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Comment ' 44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09.03.28 03:46
    No. 1

    정토종에서 미륵불에서 벗어나 극락왕생과 무한한 수명을 기원한다는 뜻으로 도교에서차용한 말입니다.
    곧 삭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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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풍심
    작성일
    09.03.28 03:49
    No. 2

    도교인지 도가인지요? 차용했다면 아미타불과 같은 뜻으로 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좀 자세히 말씀을 하셔야 저도 삭제를 하던지 말던지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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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09.03.28 03:51
    No. 3

    도교가 불교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불상을 모셔 놓은 도교 사원도 많습니다.
    계파에 따라 다양하고..특히 명대는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했기 때문에..불교와 도교의 혼용은 더욱 가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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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09.03.28 03:58
    No. 4

    무량광불(無量光佛),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 의역하기도 한다. 한량없는 광명의 부처님, 한량없는 생명의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 이것이 후대에는 도교나 민속신앙과 합쳐져 칠성이나 산신, 용왕에 대한 예경으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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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45 여행가자
    작성일
    09.03.28 03:58
    No. 5

    도교가 도가사상을 중심으로 세워진 교잖아요...뭐 불교나 도교나
    불교는 인간이 수행해서 신과 같은 부처가 되는거고 도교는 수행해서
    신선 그리니깐 거의 신과 같이 되는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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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09.03.28 04:01
    No. 6

    장수와 극락왕생이 민간 지상의 기원이라..
    돈 많은 사람을 꼬이기에 가장 좋은 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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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풍심
    작성일
    09.03.28 04:05
    No. 7

    <a href=http://gall.dcinside.com/list.php?id=heroism&no=16156
    target=_blank>http://gall.dcinside.com/list.php?id=heroism&no=16156
    </a>
    이 문제에 대해서 약간의 논쟁이 있는 자료 링크.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은 일단 현재는 불교용어에 국한되어 있고 과거에 도사들이 무량수불이라고 진언을 했는지는 자료를 찾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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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09.03.28 04:10
    No. 8

    풍심님 덕분에..
    많은 분이 도교와 불교의 상관관계에 대해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덕분에 열심히 도교에 대한 상식을 넓힐 계기가 될 것 같고..
    궁굼하신 분이 많은 것이니 삭제 하지 말고 그냥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국 애 하나 잡아서 물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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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7 디노스
    작성일
    09.03.28 04:29
    No. 9

    으음, 이래서 판타지가 속 편하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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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Personacon 금강
    작성일
    09.03.28 04:41
    No. 10

    저도 무량수불 씁니다.
    원시천존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무량수불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무량수불의 경우는...
    그 전에 원시도교에서 보면 도교는 수많은 종교의 혼합체로 출발입니다.
    그래서 그 부처들도 도교의 신중 하나로 되어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인용하려면 경전을 뒤져봐야 합니다.) 그러한 경전이 있고 그래서 도사들이 무량수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만 현대로 내려오면서 불교와의 차별을 위해서 이런 불호를 도호처럼 사용하는 일이 줄어들고 없어진 것은 맞습니다.
    도교는 유일신이 아니라 수많은 신앙이 한데 어울린 토속신앙이거든요.
    지금 쓰느냐? 라고 묻는다면 틀리다가 맞습니다.
    하지만 옛날이라면?
    틀리다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차별화하기 위해서 중국 도교 경전을 열권 정도 뒤졌는데요....
    제대로 된 도호를 만들어보려고... 마땅히 아미타블처럼 되뇌이는 그런 호칭을 발견하지 못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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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박상준1
    작성일
    09.03.28 04:47
    No. 11

    명대에 도교가 숭상되고 불교가 억압되었다는 말은 사실과 다릅니다. 주원장은 행각승 출신입니다. 소설에서는 배련교 혹은 명교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주원장은 건국후 천계사天界寺, 장산蔣山 등지에서 대규모 불교 집회를 열고 자신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도교의 천사라는 칭호를 폐지시키고 많은 도사들을 심사하거나 강제 환속시키기도 했습니다.
    영락제가 무당산에 큰 역사를 일으키는 등 무당산 도사들을 우대하는 행태를 잠깐 보이기도 했는데, 이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강했고, 주체 자신은 도교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명대에 도교가 잠깐 흥성한 것은 가정제 때입니다. 가정제는 불로장생과 도교의 방술에 흥미를 가져 많은 도사들과 단약재료를 궁에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정제가 죽음 이후 잠깐의 영락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가정제 때에도 많은 신하들이 도교를 비난하고 황제에게 정사에 힘쓸 것을 진언하다 귀양을 가거나 하는 일이 많았지요.
    도교는 도가사상에 뿌리를 둔 종교가 아닙니다. 장자와 노자를 도교에서 받아들여 자신의 이론적 치계 안에 포함시키기는 하나, 도가=도교는 아닙니다. 도교는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 종교입니다. 장자와 노자 철학이 원시천존, 옥황상제나 금단 불로장생을 말하지 않습니다. 도교는 이론적 토대가 그리 크지 않은 민간종교입니다. 그런데 발전 과정에서 고등종교로서 도약을 꾀하기 위해 불교와 유교의 많은 원리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노장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런 저런 게 다 합쳐져서 발전해온 종교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당나라와 원나라 때는 아예 나라에서 도교의 도사들과 불교의 승려들을 불러모아 교리 논쟁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매번 도교가 졌습니다. 말빨로는 도교가 불교를 이기지 못했나 봅니다.
    무량수불이 도교에서 하는 도호나 진언인지는 문헌에서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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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세트앙크
    작성일
    09.03.28 05:03
    No. 12

    도교와 도가는 엄밀히하면 다르지만 도교는 민간신앙과 도가사상, 그리고 불교와 여러잡다한 모든 것이 섞여있기 때문에 분명 시기나 지역에 따라 달랐겠지만

    그들이 살았던 시기와 파에 따라 무량수불을 도호로 외는 것도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며, 삼청(원시천존과 태상노군 통천교주)를 모시며 태상노군이나 천존을 외기도 하고, 구천현녀와 법주상군, 천상성모, 관성제군, 옥황상제, 칠원성군 태산부군 등 수많은 신들을 따르고 외고 모시지요.
    아 그리고 삼황오제를 신으로 모시는 민간신앙도 있었으며, 헌원과 맞썼다고 하여 치우를 신으로 믿었던 때도 있었죠(전쟁신)
    항우가 치우신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도 있고요.

    실제 도가의 신들 중 꽤 많은 신들이 불가나 힌두교의 신입니다. 사실 옥황상제라는 칭호도 불가의 표현법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오로지 무량수불만 외쳤다라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그저 무량수불을 도호로서 되뇌는 것 정도야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사실 무량수불이 아미타불인지 모르고 글을 쓴 분들이나, 이해하는 분들도 없지는 않았다고 생각은 들지만, 아미타불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무식한 표현이었다고 몰아가는 것도, 사실 완전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행동은 아니지요.

    물론 시기적이나 지역적인 오차야 있겠지요. 아직 옥황상제의 칭호가 널리 퍼지지 않았는데 옥황상제를 외운다거나, 원시천존에 대한 믿음 보다는 삼황오제에 대한 믿음이 더 컸던 시절도 있으니까요.
    또 태산지역에서는 산신, 즉 태산부군을 으뜸으로 두었고, 다른 오악의 산들에도 각각의 산신과, 바다지역에는 용왕을 믿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학도 아닌데, 이질감을 느끼게 할만큼 엄청난 오차가 아니라면 이해해 주는게, 글의 성격상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설이지만

    도교는 사실 민간을 위주로 펼쳐졌기에, 전진교나 오두미교 등의 체계를 중심이라 여기는 것도 사실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오두미교가 도교의 지대한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그것이 과연 지금 우리가 아는 도교의 모습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어렵지요.

    마치 야훼가 처음에는 단순한 유대인들의 신앙으로 타민족과 종교에 핍박받다가 어느날 세계 종교가 된 것 처럼, 초기 기독교 혹은 유대교 신앙을 지금의 기독교 자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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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세트앙크
    작성일
    09.03.28 05:16
    No. 13

    아 그리고, 정확한 하나의 도호나 진언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진인, 신인 등등의 도사나 선인들이 때때로 만들기도 하며, 부적에 따라 진언과 도호의 명이 달라졌다고 하니 말입니다.
    뭐, 그 광범위한 중국대륙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도교의 포용적인 면을 본다면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태상노군의 심부름을 하는 선동 2명을 기리는 경문도 있듯, 기록에 남았든 남지 않았든 엄청난 양의 주문과 진언, 도호와, 부적들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되고 있습니다.
    실제 도사들이 제일 중요시 여기는 것들 중 하나가 일종의 주문집이었는데, 엄청난 양의 주문과 부적들이 수록되어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대부분의 것들이 그저 스승에서 다음 제자로 넘어갔다가 또 그 다음대에는 사라지는 허망한 것이었을 테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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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세트앙크
    작성일
    09.03.28 05:25
    No. 14

    아 그리고, 불가에서도 아미타불만 외우지는 않습니다. 제일 유명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 미륵, 대일여래, 사천왕 등등, 필요에 따라 그리고 개개인에 따라 다른 불호를 외기도 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하며 한번에 외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민중에게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 처음부터 불호를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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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박상준1
    작성일
    09.03.28 05:30
    No. 15

    문학 이론 중에 '형상화'와 '전형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작가는 상상력을 통하여 그럴듯한 허구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압축과 긴장이라는 문학적 세계가 됩니다. 그 압축과 긴장의 세계를 잘 드러내기 위하여 세계의 모습을 형상화와 전형성을 통하여 캐릭터나 배경에 부여하기도 합니다.
    실재에서는 도사가 무량수불을 도호(저는 도교의 부록이나 진언과 달리 도호라는 것이 있었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로 할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이런 오해를 부르기도 합니다. 도교나 도사를 드러낼 수 있는 많은 장치 중에서, 굳이 불교용어인 무량수불을 (그 도교종파는 무량수불을 도교의 신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아무런 설명없이 도교의 도호로 사용하는 것이 소설창작에서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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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임현
    작성일
    09.03.28 05:36
    No. 16

    앞에 분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셨으니 다른 이야기를 좀 하지요.
    동이에 대한 몇 가지 자료를 올립니다.
    참고하실 부분은 현재 사학에서는 동이에 대한 부분을 잘 인정하지 않기에 논의가 되지 않을 부분의 사료들만 골라봤습니다.
    또 ‘이(夷)의 고문자가 ’철(鐵)이라 해서 동철족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물론 근거가 되는 사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본인이 가진 사료들은 옛 컴에 대부분 들어 있어서 갑자기 구한 부분만 올립니다.

    후한시대 최초의 한자사전이라 할 수 있는 ‘설문해자’에 ‘夷는 東方之人이다. 大+弓의 합한 자다’는 글이 나옵니다.

    설문해자를 연구한 단옥재(段玉裁)의 주(注)에 보면 동이에 대하여 ‘
    '대개 땅에 사는 사람들은 자못 순리(順理)하려는 성질이 있어서 글자로 각각 표현한 것이니, 오직 동이족은 大를 따르므로 '대인'이라 한 것이다. 동이의 풍속이 어질고 어진 자는 오래 사니,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다. 생각건대,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 역시 크니(天大地大人亦大) 大(대)는 사람의 모습을 형용한 것이며, 이(夷)라는 글자에서 대(大)를 따른 즉 하(夏)와 다르지 않으니 夏는 中國人(중국인)이다'(동이족은 하나라처럼 뛰어난 문명을 지녔다는 뜻임)

    후한서(後漢書) 75권 동이열전 : ‘동이사람은 어질어서 好生之心(호생지심)이 있으며 天性(천성)이 柔順(유순)해서 쉽게 道(도)로 다스릴 수 있으니 君子不死(군자불사)의 나라다.’

    하남박물원(河南博物院)에 동이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东夷人是中华民族先民的主干部分 ‘동이인(東夷人)은 중화민족 조상의 주요한 줄기부분(主幹)이다.’ 
    范围的遗存遍布燕山南北,包括辽宁阜新查海文化,沈阳新乐文化,山东大汶口文化,河姆渡文化  以及其后的赵宝沟、兴隆洼、牛河梁及殷商文化,东夷文化以凤为图腾,不是统一的文化体系,  而是对有记载以来生活在这地区先民的泛称,以凤为祖图腾,繁衍为以各种鸟为子图腾的北方凤图腾的  东夷先民,都是在燕山山脉东夷文化圈中发展起来的。从伏羲到夏商二代,起主导作用的也是东夷文化。  东夷族人发明了带羽毛弓箭,创造了文字,制作青铜器与冶铁,制造舟、车,发展农业与治水。  为中华民族文化的发展和推进,起到了关键和决定性作用,华夏文明是龙凤后裔融合而后共同创造的。

    동이문화의 유적분포는 - 연산(燕山)의 남북과 - 료녕(遼寧)의 부신사해문화(阜新查海文化)를 포함해서- 심양(沈陽)의 신락문화(新樂文化), - 산동의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하무도문화(河姆渡文化)와그 후의 - 조보구(趙寶溝), 흥륭와(興隆洼), 우하량(牛河梁) 및 - 은상문화(殷商文化)까지다.
    동이문화는 봉황(鳳凰)을 토템으로 하였다.
    통일된 문화체계는 아니지만 문헌에 기록된 이후의 생활은 이 지구(地區)의 조상들의 범칭(광범위한 동이문화)이다.  
    봉황을 모(母)토템으로 삼고 각종 새들을 자(子)토템으로 하는 북방 봉황토템 동이의 조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연산산맥(燕山山脈)의 동이문화권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복희(伏羲)에서 하상(夏商) 2대까지 동이문화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다.동이족 사람들은
    - 깃털달린 활과 화살을 발명했으며,
    - 문자를 창조했으며,
    - 청동기를 제작하고,
    - 철을 단련했으며,
    - 배(舟)와 수레(車)를 만들었고,
    - 농업을 발전시키고 치수(治水)를 하였다.
    동이족이 중화민족의 발전과 진보를 위하여 주된 역할과 결정적 작용을 하여 화하문명(華夏文明)은 용봉(龍鳳)이 융합되어(화하족의 용과 동이족의 봉문화가 융합되어)공동으로 창조된 것이다.

    맨 뒷부분의 '용봉문화' 내용은 사실 속에 거짓을 섞어 동북공정의 논거식으로 바꾼 것으로 이해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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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세트앙크
    작성일
    09.03.28 05:37
    No. 17

    아마도, 글쓴이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이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요. 하지만, 이해도가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그냥 밝히고 싶지 않았는지는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으니...
    다행히 제가 읽었던 글들 중 대부분은 칠원성군과 삼청에 주를 두거나, 도호 자체가 적었지만 말입니다.
    아 그리고, 도호나 불호는 딱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중국에서는 불호처럼 쓰이는 말이 "선재 선재"이고 아미타불이나 관세음 보살은 보조식으로 사용됩니다.
    민중들이나 신자들이 외고 싶을때 외는 것, 그것이 불호이고 도호이지 처음부터 딱 있었던 것이 아니며, 실제 도가에서는 신의 이름을 되뇌는 도호 보다는 주문이나 진언을 자주 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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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세트앙크
    작성일
    09.03.28 05:42
    No. 18

    그리고 역사에 관한 부분은 솔직히 생각해봐야할게 많지요. 동이라는 표현이 단순히 우리민족만을 표현한 것이냐라는 의문과, 과연 우리의 뿌리 그자체인가, 아니면 여러 뿌리들 중 하나인가에 대한 것도 많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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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세트앙크
    작성일
    09.03.28 05:44
    No. 19

    뭐,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밝혀진 부분 뿐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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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09.03.28 05:54
    No. 20

    헉,,댓글에 주원장이 불교를 숭상한 듯한 잘못된 글이 있군요. 사실과 다릅니다.
    ***
    곽자홍의 부하인 주원장은 원래 황각사의 승려였는데 환속하여 병졸이 되었다가 부장이 되어 군옹을 파하고 금릉에 도읍하여 명(明)이라 호하고 제위에 올라 홍무(洪武)라고 개원하였다.
    명조는 사원생활을 체험한 제왕의 독재하에 시정 또한 보수적이었으며 반란의 기반이 되기 쉬운 불교교단을 단속하면서 보호하였다.
    원의 선정원의 제도를 본따서 불교통제기관으로서의 선세원(善世院)이 금릉의 천계사에 설치되었고 통령(統領), 부통령(副統領), 찬령(贊領), 기화(紀化) 등의 승관제가 정해진 것은 홍무 원년(1368)의 일이다. 홍무 15년(1382)에는 선세원이 승사록으로 바뀌었고, 선세(善世), 천교(闡敎), 강경(講經), 각의(覺義)의 승관을 두게 되었으며 지방의 부주현에는 각기 승강사(僧綱司), 승정사(僧正司), 승회사(僧會司)가 있어서 중앙집권적인 불교통제기관이 확립되었다.
    또 홍무 6년(1373)에는 계율을 잘 지키고 경전에 능통한 자만이 도첩을 청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여자는 40세를 넘어야만 출가하여 승니가 될 수 있다는 규정이 제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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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박상준1
    작성일
    09.03.28 06:25
    No. 21

    제가 말하는 것은 심심상인 님께서 명대는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했다는 말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 생각에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했습니다.
    주원장은 불교 사원을 짓고 대구모 불사를 치르기도 했지만, 승려의 자격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도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홍무 27년, 28년 두 차례에 걸쳐서 심사를 강화하고 도사를 환속시키는 등의 정책을 공히 폈습니다. 아무래도 건국초기 국가 건설을 위한 유효 노동력 확보를 위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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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호연(晧然)
    작성일
    09.03.28 06:50
    No. 22

    무당파의 개파조사가 장삼풍인가 그렇죠? 근데 중국 드라마인가 영화인가 장삼풍이 소림사쪽에서 나온 것으로 묘사가 되었더군요...
    뭐, 그런걸로 생각하면 무량수불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을듯....(잠이 안오는 자의 넉두리이니 부디 너그럽게 이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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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09.03.28 06:54
    No. 23

    항몽님, 명이 불교를 억압한 것은 원의국교가 라마불교였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구시대의 잔재를 청산하는 ..
    요즘 세태를 생각해 봐도 단순하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명대 도교사원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명대의 불교사원수와 도교사원 수를 대비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도교는 가정제때 반짝한 종교가 아니고..
    아직까지 중국인의 기본바탕은 도교입니다.
    불교+힌두교+민간신앙이니 천하무적이라고나 할까요?^^
    조선의 숭유억불정책도 명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불교가 전문점이라면 도교는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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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3 Delco
    작성일
    09.03.28 09:28
    No. 24

    읽다가 나무아미타불에 대한 글이 보여 씁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범어를 한자로 바꾼 것이지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진언이나 그런 건 뭔 소린지 몰라서 정확하게 설명드릴 순 없지만,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 건 확실합니다.

    추가로 예를 들자면 일전에 왕건이라는 드라마에서 육자대명왕진언인 옴마니반메훔을 궁예가 만들었다고 표현해서 문제가 됬었는데, 관세음보살이 옴마니반메훔 역시 범어를 한자어로 바꾼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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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7 [크레파스]
    작성일
    09.03.28 09:30
    No. 25

    동이라는말 왠지짜증이........ 동쪽오랑케라는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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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비영(妃領)
    작성일
    09.03.28 09:48
    No. 26

    와....음.......여기 댓글들이 참 길다.(입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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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임성묵
    작성일
    09.03.28 10:16
    No. 27

    절정에 이른 고수들의 싸움을 보는 것 같군요..
    이류인 저는 진정한 오의들을 깨닫지 못하고
    이만 피 토하고 쓰러지렵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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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1 韶流
    작성일
    09.03.28 10:27
    No. 28

    'ㅁ' 나름 읽는 재미가 있는.. 'ㅁ'(급 스타가 땡겨서 스타하러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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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09.03.28 10:47
    No. 29

    무량수불이라는 도호가 처음 등장한 것은 와룡생의 무협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와룡생이 소년기에 2차대전에 종군하느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와룡생 자체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만..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원의 국교인 라마교가 장수를 기원하는 무량수불을 숭배했고, 도교가 받아 들인 민간 신앙이 정토사상인 걸 고려하면 무량수불이 도교의 주된 구호라 할 수는 있겠습니다.
    라마교의 무량수불은 왕관을 쓰고 보석이 나온다는 항아리를 든 모습이라 일반적인 대승불교의 불상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딱..도교의 신으로 적합한 형상이지요.
    무협영화에서도 떠돌이 도사가 무량수불을 말하긴 합디다만..
    문헌으로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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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별리]
    작성일
    09.03.28 10:49
    No. 30

    이夷라는 단어의 뜻엔 오랑캐라는 뜻도 있지만 그 뜻엔 평정하다. 온화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동이라는 것은 동쪽을 평정한 민족, 혹은 동쪽의 온화한 민족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이라는 것이 고대 중국에서 경이하는 뜻에서 그리 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활을 잘 쏜다고 해서 이夷를 쓰진 않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도교의 포용성은 많은 종파가 배워야 할 정도로, 종파의 포용성이 그 어떤 종교보다 뛰어납니다.

    불교가 부처가 되길 위해 수련을 한다면,
    도교는 도리를 얻는 것을 위해 수련합니다.
    불도든, 선도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도자체에 수련목적이 있기 때문에,
    원시천존을 찾든, 부처를 찾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그들은 부처나 원시천존처럼 도를 찾아 길을 헤매는 사람이니까요.

    한 가지 여담으로 한 말씀 올리자면,
    무당을 세웠던 장삼봉이 소림의 승적에
    이름을 올렸다, 파계당하고(?) 무당을 세운 것은 꽤나 유명한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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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별리]
    작성일
    09.03.28 10:58
    No. 31

    아, 윗 문장에서 실수를 해서...고치겠습니다.
    선도자체에 수련목적이 있기 때문에가 아니라...
    득도자체에 수련목적이 있기 때문에가 입니다.

    조금 사족을 달자면...

    어쨌든 도교에 몸을 담은 인물들은
    "수련"은 "득도"를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길로 빠져서 도의 길을 걸어도 "악선惡仙"이 되지,
    지옥불에 떨어지거나, 천벌을 받는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악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ㅁ=;;)

    어쨌든 무량수불의 경우는 불도를 닦는 도인이 하는 말이고,
    원시천존의 경우는 선도를 닦는 도인이 하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넘어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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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4 무의식
    작성일
    09.03.28 11:51
    No. 32

    무량수불이 그런 뜻이라니... 처음 알았습니다.
    도교가 아무리 불교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부처보다는 원시천존이나 장자, 노자의 이름을 대는게 더 나아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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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별리]
    작성일
    09.03.28 11:58
    No. 33

    무의식님// 글쎄요. 당대에 불교 보급이 대중화 되어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무량수불 쪽이 훨씬 나은 것 같은데요.
    실제로도 부처는 알지만 원시천존이나, 장자, 노자를 모르는 사람은 쌔고 쌨던 시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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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4 무의식
    작성일
    09.03.28 12:10
    No. 34

    별리님// 일반인은 잘 모를수도 있겠지만 도인들은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소설에서도 일반인이 무량수불이란 말 쓰는 일은 거의 없는 대신 도인들은 자주 사용하죠.

    도인이라면 당연히 부처보다는 원시천존을 언급하는게 더 나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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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별리]
    작성일
    09.03.28 12:22
    No. 35

    무의식님// 하하, 그럴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대중화 되어있단 말은, 도인이 되기 전에도 그것을 믿고, 그것의 도리를 따를 확률이 높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보급이 많이 된 쪽의 공부를 하기 마련이지 싶은데요. 아아, 시각의 차이려나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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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 판관필
    작성일
    09.03.28 13:10
    No. 36

    무량수불은 아미타불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밖에도 비로사나불 등이 모두 석가모니불의 변형된 이름이지요.
    불교도 후대로 내려오면서 여러 종파로 갈라지게 되는데 석가모니가 삼세에서 각자 다른 이름으로 불리듯이 각각의 종파는 각각의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게 됩니다.
    조계종은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십니다. 대웅전이나 대웅보전이 있는 곳은 조계종의 소속이며 불상은 석가모니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화엄종은 비로사나불을 본존불로 하고 대적광전에 보십니다.
    아미타불은 무량수불이라고 하는데 정토종에서 본존불로 모시며 무량수전에 모십니다.
    각지의 절간을 가보면 본존불을 모신 법당의 이름이 다른 것이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법당의 이름을 보면 종파가 어디인지 유추할 수 있는 거죠.
    명대에 나온 서유기를 보면 도교와 불교가 뒤섞이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도교에서 불교의 명칭을 종종 사용하는 것이 그런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도사가 부처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약간 모순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확실하게 단정지어서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긴 모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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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0 비발쌍부
    작성일
    09.03.28 13:34
    No. 37

    도교와 불교가 혼재되어 사실 쓰기도 걸리고 안쓰자니 허전하고... 이 정도는 작가의 역량에 맞겨 두어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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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0 비발쌍부
    작성일
    09.03.28 13:34
    No. 38

    종교 자체가 일단 불교, 도교가 혼재되어 있으니... 서유기가 좋은 예이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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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놀자~
    작성일
    09.03.28 14:39
    No. 39

    댓글 제일 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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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세트앙크
    작성일
    09.03.28 15:44
    No. 40

    Delco님, 범어를 바꾼 것은 관세음보살과 아미타불 같은 그 명칭의 이름뿐, 우리 나라 불교신자들이 나무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하며 한번에 외고, 또 그것이 마치 말 끝에 붙이는 접미사처럼 사용되는 것은 과거 아직 우리나라가 민간신앙이나 단군, 산신 신앙이 주류였을때 불교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실제로 어려운 경문의 말대신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자체를 경문처럼 만들어 배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미타불,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등은 당연히 원래부터 있었지요.
    그리고 비로자나불(대일여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신이 아니라 힌두교의 비슈누와 아수라왕의 변화된 모습입니다. 원래 불가의 신이 아니라 타종교의 신을 흡수한 것이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세트앙크
    작성일
    09.03.28 15:53
    No. 41

    신화학이나 역사적인 근거에 따르면

    비로자나불(대일여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신이 아니라 힌두교의 비슈누, 아수라왕의 변화된 모습이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아수라 신족이 대부분이 힌두의 신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비로자나불은 원래 불가의 신이 아니라 타종교의 신을 흡수한 것이지요.

    그리고 석가모니, 아미타불, 비로자나불을 하나의 모습이라 말하는 것은 불가의 체계화된 철학중 '화신'의 개념입니다.
    다만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였다가 아니라, 굳이 나눌 필요가 없다는 식의 논리전개입니다.
    물론, 깊이 파고든다면 훨씬 심오하나 일단 지금 이곳에서 불교 철학에 대해 논하기에는 아직 제 수양이 부족한 듯 합니다.

    어쨌든 실제 역사적인 근거로 본다면 비슈누의 변화된 표현이라고 보는게 일반 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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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6 비공
    작성일
    09.03.28 17:18
    No. 42

    도교의 주 교리는 득도가 아니라 장생불사입니다. 그리고 도교의 주 경전은 도장이 아니라 탄트라 밀교을 해석한 죽간본입니다.
    도교의 교리는 겉으로 보기에 잡다한 종교와 민속 토속신앙이 합쳐진 것으로 보이지만 기본으로 삼는 것은 밀교입니다.
    밀교는 진언종이라 불릴 정도로 진언과 주문이 많습니다.
    무량수불 논쟁은 십몇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무량수불이 밀교 진언 중에 번뇌를 끊는 범어(야만카타)의 한문 진언으로 도교의 탈을 쓴 밀교의 진언이 맞습니다.
    도교의 본질이 밀교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진언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0 비발쌍부
    작성일
    09.03.28 19:41
    No. 43

    헉;;; 비공님 덕분에 개안을 했습니다;;; 전 밀교라고 하기에 단순히 일본에서 불교의 변형으로 생겨난 종교인줄 알았는데 역사가 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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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세트앙크
    작성일
    09.03.28 19:54
    No. 44

    도교의 핵심이 되는 핵중 하나, 뿌리 중 하나가 밀교인 거지 도교 자체가 밀교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위에 말했듯 초기 유대교와 현 기독교가 같다고 할 수 없음이고, 도교에서 주로 삼는 경문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달라졌다고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밀교의 발생 이전에 이미 도교(그당시 도교라는 명칭은 없지만)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존재했다고 말해지니 밀교=도교의 뿌리 라는 해석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게 친다면 후에 서양 연금술의 영향을 받기도 하니 도교의 뿌리가 연금술이라는 해석까지 가능해지지요.
    도교가 체계화되면서 밀교의 진언과 수많은 것들을 포용하고 흡수한 것이지 밀교가 그 근본인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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