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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크의 방한 직후인 1978년 12월 유신의 마지막 개각이 이루어졌는데, 9년간 경제정책을 주도했던 남덕우 대신 신현확이 경제부총리로 기용된 것이 핵심이었다. 이 개각은 일차적으로 경제안정화를 위한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의 전환이었다. 신현확 경제팀이 1979년 4월에 발표한 ‘경제안정화 종합시책’의 핵심 지향은 시장기능의 강화와 민간 자율성의 확대였다. 유신 말기 핵심 경제관료였던 강경식은 안정화 시책을 한마디로 “관 주도에서 시장경제로 가는 것”으로 정리하면서 “성장에서 안정으로, 보호에서 개방으로, 경쟁 촉진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이는 “정부 정책의 철학을 180도 바꾼” 것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김만제가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 계획은 미국 시카고학파의 영향력이 유신 국가를 집어삼키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뒤이어 1980년에는 1966년 이래의 과제였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이듬해 공포됐다. 이로써 하이에크가 강조한 자유경쟁이 흘러넘칠 공정한 시장에의 꿈이 영글어갔다.
이런 내용도 있더군요. 사실 박정희 경제정책의 유연성을 암살되지 않았어도 사실 큰 차이는 없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당시 세계 경제의 흐름이 자유주의 쪽이었고, 무엇보다 한국의 학계는, 아니 정확히는 나라 자체가 미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리가 없으니까요. 사회주의적인 정책 같은 건 그때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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