나서 최악의시기에 제일먼저 찾아온 고려에 잘대해준겁니다 물론 고려가 의도한건 아니었지만ᆢ(불개토풍) 솔직히 운적인 요소가 강했지 고려의 저력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죠(물론 원나라 항쟁기 잘싸운 전투도 많기는한데 거의 다 민병이고 정부는 강화도처박혀서 크게한일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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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99 이통천
    작성일
    15.10.16 13:47
    No. 8

    오 모르던거 하나 배웠네요 그런 사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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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6 풍장1988
    작성일
    15.10.16 13:28
    No. 9

    추가로 백제는 고구려게에서 갈라진게 맞지만 신라는 고구려와는 상관없는 토착세력들로 건국된걸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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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8 불쌍한인생
    작성일
    15.10.16 13:42
    No. 10

    굳이 따지면 신라는 고조선이랑 엮어보겠네요 고조선 마지막 왕 중왕이 삼한으로 내려와서 나라를 세웠고 그중에 진한의 사로국이 중신이 되서 신라가 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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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5.10.16 14:54
    No. 11

    부여는
    왕 아래 마,우,구,저 의 제가 회의가 있었고
    그 아래 4출도가 있어
    중앙과 합쳐 5부라고 했습니다.
    이후 윷놀이가 여기서 나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구려도 5부족 연맹체로 시작했습니다.
    소노부, 계루부, 절노부,순노부,관노부 라고 하고
    이후 태조왕이 계루부에서 나온 후
    다른 부족은 왕비를 배출하거나 왕권 버금세력으로
    적통대인 혹은 고추가 라는 왕호를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와 부여는
    같은 부여족이며
    같은 5부족 연맹체 였으며
    1책 12법이 이었고.
    점술법 유행, 생산계급인 하호, 형사취수(유목민족 전통), 연좌제, 족장인 가라는 명칭, 관리명에 사자, 제천행사(부여는 영고 12월에, 고구려는 동맹 10월에)
    이와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신라의 왕호는
    혁거세 시절 거서간(군장의 의미)
    남해왕 시절에는 차차웅(제사장, 무당)
    유리왕 이사금 (연장자, 계승자 의미)
    내물왕 마립간 (대수장, 통치자 의미)
    지증왕 왕 (중국식 왕호 사용)
    이렇게 바뀝니다.

    참고로 마립간은
    신라 박,석,김 3부족이 연맹하여 연맹장을 교대로 선출하다
    김씨 왕위 세습권을 독점하게 되면서 왕권 강화를 표시하시 위해
    대수장이라는 의미의 마립간을 쓰게 됩니다.


    호태왕의 왜구 토벌은
    신라가 아니라 가야의 정벌로 보는걸로 압니다.

    4세기 가야는 사실상 백제의 지배하에 있었고
    백제는 왜와 무역을 위해 일종의 상관으로 가야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는데
    이걸 일본은 마치 자신들이 식민통치기구인것처럼 일본사기에서 사기를 친거죠.
    그러나 당시 일본은 왜라고 불릴뿐 나라라고 불릴 조직도 없었고
    그나마 왜도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백제계와 가야계 유이민들이 부르던 이름이었습니다.
    당연히 상관인 임나일본부를 오가던 이들도 이들 일본에 거주하던 백제계와 가야계로 보는게 통설입니다.

    아무튼 가야가 사실상 백제와 신라의 싸움에 이용되어 신라를 공격합니다.
    그 무리에 왜군이 끼어 있었죠.
    그리고 신라왕이 고구려에게 스스로를 신하로 자청하며 도움을 청합니다.

    이때 광개토대왕릉 비문 기록에 보면 싸울 대상을 가야가 아니라
    "백제가 왜와 화통하므로" 라고 나옵니다.
    즉 백제가 왜와 가야를 사주해 신라를 공격하도록 했다는 정황으로 보는거죠.

    이후 가야는 호태왕의 정벌로
    금관가야에서 대가야로 세력이 약화됩니다.
    그러다 신라에 복속당하죠.

    신라가 신하국을 자처했던것은 고구려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이지
    실제 고구려 5부족의 후예라는 말은 없는걸로 압니다.

    최근 신라 왕족이나 지배층이 북방이나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유민이라는 설이 있는데 일단은 설인걸로 압니다.
    역사 스페샬에 몇번 나왔고 다큐에도 나왔죠.
    중국계 성씨를 추적하니 신라에 그 성씨가 있더라 라는 것.
    또 하나는 삼국중 신라의 무덤 양식이 특이한데
    그 양식은 중앙 시베리아 대륙에 있는것과 동일하다는 거죠.
    거기다 부장품, 여러 유물의 유사성 등등.

    일단 여기서 끊고.... 다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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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5.10.16 15:22
    No. 12

    통일 이라는게
    민족의 통일을 말하는 건지
    어떤 왕권의 통일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일단 고조선이 있죠.
    고조선이 있을 당시 북동쪽에 부여도 있었습니다.
    한반도 남쪽에는 진국이 있었구요.

    일단 이 세 국가(지금의 국가 계념과는 다르겠죠.)가
    같은 민족인가에 대한 설이 분분한걸로 압니다.
    고조선은 위만,기자 등으로 분리되어 이후 부여와 진국으로 흡수되었고
    이 당시 기록에 중국이 아니라 부여나 진으로 귀순한것으로 보아
    (복색등에 관한 여러기록)
    우리 민족에 가깝지 않나 라고 보는걸로 압니다.

    진은 이후 유민을 받아들이며 마한,진한,변한으로 갈라집니다.
    유민을 받아 들인 후 갈라진것으로 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어 연구가 어려운걸로 압니다.

    부여도 이후 고구려가 분리되어 나오죠.

    다 고조선의 몰락과 이후 유민의 이입의 결과로 나오는 것들인데
    안타깝게도 기록이 없습니다.
    중국측 기록 밖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정통성을 논한다면
    끝이 없을테고
    같은 민족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을겁니다.
    요즘은 인터넷 등에서 보면 보통 사람들이 단일민족이라고 하면 콧방귀를 뀌더군요.
    민족이라는 계념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르겠죠.

    역사는 단순 생물학적 정통성으로 보는게 아닐겁니다.
    언어, 같은 문화권, 사상과 생각의 공유 공감,
    같은 지역 생활권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도덕관, 등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공유하는가에도 좌우 될텐데.
    쉽지 않은 문제죠.

    최소한 한반도의 삼국은
    스스로 화족이라 칭하는 중국과는 많이 달랐다고 보는게 우리 학계의 입장이죠.
    보통 한반도의 통일은 통일신라가 최초라고 보는걸로 압니다.
    그 다음이 고려의 건국이구요.

    고려가 우리 생각보다 강했다라.
    청룡전기를 본적이 없어서....

    하지만 이게 또한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고려 기록도 마찬가지로 얼마 없어서.
    그리고 우리 생각보다 라는 기준이 좀 애매하죠.

    인류 문명은 생각보다 아이러니가 많습니다.
    13~14세기
    전 세계는 무(武)가 지배합니다.
    서양의 기사도
    13세기 원의 강성화
    한반도 무신정권
    일본의 무사도.

    마치 서로 연락해서 짜고 시작한듯한 느낌이 들 정도죠.

    고려는 원나라의 공격에
    그래도 어느정도 정통성을 유지하고 살아남은 유일한 국갑니다.
    원나라 원정권 최고 장수가 사망한 유일한 국가가 고려 침공군 입니다.
    제일 오래 버텼죠.
    그리고 결국 (원의 상황이야 어찌 되었던) 지배권을 보장 받습니다.
    물론 원의 지시를 따르라고 하지만 부마국이라...

    보통 원나라 침공 역사를 보면 이정도 저항하면 그야말로 씨를 말려버렸습니다.
    내전 기간에 눈치 잘 봐서 항복해서 그렇다고도 하시는데
    제들이 원래 동맹 맺었던 송나라 까지 깡그리 밀어 버렸다는 걸 생각한다면
    진짜 예외적인 조치죠.

    나중에 원이 약화 되었을 때
    다른 나라들은 다 새로 지배국이 들어서지만
    고려는 고려왕권 그대로 다시 들어섭니다.
    (물론 오래가진 못하지만요.)
    물론 지배기간 원나라에는 고려풍이 고려에는 몽골풍이 유행했다고 하지만...
    남은게 아예 없다면 독립에 왕권의 정통성 조차 생각하지 못했겠죠.

    그래도 망상이나마 재미있군요.
    환국에서부터 이어지는
    4300년이 넘는 대하 스토리를 상상해 보는것도 재미있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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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48 벼이삭
    작성일
    15.10.16 16:41
    No. 13

    신라 흉노기원설은 잘 반박되어있죠. 겉만 비슷하지 세부적으로 전혀 다르거든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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