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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사냥꾼

작성자
Lv.59 시구지
작성
18.05.17 13:13
조회
471
표지

선독점 멸망한 세계의 사냥꾼

유료웹소설 > 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유료 완결

글쟁이S
연재수 :
375 회
조회수 :
2,880,688
추천수 :
150,188

멸망 이후의 세계란 어떤 모습일지 이따금씩 상상해보고는 합니다.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한 한 폭력적인 가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문명이 멸망한 세상에서 피식자의 위치로 전락한 인간의 생존 방식은 대충 생각하기에도 그닥 영광스러울 것 같진 않죠.


사람들 안에는 어쩌면 선사시대 적 야만에의 열망이 내재되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런 가정에 대한 비참한 답을 내놨고, 그 안에서 인간은 폐허가 된 도시에서 마지막 인간으로 남아 뱀파이어들을 죽이고 외로이 횡행하거나 혹은 멸망 이전 거주 공간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지하철역에 모여 들어 국가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임모탄을 섬기고 엔진을 숭배하는 황야의 폭주족도 있고요.


이제 그들 못지 않게 흥미로운 답안지를 제시한 작품을 하나 얘기하려 합니다. 바로 멸망한 세상의 사냥꾼(이하 멸세사)입니다.


오래 전부터 세계는 멸망해 있었고, 괴물들은 황무지 위를 거닙니다. 괴물들을 죽이면 나오는 칩은 화폐, 금본위제도에서 무력본위제도로 회귀한 세상은 이제 새로운 생산자의 역할을 필요로 합니다. 세상은 그들을 사냥꾼이라고 부르죠.


사냥꾼들은 의뢰를 받고 그것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칩을 받는 직업적 도살자입니다. 칩을 신앙으로 하는 사냥꾼은 그 위에 어떤 우선순위도 올려놓길 꺼려합니다. 그들은 이 멸망한 세계에서 너무 많은 가치역전의 사례들을 보아온 탓에 결국 칩만이 믿을 수 있는 단 하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진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진은 능숙한 사냥꾼입니다. 멸망한 세계가 만들어낸 갖가지 사회 군상을 감흥없이 지나치며 진은 계속해서 의뢰를 완수할 뿐입니다. 하지만 진이 단순히 그냥 능숙한 사냥꾼인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어마어마하게 능숙한 사냥꾼입니다. 심지어 악마까지 사냥할 정도로요.


도시괴담으로 전해지는 사냥꾼의 하나, 악마 사냥꾼인 진은 어느 날 평소처럼 의뢰를 이행하다가  한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동행은, 소중한 것을 만들기에 이미 너무 많은 후회로 닳은 줄 알았던 악마 사냥꾼에게 조금씩 중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해갑니다. 그러던 와중 진은 이미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악마와의 인연에 발을 들이밀게 됩니다.


[이제 나를 위해 살겠다]로 시작해서 [사상 최강의 매니저]로 만개했던 글쟁이S는 이 작품에서 이제까지와는 색다른 재미를 엿보여줍니다. 고독한 사나이와 소녀의 동행은 제법 높은 인기를 구가해온 클리셰고, 색다르게 장르소설적으로 해석한 멸망 이후의 세계관은 작가가 그리는 일행의 여정에 완성도를 더해줍니다.


좀비나 바이러스를 넣지 않고 멸망 이후의 세계를 그려낸 작품은 드물고, 그 중 생존성이나 주인공에 대한 편의성 없이 그 자체로 작품을 매력적으로 가꾼 글은 더더욱 드뭅니다. 하물며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들임에야, 작가는 어떤 글을 독자가 읽어볼 만하다고 여기는지 잘 숙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 인간이 괴물들에 어떤 식으로 맞서는지, 그리고 방랑하던 악마 사냥꾼이 한 소녀로 인해 어떤 식으로 변화해가는지 흥미가 돋는다면 읽어보실 만합니다.


*


(이하 스포 및 사족)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사실 재밌는 작품일수록, 조금의 흠결도 더 재밌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깊게 남는 경우가 많죠. 멸세사도 그렇습니다.


멸세사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작가가 보여주는 작풍의 변화입니다. 예컨대 [나를 위해 살겠다]는 흔한 회귀물로 시작해서, 회귀 전 악연에 대한 주인공의 복수 장면에서 제법 흔치 않은 회귀물로 변화합니다. 회귀 이후 주인공의 캐릭터성을 형성하는 것 자체가 그 복수심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복수를 완수한 주인공의 캐릭터에는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변화를 작가는 괜찮은 방식으로 해설해냅니다. 전체 비중을 따지면 사건 묘사가 9에 감정 묘사가 1이라고나 할까요.


[사상 최강의 매니저](이하 사최매)는 [나를 위해 살겠다]에서 작가가 다른 회귀물과 차별화되었던 점을 더욱 앞으로 내세운 작품입니다. 흔한 레이드물 같지만 세계관이 완성도 있고, 주인공이 가진 비밀이 조금씩 풀려 나오면서 결국 파탄으로 치달아가는 전개는 무척 씹을 맛이 납니다. 글쟁이S가 다른 작가와는 다르구나 하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 묘사 8에 감정 묘사 2쯤? 재밌는 건 사최매 작중 흐름에 따라 문장의 묘사도 변한다는 점입니다.


엄청 간결한 편까진 아니지만 딱 적절한 정도의 가독성을 갖고 있는 문장들은 캐릭터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색다른 지분을 갖고 문단으로 부연되는데, 작가가 개입해서 철학적 서술을 하고 그에 따라 캐릭터의 여운을 남기는 방식입니다. 설명체죠. 감정선이 깊어질수록 설명체의 비중은 높아집니다.


그리고 멸세사에서 이 작풍의 변화는 고점에 도달하고야 맙니다. 멸세사는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2부만 따져 보면 사건 묘사 6에 감정 묘사 4 정도가 되겠네요.

개인적으로는 멸세사의 1부를 생각할 때 2부가 좀더 괜찮은 방식으로 쓰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개에서도 그렇고 서술 방식에 대해서도요.


*


1부가 악마사냥꾼으로서의 진과 일행의 여정이라면, 2부는 악마사냥꾼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린 진과 일행의 여정입니다. 즉 1부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그들 일행의 여행을 그렸다면 2부는 이제 그 일행들 간의 재회 및 대적에의 타도를 그리는 일대기입니다. 그런데 2부는 소중해진 인연들에 대한 강조가 지나쳐서, 1부와는 소설적인 성격이 사뭇 다릅니다.


2부는 뿔뿔히 흩어진 일행의 재회와 내전, 그리고 칼츠에 대한 대적으로 진행됩니다. 후기에 보면 작가가 개인적으로 힘들어서 집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는데 아마 전쟁 장면과 그 후의 어딘가가 아닐까 추측됩니다. 전쟁은 산만하다 못해 정말 너무 긴 감이 있습니다. 사최매에서 보여줬던 밀도 높게 처절한 전투 장면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일행은 뒷전으로 작중 전쟁은 그저 수행될 뿐입니다. 샤를과 소서란의 대치 구도가 그나마 캐릭터의 대치 구도라 할 만한데 이마저도 그닥 공감가진 않습니다.


이러한 전개 와중 문장은 점점 짧아지고 엔터를 자주 띄우며, 주어를 작가로 하는 작가 개입 문장이 극도로 많아지면서 독자의 감정을 고조하려고만 합니다. 소서란의 절망 장면에서 그런 감정적 서술은 무척 슬프게 그려지지만, 그 후로도 계속해서 나오는 감정적 서술은 1부와는 다른 소설인 것 같습니다.


전쟁 이후 이제 주인공 일행은 칼츠를 맞이하러 가는데, 1부에서 현실적인 악당이었던 진은 2부에서 인간찬가의 주인공이 됩니다. 사실 칼츠가 아닌 진이 모든 것의 근원이고 칼츠의 의도가 올바른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는 건 식상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만, 결국 싸우기로 결심하면서 칼츠를 이겨내는 주인공 일행의 묘사는 흡사 절대악에 맞서는 의지의 표상 같습니다.


문장 묘사는 감정적 서술의 절정을 맞이하고 전개는 그에 부합하게 열기를 띠어가는데, 작가의 작중 해명에 납득해주냐 마냐의 문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싸움에서 끝내 캐릭터의 일관성까지 고조되는 감정선에 묻히고야 말았다고 느꼈습니다. 죽도록 사랑한다던 프레이는 람필을 애걸하기보다 포기해버리고 극악무도한 우두머리였던 소서란은 차마 팔다리 자른 샤를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칼츠에 대한 살의를 불태웁니다.


특히 바로 얼마 전까지 동생의 죽음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천제에게 구걸했던 소서란이 칼츠가 동생을 살려주겠노라 하자 거짓말임이 분명하다며 그게 가능하더라도 기만하지 않기 위해 안 살린다는 둥의 소리를 하는데, 얼마 전 느꼈던 비애가 무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레오네와 칼츠는 누가 더 철학적으로 옳은지 싸우면서 떠들죠.


멸망한 세계는 모두에게 가혹한 생존 방식을 강요하고, 주인공 일행은 강요 당하는 걸 넘어서서 그 약육강식을 행동 양식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옳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고 죄없는 군인들을 마구 학살하면서 시체로 되살려내는 소서란에 동조해서 재앙을 확대시키죠. 꼭 그것만이 아니라도 일행 스스로도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일행에 대한 서술은 레오나에 대한 진, 일행의 서로에 서로에 대한 애정을 부각하면서 어떻게든 서로를 위해 싸워나가는 일행을 말 그대로 ‘주인공’스럽게 그려내기 때문에, 반대로 말해서 그런 그들의 감정선은 전개에만 합치될 뿐 이전까지 보여줬던 캐릭터로서의 일관성이 다소 매몰된 느낌이 듭니다. 거기다가 사최매와 달리 일행에게 주어지는 비극은 소서란의 것을 마지막으로 극복 불가능한 비극이라기보다는 어떻게든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이겨낼 수 있는 역경일 뿐입니다. 란필이 차라리 소서란만한 감동과 함께 죽었다면!


인간찬가라고 한 이유를 이젠 아시겠죠. 그것도 한계를 갖을 수밖에 없는, 매우 모순적인 인간찬가입니다. 어차피 개새끼들과 개새끼들이 맞붙는 셈인데, 구태의연한 해피엔드보다는 처절하고 비극적인 언더독 싸움이 더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사최매처럼요.


그리고 이러한 모든 과정을 그려내는 문장 서술은 사최매에서보다 더욱 감정적인 경향이 강화되어, 캐릭터의 이야기보다는 감동을 쥐어짜내는 작가의 말소리를 직접 귀에 꽂아 듣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애써 많은 걸 얘기하려 하지 않고 절제된 묘사만으로도 이미 독자는 슬픔이나 감동에 취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요.


결말은 비극이라면 비극인데, 2부를 다 읽어가던 끝에 저는 4억년이라는 예정된 시간에 좀 안심하게까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긴 세월만은 어떻게 꿉꿉한 식으로 극복되지 않겠지 하고요.


*


사실 이 정도로 긴 사족은 반대로 그만큼 아쉬움이 컸다는 거고, 아쉬움이 컸다는 건 그만큼이나 재밌는 소설이었다는 걸 반증합니다. 그저 그렇게 봤다면 쓰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흠결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 감상은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개인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제 감상 역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입장을 담았을 뿐이지 실제로 서술 방식의 전환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글을 쓰면서 우리는 작가의 개입이 없어야 한다고 배우지만, 장르소설은 선생님이 채점하는 글짓기 과목이 아니라 시장 성적으로 채점되는 글이니까요. 결국 독자 한 명의 감상에 불과한 사족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서술체로 좋은 인기를 거둔 소설을 많이 알고 있죠. 그런 면에서 작가가 거쳐온 변화는 이런 데서 좋다 나쁘다 하기보다 차기작의 성적으로써 성공적인지 아닌지 가늠되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장르소설은 작가가 만들어낸 하나밖에 없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가 다른 데서 볼 수 없이 독특하고, 캐릭터는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심지어 길기까지 하다면 오랫동안 그 안의 인물들과 같이 활보한 만큼 깨어나는데 후유증이 생길 겁니다. 멸망한 세계의 사냥꾼은 그런 후유증을 주기에 충분한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사족과 다름없는 짐덩이를 거느리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되더니 추천사에도 제법 긴 사족이 달렸습니다. 후유증을 겪은 지 너무 오래 된 분, 재밌는 소설을 읽었다 하는 만복감에 젖고 싶은 분은 멸망한 세계의 사냥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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