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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멸망해야 한다

작성자
Lv.94 720174
작성
19.05.25 19:01
조회
1,904
표지

유료웹소설 > 연재 > 퓨전, 판타지

유료 완결

정훈鄭薰
연재수 :
168 회
조회수 :
1,310,203
추천수 :
47,541

 배신을 하려면 요건이 필요합니다. 소설 집필의 어떤 경우에 대해 ‘배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행위를 저지르는가에 대해서, 작가가 소설을 배신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일단 그 소설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배신의 어감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감이 있지만 그 외에 달리 생각나는 어감이 없네요. 연중은 배신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은 그냥 무책임이라는 간단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죠. 굳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지만, 그런 식의 독자에 대한 기망은 지나치게 흔해서 굳이 ‘배신’이라고 지칭하여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상업적인 이유든 작가 내적인 이유든 작품을 위한 이유든 간에, 저는 그 작품을 완벽히 끝맺기 위해 준비된 필연성이 약간은 억지스런 개연성을 지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어 버린 순간 ‘배신’ 당했다고 느낍니다. 제가 좋아했던 작품 특유의 페이소스는 전혀 다른 결과를 위해 적립된 반전으로 격하되고, 옥에 남은 티가 더욱 아쉬운 것처럼 안타까움이 폐부 깊숙한 데서부터 올라오죠.


 그러한 몇 가지 예로 납골당의 어린 왕자나 던전디펜스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새드엔딩으로 분명히 더 낫게 거듭될 수 있었을 소설들이 막판에 해피엔딩으로 전환된 사례들은 제게 그 자체로 새드엔딩 같습니다. 약간 변태적인 감상이죠. 매드맥스에 등장하는 상여자 누님이 도착한 곳에, 작품의 분위기를 배반하는 약속의 땅이 정말로 있었다면 매드맥스는 결코 수작이 못 되었을 겁니다.


 ‘이 세계는 멸망해야 한다’는 그런 의미에서 독자 제현에게 분명한 하나를 보장합니다. 


 이 소설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통일전쟁이 있은 후, 상이군인으로 집에 쳐박혀 가상현실 게임만을 하는 폐인이 되어버린 주인공은 어느 날 모친의 죽음을 겪습니다. 동시에 모친을 살릴 수 있는 단 한 가지 기회, 마지막 가상현실 게임의 승리자가 되어보라는 제안을 받죠. 주인공은 이제 황녀를 위하여 : 엔드게임을 시작합니다.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건 캐릭터의 포지션입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가상현실 게임의 클리어는 인게임 세계관에 따르면 해당 게임 세계의 멸망을 전제로 합니다.


 주인공이 제안 받은 엔드게임은 온라인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들은 모두 멸망을 위해 힘써야 하는 친구들인 겁니다. 여기서 다들 생각하듯이 뻔한 고뇌가 출현합니다. ‘이들이 정말 멸망해도 좋은가?’  거기에 이 게임 세계가 사실은 현실의 차원일 수도 있다는, 뻔한 가정 하나를 끼얹어 놓으면 더 그럴 듯하겠죠.


 플레이어들 일부는 클리어를, 다른 일부는 클리어를 포기합니다. 주인공 역시 고뇌를 겪습니다. 상이군인이었던 그는 전쟁 속에서 활기를 찾았고, 게임 내 가열찬 전쟁에서 1위자로 우뚝 서지만, 당연하게도 그 누구도 패전이 확정된 전쟁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어떻게든 게임 세계의 전쟁을 승리시켜 그들을 살리려고 노력했던 한때의 영웅으로서, 주인공은 이제 현실 세계의 악마로 거듭나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죠. 가상현실 게임 세계에서 맺었던 인연들은 감안하면 더욱.


 살아남기 위해 가열차게 노력하면서 주인공 뒤를 졸졸 좇는 순진무구한 일본인 소녀, 혹은 한때의 레이드 공대 동료였던, 서로 가정사의 비극까지 나눌 정도로 진심을 터놓은 남학생, 자신에 대한 연심을 놓지 못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 여성 지인, 같은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 출신의 선의로 가득찬 동료...


 그리고 주인공까지.


 이들은 서로 대립 각에 섭니다. 주인공이 과연 과거의 인연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나가고, 클리어에 대한 해답에서 어떤 식으로 자신만의 해답을 내놓을지, 갈등 관계를 타개해가는 과정은 제법 흥미롭습니다.


+)사족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 작품이 재밌는 이유는 얼마간 작가의 필력에 힘입어서인데, 사실 재미없는 이유도 작가의 필력에서 비롯합니다. 작가는 흥미로운 세계관 설정과 괜찮은 심리 묘사로 캐릭터의 몰입력을 끌어올립니다. 뭐 최상위급이니 하는 게 아니라, 장르 소설에서 상질의 심리 묘사란 그것만으로도 매우 드문 재능이죠. 이런 까닭으로 소설은 재미있습니다.


 재미없는 이유는 소설의 구도를 필력으로 완벽히 녹여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웹소설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일단 소설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 소설 내의 캐릭터들은 각기 고뇌를 겪고 주인공의 고뇌는 어떤 신박한 방식의 교훈(’배신‘을 동반하는)을 제안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의도나 소설의 필연성 역시 무목적성을 지향합니다. 결국 이 소설에서 엔딩은 마침표에 불과할 뿐 그 과정 자체가 소설의 지향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소설의 지향점이 되기에, 마왕 대 용사의 구도는 이제까지의 소설에서 지나치게 흔했습니다. 그에 대한 이 소설의 유일한 답변이란 매력을 부여하기 위한 악역의 합리화 없이, 악역의 사실화를 시도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1부가 끝나고 심리적으로 완결된 듯한 주인공의 결단은, 중간중간 위기를 겪기는 하지만 결국 ‘완벽한 마왕과 하잘것없는 용사’의 구도를 만듭니다. 서두를 빌려와, 배신이 없는 게 좋다고 하는 말은 반대로 얼마 간 배신이 있을 것 같은 위기감을 적절히 조성해주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러한 위기감의 조성으로 작가가 택한 시도는 무척 무식합니다. 다수의 지분이 용사 현수에게 할애됩니다.


 사마쌍협이나 사라전종횡기 등의 여러 캐릭터를 내세우는 소설들이 있어왔습니다. 이러한 소설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매력적인 캐릭터성’과 ‘주 캐릭터와 부 캐릭터의 구도 형성’입니다. 먼저 모든 캐릭터는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사마쌍협을 예로 들면, 언뜻 과묵하게만 보이지만 사실 속이 깊고 영리하며 침착한 마도의 캐릭터나, 영활하고 기민하면서도 잔정을 버리기 힘든 사도의 캐릭터가 되겠습니다. 주 캐릭터는 사도의 캐릭터고, 부 캐릭터는 마도의 캐릭터입니다.


 다양한 주인공의 소설이 꼭 동등한 지분의 할애를 충족 조건으로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독자의 인상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캐릭터성을 뇌리에 박아놓아준 후 언뜻언뜻 챕터의 일부만 할애해주면 됩니다. 또한 그러한 캐릭터성은 인간적인 고뇌와 양립하기 힘든 것입니다. 고뇌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매력적인 캐릭터는 완성형 캐릭터의 기질을 띠어야만 하고, 고뇌 역시 그러한 캐릭터성에서 비롯해야 한다는 겁니다. 심심할 때마다 고뇌하는 불완전한 인간이어서는 안 됩니다. 고답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구도의 전형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애매한 캐릭터 간의 지분 할양은, 제게는 읽을 만했습니다만 달리 보면 스토리 라인에 따라 드러날 캐릭터의 갈등 관계 조절에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더 웹소설적으로 훌륭해질 수 있는 방법, 즉 굳이 갈등 관계에 힘을 주어 고뇌를 서술하기보다 그냥 정철에 힘을 쏟고 다른 캐릭터들은 조연이나 장치로서만 행보를 할애해서 소설적 교훈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모든 훌륭한 캐릭터성이 반드시 그만큼의 지분을 요구하는 건 아닐 텐데 말입니다. 바바리안 퀘스트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대적자, 황제나 혹은 미친 성녀 같은 경우를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만 바바리안 퀘스트는 주인공의 일대기죠. 후기에서 작가는 본인의 시도를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도리어 그 시도의 틀을 아예 버리려고 하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웹소설로서의 아쉬움일 뿐 완결난 책을 읽었을 때의 아쉬움이라 하긴 어렵겠네요. 그렇지 않으면 추천글도 올리지 않았겠죠. 사실 이와 같은 특징은 도리어 뻔한 장르소설 세계에서 괜찮은 색채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서평에서 말한 바 있 듯, 재미있는 소설만이 이와 같은 집중적인 독자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죠. 이 세계는 멸망해야 한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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