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을사조약 이후 40년, 국권피탈부터 치면 35년 식민지배 받은 한국의 과거사 청산이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교육받은 기술자, 관료, 교육자, 근대 국가의 허리 자체가 일제 치하에서 형성되었으니 쓸어낸다는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1940-1944까지 4년 동안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은 프랑스의 예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대독 협력자로 기소된 인원이 20만명이 넘는데 실제 처벌율은 0.3%를 상회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부역자 '처벌'을 결정하는 강도가 신생 국가에 얼마나 필요한 사람들이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우엔 근대 국가로서 완전히 정착된 프랑스보다 훨씬 처벌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친일파의 수괴를 처벌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비시 프랑스의 대독 협력자 처벌에서 거물로서 제대로 기소된 사람은 몇 없습니다. 비시 프랑스의 독일 점령지구 파견대표 다르낭과 수상 폐탱, 그리고 라발 총리가 그들입니다. 나머지는 '레지스탕스' 출신 대통령, 그리고 정관계의 옹호를 받아 모두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한국이 특별히 '멍청해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다기보단 현실 여건이 따라주지 못한 탓이 큽니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산하지 않았더라도 애초에 모두 쓸어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모범적인 전후 청산의 사례로 거론되는 프랑스보다 처벌율이 낮다고 가정한다면 처벌율 0.1-0.3% 내외. 친일파의 범위를 광의적으로 보고 100만으로 가정한다면 처벌 가능 숫자는 1,000~ 3,0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협소적으로 본 친일파 숫자보다 훨씬 적은 숫자입니다.
물론 제대로 된 전후청산이 되지 않은 점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친일파 청산' 문제는 간단하게 보고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사료되옵니다.
그 친일파의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가 극히 모호한 것이 문제이옵니다. 어디서 어디까지를 친일파로 보고 단죄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죄를 소급해서 물을 수 있는 것인가. 당시 조선(대한제국)의 국가 원수인 고종, 순종과 그들이 선임한 대신 각료들의 형식적인 추인을 거친 '합병'과 그 이후의 통치에 대해 협력한 자들을 어떤 죄목으로 단죄할 것인가. 일본 제국의 일부로서 막대한 하사금을 받고 호의호식한 조선 왕실(이왕)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을 물을 것인가. 광범위한 협력을 행한 교육계, 종교계, 경제계 인사들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신생 한국의 지배층을 이룬 만주 대동학교 및 일본 육사, 조선 총독부 출신 한국인 관료들에게는 어떤 책임을 물을 것인가. 생각해볼 화두가 수도 없고 그들 모두를 숙청한 이후 한국의 경제 재건이 가능할 것인가 등의 if의 영역도 크기 때문입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의 후손이 언급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친일파 문제의 본질은 친일 경력을 가진 이들이 전후 독립 운동가로 신분을 세탁하거나 미군정과 이승만의 추인하에 본래의 직업에 머무른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렷듯 반민특위가 제대로 돌아가도 제대로 된 청산은 거의 불가능했고 거두를 쳐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현실적 여건을 감안한다면 '청산'이 어려웠던 현실을 보고 그 역사의 실체를 파내 한줄 한줄 제대로 기록하는 것이 현재에 가능한 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적 감정으로 본다면 단죄를 하지 못한 것이 대단한 문제이지만, 앞서 들어드린 예시처럼 감정만으로 모든 것이 단죄되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보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드린 것이옵니당. 윈드윙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그에 십분 공감하고 있습니다만 '대한민국'만 전후 청산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부역자 처벌은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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