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의견은 상관없지만 근거가 미흡하거나 사실과 맞지 않네요.
1. 첫문단, 두문단은 개인적인 견해니 할말은 없지만 3번째 문단은 단순한 개인의견이라고
하기에는 말도 사실관계도 너무 다르네요. 대 기사용 밀집방진의 경우는 창병 개개인의 장비
와 훈련정도가 우수해야 하기에 일반 농민에게 그런 임무를 맡기지 않습니다. 단순히 던져주는
먹이로 사용했을테죠.
2. 대 기사용 밀진방진이 발전할수록 그를 따라 기사 혹은 기마병의 전술과 장비또한 발전했
습니다. 예를 들어 윙드 후사르의 경우는 점점 길어진 밀집방진을 뚫기위해 속을 파낸 긴
랜스로 밀집방진을 상대했으니까요. 비록 윙드 후사르가 제대로된 파이크 방진을 격파한 기록
은 없지만 어중이 떠중이 창병들의 경우는 씹어먹고 다녔습니다.
3. 판금갑옷의 방어력은 상당해서 사실 웬만한 투사병기로는 당시 관통이 힘들었습니다. 잉글랜드 장궁병 같은 경우도 상대적으로 경무장인 기병의 말을 노린 거지 기사를 정통으로 노린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관통은 가능합니다만 판금갑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은 아니었죠.
4. 창병의 기병의 카운터다? 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창병의 대 기병 밀집방진은 최대한 붙어서 긴 장창을 통해 돌격해오는 기병을 저지하는 모루의 역활을 맡고 다른 병과와 유기적으로 상대하기 위함이지 단순히 창병이 기병을 이기니까 기병이 필요없다는 아닙니다. 애초에 기병의 돌격진형은 픽션에 나오는것처럼 돌격력으로 창병진을 돌파하는것이 아닌 돌격력을 랜스로 담아 상대를 두들겨서 상대의 출혈을 강요하고 사기를 떨어트려서 망가트리는데 잇으니까요. 말도 동물인데 수십명이 서있는 방진 안으로 들어가는것은 불가능하니까요.
5. 밑에 댓글을 적을때는 그냥 옛기억에 적은거라 단순히 적었지만 판금갑옷은 총이 나왔을 당시에도 그 방호력으로 상당기간 존속했습니다. 다만 판금갑옷은 그 당시만 해도 발전의 절정을 이루었지만 총은 아직 그 포텐셜이 높았고 초기총의 고질적인 문제인 신뢰성과 연사력을 보강하게된 수석식(부시깃을 사용한) 총의 등장으로 판금갑옷의 방어력으로는 더이상 총의 화력을 버틸수 없기에 도태되었습니다.
개인적은 의견은 얼마든지 낼수 잇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거는 정확하게 제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 2문단에서 1)서유럽으로 기술유입 2)서유럽의 인구증가 3)백년전쟁시 병력수 4)백년전쟁의 전력구성비 5)신롬vs교황청의 전쟁시 병력수를 제시했는데, 이건 '개인적인 의견' 으로 치부될 수가 없는 '역사적인 사실' 입니다.
2. 훗사르는 중세에 활동한 병과가 아닙니다. 그리고 기본 무장 자체가 판금갑옷을 해제한 상태입니다. 방어력은 소용없지만 공격력은 아까우니까 그런 식으로 활용한겁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창병대를 격파한 기록이 없으면 아무 의미 없는 겁니다. 그리고 훗사르가 '일반 창병대'를 씹어먹은 전투가 있으면 알고싶습니다. 금시초문이라..
3. 이건 제 주장과 동일한데요? 총은 뚫고 활은 못 뚫는다는 제 논점이 아닙니다. 총이 뚫던말던 어차피 주역은 창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관통력x명중력=위력이지, 관통력=위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강선이 없는 총이라도 위력 자체는 높다 생각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요.
4. 창병으로 기병을 카운터치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요? 푸하하하... 카라콜 전술이 뭔지는 아십니까? 무서워서 못들어가니까 총들고 빙빙 돌면서 총으로 공략하는 겁니다. 창병대는 아니지만 로마 보병대도 아랍 중기병 돌격을 대파한 적이 몇 번이고 있습니다. 그에 당해서 궁기병대로 무한 활질을 통해서 결국 궤멸은 시켰지만...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가 페르시아의 보병기병을 가리지 않고 대파한 것은 뭡니까? 랜스를 안 들어서? 등자가 없어서? 결정적으로 랜스에 돌격력을 담아서 두들기는 것과 돌격력으로 돌파하는 것은 표현으로 장난치는 것 같네요. 뭐가 틀리지요? 말의 돌진력이나 랜스의 공격력 모두 기병전투력에 합산되는 겁니다. 장창의 길이는 (테르시오 기준으로) 거의 4m~5m 이래요. 게다가 앞 열의 장창은 손으로 버티는 게 아니고 숫제 땅에 비스듬하게 박습니다. 랜스는 길어도 2m 이상일 수가 없는건 당연지사고, 랜스도 돌격력을 담아서 후려치고 싶어도 못 후려치는데 어떻게 출혈을 강요하지요?
5. 물론입니다. 라인배틀 시절에도 흉갑이나 투구는 판금으로 입었지요.
반론은 얼마든지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근거를 정확하게 제시해 주세요. 저는 본문에 이미 절강병, 란츠크네히트, 스위스장창병, 이시가루, 테르시오를 제시했는데 말이지요. 훗사르의 창병격파전투이름+'농민병은 먹이로 사용했다'는 역사적인 근거제시+단순 돌격력과, 돌격력을 랜스도 담아 후려치는 것의 차이. 설마 랜스에 검기를 불어넣는 것은 아닐테고.
p.s: 그래도 제가 표현한 것에 안 맞는 부분이 있는데, 집단창병이 기사들에 저항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학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훈련도가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용병대(스위스, 독일)나 상비군(명나라, 스페인) 혹은 전투에 신물이 날 정도의 노련한 병사(일본)...거기다
아예 완벽하게 찍어누르기 위해서는 투사무기의 가세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도 맞습니다. 또한 파비아 전투나, 로크루아 전투, 노틀링겐 전투 들을 보면 이 느려터진 창병대의 약점은 다름아닌 측후방이고, 이에 대한 대응을 게을리하면 여지없이 기사단에 궤멸당했습니다. 다만 기사라는 중장기병 역시 오로지 악셀밟고 직진 성향이지 선회력이 제로에 가까워서 의도적인 운용이 무지하게 어려웠을 뿐이지... 어쨌든 제가 하고싶은 말은 기사->총병으로 바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일단 기사의 돌격을 창병으로 완벽하게 저지시켜 승률을 50대 50으로 맞추고 학살은 당연히 총병으로 했지요. 파비아 전투가 증명합니다. 하지만 운용비용과 훈련비용을 고려하면 기사랑 창병이랑 승률 50:50이면 그건 기사단 입장에서는 그만한 재앙이 아니지요...
1.2에서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말씀드린 부분은
1.총의 등장과 그닥 관계가 없다. 총은 석궁에 비해 나을것이 없고 장궁에 비해도 떨어진다.
오합지졸에 숫자도 안되는 땅개 등등을 말씀드린 겁니다만 정확하게 이부부은 집지 않은것은
죄송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네요.
2. 애초에 판금갑옷이 중세에 도태된것이 아니니 중세를 따질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판금갑옷은 짧게 잡아도 1600년대까지 존속했으니까요. 또한 윙드 후사르의 예를 든것은 대 기병 밀징방진이 발전한 만큼 대 창병 기병전술도 발전했다. 라고 말씀드리기 위해 적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윙드 후사르는 중무장한 병력을 상대로 고전해 오히려 갑옷의 필요성을 말해주죠. 또한 일반 창병대 라고 하기 보다는 윙드 후사르가 그 위력으로 씹어먹은 전투는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제2차 빈 포위가 있겠네요.
3. 제가 왜 그부분을 집고 넘어갔냐면 전장의 주역이 창에서 총을 넘어갔기에 총의 화력을 감당할수 없는 판금갑옷이 도태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식 화승총일때도 위력이 굉장했는데 후에 나온 수석식 소총을 보자면 창을 쓸 이유가 없으니까요.(문제점이던 신뢰성, 연사력, 운용력, 훈련정도를 모두 뛰어넘었으니까요)
4. 저는 창병진이 기병을 학살하는것이 아닌 기병의 돌파력을 무력화시켜 기병의 역활을 죽이는 것을 말했는데 그것을 카운터라고 하신다면 제가 틀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만 고대 팔랑크스는 그 밀집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둔것은 분명하지만 기동이 자유롭지 않고 지형을 타는 큰 단점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밀집방진이 우와왕 강해 쌔 그거 아니라 뛰어난 방진을 바탕으로 전술적으로 이뤄낸 결과지 단순히 창이 짱이다 라는것은 아닙니다. 당시 기병이 지금 말하는 긴랜스와 판금갑옷으로 중무방한 중기병도 아니엿고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팔랑크스는 로마의 군단병의 유기적 병과의 조합과 기동전으로 사멸했고요.
또한 위에 윙드후사르의 예를 들었듯이 그들은 파이크 방진에 대항히가위해 최대 5m급의 랜스를 사용했습니다. 속이 비고 가벼운 랜스였지만 돌파력을 이용해서 파이크방진에 걸리지 않고 타격이 가능했죠.
5. ??? 내.
P.S 저도 단순히 총의 화력때문에 언급안한 부분이 있긴 한데 단순히 총의 발전만이 아닌, 당시 체계의 붕괴와 더불어 총의 발전, 인구의 증가, 전장상황의 변경, 등등 여러가지 요건으로 판금갑옷이 도태되었다는것은 맞습니다. 다만 본문에 적으신것처럼 창 때문에 판금갑옷이 도태됬다! 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드라군 검색해 보세요. 구시대 군대와 신세대 군대가 어떻게 다른지요. 그리고 삼총사는 실제 프랑스 근위병단의 모습에 살짝 영웅물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딱 80년 지난 후 후장식 드라이제 소총이 나타난 후 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바뀝니다(아, 이땐 장갑기병은 제식부대 이외엔 없어진 상태고). 50년 후 기관총이 나온 후는 참호전의 시대가 오고요. 800년간 우세하던 장갑기병은 소총이 나오고 20년만에 사라졌습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그리 용맹을 떨치던 보병 기관총이 A-10이 장착한 벌컨 몇발에 녹아버리듯요. 당시의 최고 기술이 지금에 와서는 종잇장이고, 그 당시 철갑이 파우더 이후 송판 정도가 되었다는 차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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