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미카미 엔
작품명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 2
출판사 : 디앤씨미디어
가마쿠라의 한 고즈넉한 마을에 있는 고서점 ‘비블리아 고서당’. 그곳은 누구보다도 깊이 헌책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성 시노카와 시오리코의 가게다. 조용하고 낯가림이 심하지만 책에 대해서만큼은 놀라운 추리력을 보이는 그녀는 손님들이 가져온 한 권의 책에서 사람과 사람의 인연과 비밀을 따스하게 밝혀낸다.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건너간 ‘책’ 그 자체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책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힐링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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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지한 책만 계속 읽다가 오랜만에 가벼운 소설을 읽으니 진도가 주욱 잘 나가는 군요. 사 두고 꽤나 묵혀 두었던 책인데, 몇 시간 안 돼서 다 읽었습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은 일본의 ‘미디어웍스 문고’라는 브랜드로 발매된 소설입니다. 이 미디어웍스 문고는 기존에 라이트노벨을 쓰던 작가들을 기용하되, 좀 더 일반 취향에 가까운 소설로 라인업을 갖춘 시리즈입니다. 당초 컨셉은 ‘라이트노벨을 읽으며 성인이 된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소설’을 목표로 삼았다고 하지요.
라이트노벨의 성립에 영향을 끼친 것들이 대중문학 쪽에서도 서브컬쳐에 가까운 것들(하야카와 SF문고나 8,90년대의 본격 미스터리)이 독자 친화적으로 순화, 융합된 것들이란 것을 생각하면, 여기에서 다시금 성인, 일반 층에 호소할 수 있는 소설로 돌아온다는 시도는 꽤나 재밌습니다.
미디어웍스 문고는 라이트노벨 작가 중에서도 대중적, 혹은 문예적인 성향을 가진 작가들을 기용했음에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정도라고 합니다. 달성 정도가 아니라 100만부 이상을 파는 베스트셀러 시리즈에 게츠구(월요일 9시 황금시간대)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였으니.
제목에서 보이듯, 이 시리즈는 고서점을 무대로 한 추리 소설입니다. 살인 같은 무거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일반인들의 사연을 풀어가는 이야기란 점에서 ‘일상계 미스터리’라고 불리는 부류의 책이죠.
주인공인 고우라 다이스케는 어릴 적 겪은 사건 탓에 책을 읽지 못하는 체질입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예정되어 있던 회사가 갑작스레 부도가 나 백수가 되어버린 신세죠. 함께 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분의 책을 처분하기 위해 들린 고서점. 그 곳의 여주인 시노리코는 할머니가 애지중지 하시던 ‘나츠메 소세키 전집’에 얽힌 사연을 풀어냅니다.
그 이후 몸이 불편한 시노리코를 도와 고서점에서 일하게 된 고우라 다이스케. “사람들 사이를 오간 책에는 내용뿐만 아니라 책 자체로 이야기가 있다”는 시노리코의 말처럼, 고서점에 들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책들에는 저 나름대로의 비밀이 있습니다.
내성적이고 소심하여 사람들과 제대로 이야기도 못 나누는 시노리코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은 눈을 반짝이며 여러 가지 지식을 늘어놓지요. 책을 읽지 못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고우라는 그녀의 곁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과 만나며 각종 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일단 이 책은 라이트노벨을 읽던 사람에게는 ‘일반 소설’로, 라이트노벨을 읽지 않던 사람에게는 ‘라이트노벨’로 느껴진다는 특이한 반응이 있습니다. 읽어보니 이 평가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겠더군요. 기존의 라이트노벨과 달리 이야기 자체가 자극적이지 않으며 인간관계의 묘사가 세심하고 현실에 기반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일반 소설로 보기에는 캐릭터가 기호화 된 면이 있고, 고우라와 시노리코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성적 긴장감(연애?)의 형성법은 일반 소설의 로맨스 보다는 라이트노벨의 색이 느껴지죠. 물론 러브코미디 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연령에 비해 너무 깨끗해 보인다고 할까요.
문장 면에서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점잖아 잘 눈에 띄지 않지만, 묘사보다는 서술에 치우치고 상황 전달에 치중한 간단한 문체는 라이트노벨을 닮아 있습니다. 추리소설이라곤 하지만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본격적인 대중문학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서는 명백하게 가벼워요.
그렇다고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또 ‘책’을 다루는 일상계 미스터리라는 소제 자체도 잘 살리고 있으니까요. 비슷하게 ‘책’과 연관된 미스터리인 ‘문학 소녀’ 시리즈와는 달리 책의 내용 보다는 특정한 ‘책’ 자체에 얽힌 사연을 다루기에 꽤나 다른 느낌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문학소녀는 원작을 작가의 ‘해석’을 거쳐서 다루어야 했단 것과 모든 사건이 특정 ‘원작’에 얽혀야 했다는 점에서 억지스러운 전개도 있었습니다만, 비블리아의 경우는 ‘고서점’이라는 배경 자체가 자연스레‘책’의 이야기로 연계되기 때문에 어색함이 없습니다. 단순한 옴니버스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것뿐만 아니라 고우라와 시노리코 사이의 관계도 계속해서 움직임이 있고요.
개인적으로, 그리고 아마 객관적으로도 ‘고서에 대한 추리’라는 면에서는 1권보다 2권이 더 좋습니다. 2권 쪽이 이야기적 완성도로도 그렇고, 대중 지향적인 면에서 방향도 좀 더 확실하게 잡힌 느낌이었습니다.
1권의 경우 한국판은 문고판을 일반 소설 판형으로 낸 것도 모자라 컬러 일러스트가 삭제되었다고 말이 많았는데, 2권부터는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더군요. 그래도 잘 팔리는 것을 보면 일단 일반 소설 판형으로 낸 마케팅 자체는 성공이라고 보지만, 1권에서도 굳이 일러스트를 뺄 필요는 없었다고 보는데 말이죠. ‘커피점 탈레랑’ 같은 경우 비블리아보다 더 만화 같은 표지임에도 그럭저럭 팔리고 있으니까요.
여러모로 편집이나 책의 형태에 공을 들였던데, 이 부분은 일본판도 그대로인지 아니면 한국판에서 추가된 건지 잘 모르겠군요.
아, 일상계(혹은 가벼운) 미스터리가 요즘 잘 팔리나? 싶어서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검색해 봤습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은 1~3권의 세일즈 포인트는 1만 점 내외.
일상계 미스터리의 대표적 작가인 요네자와 호노부의 책들은 ‘빙과’ 시리즈만 1만을 넘어가고(‘빙과’는 1만 7천)나머지는 500~1500 수준. 노블마인에서 옛날에 나온, 표지가 못 봐줄 수준인 ‘사건’ 시리즈는 아예 100점 수준.
그리고 비블리아랑 비슷한 시기에 나와 어느 정도 인기를 얻은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은 1, 2권 2700 가량이군요.
가볍고 유머러스한 미스터리로 인기를 얻고 있는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책들은 의외로 세일즈 포인트가 낮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가 커피점 탈레랑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수준이고, 나머지는500~2000 내외에요.
디앤씨미디어의 또 다른 책인 시로다이라 쿄의 ‘허구추리’는 1200.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만 놓고 보자면, 일상계 추리가 잘 팔린다기 보다는 비블리아 시리즈가 엄청 잘 팔리는 거더군요. 심지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일반적인 소설보다 훨씬 더 잘팔렸습니다(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7만을 넘어서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지만, 막 출간 되서 한창 마케팅 중인 ‘질풍론도’와 비슷한 수준이죠). 물론 이러한 책들이 일반 서점보다 인터넷 서점에서 더 잘 팔릴 거란 것을 고려해도, 정말 잘 팔렸네 싶습니다.
이러한 서브컬쳐의 발전형으로서의 중간장르 브랜드로 노블엔진 쪽에서 ‘노블엔진 팝’을 내놨죠. 일단 첫 출간작인 ‘만능감정사 Q의 사건수첩’의 경우, 1, 2권 합본이 세일즈 포인트 6000 가량을 찍고 있습니다. 출간 직후에는 포인트가 높게 잡히긴 합니다만, 이쪽도 어느 정도 팔리긴 하는 것 같네요.
ps. 게츠구 드라마는 망했다죠. 하긴 책을 읽어보니 고리키 아야메는 정말 안 맞는 기용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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