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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Comment ' 7

  • 작성자
    Personacon 플라워
    작성일
    14.01.28 09:42
    No. 1

    ㅄ같은 전두환이 그나마 잘한 건 경제쪽을 일임한 것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고검(孤劒)
    작성일
    14.01.28 11:08
    No. 2

    전두환이 잘한게 아니라, 그때 세계 경제 자체가 기름 펑펑, 천연자원 펑펑,
    모두가 하나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개발 등등..
    제가 알기론 가장 큰 경제 활성기라고 알고 있습뉘당~~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Dainz
    작성일
    14.01.28 11:17
    No. 3

    프레이저 보고서를 보면 알겠지만, 박정희가 한국경제 말아먹을뻔한거 미국이 다 뒤치닥꺼리 해서 겨우겨우 연명시켜놓았죠. 오죽하면 박정희가 허튼짓 못하게 통제하는게 미국의 역할이었다는 말까지 있었겠습니까.
    하여간 남이 만든 밥에 숟가락 얹어놓는건 잘해서, 시찰나가 사진찍고 뉴스에 내보내면 국민들은 박정희가 잘해서 나라가 점점 발전하는 줄 착각했었죠.
    지금도 박정희가 경제 살린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ki*****
    작성일
    14.01.28 13:06
    No. 4

    김재익이 다 했다고 보기엔 너무 일찍 죽었죠
    83년에 돌아가셧으니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일
    14.01.28 14:45
    No. 5

    개인적으로 참 아깝게 죽었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83년이면 이미 3년간 있었던 것이고, 사실상 그 후 80년대의 나머지 기간도 김재익의 경제발전모델을 그대로 이어가는 식으로 했으며, 이미 그 기틀을 김재익이 다 닦았으니 김재익의 영향력이 사망 후에도 크게 남아있다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또, 약간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저는 김재익이 다 했다는 뜻으로 말하려했기보다는 경제발전에서 전두환의 영향력을 제외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좀 헷갈리게 말하긴 했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Aires
    작성일
    14.01.29 04:53
    No. 6

    박정희식 경제발전은 말하자면 큰 틀은 시장경제를 벗어나지 않되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바꿔나가는 형식이었다면 문어 아저씨가 전적으로 신임한 김재익은 학력을 보면 전형적인 주류경제학자였고 거시경제 안정을 추구한다든지(물가...) 하는 식으로 "전통적인" 자본주의 국가로서의 틀을 잡았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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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 Aires
    작성일
    14.01.29 05:06
    No. 7

    하이에크의 방한 직후인 1978년 12월 유신의 마지막 개각이 이루어졌는데, 9년간 경제정책을 주도했던 남덕우 대신 신현확이 경제부총리로 기용된 것이 핵심이었다. 이 개각은 일차적으로 경제안정화를 위한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의 전환이었다. 신현확 경제팀이 1979년 4월에 발표한 ‘경제안정화 종합시책’의 핵심 지향은 시장기능의 강화와 민간 자율성의 확대였다. 유신 말기 핵심 경제관료였던 강경식은 안정화 시책을 한마디로 “관 주도에서 시장경제로 가는 것”으로 정리하면서 “성장에서 안정으로, 보호에서 개방으로, 경쟁 촉진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이는 “정부 정책의 철학을 180도 바꾼” 것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김만제가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 계획은 미국 시카고학파의 영향력이 유신 국가를 집어삼키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뒤이어 1980년에는 1966년 이래의 과제였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이듬해 공포됐다. 이로써 하이에크가 강조한 자유경쟁이 흘러넘칠 공정한 시장에의 꿈이 영글어갔다.


    이런 내용도 있더군요. 사실 박정희 경제정책의 유연성을 암살되지 않았어도 사실 큰 차이는 없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당시 세계 경제의 흐름이 자유주의 쪽이었고, 무엇보다 한국의 학계는, 아니 정확히는 나라 자체가 미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리가 없으니까요. 사회주의적인 정책 같은 건 그때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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