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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43 성민영
작성
17.11.25 14:38
조회
4,158
표지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중·단편

완결

견마지로
연재수 :
75 회
조회수 :
620,197
추천수 :
23,140

미리니름 있습니다.


 유사 이래로 위정자들은 암살자로부터 목숨을 위협받았습니다. 대부분은 그 시도가 좌절되었지만 어떤 이들은 목표를 이루었고, 때로는 이것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군주들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경비를 강화했고 암살을 시도한 이들에게는 반역의 죄를 물어 가혹하게 처벌했습니다. 한 예로 프랑스 루이 15세에게 칼을 휘둘렀던 다미앵은 무자비한 고문을 받고 처형되는데, 미셸 푸코는『감시와 처벌』에서 형장의 모습을 아래와 같이 묘사합니다.


 손에 2파운드 무게의 뜨거운 밀랍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 앞에 사형수 호송차로 실려 와, 공개적으로 사죄할 것. 

(중략)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 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

  

한데 암살을 시도한 이들에 대해 동서양 사가(史家)들의 시각은 다소 차이가 났습니다. 로마의 종신 독재관 카이사르를 살해한 브루투스의 이름은 오욕으로 뒤덮였고 그의 목표와는 다르게 로마의 정체(政體)였던 공화정은 쇠퇴하고 황제가 통치하는 제정이 시작됐습니다. 사가들에게 카이사르는 영웅으로 기억됐지만, 브루투스는 그저 역겨운 배반자일 뿐이었습니다.


 반면 동양의 사관들은 명분을 가진 암살자들에게 비교적 너그러웠습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그들에게 자객(刺客)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붙여 열전으로 편찬했습니다. 열전은 당대의 명신이나 존경할만한 자들이 기록되는 공간이며 이는 『사기』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백이와 숙제, 오자서, 손무 등 오늘날에도 여전히 회자하는 이들의 행적이 이곳에 적혀 있습니다. 자장(子長: 사마천의 자)은 이들과 자객들을 동일한 위치에 놓음으로 그들의 넋을 기렸습니다.


「자객 열전」에 기록된 사내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형가일 테지만, 예양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인물입니다. 그는 춘추시대 진(晉)의 명숙 지백을 섬겼습니다. 지백이 조ㆍ위ㆍ한 세 가문과의 다툼 끝에 목숨을 잃자 예양은 조 씨의 종주 조양자를 암살하기로 합니다. 처음엔 뒷간으로 숨어 들어가 일을 단행하려 했지만 발각됩니다. 이후 적에게 들통난 외양을 숨기기 위해 얼굴에 옻칠하고 숯을 삼켜 목소리를 바꿔 다시금 암살을 결행하려 했습니다. 그는 아래와 같이 읊으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이를 위해 치장한다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견마지로 작가의 『추구만리행』은 탐관오리를 쫓으며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과 협객들의 이야기입니다. 대명(大明)의 천자 가정제가 좌도방문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자 간신 내각대학사 엄숭이 정국을 장악하여 전횡을 일삼습니다. 엄숭의 심복 좌도어사 강철경 역시 간신배의 전형으로 자신을 탄핵하는 이들에게 누명을 씌어 멸문시키고, 사냥터를 만들기 위해 성민들을 내몰며, 고리대금업으로 빈자들의 고혈을 빨아 먹습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한림원 수찬 이여징은 목숨을 걸고 황제 앞으로 나아가 읍소로 탄핵합니다. 

 “좌도어사 강철경이 근 십년간 황상의 이름을 가증스레 참칭하여 형장으로 보낸 충신이 예부상서 유소문과 시강 동성평을 포함하여 기십이요, 관직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하고 죽은 유학이 백여 명이니, 그 식솔들은 이름을 거론할 엄두도 안 나옵니다. 폐하! 이에 한림원의 학사들을 대표하여 수찬 이여징! 감히 간언하거니와 좌도어사 강철경과 호부시랑 백기령을 당장 삭탈관직하고 합당한 죄를 물어 성조의 위엄을 세워 주옵소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낡은 구문이 들어맞은 것일까요, 천자는 총기를 잃었다는 세간의 평이 무색하게 이여징의 청을 받아들입니다. 호부시랑을 참(斬)하여 저잣거리에 목을 내걸고, 좌도어사를 삼천리 유형에 처합니다. 엄숭은 자신의 목도 달아날까 두려워하며 차마 이들을 두둔하지 못합니다. 사대부들과 백성들은 천자를 칭송하고 정의가 바로 세워졌음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런 환호성은 강철경이 유배지로 향하는 날 참람함으로 바뀝니다. 그는 대명률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형을 떠나는 길에 식솔 수십을 대동하고, 가마를 타며, 은자를 지참하여 유람이라도 가는 양 호화로운 행태를 보입니다. 유배지 역시 색향으로 유명한 소주로서, 엄숭의 제자가 지부로 있는 곳입니다. 이에 분개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호위들이 한 상인을 본보기로 잔혹하게 때려죽임으로서 이들의 입을 막습니다. 강철경을 비판한 이여징은 가족들과 대들보에 목이 메달린 채 발견되지만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믿는 이는 없었습니다. 시세를 읽는 모리배들은 되려 강철경을 찬양하며 떡고물이 떨어지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볼 수 없는 이들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거부 천일전장주 동군평은 황제께 참언하다 강철경의 모함으로 되려 목숨을 잃은 아우 동성평의 원한을 갚고자 노독당 기유태를 청합니다. 반경은 자신에게 부친과 의부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간청하는 매씨 남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이여징의 벗 하무린은 친우의 넋을 달래기 위해 오랬 동안 잡지 않았던 검을 다시 품습니다. 협객들은 의를 행하고자 강철경의 뒤를 쫓습니다.

 사마천은 『사기』「유협열전」에서 협객들을 다음과 같이 평합니다. 

 지금의 유협()들은 그 행위가 반드시 정의에 들어맞지는 않지만 그 말은 반드시 믿음이 있었고, 그 행동은 과감했으며, 승낙한 일은 반드시 성의를 다했으며, 자신의 몸을 버리고 남의 고난에 뛰어들 때에는 생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고, 그 공덕을 내세우는 것을 오히려 수치로 삼았다.

 정(正)과 사(邪)의 경계가 혼탁해지고 의로움은 땅에 떨어진 시대에도 여전히 협(俠)을 행하는 이들은 남아 있었습니다. 문(文)으로 협을 실현하려는 협객들은 비정하게도 목숨을 보존하지 못했고, 몇몇은 때를 기다린다며 의기를 꺾었습니다. 그리하여 무(武)를 통해 협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이들만이 남아 뜻을 이루려 합니다. 개를 쫓아(追狗) 만릿길을 마다하지 않는(萬里行) 협객들의 무협(武俠)이 여러분의 가슴을 다시금 두방망이치게 할 것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덧. 『사기』의 번역은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 인용했습니다.


Comment ' 23

  • 답글
    작성자
    Lv.43 성민영
    작성일
    17.11.29 18:32
    No. 21

    정성 어린 답변 감사합니다. 글 전반부가 암살에 대한 동양의 인식이 타 문화권의 그것과는 상이하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의도였고, 역사에 관심없는 이들도 알법한 동서양의 대표적인 암살 사례를 꼽아보려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적절치 않은 예시가 되어버렸네요. 다시 한번 지적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1 어둠의그림
    작성일
    17.11.30 01:19
    No. 22

    와... 대박.... 이 작품... 무협 장르에서 이런 수준의 글이있었다니...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9 취검
    작성일
    18.04.18 22:47
    No. 23

    정말 대단한 필력의 추천사입니다. 물론 추천해주신 작품도 이런 멋진 추천사가 어울리는 대단한 작품입니다. 바로 이것이 무협이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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