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품 자체는 괜찮다고 봅니다.
재밌게도 그 정치성 때문에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거죠.
이문열 씨는 이미 이 때부터 권력에 대해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이 제 마음대로 결론을 냈을 때, 병태의 생각은 어땠을까요?
결국 대세에 따라 힘있는 자에게 빌붙는 것이 삶의 정도라고
배웠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그러진 영웅의 결말은 완벽한 소통부족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절대 권력자 선생. 석대와 나머지.... 심각한 소통불능 상황에서
결국 힘 있는 자가 대세를 주도하게 되죠.
저는 그 결말에서 진실한 해결책은 각 집단과 계층의 소통,
또는 소통을 위한 진실된 노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또한 오늘날 격해지는 정치적 대립을 위한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전 거짓말 안하고 초등학교때 엄석대같은넘이 존재했었습니다.
동네 한가운데에 있는 초등학교(제가 다닐땐 국민학교)였는데
학생수가 많지 않아 1학년때부터 6학년까지 쭉 한반밖에 없었죠.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몇가지 일은 기억에 나네요.
힘약한 친구들 왕따 시키기, 싸움붙이기, 자기 발 실수로 밟은 친구 사과하는데도 뺨때리기, 거짓말로 친구 몰아 붙이기, 우기기는 기본에...
6학년때 아이들 머리가 점차 커지면서 반친구중 덩치큰놈한테 한번 잘못걸려서 열라 맞고는 그후로 잠잠해졌죠. 여자중에도 엄석대가 있었는데
시험지 빼돌려서 반에서 1등하기, 미술시간에 잘그리는 여자아이한테 대신 그려달래기,자기권력?보여준다고 길거리에서 같은반 여자친구 아이 뺨때리고 자랑하기 , 반친구 왕따시키기등 여왕처럼 군림했죠.
뭐 다커서 술자리 가지니 비리가 하나둘 까발려 지더군요. 근데 그 여자엄석대가 그랬다는건 6학년이 다되가도록 남자애들은 몰랐다는거...
대부분 남자애들이 그 여자애를 좋아했죠. 지금은 전문대졸업하고 6년째 백조생활로 동네구멍가게하는 엄마돕고 있더군요.
저도 그 소설 읽은 후 한동안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다시 그 소설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석대나 선생 혹은 병태 보다는 그 외의 반애들의 반응과 이문열의 행보를 연관시켜 보는 것이 보다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합니다.
병태는 석대의 독재적 행사에 대항하면서도 다른 친구들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합니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이미 이문열은 여기서 시민들을 경시하는 패배주의를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위의 분이 6학년 담임이 386이 아닌가 하셨는데 저는 미국으로 봅니다.
6학년 담임 뿐 아니라 5학년 담임도 그냥 미국입니다.
미국의 입장이 바뀌었을 뿐 자력으로 된 것은 없다 즉 시민 스스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헛짓에 불과하고 미국에 읍소해서 미국의 입장을 바꾸는 노력이 현실적이라는 논리입니다.
지배의 형식만 다를 뿐 일제때나 해방후나 박정희 치하나 무엇이 바뀌었냐는 것이죠.
무서운 패배주의고 노예근성입니다.
그나마 병태는 반항하려는 노력을 했으니 낫지 않느냐는 말은 변절한 항일지사들이 쓸 말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문열 본인의 모습에 더 가까워져 가고 있습니다만...
하필 이 책은 1987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합니다.
소설과 다르게 그해에 우리는 자력으로 민주화를 일정부분 달성합니다.
그로부터 20년 지금 반동세력이 집권하고 있지만, 저는 회광반조라고 봅니다. 변혁이 있었던 역사상 어느 시기에나 이런 반동은 있었으니까요.
이문열의 치졸한 패배주의와는 반대로 그 민주화를 우리손으로 해냈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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