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Comment ' 15

  • 작성자
    Lv.5 6661
    작성일
    11.01.07 00:32
    No. 1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무척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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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고독피바다
    작성일
    11.01.07 01:05
    No. 2

    쩔어 쩔어 나도 나도 이런거 좋아해요 ,.....

    내용을 모르니 비유가 맞을 진 모르겠지만

    전 소설에 치우, 해동검, 장백산, 명검술, 환우, 동방,

    이런거 나오면 일단 좋아라 하는데 님 멋진 글 부탁드려요
    .
    소드엠퍼러에서 중원편의 주인공 처럼 대박 검사 하나 나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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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7 나린가람
    작성일
    11.01.07 01:27
    No. 3

    그리고 조선시대 인물의 입에서 왜의 검이 최고라는 기록이 있다니 왠지 기분이 나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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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에빌크로우
    작성일
    11.01.07 02:27
    No. 4

    조선시대에 무관은 쓰레기 취급받았죠....
    똑바로 된 검술이 있으면 더 이상할거 같아요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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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4 천영객
    작성일
    11.01.07 02:58
    No. 5

    왜국이야 당시 칼을 잡을 수 있는 어릴때부터 칼질로 먹고 사는게 일인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만든 것이고 조선이나 명의 군대는 농사짓던 농민들을 모아 만들었을테니 칼과 칼을 맞대는 단병접전에서 승리할리가 없겠지요.
    조선이나 명에도 뛰어난 검술과 검객은 있겠지만 그런 분들은 대부분 초야에 묻혀 수양을 쌓다가 왜란때 이름없는 협객으로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정황으로 보면 드러난 검술로만 따지면 왜국이 최고처럼 보이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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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재미찾기
    작성일
    11.01.07 03:05
    No. 6

    뭐, 모든 것에서 우리가 최고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것이 사실이지 않겠습니까? ㅎㅎ 우리는 궁술이 최고였고 일본은 검술이 최고였고 뭐 그런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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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박상준1
    작성일
    11.01.07 03:10
    No. 7

    '역사소설이냐, 무협소설이냐?' 하는 시비조(?)의 쪽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뭐라 불려도 전 상관 없습니다. 딱 정해진 장르가 중요하시단 분은 그저 역사소설 스타일의 무협소설 쯤으로 여겨주시면 될 듯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검강이 나오고 호신강기가 나오는 무협소설식의 판타지를 기대하시는 분은 취향에 조금은 맞지 않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기분이 많이 나쁘긴 합니다.^^ 기분 나쁘더라도 어쩔 수 없지요. 총융사 겸 훈련대장 유혁연은 그 당시 조선 무신의 최고 실세였습니다. 유혁연의 평가가 그랬다는 것은 당시 조선 조정의 일반적인 인식이 그랬다는 것이겠지요. 일본 검법의 위력에 대해선 조선시대, 특히 임진왜란 초기 중, 여러 문헌에 자주 보입니다. 대신 우리 활 앞에선, 조총 없는 일본 군도 무력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임진왜란 여주전투) 그런데 명나라 장군 척계광도' 기효신서'에 왜구와의 싸움에서 칼도 못 빼보고 명군이 일본인에게 양단 당하는 것을 분에 겨워 했으니, 당시 중국도 일본 검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을 겁니다. 물론, 검이 강한 것이 무력이 강한 것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요.

    오자가 있어서 수정했는데 그 새 댓글이 달렸네요. 역사적, 혹은 군사학적 분석은 논외로 하고, 제 소설은 천영객님이 말씀하신 그 협객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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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6661
    작성일
    11.01.07 03:29
    No. 8

    명군도 당시 국력이 쇠약해지고, 상비군 체제가 제대로 갖추어진 것은 아니었으니 조선군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겁니다. 당시 일본은 전국 시대를 통일한 직후였기 때문에, 병사 개개인의 질적 수준이 아주 높았고 군대를 운용하고 조직하는 방법도 상당히 체계적이었습니다. 군대와 군대로서 부딪치기에 조명 연합군은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요. 실제 신립 장군이 대패한 탄금대에서 육상의 조선 정규군은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물론 이 정규군 또한 각지에서 조금씩 모아 급히 조성된 군으로서 정규군으로 보기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농민군도 대거 포함되었구요. 신립 장군이 정규군 들어 먹었다기보다는 당시 전시 체제에 관해선 한없이 무능했던 조선 정부를 탓해야 겠지요. 이후엔 육전에서 별 수 없었습니다. 남은 건 당시 세계 최강의 해상전 정규군 이순신 제독의 함대 뿐이었으니까요.
    얘기가 조금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전쟁은 칼만 부딪치는 게 아니죠. 병참, 지형, 군세, 무기 등 고려되어야 할 게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전략(전술 수준을 벗어나)은 어렵다고들 합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린 것은, 일본군이 이런 전략적 우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군이 이겼다고 해서 그 군 병사들의 무용에 대한 우위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용의 우위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는 건 군대가 아니라 전사 집단 간의 대결이겠죠. 하지만 말씀드렸듯 많은 전쟁 경험을 가진 일본 군대의 검법이 우수할 당위성이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만 신립 장군, 원균 제독과 이순신 제독 등의 무관들은 엄정한 기준을 통해 선발되었으므로 무용에서 일본 장수들에게 뒤지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검술보다는 승마술과 궁술, 격 등에 의해 평가되었지만요.
    박상준님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었다란 말에 동감하면서, 왠지 우리나라 장수들이 저평가 받는 것만 같은 설움에 쓴 댓글이 이렇게 길어질지는 몰랐습니다;; 저도 글이 쓰고 싶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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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촉석
    작성일
    11.01.07 05:26
    No. 9

    무예가(협객)들의 무술(무예,무도)라는 것과 군대에서 사용되는 기예는 비슷한 것 같지만 많이 다릅니다. 군대란 자원해서든 끌려와서든 무작위의 사람들을 데려다가 살인(방어)기술 가르치는 것이고 스스로 원해서 무술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의 기예가 같을 수는 없지요.
    위에 인용된 글은 무인이 아니라 군부에서 행정부 최고 수반에게 보고를 하는 형식임을 인지하고 해석을 해야 합니다. 또한 해석이 여러가지로 가능합니다. 문제가 된 원문은 "我國獨無傳習之人"이것인데요
    위의 해석을 "우리나라 홀로 전하고 익히는 자가 없어"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런 해석보다는 "(일본이 검술 최고이지만) 우리나라에도 독자적인 (검술)이 있으나 전해지지 못하여 익인 사람이 없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부드러울듯 합니다. "無傳" 댓구로 "獨"자 앞에 "有"가 생략된 것으로 해석을 한 것입니다.
    有가 생략된 것이 아니라면 "전하여 익힌자가 없서 외롭다(힘들다)"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글 내용의 핵심은 군부 최고 책임자가 상부에 우는 소리하면서 자기 잘못 없다는 해명의 말을 하는 것이니 그에 더 맞춰서 이해를 해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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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43 도람이
    작성일
    11.01.08 01:31
    No. 10

    ㅇ.,ㅇ;; 여긴 댓글도 뭘 알아야 달수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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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45 찌를거야
    작성일
    11.01.08 01:51
    No. 11

    그때당시

    무관은 조선에서 엄청난 천시와 멸시까지는 아니겠지만
    칼로 부와명예를 가질수없었습니다
    무관이 되고 장군이 되어도
    문관들의 하수인이나 하고 제대로 대접을 못받았죠

    아무리 뛰어난 장수라고해도 대접을 못받던 시대가 조선시대였습니다
    명도 조선과 그나물이 그밥이었고


    하지만 그때당시 왜는 칼하나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시에다 문관보다는 무관을 엄청나게 대우해주었고
    칼만 잘쓰면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질수있는
    시대였다는걸 고려할때

    과연 온실속의 화초같이 키워진 조선무인과
    전장의 피비린내나는 왜에서 키워진 무인을 비교할수나 있었을까요 ?

    만약 한중일 최고 고수를 뽑는다면 일본이 내리 순위권은 다차지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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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3 환노
    작성일
    11.01.08 03:19
    No. 12

    조선시대 국방력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데요 조선의 국방력은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보다 약하고 전 시대인
    고려보다도 약하다는게 상식이에요.

    흔히들 시대가 지나면 군사력과 경제력이 비례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된 선입견이에요.

    중세유럽이 군사력 경제력 모든 부문에서 고대 로마제국에
    미치지 못했듯이 조선 역시 군사력 부분에서 역대 최약이었어요.

    고려시대에는 굳이 전설의 무인 척준경을 떠올리지 않아도
    당시 송나라 사람들이 두려워 떨던 거란족(요나라)여진족(금나라)을
    우리나라는 국가명으로 부르지 않고 족속으로 부르며 고려를 침략한
    20만 거란군을 전멸시켜서 당시 중원을 노리던 거란군이
    화북 전지역이 아닌 겨우 연운 16주 즉 화북의 일부분만
    가질 수 있었던건 후방의 고려군 때문에 전면적인 남침을 못해서 그래요.
    잦은 고려 침략 실패는 요나라 멸망의 원인이 되고 그 이후 여진족도
    고려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중원 전 지역이 아닌 겨우 화북지역
    만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남송의 명은 고려때문에 잔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실제로 당시 송나라 사람들은 몽고군을 거란족과 여진족과 잘싸운
    고려군이 물리쳐줄거라 생각했고 고려군 마저 몽고군에
    어려움을 느끼자 크게 상심했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어요.
    당시 송나라의 고려에 대한 예는 고려사신을 극진하게 대접한 예에서 잘 들어나고 소동파로 유명한 소식은 고려사신 대접에 나라 재정이
    흔들린다고 우려할 정도 였지요.

    몽고군도 중원 전 지역과 중앙 아시아및 인도 북부,중동,그리고 러시아를 거쳐 헝가리까지 점령했지만 당시 유렵 최대강국이었던
    신성로마제국(독일,오스트리아 주축)과 싸웠다면 이겼을을텐데
    원나라 황제의 죽음으로 당시 몽고 원정군이 급히 회군하느라
    신성로마제국과의 결전은 물건너 가지요.
    하지만 그런 몽고군에도 고려군은 30여년간 게릴라전을 펼치며
    아프가니스탄에서 (구)소려군이 게릴라전에 지쳐 물러나듯이
    고려군은 끈질기게 몽고군을 괴롭히고 이는 고려가 완전히 복속되지
    않는 천운을 만들어요.

    그에 비하면 조선군은 정말 약하지요.

    임진왜란,병자호란 그리고 일제시대까지 하지만 중요한 건
    조선시대에도 무인이 없는게 아니에요.
    하지만 유능한 무예인 즉 무공이 고강한 무인들은 고려시대에 달리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출사하지 않아요.
    이는 임진왜란을 보면 명확히 드러나는 사실로 당시
    의병장인 영남의 영웅 곽재우, 호남의 호걸 김덕령, 함경도의 자랑
    정문부등이 다 놀라운 전공을 세웠지만 그들은 당시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초야에 묻힌 몸이거나 겨우 하급관리로 자신을
    들어내지 않으려던 상태였어요.
    그리고 임진왜란이라는 국란에 몸을 드러내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지만 결과는 논공행상이 아닌
    김덕령,정문부는 반란 누명을 쓰고 참형
    곽재우는 지극히 몸을 사려서 관직을 제수 받으면 거부
    다시 제수 받으면 또 거부하는 블랙 코메디 같은 상황까지 벌어지니
    그 정도로 당시 조선 조정 사정이 엉망이었어요.
    하지만 홍의장군 곽재우가 그렇게 관직제수를 거절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모반 누명을 쓰고 참형 당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순신장군 역시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면 글쎄요
    참형 당했으리라 보는건 과한걸까요?
    이러니 어느 유능한 무인들이 조정에 출사하겠어요.
    다들 고만고만한 무장들만 조정에 나가고 정말 대장군이
    될만한 이들은 조정의 붕당에 따른 당파정치와 사화 때문에
    산천에서 무예만을 갈고 닦으며 초야에 묻혔겟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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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6661
    작성일
    11.01.08 08:40
    No. 13

    조선 시대 전체를 전 시대에 비해 국방력이 약했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어느 국가든 시기별로 국력의 강약이 있기 마련이죠. 강한 국방력을 갖췄다는 고려는 몽고의 침략이 가장 큰 문제였겠지만, 이후에도 왜구에 의해 국가가 와해될 위기까지 처합니다. 조선 초 왜구를 싹 쓸어버린 것과 비교해볼 때 국방력이 그렇게 신통치 못했다는 이야기지요.
    아시다시피 이성계나 최영과 같은 걸출한 무인들이 등장하면서 고려의 군사력은 크게 증강됩니다. 최영은 수군의 중요성을 깨닫고 2천여 척의 함대를 건설할 계획까지 세우죠. 최무선은 화포를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고려 시대 때부터의 수군력 증강이 바로 조선이 왜를 막아낸 임진왜란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발전 과정으로 볼 때도 조선이 고려에 비해 국방력이 열세였다라는 말씀은 과학보다는 상식이라 할 수 있겠네요. 상식은 검증된 사실이 아니죠. 당시 조선 수군은 세계 최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대양이 아니라 연안 수준이라 어폐가 있지만) 말도 안 될 정도의 숫적 열세 함대가 적을 무너뜨리는 전과는 세계사적으로 거의 없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국방력에는 정부의 성향도 포함됩니다만,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의 우리나라 국방력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조선은 엄연히 사대부와 무인 세력이 결탁해 건국된 나라입니다. 조선 초 국방력의 강성함은 대단했죠. 이는 세종 때 절정에 이릅니다. 이후에도 녹록하지 않습니다. 조선사 중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에요. 임진왜란은 정확히 조선 건국 200년이 되던 해에 일어났습니다. 200년간의 평화롭던 시기가 불러온 안일함이 국왕이 피난을 가는 초유의 사태까지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이전부터 조선 국방력이 형편없었다는 건 어폐가 있습니다. 곧 임진왜란의 결과로 멸망합니다만 아시아 최강대국 중국마저도 일본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죠. 조선이 그런 일본에 무너진 것으로 단순히 조선의 국방력이 형편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선조 시기 들어 매우 문제가 많아진 건 사실입니다.) 국방력 문제보다 정부의 무능함이 더 큰 요인입니다. 이순신 제독이 해전마다 일본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박살을 내버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임진왜란은 세계적으로 화약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고, 조선은 화포를 가진 강력한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제독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이전부터 추진되어 왔던 국방력 강화 정책이었다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할 점입니다.
    또 조선실록만 살펴보아도 당시 인구 현황과 농지 현황을 알 수 있는데 세종대를 거쳐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합니다. 이처럼 인구, 생산력, 무기의 발달 등만 다루어도 조선의 국방력이 삼국시대보다도 형편없었다는 건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태클은 좋아하지 않는데 제 정신 머리가 짧아서 아는 것이 나오면 이렇게 꼭 떠들어야 하나봅니다. 국방력을 활용하는 정부의 성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보니 이런 문제에 대해선 항상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혹여 언짢으시다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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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Personacon [탈퇴계정]
    작성일
    11.01.08 11:44
    No. 14

    뭔가 말을 하고싶었지만 짧은 식견으로 댓글을 달았다가 비교거리가 될까봐 그냥 홍보강화나 하고갑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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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3 환노
    작성일
    11.01.09 11:01
    No. 15

    일단 고려에서 왜구 때문에 국가가 존망의 위기까지 갖다는것이야 말로 크게 잘못된 상식이에요.

    고려 30대 충정왕때(재위기간 2년)왜구에 많은 피해를 입은건 사실이에요.하지만 바로 그 이후 왕인 31대왕인 공민왕(재위기간 22년)때
    고려는 그 피해를 이미 완전회복 했어요.

    그 증거는 공민왕때 부분적으로나마 만주 심양및 봉황성을 점령해요,
    물론 명의 항의로 점령한 상태에서 곧 철군하지만 이미 고려군은 만주를 넘볼 정도로 강성 해 진거지요.

    또한 홍건적(주원장과 장사성 때문에 남으로는 진격하지 못하는 한족군)이 국호를 송이라 하고 고려 국경을 두차례 넘어오는데 1차 4만명,
    2차 10만명이 침략하지만 고려군은 끝까지 주살해서 이들이
    압록강을 넘어서 도망 칠 때는 몇천 정도의 수밖에 되지 않아요.
    거란족과 여진족보다도 한족은 오히려 더욱 약했어요.

    님의 말대로 왜구에 의해서 국가가 와해될 위기 였으면 그 이후 시기인
    공민왕때의 군사적 역량은 설명할 길이 없어요.또한 위화도 회군으로 유명한 요동정벌 실패때 고려군이 동원한 군대는 10만 대군이었어요.
    임진왜란 8년의 기간 동안 조선군이 이 정도 군세를 동원 한적도 없고
    오히려 200여년 동안 평화시라 연일 전쟁이었던 고려시대보다 말기보다
    군세 동원이 쉬어야 정상인데도 전혀 그렇지 않았지요.
    실제로 2차 홍건군 10만에 맞서서 동원한 군세는 고려군 20만이에요.
    사실이 이러한데 고려가 왜구에 의해서 피폐했다면 이 정도 군세를 오히려 보유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임진왜란 이후에 30여년도 지나지 않아서 병자호란에서 조선군은 왕이 사로잡혀서 고려군은 여진족이라고 우습게 보던 이들에게
    청나라 천자께 자비를 구한다며 절을 하고 생명을 구걸하는
    지경에 이르러요.왕자들으 볼모로 청에 보내는건 당연하고 그 왕자에
    콤플렉스를 느낀 왕은 왕자를 죽였다는 소문도 역시나 많고요.
    그 반작용으로 왕위에 오른 효종도 북벌 이야기만 꺼냈지 당시의
    대신들은 전혀 그럴 의지가 없었어요.
    왕이 북벌 하자고 하면 왕의 수양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동문서답이나
    (대신들 역시 청과의 전쟁을 전혀 승산 없이 봤다다는 증거에요)하고
    하지만 당시 효종때에 북벌 했다면 당시 파죽지세의 청군에
    학살 당할 확률이 다분 할 정도로 조선군은 약해요.

    조선초에 군사력이 강하다?
    일본인들이 무서워하는 도깨비로는 무쿠리,고쿠리란 말이 있어요.
    무쿠리(몽고군)고쿠리(고려군)당시 여몽연합군은
    쓰시마섬를 정벌하고 이키섬을 정벌하고 규슈에 상륙해서 연승하다
    태풍에 정박한 배가 침몰하면서 어쩔수 없이 철군해요.
    태풍에 배가 파손되지만 않았다면 규슈를 정벌하고 혼슈에 상륙해서
    교토 입성도 시간 문제 였어요.
    당시 일본이 느낀 공포감은 쿄토왕궁에서 일본 각 신사의 신들에게
    여몽연합군을 물리쳐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조서를 내릴 정도였어요.
    일본군이 연전연패하니 대책이 겨우 신들에게 기도하라는 정도
    태풍때문에 규슈 해안가에 정박해 있던 여몽 연합군의 배들
    태반이 침몰하고 나자 일본은 환호하면서 그 태풍을 가미카제(신풍)
    라 부르고 그걸 2차 세게대전에서 자살 특공에도 쓸 정도로 일본인의
    의식속에서 고려군은 두렵게 남아 있어요.

    조선 세종조의 대마도 정벌을 승전이라 보는 모양인데 당시 이종무를
    총사로 조선군는 대마도를 공격했지만 대마도 왜구의 격렬한 반격을
    당하고 이종무는 상륙한 군대가 몰살 당할때까지 배에서 구경했다고
    조선에 돌아와서 어마어마한 상소를 당해요.
    그걸 용서 해준게 세종께서 자비를 베풀어서 이고요.
    쓰시마,이키를 넘어 규슈까지 초토화 시킨 고려군
    쓰시마 조차도 제압 못 한 조선군
    임진왜란이 이순신 장군 개인의 역량이 아닌 조선군의 힘이라고
    하는데 당시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조선군이 약하다고 전력을 고민을 기술하면서 전력증강에 사력을
    다해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경상 좌,우수사 박홍과 원균은 휘하
    전함 150척을 자신들이 수장시키고 박홍은 왕에게로 도망치고
    원균은 전라도로 피신(?)해요.물론 두 수군 사령관(박홍,원균)
    의 군함은 우습게도 왜군과 단 한차례도 싸워보지도 않고
    바다에 침몰했어요.
    조선군의 어디가 강하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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