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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십팔도객(十八刀客).

작성자
Lv.1 조철산
작성
02.09.12 10:19
조회
7,210

모용미(慕容美)의 『십팔도객(十八刀客)』을 읽고…….

"개인적인 감상인지라 다소 반말조로 써져 있습니다. 그 점 양해해 주십시오."

나는 중국무협을 읽는데 인내(忍耐)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물론 나 역시 처음 읽은 무협소설은 중국 것이었지만, 그 이후 읽어왔던 대부분의 무협소설들은 한국 것이었고, 특히나 소위 말하는 창작 일세대, 즉 사마달, 검궁인, 야설록, 금강, 서효원 같은 작가의 것이었기에 그 이야기의 스피드에 길들여진 내게 있어 중국 무협의 느린 템포는 일종의 고문에 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읽을 만큼 읽고, 내가 쓰는 처지가 됐으며, 또 감히 나이를 좀 먹었다고 여기게 되자(삼십대 초반에 이런 망발을 하는 게 참으로 죄송스럽지만) 다시 한 번 그 옛날에 읽었던 중국무협의 향취에 빠져보고 싶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던가 수구초심(首邱初心)이라던가 하는 거창한 고사성어로 대체할 수 있는 이런 심정으로 집어든 첫 번째 소설이 바로 이 '십팔도객'이다.

저자(著者)인 모용미는 1932년 생으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총 23종의 작품을 썼다는데 솔직히 그것들이 뭔지는 잘 알지도 못하고 단지 그 중 몇몇은 이름을 바꿔 우리나라에도 얼굴을 비친 적이 있다니 어쩌면 혹시 내가 읽어봤을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긴 한다.

그럼 이제 십팔도객에 대해 말해보겠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규모가 작다".

칠성진이라는 작은 마을과 그 주변의 성성, 황화진의 두개 마을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 기간 역시 18일 남짓이다.

주요 등장인물들 역시 마을 사람들이 절반쯤(물론 뒤에 가면 그들도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라는 설정이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무공 역시 한자조어로 열 글자가 넘어가는 거창한 무슨무슨 도법이나 무슨무슨 신공 따위가 아니다.

이들은 그저 칼을 휘두르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암기를 던질 뿐이다.

또 이 와중에 자신이 펼치는 무공의 이름을 외치는 거창하고도 이해 불가한 행위를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마지막 싸움조차도 그렇다.

… 그것이 쏟아 부어진 것은 단 한순간의 일이었다. 움직임을 느끼고, 피하고, 칼을 휘둘러 베었다. 그게 끝이었다. …

위의 문장이 마지막 싸움을 묘사한 글이다.

아주 심플하지 않은가.

때문에 스케일 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실망을 금치 못할 소설이 바로 이 십팔도객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장춘풍(張春風)이라는 소년(18세)이지만 같은 장씨라고 해서 천사지인의 장천사 장염과 비슷할 거라고 여기지는 말자.

물론 나는 천사지인의 장염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하지만 어리숙하고, 약간 멍청해 보이며, 갈팔질팡 하기를 밥먹듯이 하는 장춘풍 역시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그는 평범하다.

음모가 소용돌이치는 이 작은 마을에서 항상 정의감을 잃지 않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협의(俠義), 현대의 무협소설에서 많이 사라졌다는 그 "무(武)만 있고 협(俠)은 없다"의 바로 그 협을 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힘쓰지 않고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노력한다.

전지전능한 인간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 말이다.

여기에 그의 매력이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음모에 휘말려 18일 동안 고생하는 이야기,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끝나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십팔도객이다.

또 주인공 장춘풍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조연들의 명확한 성격, 그것이 이 소설을 빛내주고 있다.

조연들에게 한 번 주어진 성격과 역할은 이야기 내내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과 욕망에 충실하다.

하긴 그도 그럴 게 단 18일 동안 사람이 마음이 변해봐야 얼마나 변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작고 변화 없으며 소박한 소설이지만 매력이 있다면 추리소설의 기법인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전대기인인 대비노인의 유물 칠성도를 걸고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십팔도객이 모여 품도대회를 연다. 그 우승자에게 칠성도가 수여된다고 하는데 18일 간의 대회 기간중 매일 한 사람의 도객이 품도대에 올라와 자신의 도에 관한 견해를 피력하는데 그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그 도객이 죽음을 당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이것이 이 소설의 흥미요소이다.

18일에 걸쳐 그 범인을 찾아나가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인 것이다.

나 역시 그것이 궁금하여 가장 마지막 장의 "네가 범인이다."하는 부분을 미리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아가며 열심히 읽었던 것이다.

물론 김전일처럼 "이 중에 범인이 있다."라는 논리적 증명대신 무협소설답게 범인과는 칼로서 말하고 칼로서 해결을 보며 목숨으로서 그 대가를 치르지만 뭐 어떠랴.

그것이 더욱 무협소설다운 면인데…….

오랜만에 흥미있는 소설을 한 편 읽었다는 기쁨이 지금 나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다.


Comment ' 6

  • 작성자
    Lv.20 흑저사랑
    작성일
    02.09.12 17:39
    No. 1

    철산님글이 여기 올라오면 저같은 촌놈 명함내밀기 겁납니다...
    옮겨주심이 어떨지요...
    저도 재밌게 본 책이죠...
    추리적 기법이 선보인 그런 작품 ...의문의 살인들..1명씩 죽어가는 18도객....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레카르도
    작성일
    02.09.13 16:08
    No. 2

    십팔도객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모용미라는 작가의 첫글이죠..아마..
    추천할만한 글이네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0^
    작성일
    02.10.03 01:22
    No. 3

    봤던 기억이..(헉!! 3초짜리 기억에 이게 남았다니 신기하네.)
    이게 중국무협이였군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黑槍
    작성일
    04.05.13 23:20
    No. 4

    스무명의 도객(18도객+일품도와 주인공)들이 펼치는 무협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6 뫼비우스
    작성일
    05.01.11 16:25
    No. 5

    재밌을 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쿠쿠리
    작성일
    05.11.04 23:46
    No. 6

    헐, 조철산님이 쓰신 감상이라니...
    감상게시판을 처음부터 훑는 보람이 있군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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