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고룡의 소설 중 백미로 많은 이들이 <초류향전기>나 <육소봉전기>를 들지만 전 이 <다정검객무정검>이야 말로 고룡이 남긴 소설중 제일이라 생각합니다.
설소하의 비현실적인 악함의 경우 복우번운님의 말씀대로 두번의 결혼이 작용했던 것으로 압니다. 어느 소설의 번역후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의 외모와 불행한 결혼 생활이 여자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했고 그에 대한 감정이 소설에 많이 표현되었다라고 하던 걸 읽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고룡의 작품 중 악녀라고 하면 <다정검객무정검>의 설소하와 <원월만도>의 온벽하(?)-맞는지 모르겠네요-가 가히 쌍절이라 할수 있죠.
그렇군요. 저 자신도 본토 무협평론쪽에는(확실히 중국 정도 되면 평론이라고 해야겠죠) 자세히 아는 바가 없고 중국무협사나 섭홍생 등이 쓴 글을 토대로 주로 인지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중국무협소설을 크게 개화기, 전성기, 쇠퇴기로 본다면 이 시기를 정점으로 김용과 양우생 그리고 와룡생과 고룡을 주로 언급했었거든요. 각 작가의 장점이 눈에 부시는, 무협소설의 정신을 살리고 있으면서도 나아가는 바는 달랐으니까요. 기기묘묘하다고나 할까. 온서안이라면 무협소설의 쇠퇴기에 등장했고 못 썼던 장르가 없었던 천재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몇 본의 소설이 소개되었죠. 저는 온서안이 그런 평가를 받는다면 후대로 지나갈수록 평가는 새롭게 매김 하기 마련이고 온서안의 무불정신이랄까. 그 점을 높이 산 것이 아닐까 싶어요. 대단히 정력적이면서 그네들의 기풍에 한치의 모자름도 없는. 보통 중국무협소설이 고소설적 형태에서 근대소설의 모습을 형성해서 인기를 누렸는데 온서안은 무협소설이 완전한 현대소설, 모더니즘으로 가길 원했고 그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그네들이 추켜세우는 게 아닐까 하고요. 무협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형식성을 띤 상징적인 작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말이죠. 상대적으로 와룡생의 그것은 아무래도 선구적이긴 해도 낡은 것으로 비치죠. 게다가 다른 셋과 비교해서 누구보다도 무협의 전형성을 갖는진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그 외에 볼 게 없다는 것을 약점으로 볼 수도 있겠구요. 한편으로는 약간의 모순도 느낀답니다. 김용과 양우생만 해도 서로가 겹쳐지는 면이 많기 때문에 빠지게 된다면 양우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아마 아실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옛날 시공사에서 중국무협소설을 내는 프로젝트를 가동중이었죠. 국내 독자 대부분이 중국무협소설가라면 김용과 양우생, 와룡생과 고룡 정도만 알고 있는 터였고 그보다 중량감은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실력있는 글을 소개하자는 취지였는데 모용미의 십팔도객과 유잔양의 천괴성이 나왔었죠. 당시 좌백님과 진산님이 총괄하고 있었는데 시공사가 장르 사업을 접으면서 사대명포와 칠종무기 같은 원고가 묵혀 버렸답니다. 물론 칠종무기는 아이무림에서 수모음희님이 번역해 내시고 있지요.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군요. ㅋ
역시 좋은 작품은 그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국내 무협계에서도 좋은 작품이 계속해서 나오길 바랍니다.
지적하신대로 제 아이디는 황역의 복우번운에서 따왔습니다. 복우번운의 주인공인 낭번운은 비도탈명의 이심환과 아주 유사한 성격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했던 구룡쟁패의 녹림캐릭터 아이디도 낭번운입니다. 애착이 가는 캐릭터죠.ㅎㅎ
진정한 적수는 마음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낭번운의 적수중 한명인 독수 건라가 낭번운의 사문내력을 물으면서 한순간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명장면(제 나름대로)이 나옵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장강의 물결에 눈길을 던졌다. 하늘위 밝게 비치는 달빛 아래, 강물은 수천만 가닥 은빛 뱀이 꿈틀꿈틀 몸부림치듯 일렁거리며 하염없이 흘러 사라지고 있었다.
"낭형은 십팔 세 되던 해에 당시 불가일세(不可一世)로 손꼽히 던 흑도의 고수 십여 명을 잇따라 격패시키고 노교방의 기틀을 세워 그 때부터 명성을 떨쳤다고 들었소. 하지만 낭형의 사문 내력을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 혹시 손오공처럼 바위돌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오? 무방하다면 소제의 의문을 풀어 주셨으면 좋겠구려."
"소제는 동정호 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동정호가 바로 내 스승이고 말입니다."
낭번운의 대답이 무덤덤하기 짝이 없었다. 건라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줄곧 강에 쏠려 있는 낭번운의 눈길에서 깊고도 무한한 정감이 솟구쳐 나오는 것을 마침내 깨닫고 전신을 부르르르 떨었다.
"허어! 이제 알았어……나도 이제 알겠구나……."
장탄식 끝에 마지막 한 마디가 점점 가늘어지더니, 낮은 메아리로 울리면서 끝없는 회한(悔恨)을 내비쳤다.
낭번운이 드물게 벙긋 웃었다.
"천하에 이 이치에 통달한 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밖에 없을 겁니다. 사리 때 조수(湖水)가 밀려 들었다가 쓸려 나가고, 새벽녘 서리와 저녁 이슬 맺히는 현상 어디에나 천지의 지극한 이치가 담기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른바 '내 몸 밖에서 일어나는 사물(事物)의 조화를 스승으로 삼고 그중에서 마음의 근원을 찾아낸다'(外師造化, 中得心源)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생각하건대, 왕년에 전응 대협이 하늘을 나는 새의 자취를 보고 검법의 이치를 깨달았으며, 후에 다시 비바람 몰아치는 날 떨어지는 뇌성 벽력 가운데서 검법의 극치에 도통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한낱 인간을 스승으로 삼는 것이 어떻게 천지 자연을 스승으로 삼는 경지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정의 극치에 다다라야 검의 극치에 다다를 수 있다'는 낭번운의 무에 대한 철학은 이심환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보면 볼수록 끌리는 인물입니다. 번역이 중단된 것이 천추의 한입니다.;;;;
제 글은 본문이나 댓글이나 한없이 길기만 하군요. 죄송합니다. 좀더 짧은 글속에 제 생각과 느낌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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