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고와 관련해서 몇몇 사이트에서 ‘황군의 방계라서 어쩔 수 없다’는 빈정이 나오기도 하던데 말입니다.
뭐 건국 초기에 국군의 상당수가 일본군 출신자들이었던건 사실입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광복군이나 독립군 출신자들은 나이 많아서 고위 간부 해먹거나 정치나 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국군 내부에는 국부군(장개석 국민당군) 출신 사병이나 장교들도 있었는데, 여기서도 구타는 만연했습니다. 만군(만주국군)이야 구타의 대명사인 일본군 영향을 받았으니 그 출신들도 패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
자, 그럼 일본군과 국부군, 만군과 상관없는 1945년 이후 입대자들은 어떨까요.
전대의 악습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만, 이 시절... 특히 625 당시 입대자들은 전선으로 보내지기 위해 단기 훈련을 받았는데, 이 훈련이라는 게 미국 레인저식 훈련이었습니다.
2차대전 전후 쯤에는 미군에서도 구타가 빈번했고, 훗날 참전자들에게 공인 개색휘로 알려진 패튼 장군은 구타의 대명사와 같았지요.(심지어 침대에 누워 있는 부상병까지 팼음.) 레인저 부대는 그 중에서도 군기가 유별나게 세고 구타가 심한 축에 들었습니다.
이런 미군의 되먹잖은 똥군기는 월남전을 거치며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월남전 당시에 프레깅(상관 살해)가 공공연히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이 시절엔 미군도 팼기 때문에 미군쪽 고문관들은 한국군의 구타에 대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창군 시기에 몇몇 한국군 장교들이 일본군 시절에 그랬던 것 처럼 망토를 두르고 일본도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 행실을 보이곤 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어 개선을 요구했지요.
한국전을 거치며 국군의 행정이나 문화가 미군식으로 바뀐 것을 생각하면 일본군 물은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타는 지속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건 그 시절 대부분의 군대에는 구타가 만연했었고, 군대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때려야 사람된다’는 무식한 사고방식은 단지 한국인들의 생각만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타는 동서양을 막론한 구시대의 문화라는 겁니다.
특히 군대에서 일어나는 구타는 과거 라인배틀 시대에 군기 유지를 위한 악덕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는데, 이 무식한 작태는 라인배틀이 끝나는 19세기 중후반에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구타의 대명사인 일본군은 과거 서양의 문물과 문화를 도입할때 독일군과 프랑스군을 많이 모방했습니다. 뭐 결과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안 좋은 것만 배우게 되었는데, 이게 21세기 자위대에서도 잔재가 남아 있으니 참 무서운 일이죠. 자위대는 한국군보다 규모가 적은 데도 한국보다 구타사건과 자살자가 더 많습니다. 모병제에다 급료도 높은 편인데 말이죠.
아무튼 옛날 부터 이어져 온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개선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이건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이 빨리 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앞으로 몇 십년은 더 지나야 할 일이죠.
일벌백계라는 것이 제대로 된다면 몰라도 쉽게 뿌리 뽑히진 않을 겁니다. 백벌백계 수준은 되야 뭔가 좀 바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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