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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성자
윤무(允武)
작성
07.06.19 05:28
조회
2,072

작가명 :

작품명 : 장천무한

출판사 :

1.

두 권씩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장르 소설들을 읽다 보면, 읽고 돌아서면 제목을 잊는 일이 꽤 된다. 어디 제목뿐이랴. 주인공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주인공이 왜 주인공인지, 그 주인공이 어디서 뭘 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 일도 있다.

그런 류流의 소설을 읽으면 남는 것이 오로지 '코메디'가 아닌, '콩트'나 '개그' 식의 짤막짤막한 '웃기기 연출'인 경우가 많다. 아, 뭐 솔직하게 말하자면 개인적 취향의 문제인지도 모르지만 최근 읽은 소설은 거의 모두 그랬다.

그런데 이 소설, <장천무한>은 돌아서서도, 심지어 집에 도착해서도 제목을 잊지 않았다. 왜?

2.

얼핏 겉으로 보이는 얼개만 따라 가면 <장천무한>은 강한 주인공이 "나만 믿고 따라오면 너희에게 행복 있으리니!" 라며 박살 내고 때려 부수는 글 같기도 하다. 그러나 묘한 곳에서 그러한 글들과의 차이점을 드러내니, 이것이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비록 3인칭 소설이라 하나, 그것은 작가가 모든 등장인물의 내면에 들락날락거린다는 의미와 같지 않다. 누군가의 내면은 묘사하고, 또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 서술을 한다. '전지적 작가가 관심을 두는 인물'을 누구로 하여 어떻게 연출하느냐는 작가의 능력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이 <장천무한>은 주인공에게 '전지적 작가의 관심'이 두어지지 않는다. 주인공 장천이 무슨 생각으로 그리 행동하는지, 왜 그러는지, 저 행동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독자는 '행'이 아닌 '행간'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비록 작가가 행간에 놓아 둔 일종의 힌트가 살짝 돌린 수도꼭지 물방울 떨어지듯 하기는 하지만)

어라? 그런데 특정 인물에게 전지적이든 무엇이든 작가가 관심을 두지 않는 식의 글.. 이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어디더라?

3.

추리소설.

작가와 독자의 머리싸움이 벌어진다. 작중 탐정 및 경찰은 일종의 대리인일 뿐이며 허수아비일 뿐이다. 범인과 경찰의 대결이 아닌, 작가와 독자의 대결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대결이 가능한 것일까? 글로 쓰면 누가 범인일지 빤히 보일 터인데.

주로 쓰이는 방법이 위에서 언급한 '관심 두지 않기'이다. 범인이나, 작가가 범인인 듯 보이고 싶어 하는 인물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버리는 것이다. 범인일 듯한 인물들에게서 직접 '떨어지는 떡고물'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행간과 행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읽고, 속고 속이는 치열함이 발생하게 된다. 작중 경찰보다 독자가 전혀 우월한 위치에 서지 못하니 경찰에게 이입하여 그의 해결 방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것을 깨뜨려서 논란과 찬사를 동시에 불러 일으켰던 작품의 하나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애거서 크리스티)'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그 소설 자체가 한 작가의 수기로, 이른바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1인칭 관찰자인 '화자'가 '범인'이다. 작품 종반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모든 관심이 '화자'에게 쏠려 있음에도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속여낸 것이다.

4.

조금 쓸데 없는 이야기로 돌았다.

아무튼, 이 <장천무한>도 주인공인 장천에게서 작가가 고의로(혹은 계획적으로) 관심을 뺀 듯하다. 외형과 행동의 묘사는 있을 지언정 내면과 인과의 설명은 없다.

오호라! 이것은 추리 무협인가?

5.

물론, 대놓고 '추리'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무슨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며, 범인을 쫓는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그렇다는 소리다)

그러나 주인공일 것임이 분명한 인물에게는 뭔가 이입할 수 있는 건덕지를 주지 않고, 오히려 그 주변 인물들의 입장에서 주인공을 관찰하고 판단하며, 그리하여 주변 인물의 내심에 동화되게 만드는 것. 마침내는 주변 인물들처럼 "저놈 뭐 하는 놈일까?" 라고 중얼거리게 만드는 것. 참으로 추리 소설을 닮지 않았는가?

6.

워워.. 서론이 너무 길었다.

<장천무한>을 살펴 보자.

['영업' 나온 흑산채 산적들 앞에 한 인물이 나타난다. 그냥 길가에 앉아 쉬는 것만 같던 이 인물(주인공, 장천)은 그날 안으로 흑산채의 우두머리 흑산저를 처치하고 두목 자리를 꿰어찬다. 그가 대는 이유는 간단하다. 잠시 쉴 곳이 필요해서. 여기서부터 장천의 본격적인 행보(라고는 해도 산채에 틀어박혀 있을 뿐)가 시작된다.]

라는 것이 초반의 간단한 요약이겠다.

그런데 왜 하필 흑산채였을까? 그냥? 요즘 무협에 무수히 존재하는 '단순하지만 극악한 확률의 우연'?

아니다. 뭔가 있다. 그런데 이 뭔가가 있다는 것을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독자가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등장 인물(주변인물) 중 하나가 혹시 이러저러하지 않을까, 라며 의혹을 제기한 짧은 장면에서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장천은 대체 누구인가? 반로환동한 전대 고수?

이 역시 아닐 것 같다. 무림에서 가장 발이 넓다는 누군가가, 심지어 진짜 전대 고수가 보고도 전혀 정체를 짐작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장천은 아무렇게나 맘에 들지 않으면 때려부수고 살상하는 것일까?

이것마저 아니다. 이것도 등장 인물 하나에게서 의혹을 사지 않았던가. 나름의, 뭔가 기준이 있어서 살상하고 하지 않음을 가름하는 것 같다고.

7.

이처럼 <장천무한>은 독자를 주인공에게서 가장 먼 곳에 떨구어 놓았다.

주인공이 직접 설명하거나 묘사하지 않으니 달리 그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다. 독자는 어쩔 수 없이 주변인물이 주인공 장천을 파악해 가는 보폭에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어떤 원한으로 어떤 기연을 얻어 어떤 방법으로 사는지 모든 것을 다 깨친 상태에서 '언제 화끈하거나 감동적으로 때려 부수는지'만 바라보는 무협 소설은 아니란 소리다.

8.

여기까지 파악하고 나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아, 이거 대여점에선 잘 안 나갈지도 모르겠다.'

한낱 독자일 뿐인 주제에 감히 이런 판단까지 함은 섣부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독자'라는 말로 묘사하는 일부 독자층(이면서도 대여점 실수익의 밑받침이 되는)은 이렇듯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야 하는 소설을 반기지 않을 듯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대세가 '헐리우드식' 아닌가? 화끈하게, 박력있게, 쉽게!

9.

하지만 난 이 <장천무한>이 잘 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조기 퇴출과 같은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 아닌가. 그래야 내가 계속 즐거이 읽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10.

또 잡설이 있었다.

<장천무한>, 감히 일독을 권할 만하다. 겨우 두 권 출판된 것인데 너무 이른 추천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주인공을 파악하기 위한 산보가 무척 즐거울 듯싶어 기대가 된다.

11.

주인공을 작가의 직접적 관심 밖에 두고 진행하는 방식이 일부 독자층에게 "아무 생각 없이 때려부수는 소설이구만!"이라는 말을 하게 할까 두려워 짧게! 써 본 감상글이다.

주인공이 무슨 생각인지 알아 가는 여정.

<장천무한>이다.


Comment ' 5

  • 작성자
    Lv.99 응고롱고로
    작성일
    07.06.19 08:49
    No. 1

    흑흑.....퇴출되면 안되는데.....
    울동네 책방에는 소울리스마스터도 레이가센도...크흑....
    왜 안들보는지.....재밌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10140
    작성일
    07.06.19 09:57
    No. 2

    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장천무한에 대한 추천글이 2-3번씩 올라오네요. 그만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오늘 시험도 끝나는데 장천무한 읽어봐야 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s망망대해s
    작성일
    07.06.19 11:39
    No. 3

    감상란과 비평란 글 어떻게 맞을지 함 읽어봐야 겠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6 秋夜雨中
    작성일
    07.06.20 10:04
    No. 4

    장천무한 읽어보니 역시 재미있더군요.
    특히 저는 2권의 중반에 등장하는 적로군과 만로,
    사마현과 장천의 겨룸에 등장하는 대결에 임하는 고수의 심리상태 묘사가 재미있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곽일산
    작성일
    07.06.20 11:36
    No. 5

    장천무한은 질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요.
    안심하고...대여점에서 빌려볼 수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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