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대쯤의 한자를 달달 외우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1810년대쯤의 한자를 달달 외우면
당연히 말은 안 통하죠. 말과 문자는 별개니까요.
다만 필담이라고 하죠. 써서 대화하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요즘으로 치면 폰에 영어 써서 그걸로 의사를 전달하는 느낌?)
그리고 문자를 잘 안다고 바로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실제 말- 언어를 배울 때에 문자를 잘 안다면 훨씬 효율이 높을 거라는 건 분명하고요.
(당연히 생활언어만 따지자면 닥치고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배우는 게 제일 빠르겠지만,
그 이상 (전문용어나 고급용어가 포함된) 배우자면 문자의 이해도는 훨씬 도움이 되겠죠.)
한문은 천자문의 경우는 말 그대로 달달 외우는 경우지만 훈몽자회나 소학에 들어가면 특별히 한자를 하나하나 외운다기 보다는 문맥을 통해 익혀가는 방식입니다. 당시 학습방법은 무식할 정도로 암기식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러다보니 조선 시대 평균 과거 급제자 연령이 32세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즉 한문은 최소 25년 정도 익혀야 시험을 칠만하다는 거겠죠. 아이가(혹은 주인공) 만주어나 한어(漢語)는 중인 신분인 역관(譯官)에게 어릴 때부터 배워 사서삼경을 모두 암기하고 언어도 어릴 때 부터 익혔다고 하면 되지않을까요?
19세기는 한자와 한글 사용의 비율이 거의 비슷해 공존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 였다고 합니다. 물론 공문서 등은 한자를 사용했지만, 일상에선 양반과 서민들 모두 한글이 워낙에 쉬우니 많이 사용하던 시대라, 양반들에게 한자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는 강의가 얼핏 생각납니다. 즉 조선에선 한자의 쇠락기, 청나라는 누르하치가 만든 만주어 기반이지만 한화(한족화)가 되어 한자와 만주어가 혼용되던 시기. 그래서 청나라와 조선은 서로에게 소통의 언어로 한자의 유용함을 인식하고 외교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정도 배경으로 소설 인물의 한자 능력을 세계관에서 활용하면 적당한 고증과 재미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조심스럽게 제 생각을 말씀드려봅니다.
으음, 참고해보죠. 조선 후기에서는 노비도 일단 대우는 해줬습니다. 유교를 배운 양반들은 손에 흙이 묻으면 안된다는 관념 때문에 온갖 집안일은 노비가 담당했다고 하죠. 노비가 일하기 싫어서 추노하면 양반 입장에서도 생고생이었구요, 그래서 노비가 다치면 치료를 해준다던지 상호작용하는 관계는 되었죠, 노비가 글을 읽을 가능성은 낮으니 지식적으로는 양반 쪽이 우월했고요. 노비가 공부하는건 시대적으로 가능했습니다, 다만 신분적으론 출세를 못하는 차별이 있었고 공부 잘하는 노비들도 서당이나 왕족(예:장영실)의 공노비같은 사례들이 주로 있었죠, 또한 조선 후기에서는 군인을 데리고갈 평민을 늘리고 위해 노비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했었습니다, 낙하산으로 관직을 추천하는 세도정치기가 되면 몰락 양반들도 더 늘어나서 노비를 가지는 양반들도 줄어들긴했습니다. 물론 노비들이 비참하게 살았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애초에 조선 후기에 가서는 각종 세금과 흉년 때문에 평민들도 굶던 시절이라, 딱히 누가 잘살거나 하는 시대가 아니었던걸로 생각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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