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밑에 제 댓글 보시면 알겠지만 일본 장창은 4.5~6미터 길이의 목창입니다.
그정도 길이면 대나무 소재라고 해도 무게가 상당합니다. 즉 내려치기로도 상대방의 머리를
깰수도 있고 어깨나 팔을 때려서 무기를 떨굴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장수들의 갑옷이 일종의 비늘갑옷 형식이라서 찌르기에는 상당히 강한데
때리기엔 약하다고 하더군요. 특히 물고기 비늘 즉 어린갑 방식이 대부분이라서 내리쳤다가 올리면서 갑옷의 비늘을 들추는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창병은 보통 다수이니 몇명이 그렇게 만든후에 한두명이 헛점을 찔려서 이기는 방식으로 싸운것 같더군요
유럽의 파이크도 최소 6~7kg은 했고, 길이또한 4.5m이상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거긴 병사들도 첫열의 고참병들(스페인 테르시오 기준)은 플레이트 아머 착용비율이 높았었고요.
물론 들어올렸다 내려치는 것의 위력또한 강하다는건 동의 합니다.
그래도 특이 한건 특이한거죠. 다른나라들은 장창이라도 찌르기가 의주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미늘갑옷의 미늘은 들춘다는 좀 과장이 심한거같네요.
그런 갑옷을 만들던 사람들도 들춰질수 있다는 생각을 다 하고 만들어서 하반신 갑옷과 상반신 갑옷은 들춰지는쪽이 반대쪽으로 해서 만든다던지, 아니면 사용되는 끈의 양을 팍 늘리는대신 안들춰지도록 만든다던지 했었습니다.
설사 들쳐진다고 해도 5~6m짜리 창 들고 들춰진부분을 다른 사람이 노려서 찌를만큼 창들이 안움직이지 않았죠. 엄청나게 흔들려서 최초의 한방 빼고는 사실 노린곳 찌르기도 힘든데 장창이니만큼요.
밀집장창의 단점 중 하나가 밑으로 기어들어오는 단병에 대해서 거의 방어력을 상실하는데, 이런 점을 보완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않을까요?
(물론 완벽이라기 보다 어느정도 위협정도의 효과이겠지만요.)
그리고, 백병전에서 경보병(갑주 방어력이 거의 없는)은 사극에선 많이 보지만 실제로 거의 운용을 안하거나, 혹은 특수병과에서나 운용되니,
장창집단 두개가 맞 부딪힐 경우,
대열을 유지해야 하니 강하게 찌르면서 부딪히기보다 창날을 겨눈 상태에서 부딪혀서 서로 찌르지 싶은데.
이런 상태에선 갑옷부위를 타격 줄 정도의 찌르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싶거덩요.
그러니 방어가 잘 되지 않는 부위를 찌른다와
방어가 잘 되지 않는 부위를 창날로 벤다.가 장장집단의 주요 공격방법일 듯 싶은데..
서양쪽은 앞뒤 왕복 찌르기로 찔려도 좋고, 그 중간 베여도 좋고
일본쪽은 상하 왕복 흔들기로 맞아도 좋고, 그 중간 베여도 좋고............이 비슷한 무기사용술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고증은 전혀 없는..ㅎㅎㅎ 그냥 망상 속의 생각입니다.
물론 창날 아래로 기어들어가서 벤다던지 하는 일도 있었다곤 들었습니다.
옆구리로 치고 들어온 로델레로들에게 장창병 집단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던 전투도 있었다던데 이건 잘 모르겠고.
그리고 경보병이라는 표현은 사실 투사병기를 운용하는 병사들을 지칭하는게 더 맞을꺼 같습니다. 또한 설사 보병대라고 하더라도 당시에는 갑옷을 지급하는게 아닌 자비충당이었어서 실제로 갑옷 비율이 별로 높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도시 부유층 출신의 맨 엣 암즈나 무장이 출신한 용병(용병은 워낙 케바케가 심할지라..)이나 철제 갑옷을 보유했겠죠.
르네상스 시기에는 갑옷 보급률이 급격히 올라갑니다만.
뭐 특이하다 뿐이지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고, 꽤 흥미로운 운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무기로 이렇게 운용방식이 달랐던 이유가 일본에서는 장창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기병이 없었기때문이라고 하네요. 즉 일본의 나가에야리는 보병교전을 위해 나왔지만 서구의 파이크는 기병돌격을 막기위해서 나왔기 때문에 언제 돌격해들어올지 모르는 기병돌격을 막기 위해 언제든지 땅에다 창대를 박고 겨눌 준비를 하고있어야 했기 때문이고 기병다운 기병도 없는 일본에서 나가에야리는 적보병과의 싸움에 특화되어 이렇게 다른 방식의 운용법이 등장했다는군요
http://zairai.egloos.com/5298303#1244368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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