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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임준욱 - 진가소전

작성자
Lv.52 군림동네
작성
02.09.12 04:32
조회
10,257

아마 여러분들이 모두 보셧을 겁니다.

하지만 못보신 분들 꼭보세요...^^

이름만으로 책을 골라도 돼는 몇분 안돼는 분중 한분이십니다..^^

(물론 저의 기준이지만..^^)

아마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시라 생각됍니다...^^

만화 도시정벌에도 나온장면 약간의 내용올릴께요..^^

.............................

진가소는 자신의 방안 서탁에 앉아 채연이 건네준 세 장의 인적 사

항을 읽고 있었다.

[성명:팽무린

나이 : 이십삼 세.

직위 : 기교. 원래 백호였으나 영락 십구년 북경 천도 후 강등.

강등사유 : 세 번의 동료 폭행 치상과 외성 순찰 근무 기피. 현재

            직무 해제 상태.

출신 : 정확치는 않으나 하북 팽가로 짐작. 십사 세까지 팽가에서 살

았던 흔적이 있으나 그 이후 사 년간 행적은 밝혀진 바 없음. 성(姓)이

팽인 것으로 보아 팽가 출신으로 생각되나 팽가 남자들의 전형적인 신

체적 특징은 없고 도 대신 검을 사용. 십팔 세가 자원 입대, 십구 세

에 금의위 차출, 이십 세에 백호가 되었다가 이십일 세에 강등.

성격 : 말수가 적고 비사교적이며 모친이나 외모에 대한 언급은 바로

폭력으로 대응.

무공 : 상(上). 평가 불가. 무림에 연원을 둔 내가검을 사용하는 것

같으나 내력 불분명.]

[성명 : 종청.

  나이 : 이십사 세.

  직위 : 기교. 원래 백호였으나 영락 십구 년 강등.

  강등사유 : 두 차례에 걸쳐 알몸으로 내성 성벽 위를 뛰어다님. 현

  재 직무 해제 상태.

  출신 : 불분명. 하오문(下汚門) 출신으로 사료됨. 위험성 없음. 자신의

  진술에 따르면 강호에서 귀영신투(鬼影神偸)라고 불리는 아버지를 체포

  하기 위해 금의위에 투신했다 함. 십구 세에 자원 입대, 이십 세에 시

  험을 통해 금의휘에 선발됨. 십여 차례에 걸쳐 경성에 출몰한 도적을

  검거한 공적으로 백호가 됨. 신법을 연구한다는 이유로 만월 아래에서

  나체로 뛰어다니다가 기교로 강등.

  성격 : 종잡을 수 없음. 대체로 쾌활하나 엉뚱함.

  무공 : 상(上). 역시 평가 불가. 일반 창검으로는 잡을 수 없을 만큼

  빠름. 삼 장 가량의 흑편을 자유자재로 사용.]

  

  [성명 : 강만추.

   나이 : 이십사 세.

   직위 : 기교

   출신 : 무림 중에 그 세가 끊겼다고 전해지는 산동(山東) 강가(姜家)

   출신으로 짐작됨. 이십 세 자원 입대. 이십일 세 금의위 차출. 지난 삼

   년 오 개월 동안 공을 과로 번번히 상쇄. 승급 없이 사 년 간 기교.

   성격 : 동료들로 부터 단순 무식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말수가 적고

   행동이 난폭하지만 잘 드러내지 않음. 식탐(食貪)이 유독 강함

   무공 : 상(上). 힘을 바탕으로 하는 패도류(覇刀類)를 구사. 금의위 내

   에서는 감당할 만한 인물이 거의 없음. 화산 출신의 천호 송응성이나

   팽무린, 그리고 종청 정도가 상대 가능. 패도 외에 특이한 외문 기공

   을 익힌 것으로 사료됨.]

  

"상당들 하구만. 이제 어떻게 한다? 우선은 힘으로 눌러놔야겠지.

좋아, 진가소. 한번 해보자."

진가소는 동경 앞에 서서 여러 차례 자신의 표정을 바꾸어보다가

스스로 보기에 가장 무식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는 미소를 지었다.  

진가소는 평소와 다름 없이 청의 경장을 입었지만 이상하게 어색해

보였다. 뭐가 다른 것일까? 멀리였다. 치렁치렁한 머리를 묶고만 다녔

는데 오늘은 그 머리를 말아 올려 사방평정건(四方平定巾)까지 쓰고 있

었다. 금의위의 전각까지 오는 동안 몇 차례나 관을 더듬었는지 몰랐다.

입구에는 네 명의 기교들과 한 명의 갑주 무인이 번을 서고 있었다.

진가소는 그들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기교 두 사람이 번

쩍이는 창을 교차시켜 진로를 막아 섰다. 잠시 후 이십대 후반으로 보

이는 날카로운 눈을 가진 갑주 무인이 진가소의 앞에 이르러 전신을

샅샅이 훑어보며 말했다.

"누군가? 이곳은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는 곳이 아닌데."

무기도 하나 없이 관복도 아닌 평상복 차림을 한 진가소가 우습게

보였는지 갑주 무인은 고개를 삐딱하게 뒤로 젖히며 거만한 표정을 지

었다. 무장의 갑주 밖으로 비어져 나온 옷소매 끝에는 두 줄의 금색

선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기교들의 소매에 한 줄 선이 있는 것으로 보

아 전각의 경비 임무를 맡은 백호인 듯했다.

진가소는 미간에 내 천(川)자를 그으면서 품속에서 전날 채연에게

받은 금은패를 꺼내어 갑주 무인의 얼굴 앞으로 들이 밀었다. 동시에

검지로 갑주 무인의 이마를 툭 밀었다.

"비켜, 임마."

진가소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라 어이없어하던 무장은 돌연 눈앞에

서 번쩍이는 금은패를 발견하고는 건들거리던 자세를 곧추세우고서 즉

각 군례를 취했다.

"추웅!"

진가소는 피식 웃으며 다시 중지를 들어 군례를 취하는 무장의 이

마를 찍으며 말했다.

"충이고 뭐고 간에 비키라고 했잖아, 이 자식아."

무장은 얼른 막고 있던 길에서 비켜섰고 이에 질세라 기교들 역시

재빨리 창을 당겨 진로를 터주었다. 무장은 입을 한 발은 내밀고 이미

지나간 진가소의 등판을 째려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뚜벅뚜벅 걸어가

던 진가소가 갑자기 돌아섰고 무장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주둥아리 못 처넣어, 확 찢어버리기 전에. 넌 이제 나한테 찍혔어."

찔끔하던 무장은 진가소의 눈을 외면했다. 순간 정문을 지키던 기교

네 사람은 입을 가리고 키득거렸고 무장은 몸을 휙 돌려 고리눈을 떴

다.

"뭐 웃어? 이것들 봐라. 니들 근무 끝나면 한 딱가리 할 각오해."

한참을 씩씩거리던 무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갑자기 저런 게 나타났지?"

전각 안으로 들어선 진가소는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지나가는 흑의

의 무복 사내를 잡고 물었다.

"말 좀 묻겠소."

소매 끝에 두 줄의 금색 선이 수놓아진 무복을 입은 이샙대 중반의

청년은 진가소에게로 고개를 돌려 까닥거렸다.

"종청, 강만추, 그리고 팽무린을 찾는데?"

"그놈들은 왜 찾으쇼?"

진가소는 금은패를 사내에게 내보였다.

"충! 백호 제세룡입니다. 따라오시지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사내는 삐딱하던 자세를 바로잡고는 앞

서 걷기 시작했다. 절도가 넘치는 걸음걸이였다.

줄주이 이어진 방들을 지나 전각의 안쪽 끝에 이르렀다. 전각과 근

이십여 장 높이의 내성벽 사이에 넓은 초지(草地)가 보였다. 금의위 내

의 연무장으로 쓰이는 듯 보이는 초지 이곳저곳에는 흑의 무복 차림의

사내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공포의 대명사로 불리는 금의위의 악명

과는 달리 자유스럽게 보였다. 한여름의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

을 뻘뻘흘리며 연무를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환담을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자유스러워 보이는군."

진가소의 지나가는 말에 제세룡은 즉각 대답했다.

"금의위도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인데 풀어줄 때는 풀어줘야

지요. 밖에서 칼같이 생활하고 안에서까지 조이면 오래 못 간다는 것

이 채 대인님의 지론(指論)이지요. 기교들은 모두 이곳에서 함께 생활

하는지라 자신들 나름대로의 위계 질서를 같추고 있으니 위에서도 가

급적이면 간섭하지 않는다는 분위깁니다."

진가소는 고개를 끄덕여 제세룡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보름에 한 번씩 자체적으로 무예 검증회를 열고 있는지라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수련을 합니다. 물론 진법 훈련이나 기동 훈련

과 같은 합동 훈련은 예외구요."

제세룡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초지 위에 연달아 설치해놓은 십여

개의 막사를 지나 성벽과 잇대어 설치된 마지막 막사에 이르고 있었다.

"물론 이놈들은 예외입니다만."

제세룡은 말을 마치고는 막사 안을 가리켰다. 막사 안에는 세 사람

이 있었다. 중키에 마른 듯이 보이는 사람은 아예 내성 벽을 마주한

채 누워 있었고 중앙에 있는 구레나룻의 사내는 뱀처럼 생긴 삼 장 가

량의 흑년(黑鞭)을 면포로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막사의 오른쪽 반을 차지한 장대한 민대머리 청년은 왼손으로 자신

의 왼뺨을 받친 모로 누워 자신의 앞에 수불이 쌓이 호박씨를 한

알씩 입으로 옮겨가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팽무리! 종청! 강만추! 일어나라."

제세룡이 거의 소리를 지르듯이 말하자 벽을 보고 누워 있던 청년

은 뭉그적거리며 아주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호박씨를 먹던

곰 같은 민대머리는 그렇지 않아도 험악한 인상을 구겨 제세룡을 쏘아

보았다. 두 사람과는 달리 중앙에서 흑편을 닦던 청년은 자리에서 퉁

기듯이 일어나 제세룡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제 백호 아니시오? 무슨 이로 누추한 이곳까

지 왕림을 다 해주시고, 혹시 제 정직이 풀린 것은 아닌지? 입으로 천

근추신공을 연마하는 이 두 놈들과 함께 있자니 미치겠소. 그러니 제

백호가 좀 도와주면 안 되나?"

사내는 공대도 아니고 하대도 아닌 어정쩡한 말투로 쉬지 않고 말

했고 제세룡은 마치 자신의 몸에 송충이라도 붙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슬며시 뒤로 빼내었다. 그리고는 튄 침을 닦는 시늉을 하였다.

바로 그 순간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빌어먹을..... 한참 맛있는데."

제세룡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고 거기에는 민대머리

청년이 어기적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누워 있을 때도 커 보

였지만 막상 일어나니 엄청나게 큰 체구였다. 진가소 역시 거구에 속

하는데 청년은 진가소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큰 것 같았다.

"강만추, 지금 나 들으라고 한 말이냐?"

"제미, 나 혼자 한 소리니 제 백호는 신경 끄쇼."

"끄응."

제세룡의 두 눈에서는 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결국에는 한 번 앓

는 소리를 내뱉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언제 일어나 다가왔는지 벽을

등지고 누워 있던 청년마저 흑편을 든 사내의 곁에 서 있었다. 아름다

웠다. 마치 화장을 한 미인을 보는 듯했다. 진가소보다 두 치 정도 작

은 듯해 보였지만 가냘픈 신체에 하얀 피부, 그리고 공허한 눈을 지닌

그 청년은 묵묵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서 있었다.

제세룡은 세 사람이 모두 모이자 뒤로 돌아 진가소를 쳐다보았다.

"천호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세룡은 진가소에게 군례를 취한 후 세 사람을 힐끔 쳐다보며 투

덜거리며 돌아섰다.

"에이, 상종 못할 놈들."

진가소는 세 사람의 바로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산만한 자세로

서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런 자세로 묵묵

히 서 있었고 침묵이 지루했던지 한마디 욕설이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모이라고 했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냐? 보고만 있으면

밥이 나와, 술이 나와."

진가소는 멧돼지같이 씩씩거리는 강만추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만추, 내가 누군지 아나?"

"말도 안 했는데 내가 어찌 알아? 당신이 천혼지 지휘산지?"

"듣던 대로 병신이구나, 귀는 두었다 뭐에 쓰나?"

비록 단순 무식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강만추였지만 이죽거리는 진

사소를 때려눕히려 들지는 않았다. 금의위에 소속된 이상, 하극상을

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속에서 분출되는 분노는 어찌할

수 없었던지 두 눈에는 불길이 일렁였고 코에서는 콧김이 뿜어져 나와

코가 벌렁거렸다. 그런 강만추를 보면서도 진가소는 여전히 빙글거리

고 서 있었다. 한동안 강만추와 눈싸움을 벌이던 진가소는 한 발짝 옆

으로 옮겨 종청과 마주섰다.

"자네가 종청이지?"

"예, 천호님. 소인은 이 두 종자와 씨부터가 다릅니다. 사소한 오해

가 있어서 같이 취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천호께서 믿어만 주신다면 견

마지로(犬馬之勞)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상."

부동자세로 빠르게 이야기를 마친 종청은 군례까지 취했고 진가소

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거렸다.

"믿어? 자네를? 흥!"

진가소의 코웃음을 듣는 순간 미소를 담뿍 담고 있던 종청의 얼굴

은 순식간에 구겨져버렸다. 그런 종청을 무시하고 다시 한 발짝 옆으

로 움직인 진가소는 여전히 먼 산을 바라보는 팽무린의 얼굴 앞에 코

를 들이밀었다.

"팽무린 맞지? 아름답군. 남자 맞아?"

순가 세상 다 산 것 같은 팽무린의 공허한 눈에서 한 줄기 불꽃이

피어 오르며 진가소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예쁜 걸 예쁘다는데 왜 그러나? 그 얼굴을 보고도 이런 소리를 하

지 않는 놈이 있으면 눈이 삔 놈이겠지? 그렇지 않은가, 팽무린?"

"개새끼."

팽무린의 오른 주먹이 갑작스럽게 진가소의 안면으로 날아왔고 진

가소는 팽무린의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자신의 등을 팽무린의 몸통 쪽으로 붙이

고는 자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팽무린의 주먹이 회수되는 순간,

그것을 잡아채 팽무린을 앞으로 날려버렸다. 두 사람의 공방은 순식간

에 끝나버렸다. 이 장 가량을 날아간 팽무린은 바닥을 한바퀴 굴러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앉은 채로 진가소를 쏘아보았다.

"허, 계집애같이 생긴 놈이 성질은 미친 개로구나."

팽무린의 노화가 폭주하면서 아름다운 검미가 탈 듯이 불타 올랐다.

팽무린이 다시 튀어 오르려는 순간 진가소는 오른손을 들어 그를 제지

했다.

"잠깐! 기회는 줄 테니까 내 말이 끝날 때까기 기다려."

진가소는 뻗었던 손을 곧게 펴서는 팽무린에서부터 종청이 있는 곳

까지 반원을 그었다. 자리로 돌아가라는 듯이. 팽무린은 들썩이는 어

깨를 진정시키려는듯이 몇 차례 숨을 몰라 쉬면서 조금 전의 자리로

돌아왔다.

"내 이름은 진가소다. 어제부로 천호가 되었지. 나 또한 이곳이 좋

아서 온 것이 아니다. 좀 괜찮은 내 뒷배경이 이곳의 두목과 함께 이

곳으로 밀어 넣었지. 어찌 되었건 간에 내 임무는 사십구 일 안으로

너희 세 골통들을 정신 무장시켜 일선으로 복귀시키는 일이다."

세 사람은 아니꼽다는 듯이 연신 코방귀를 뀌어댔고 진가소는 그들

의 행동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나는 미친놈이 아냐. 편하게 보낼 수 있는데 왜 너희들 같은 미친

놈들을 상대로 골머리를 앓아? 한 가지 조건만 받아들인다면 너희는

지금과 같은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사람은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던지 서로

를 바라보았다.

"그 조건이라는 것이 뭐요?"

종청이었다.

"앞으로 사십구 일 간 나 역시 이곳에서 지낼 것이다. 물론 하루 종

일은 아니지. 그 기간 동안 내가 심심해서 비무를 요청하면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조건이다. 어떤가?"

"흥, 우리 같은 제기들이 어찌 천호 나리와 손속을 나눈다는 말이

오? 뒤는 어찌하고."

"실력만 있다면 나를 반쯤 죽여놓아도 상관이 없다. 내가 아파서 나

오지 않는다면 그만큼 더 편해지지 않는가?"

"정말이오?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시오."

으스스한 목소리가 팽무린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진가소는 악동 같

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진가소는 세 사람의 얼굴에서 승낙보다 더한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오냐, 너 정말 잘 걸렸다. 아주 질근질근 밟아주마'하는 표정들

같았다.

"흠, 표정들을 보니 모두 승낙한다는 뜻 같군."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이것으로 계약이 성사된 거지? 너희들이 내 건강 상태를 고

려할 필요가 없듯이 나 또한 니들의 상태를 따지지 않고 내가 심심할

때마다 하루에 몇 번이고 비무를 할 것이야."

이번에도 역시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강만추가 물

어왔다.

"무기는 어찌할 거요? 천, 호, 나, 리."

"나는 비무만 청할 뿐, 방식은 상관하지 않아. 입맛대로 하도록."

종청과 강만추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고 그 미소의 의미를 아는

지 모르는지 진가소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 질문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내 말을 끝내겠다."

바로 그때 팽무린이 으스스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남아일언(男兒一言)......"

"물론 중천금(重千金)이지."

진가소는 가볍게 받아넘기고는 다시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팽무

린을 응시했다.

"흥, 살려달라 애걸할 때까지 모시고 놀아드리지. 천호 나리."

"실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그럼 오늘은 이쯤하고 내일 보지. 병기들

잘 닦아두도록."

진가소는 세 사람에게 빙긋 미소를 지으며 몸을 틀어 전각 쪽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진가소는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검 한 자루를 달랑거

리며 막사에 나타났다. 전날 쓰고 있던 사방평정건이 영 불편했었던지

예전처럼 머리카락을 묶어 늘어뜨리고 있었다.

"잘들 잤나?"

진가소가 여전히 빙글거리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물었으나 세

사람의 표정은 한결가팅 무표정했다.

"아침도 든든히 먹었고 하니 운동부터 좀 해보세."

"흥, 누구부터 하시겠소, 천호 나리?"

역시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종청이었다.

"자네가 먼저 물었으니 먼저 하지."

"흥, 내가 제일 만만해 보이시는 모양이구랴?"

"만만해 보이기야 셋 다 마찬가기지 뭐."

"어디 한번 놀아봅시다. 살려달라고 울지나 마시오."

종청은 자신의 흑편을 막사 안에 놓아두고 걸어 나와 진가소의 이

장 앞에 마주섰다.

"호, 무기도 없이 하시겠다? 싱겁게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

"나리같이 천지 분간도 못하는 샌님에게 무기를 들이댈 수야 없지

않소?"

진가소는 미소로 답하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청우를 막사 한구석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자연스럽게 두

손을 내려뜨렸다. 막사 안에는 팽무린과 강만추가 여전히 누운 자세

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는데 진가소가 막사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검

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모습을 보자 팽무린의 눈에서는 이채가 발해졌

다.

별로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 청강검(靑剛劍)을 그토록 소종히 다루는

것을 보니 그가 높은 자들의 과보호 속에서 곱게 자란 샌님은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자, 오게 . 선공정도는 양보하지."

진가소의 '하지'라는 말이 끝나는 순간, 종청의 신형이 솟구쳐 오르

며 어느새 이 장의 공간을 압축하여 다가섰다. 그리곤 허공 중에서

걷는 듯 연달아 진가소의 안면을 발끝으로 차기 시작했다.

단 한 번 땅 위에 내려서지도 않고 아홉 번을 연이어 찼으나 진가

소는 종청의 발끝이 안면을 찌를 때마다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자연스러움 동작으로 뒤로 물러섰다.

순식간에 허공만 아홉 차례나 차고 땅 위에 내려서야 했던 종청은

잠시도 틈도 없이 흑풍권해(黑風拳海)의 초식을 사용했다. 삼백육십 도

회전을 연달아 세 차례나 하면서 진가소의 발과 허리, 그리고 머리를

노렸다.

진가소는 자신의 발과 허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종청의 다리를 반

치 사이를 두고 아슬아슬하게 피하고는, 자신의 머리를 노리며 돌아오

는 종청의 허벅지 안으로 섬전같이 뛰어들어 자신의 오른쪽 팔꿈치로

종청의 허벅지 안쪽 근육을 가볍게 찍었다

진가소의 단 한 수에 회전력을 잃어버린 종청은 아래로 떨어지면서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자신의 왼발로 진가소의 머리를 다시 차려 했

다. 진가소느느고개를 살짝 옆으로 뉘었다가 독 이어 자신의 오른발로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종청의 몸통을 차버렸다.

하나 진가소가 찬 것은 종청의 몸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 뻗은 그의

두 손이었고 종청은 그 탄력을 이용해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삼 장

가량을 물러섰다. 연자번신술(燕子飜身術)을 펼쳐 아름답게 땅으로 착

지한 종청, 그러나 갑자기 느껴지는 오른쪽 허벅지의 통증으로 인하여

무릎을 꺾고 말았다.

"허! 조잘대기는 잘하더니만 쯧쯔. 내 그렇게 느려터진 연환각(連環

脚)과 선풍퇴(旋豊腿)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자, 이번에는

한번 잘해봐."

"흥, 배경만 믿는 샌님은 아니었군."

"왜 오지 않지? 내가 가리?"

말이 끝나자 진가소는 삼 장의 공간을 찰나에 압축해 들어가서는

진각삼추장(震脚三推掌)을 연달아 펼치기 시작했다.

파팡! 파팡! 파팡!

진가소의 진각 울리는 소리와 장이 허공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으나 종청은 이미 진가소가 다가선 만큼 물러서 있었다.

"음, 이번에는 제법이었어. 그 정도는 돼야 할 맛이 나지."

진가소는 흥이 나 있었다. 혼자서 수련한 무공이었다. 이렇게 실전

으로 연습할 시간이 있었던가. 호직 혼자서 '이럴 땐 이렇게 대응하고

상대가 이렇게 방어를 하면 나는 이렇게 다시 공격한다' 하는 식으로

상상만 가지고 수련해왔었는데 실제로 사람을 상대로 연무(鍊武)를 해

보는 것이다. 그러니 흥이 날 수밖에.

막사 안에서 누워 있던 팽무린과 강만추는 어느 사인가 앉아 있었

고 연무장 주위에 흩어져 있던 금의위의 위사들 역시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시 간다."

진가소는 자신의 신형을 활의 시위처럼 구부렸다가 퉁기면서 종청

의 앞으로 다가섰고 연달아 오 권을 내질렀다. 종청은 자신으 몸을 좌

우로 연신 흔들면서 화의만천수(和意萬天手)를 펼쳐 두 손으로 원을 그

렸다.

사 권까지는 어찌어찌 막아내기는 했으나 팔뚝 전체가 찌르르 울리

는 통증을 느낀 종청은 마지막 오 권을 상대로 자신의 오른쪽 가슴이

무방비로 노출된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자신의 신형을 뒤로 살짝

띄워, 맞는 순간의 충격을 흡수하려 하였다.

하지만 적절하게 방어를 하여도 찌르르한 통증이 생기는 데 맨몸으

로 그 주먹을 받았으니 아플 수밖에. 주먹을 맞은 충격으로 뒤로 퉁겨

져 나가던 종청은 거의 이 장 이상을 날아갔다. 종청은 왼손을 올려

오른쪽 가슴을 잡고 오른손으로 땅을 짚어 두 번을 돌고 나서야 신형

을 멈추어 세울 수가 있었다.

진가소는 자신의 오 권이 종청의 가슴을 격타하기는 했지만 그 강

도가 얕았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고 그 즉시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날

아가 오형권 가운데 호조파석(虎爪破石)의 수법을 연달아 펼쳤다.

몸을 두 번이나 뒤집고도 진가소를 떨쳐내지 못한 종청은 물러서면

서 이내 내성 벽에 등을 부칮혔고 자신의 코앞까지 닥쳐온 진가소의

호조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바로 그 순간 종청은 자신의 왼발을 들어

내성 벽을 차고는 성벽을 따라 다섯 차례나 몸을 굴렀다.

진가소의 호조는 헛되게 성벽에만 상처를 입혔고 이내 자리에 멈추

어 섰다.

"어이 종청, 처음에는 죽일 듯이 덤비더만 왜 피하기만 하는 거

지? 내 참, 벽을 타고 나려타곤(懶驢打滾)하는 놈은 생전에 처음 본다."

"낄낄낄,천호 나리. 나려타곤까지는 아니었지요. 신법은 편법과 더

불어 나의 특기 중 하나인데 그걸 가지고 트집을 잡으시면 안 되지

요?"

"그래? 아직은 웃음이 남아 있으니 좋구나. 얼마나 빠른지 볼까?"

'볼까' 하는 소리와 함께 진가소의 신형이 오뉴월 엿가락 늘어지듯

쭉 늘어나며 어느새 종청의 코앞에 이르렀다.

"헉, 이형환위?"

어느새 늘어졌던 진가소의 신형이 합쳐져 온전한 신형을 이루었을

때는 이미 종청이 피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물론 뒤로 물러서야겠

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진가소의 주먹은 이미 종청의

아랫배에 틀어박혀 있었고 순간, 고통으로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해버린

종청은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으려 하였다.

하지만 진가소의 주먹은 그가 주저앉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종청의

전신 구석구석을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종청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몸을 웅크려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뿐이었다. 잠시 후 전신을 웅크리고

바닥에 구겨져 있던 종청은 자신이 아침에 먹었던 음식을 다시 확인하

기 시작했다. 진가소는 그런 종청의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아 조용히

속삭였다.

"싱거웠어. 내일은 흑편 들고 나오는 것 잊지 마."

오른손 중지를 내밀어 백지장 같이 하얗게 변한 종청의 이마를 쿡

쿡 찌르던 진가소는 벌떡 일어나 강만추와 팽무린에게로 다가갔다.


Comment ' 9

  • 작성자
    레카르도
    작성일
    02.09.12 08:36
    No. 1

    저도 임준욱님 팬으로써 추천해주시는것이 좋아보이지만..내용을 이렇게 많이 올리시면 의미가
    퇴색될껏 같군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색중협
    작성일
    02.09.12 09:11
    No. 2

    이렇게 마니올리믄...걸려요!!!조심.(ㅡ_-)(-_ㅡ)두리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흑저사랑
    작성일
    02.09.12 18:13
    No. 3

    준욱님의 연재작 촌검무인 재밌죠...거의 2권 분량까지 되는듯...
    여기에도 연재해주시면 좋겠는데...
    준욱님 파이팅...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군림동네
    작성일
    02.09.16 10:33
    No. 4

    ^^ 좀 줄입니다..^^ 3명대련에서 1명분만^^
    여러분 꼭보시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환골탈태
    작성일
    02.09.29 01:47
    No. 5

    임준욱님을 사랑하는 님들이 여기도 많이 계시네^^ 넘 기분조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환골탈태
    작성일
    02.09.29 01:51
    No. 6

    근데 준욱님 소설 세개중에 하나는 꼭 사서 보세요.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는 우리가 지켜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전 건곤불이기를 샀습니다. 넘 잼있습니다. 무협이 시간 때우기용이 아닌 인생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소설을 쓰는 우리 임준욱님 최고 작가님이시저..화이링~ 아~ 진가소전 또 보고 싶어지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환골탈태
    작성일
    02.09.29 01:51
    No. 7

    저는 임준욱님 친척이나 지인이 아니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飛狼魂
    작성일
    04.01.27 13:00
    No. 8

    물흐르는 듯한 재미가 있는 아주 뛰어난 소설입니다.
    재 갠적 생각으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破竹之勢
    작성일
    05.01.08 13:31
    No. 9

    임준욱님 작품은 필독이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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