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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Comment ' 10

  • 작성자
    Lv.13 Vermagic
    작성일
    14.03.22 19:17
    No. 1

    http://mirror.enha.kr/wiki/%EC%84%B8%EC%A2%85%EB%8C%80%EC%99%95#s-6.2
    세종대왕 관련 엔하위키 자료입니다 ㅋ
    뭐든지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song4tif..
    작성일
    14.03.22 19:33
    No. 2

    송시열이 딱히 대인배는 아닌 거 같은데요. ~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5 초아재
    작성일
    14.03.22 20:08
    No. 3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문제는 둘째치고, 저 당시 오사카나 일본 주요 도시 외 지역에 사는 민초들의 삶이 어땠을까 생각해 봐야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4.03.22 20:38
    No. 4

    일의 선후관계뿐만아니라 원인결과도 잘못되었네요
    대마도정벌에 대한 정보가 누설되어 빛좋은 개살구가 된게 아니라
    왜구들이 요동 약탈을 하러 선단을 끌고 나간사이에 빈집털이를 하러 왔기 때문에 마땅히 잡아들일 병력이 없었던겁니다. 게다가 작전성격자체도 가옥과 집, 배를 불태우고 적들이 급히 도주하느라 식량도 못챙기고 도망치는걸 보고 고사작전으로 나간건데 고사작전이란 작전성격상 적극적 교전이 일어날수도 없고 대마도 왜구자체도 산속에 들어가서 숨어서 농성하는데 무슨수로 적을 잡습니까?게다가 얌전히 봉쇄하고 고사작전을 펼치면 되는데 괜히 상륙해서 찔러보다가 뻘짓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고 적극적 작전을 엄두도 못내고 바로 조선으로 귀환했죠.
    이런 군대를 가지고 일본본토를 정벌? 게다가 한국역사에서 비교를 불허하는 개막장시기였던 고려말의 혼란 수습도 안됐죠. 고려가 멸망하고 대마도정벌까지 기간이 30년도 안됩니다. 그 개막장 시기를 수습하고 대외원정까지 가는것도 대단히 높이 평가할 일인데 본토정벌?? 소설쓰시나요? 아참.. 소설사이트지?

    그리고 요동으로 갔던 왜구들은 조선에서 미리 정탐되어 명에게 통보되엇고 기다리고있던 명군에게 요격되어 대참패를 당해 향후 100년간 중국해안이 평안했다고 중국에서 평할정도로 성공적인 작전이었는데 어째서 대마도 정벌을 그저 뻘짓으로만 치부하시는지?

    근데 대마도정벌이 뻘짓이든 아니든 조선이 일본본토 정벌능력이 있든 없든 그건 논외로 치고 궁금한건 대마도정벌은 태종이 기획하고 밀어붙인 기획인데 왜 엄한 세종이 후손들이 받게 될 댓가의 원죄를 져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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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Personacon 二月
    작성일
    14.03.22 20:50
    No. 5

    우선, 집을 황금으로 장식한건 신라에도 있었고 조선의 저택은 크기 칸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대저택 한옥은 왕권이 쇠락한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입니다.
    빛 좋은 개살구라며 정벌 이후를 비평하시는데 세종은 오히려 왜구를 효과적으로 통제한 임금이였습니다. 앞서 2번의 대마도 정벌이 있었음에도 왜구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는데 세종 대에서는 대마도 정벌의 대승을 토대로 계해약조와 효과적인 외교를 통해 왜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이 줄어들고 태평성대가 되는 것이지요.

    포로나 사살자가 적다고 하셨는데 대마도 정벌은 대승이였습니다. 왜구들이 대마도 산악지대로 도망가서 게릴라전을 펴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각 부대끼리 제비뽑기로 한 부대만 잔당토벌에 보낼 정도였지요. 그러다 큰코 다쳐서 정벌의 조선군 사상자가 대부분 여기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3차 대마도 정벌이 세종 원년에 이루어진 일이라 오히려 세조의 업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세조는 예외적으로 자신이 건재함에도 왕위를 물려주었으며 생전에 자기의 시호도 알게 된 특별한 왕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4.03.22 20:56
    No. 6

    시간을 달리는 세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4.03.22 20:58
    No. 7

    시호가 아니라 묘호고
    근데 묘호는 종묘에 올라간 뒤에만 붙일수있는건데 진짜 태종 살아생전에 태종이라는 묘호가 붙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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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二月
    작성일
    14.03.22 21:15
    No. 8

    간단한 검색이라도 하면서 썻어야했는데 수정도 불가능하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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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7 알시라트
    작성일
    14.03.22 21:17
    No. 9

    이분은 뭐 카더라 통신만 보고 오시나, 대변을 위에 넣는게 항생제 보다 더 효과가 있다질 않나, 서태지 싫다고 근거도 없이 그냥 까질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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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2 뒹굴보노
    작성일
    14.03.22 21:40
    No. 10

    글에 추측과 가정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이야기하기가 어렵네요. 그런데 대마도를 때려도 못잡았던 왜구를 저 멀리 본토 공격으로 물리칠 수 있을 거라는 건 이해가 안갑니다. 왜구가 유교적 충성에 불타는 정부군도 아닌데, 일본 본토를 공격해서 대체 무슨 실익이 있는지...본진에 리버 드랍하면 GG치는 스타 경기가 아니잖아요? 소말리아 해적을 진압하려면 해적을 공격할 일이지 소말리아를 공격하는게 아니죠.
    그 당시 명이나 조선은 일본의 크기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상태였죠. 그런데도 거길 공격했어야 했고, 하지 않아서 큰 실책이었다고 말하는 건 현대 관점에서 피상적으로 보는 지나친 비약으로 보입니다. 꼭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어야 했는데 신라가 통일해서 만주땅을 잃었다는 이야기처럼 말이죠. 무관이 아닌 문관 계열이라고 결단력이 없었다는 것도 의아하네요. 세종 대에 4군 6진 쪽을 개척한 김종서도 사실은 문관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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