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건아성
작품명 : 은거기인
은거기인은 작가의 감성적인 표현력이 뛰어납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인 것 같습니다. 잘 썼지만 아쉽게도 이야기 구도는 너무 감성적이고 이상적이었습니다.
에피소드들을 읽으면 읽을 수록 점차 감정이 쌓여 더 큰 감동을 이뤄내길 바랬는데 에피소드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독자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이야기에 속도감을 붙인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하나 하나에 마침표를 찍어 감정을 마무리 짓고 가는 듯 했습니다.
주인공의 과거나 겪게 되는 사건들이 함께 울분을 터트리거나 혹은 타인에게 분노를 일으킨다거나 하는 점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평범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난에 휘말려 아버지는 차출되고 어머니는 병으로 잃고 자기 자신도 굶어 죽을 뻔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연이 부드럽고 감성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후에 아버지의 실종과 관련된 이를 만나게 되는 상황에서도 독자는 누구에게 책임을 돌려 울분을 터뜨려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사부가 앓게 되고 자기 자신이 심각한 부상을 입는 상태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복수를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부와 더 강한 감정의 끈으로 연결되게 만들어 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감성적이기에 분노의 대상을 만들어 휘몰아 칠 수 없고 너무도 판단이 올곧은 주인공을 따라 생각해야 하는 독자로서 그냥 그러한 사건이 있는가 보다.. 누굴 미워할 필요가 없나 보다.. 하며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건 스토리를 짜는 작가 맘이고 그 강도를 결정하는 것도 작가이니 문제가 될 부분이 아닙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하나의 올바른 결론, 방향, 사상 등을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려 하는데 이것을 현실성을 가미해 풀어나가기 보단 이상화된 방향으로 등장인물들을 유도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추상적인 느낌이라 읽는 이에 따라 그 정도가 확연히 차이날 것입니다. 사실 이 소설과 같이 감성적인 주제를 풀어나간다면 누가 읽느냐에 따라 피할 수 없는 지적입니다.
때문에 제 맘에 들지 않은 진정한 이유는 제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조미료가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배경이나 실력 혹은 특정지을 수 없는 비밀을 숨기지 않는 다는 것은 결국 세상에 대한 주인공의 노출 정도을 결정하는 작가의 맘이겠지만 감추는 것 없이 모든 것이 다 드러난 주인공은 멋있지 않습니다. 존재와 그의 무공 모두가 세상에 너무나 빨리 드러났기 때문에 주변인들의 의도나 행동에 휩쓸려 움직이게 되었고 놀래켜 주는 맛도 자연히 빠지게 되었습니다.
감춰진 것이 있어야 사건이 벌어져도 그 추이를 상상할 맛이 나고, 다른 등장인물들은 모르는 사실을 주인공과 독자 둘만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에서 나오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봅니다.
연애할 때도 상대방에 대해 너무 알면 식상해집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에서 최초로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해서 모나리자의 얼굴의 윤곽을 흐릿하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나리자를 감상하며 그 안에서 수만가지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세상이 속속들이 알고있는 주인공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한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뭔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고 주변이 그를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작가가 사건의 진행을 결정하기 나름이겠지만 아쉽습니다. 삶을 살 때 자기 소신 대로 자기가 주도하여 맘대로 사는 게 오히려 좋습니다.
최근 각광을 받는 주인공들처럼 자기 이득이나 자기 인생철학을 바탕으로 위선없이 떳떳하게 현실적이며 계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 작품의 주인공이 멍청하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남의 의도에 끌려다니지 말고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 의도대로 남의 행동을 유도하는 그런 재기넘치는 선함이 있었다면 더 읽으며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선인곡 위치를 들켜서 타인이 찾아오고, 악한 이의 공격을 받고 이 때문에 다쳐서 사부까지 휩쓸리고, 그를 이용하고자 하는 이가 그의 앞까지 찾아오고, 사부가 시키니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상황을 주도 하지 못한 채 시키는 청부업을 하다 돌아오고, 가만히 있다보니 신권의 도전을 받고, 이제 세상에 알려져 주목을 받으니 세상은 그를 어떻게 이용해 먹을지 생각하는데 그는 꾀가 많은 것도 아니니 세상에 참 많이 휩쓸리겠구나 하여 한숨이 나왔습니다.
주인공에게 무언가 흥미를 끌만한 특별한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는 벙어리라는 사실은 주인공이 세상과 대화하는 방식을 색다르게 만들었지만 그것이 어떠한 에피소드의 소재가 되어 큰 재미를 창출한 것도 아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혜광심어를 통해 상당부분 극복하게 되었으며, 무공에 있어서도 그 깨달음을 통한 강함을 제외하고 그 발휘의 특이성이나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1권 초반부터 상당히 강해지기 때문에 이후 더 강해진다 할지라도 타인이 보기에 괄목상대하여 놀라줄 것 같지도 않았으며
성격도 꽉 막힌 성격이라 가려운 곳 긁어주는 애교 있는 녀석도 아니니 두근두근 지켜볼 만한 부분이 적었습니다.
꼭 제가 위에 열거한 제 취향에 맞춰서 쓰라한다면 전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작가 맘이니까요.
하지만 작가의 개성대로 작가 마음대로 쓰면서도 저러한 것들에 있어서 제 취향을 약간만 달래주었다면 충분히 이 작품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무리 좋은 철학이나 생각을 이야기 한다 할지라도 쉽고 재미있게 접근해 주지 않는다면 손쉽게 떠먹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장르소설에 저런 게 없으면 마치 조미료 빠진 음식을 먹는 듯한 밍밍함을 느낍니다. 제가 인스턴트 음식을 못 끊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저는 이제껏 이런 감성적인 스타일의 소설을 좋아했는데...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 작품들이 선량한 주인공을 설정하여 일부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할지라도 그 반대급부로 또 다른 재미를 창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작가의 풍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게 제 취향과 맞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1권을 다 읽은 후 멈췄습니다.
하지만 밑에 다른 감상글에서 이야기된 내용과 같이 은거기인이란 작품은 처음의 구상대로 계속 써 나가야 합니다. 저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은 놓치더라도 위와 같은 조미료 없이도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에겐 더 큰 어필을 할 수 있을 것이 틀림 없으니까요.
게다가 지금에 와서 수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정할 필요도, 이유도 가치도 없습니다. 소설가는 자기 소신대로 쓰는 게 최고입니다. 독자가 뭐라하건 다 필요 없습니다. 세상엔 이런 독자 저런 독자가 많아서 그들 다 맞추다간 삼천포로 빠집니다.
하지만 다음 작품을 쓰셨을 때 저와 같은 취향을 가졌을 독자 생각이 문득 나신다면 참고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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