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카타야마 쿄이치
작품명 :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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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소설이 베스트가 되어야 했을까?
베스트가 되어야 할 대상이 이러한 것일
정도로 남녀간의 만남에 있어서
그 인연의 비극자체가 셀러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조금은 시대와 맞지 않는 이야기.
우리들 주변에 있는 일상을 비극자체에
끼워 맞추어야 하는 그 비틀림의 부정확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 자체가 영화적인 느낌
그 이상으로 맞추어지기 힘든 남는 것 없는 이야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인류의 사랑에 대한 거창함을 부르짖건, 화려한 사랑이 주는 색체의 미학에 휘둘리는 사람들이건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 있는 아름다움 그 이면에 우리 속에 갇힌 동물들처럼 관조의 대상이 되는 소설속의 화자들은 비주얼의 대상이 되어 서서히 희생당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뿐이다.
주인공은 사랑하던 여자친구를 잃은 고교 2년의 소년. 소년은 죽은 여자친구의 부모와 함께 소녀가 끝내 가지 못했던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을 나서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소녀와 사귀게 되었던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과거의 시점에서 소년의 담담한 회상은 이어지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만큼 어디서나 있는 어린 연인들의 돌발행동처럼 짖궂은 장난, 그리고 추억여행..하지만 어리다는 면에 걸맞지 않을 영화 [러브스토리] 의 이야기처럼, 정말로 소녀가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소년을 위해서 스스로만을 마음속으로 천천히 죽여갔던 모습등 나이 어린 연인의 성숙함이라고 보여지기에는 믿을 수 없는 순수한 스크린의 연속은 보는 이들을 결국 눈시울 짓게 만들어 버린다.
# 성숙함인가? 순수함인가?
그 차이일까? 아쉽게도 국내의 서평과 일본 내에서의 서평 중에서 딱히 단점을 꼬집어 내는 서평이 없었다는 점에 의구심을 품어 보고싶다. 혹자들은 "젋은 사람들이 얼마나 책을 보지 않으면 이러한 글을 보면서 감동을 느낄까?" 하는 평을 내리기도 하지만. 일단 이 작품으로 인한 메리트를 세세히 따져보자면, 객관적인 시점에서 이 글이 묘사하는 그 아름다움의 색채라는 것은 때로는 물 흐르듯 잔잔하게, 때로는 파도치듯 격렬하게 그러면서도 절대로 날카로운 피크(peak)를 보이지 않는 흐름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잔잔하면서도 유동적으로 뒤흔들어 버리게 된다.
이 점에서 보여지는 이 작품의 위력은 바로 일본인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두드러지는 [지루함] 이라는 단점을 상당부분 해소한 데에 있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바라보는 시각적인 면과 한국인들이 바라보는 시각적인 면이 일치한데에 대해서 독자의 눈으로 충분히 만족할만한 만큼의 성과! 이것은 이 작품이 이루어낸 공동의 가치인 동시에 앞으로 한, 일 양국의 작가들이 필히 짚고 생각해 보아야 할 포인트를 제시하기도 하였다는 점에 그 우수성을 인정해 주고 싶다.
# 디메리트는 바로 다음과 같다. "비극의 상술"
"순수하잖아요! 라고 말하면서 순수적인 색채를 더럽히는 상술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자면 [순수하기 때문에 순수함을 지켜줘야 한다는] 입장의 고수인가? 세상에서 지켜줘야 할 것이 소설 속의 화자들의 순수함에 불과하다면 이 소설을 너무 광범위 적으로 호응된 붐에 편승한 상태로 바라보지 말 것을 당부 드리고 싶다.
왜 이 소설이 베스트가 되어야 할까? 공개된 많은 서평과, 그리고 일본 내에서의 반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소설의 붐에 대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는 반응" 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작필하신 작가의 의도 자체를 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 카타야마씨의 의도 자체를 의심할 겨를은 없다, 다만 이 작품 자체의 인기를 가지고 많은 언론과 문학지에서는 [이번의 호응에 .. 박차를 가해서 띄워보자] 라는 느낌이 지나치도록 과하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일본 이야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본내의 사랑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왜색 적이라는 저질스러운 단어로까지 불리우고 있으며, 그것이 많은 한국인들에게도 각인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편견은 문화개방 이후 스스러져 가는 분위기라고 하지만 지금까지도 수많은 한국인들은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일본 문화를 바라보고 있음은 참고할만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일본에서 나왔으니 그래 처음에 식자층이 보인 반응은 가히 충격에 가까운 심조였다.
[일본도..이런 연애관을 가진 문화가 있었나?] 하는 의문! 하지만 바로 볼 것 중의 하나는, 일본이 가진 연애관의 문화는 다분히 가공적이라는데 있다, 특정한 이벤트의 강조에 따른 우연적인 만남이 공통적으로 자리잡으며 그렇게 일본의 연애관이 담긴 문화는 소설이건, 애니건, 영화건 그렇게 만들어져 왔을 뿐이다.
그들의 문화관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 역시 없지만, 우리가 붐이라는 현상 하에 바로볼 점은 바로 [이러한 사랑이야기의 비극을...관조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독자의 입장이라는 점, 그 입장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언론의 과장 하에 마치 젊은이들을 위한 연애관의 지침서인양 [안보면 후회할 것이다] [꼭 봐야 한다] 라는 식의 이벤트와 홍보는 오히려 작가가 의도한 원작의 가치를 상실시키는 억제제로 자리잡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 순수함의 억지 맞추기
알고 보면 여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성인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 보았을 스스로에 대한 첫 사랑의 순수함을 바탕으로 그 순수한 백색의 일상을 백색의 페이지에 그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하얀 눈 꽃 속에서 단 둘만의 몰래여행을 떠났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무균실에서 차차 자신을 죽여가며 서로의 본질을 바라보게 되는 어린 연인, 그리고 흩날리는 영혼을 상징하는 것일까? 비로소 사랑의 구속에서 원하지 않는 자유를 찾게 된 아키를 하늘에 뿌리는 장면까지.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모든 사랑의 베이스는 여기에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Kansas 가 부른 Dust in the wind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흩날리는 한 계절의 양분으로 자연에게 돌아간 아키가 뿌려지는 장면이 담긴 페이지를 끝내 넘길 수 없어서 이유없는 슬픔에 가슴을 부여잡게 만든 순수 그 끝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은 과연 판도라의 상자 속에 남아 있는 희망이라는 단어로 설명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억지 맞추기의 언밸런스에 쓰러진 평론가들의 눈 역시 이 부분에서 흐트러지고 [아..명작] 이라고만 평가하며 입방아를 빻아댈 것인가? 필자는 그러한 시각을 지니지 않아서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는 [상당히.....현상에 대해서 차가우시군요] 라고 평가되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 글은 독자들이 선택했다는 점이지만, 이것이 결국 붐으로 이어지면서 마치 현실세계의 사랑이라는 철학 자체가 이 글로 인해서 다시 씌여졌다는 납득하기 힘든 평! 겉으로만 소설을 보고 소설 속의 문자나열에 포로가 된 사람들의 들뜬 감정에 의해 씌여진 찬사. 등등, 이러한 것들이 정말로 보아야 할 소설의 배경을 가리는 작용을 하는 점은 매우 유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서 더 나아가 작가의 설정을 살짝 침범해서 비틀어 보면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왜 이 소설이 이 시기에 베스트가 되어야 했을까?" 라는 점이다. 그렇게 모델로 삼고 싶은 것이 비극의 순애보인가? 이루어지지 못할 결실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이 순수함의 상징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말이다.
[베스트가 되어야 할 대상이 이러한 것일 정도로 남녀간의 만남에 있어서 그 인연의 비극자체가 셀러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조금은 시대와 맞지 않는 이야기. 우리들 주변에 있는 일상을 비극자체에 끼워 맞추어야 하는 그 비틀림의 부정확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 자체가 영화적인 느낌 그 이상으로 맞추어지기 힘든 남는 것 없는 이야기.]
필자는 이렇게 오늘 교묘하게 이 소설을 비틀어 본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작품 자체를 훼손하는 선에서의 비틀림이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가리워져 있는 배경을 생각해 보라는 차원에서 씌여졌다는 점만 알려드리며 이 소설이 알려지게 된 배경에 대해서 언급해 보는 것으로 "이 소설에 대한 비평 그 비틀림" 편을 끝내고자 한다.
이 소설의 발행 년도는 2001년이지만, 처음에는 위와 같은 이유들(필자가 생각했던)로 인해서 평론가들에게 버림받은 책을 살려놓은 것은 바로 책방 점원들이었다고 한다. 물론 일본에서는 대형 서점 점원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책에다 간단한 추천문을 손으로 써서 옆에 붙여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이러한 과정에서 한 지방서점으로부터 출발, 결국 일본 전역을 휩쓸게 된!! [평론가 아닌 독자들이 만들어낸 베스트셀러]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최초 추천문에는 바로 "좋아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왜 가슴아픈 것일까. 당점포의 조용한 롱 셀러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발간 3년이 지나 게임기에 물든 일본의 청소년들을 책으로 돌아오게 했다는 일본내의 긍정적인 평가가치, 그리고 그 기준이 국내에도 여과없이 들어와 부분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작용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작가 카타야마 쿄이치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펴냄 : 2003년 작품 <수입신편>
저자 : 카타야마 쿄이치
역자 : 안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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