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내년은 아니지만 5학년이 얼마 안 남았다.
어제 15일 막내 고모의 둘째 딸이 수원에서 식을 올렸기에 거기 다녀왔다.
대략 한 10여 년 만에 다시 온 수원 역에서 간신히 주변 서호 공원 풍경 정도만 기억해낼 수 있었다.
경기도에선 빈 땅들을 절대 길게 방치하지 않으니 당연한 건가.
사는 곳으로 돌아와 자기 전 당일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음. 실로 무수한 사람들이 오늘 내가 지난 길과 건물에 있었을 터인데 친인척 말곤 따로 고화질로 재생되는 얼굴이 단 하나도 없다.
난 외지를 가면 건물이나 풍경이 아닌, 지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마주칠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로 평생을 살았는데 이럴 리가?
같은 남자들이야 어지간히 신선한 느낌을 풍기지 않는 이상 본래 바로 까먹는 게 당연했지만 그 반대 성별 상대로도 그렇다?
한껏 꾸미고 오는 게 예의인 예식장이니 만큼 속으로 네 다섯 번은 와우~! 감탄한 순간이 있었는데 어째서 이렇지?
그런데 비단 오늘만 이런 게 아니고 최근 몇 년 간 계속 그랬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17살에 낯선 동네에서 이용한 미용실의 유독 젊은 아주머니도
19살 어느 날 저녁 시내 버스 속에서 딱 20분 공간을 공유한 대학생 누나도
22살 6.0 트럭 짐 칸에서 하이바 쓰고 봤던 건널 목에 서 있던 어떤 처자도..
31살 간 만에 간 교회 신년맞이 예배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단발머리 유부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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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가 작정하고 담으려 한 게 아니었는데 자기들 멋대로 뇌리에 쑥 파고들더니 그냥 수십 년간 기억으로 재생되고 있건만.
그리고 그 대상 다수는 솔직히 오늘 길에서 예식장에서 스친 인상적이었던 처자들보다 예쁜 거 같지도 않다.
그랬건만 언제부턴가 멋대로 스며드는 ‘ 새로운 그녀 ’ 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렇다.
이 놈의 세월이란 늘 아주 당연시 했던 입출력 능력마저 떠나보냈구나.
여탕을 따라가도 아무 감정 없던 시기를 지나 어느 날 불쑥 찾아든 소년기의 그 불길은 죽는 날까지 지속될 줄 알았건만..
‘건전지 없이도 도는 시계’ 가 아니고 ‘ 인생에서 오직 딱 한번 감을 수 있는 태엽으로 여태껏 작동했던 시계’ 였던 거다.
서글픈 건 서글픈 거고 그 변화가 실제 삶에 끼치는 불편 같은 건 딱히 없다.
차라리 남자의 음식 제육볶음을 포함해 모든 음식이 젊은 시절 만큼 식욕을 돋구지 못한다는 것이 좀 더 아쉽다.
... 중년이 겪게 될 단계란 앞으로도 이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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