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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Comment ' 5

  • 작성자
    Lv.39 도버리
    작성일
    13.09.13 23:42
    No. 1

    보통 동양의 왕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건 전제군주인데, 판타지에서 흔히 쓰는 중세(9세기~13세기 정도) 무렵에는 전제군주가 아닌 봉건군주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봉건군주는 다른 영주들보다 약간 더 힘을 많이 가졌을 뿐이었거든요. 다들 자기 영지에서 잘먹고 잘 살다가, 세금 몇푼, 일 년에 40일가량 군사적 지원을 해줄 의무(40일이 지나면 돈을 줘야댐) 등등... 그렇게 많이 권력이 있지 않았고, 수틀리면 그대로 독립해서 소국화하기도 하고. 중세때 독일 땅엔 나라가 300개가 넘었다죠.
    서양 동화에서 왕자나 공주가 많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오는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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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Personacon 藍淚人
    작성일
    13.09.13 23:44
    No. 2

    반지의 제왕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절대군주는 사울론 외에는 없습니다.
    로한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봉건 국가인데다가, 기수들의 자치적으로 영지를 두고 있죠.
    미나스티리스의 경우엔 왕이 아닌 섭정이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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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일
    13.09.13 23:59
    No. 3

    중세시대의 군주를 딱 하나로 찝어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자면 1066년도에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롤드 고드윈슨을 무찌르고 영국을 점령한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있습니다. 윌리엄은 정복군주로서 영국에 그 누구보다도 넓은 직할지를 보유했고 영주들의 전폭적인 충성을 받았으며 사실상 중세시대의 봉건군주라기보다는 동양의 전제군주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에 비해 동시대 인물인 하인리히 4세는 투스카나 지역의 넓은 영지를 기반으로 이탈리아 전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뻗쳤던 투스카나 공 마틸다가 끊임없이 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그녀를 완벽히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투스카나 공 마틸다가 자식없이 죽음으로서 봉건법에의해 그녀의 영지는 모두 황제 직할지로 편입되긴 했지만 그녀는 죽기 전까지 여러번 봉기해 하인리히 4세와 용호상박의 대결을 펼쳤고 하인리히 4세가 여러번 그녀를 무찔렀음에도 불구하고 봉건법 때문에 그녀의 영지를 강탈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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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1 정주(丁柱)
    작성일
    13.09.14 09:02
    No. 4

    굳이 톨킨 세계관으로 안가도 됩니다.
    중앙집권형 전제왕국은 동양이 먼저 이루었습니다.
    기원전 '진나라' 시절에 말이죠.
    동양은 원래 한놈에 몰리는 식으로 해서 몰아주기로 권력을 증가하는 체제가 많았고요. 가장 대표적으로 피라미드적 관료체제가 사실 동양식입니다.
    그리고 서양은 지금도 그렇지만 share holder라고 하나요? 한글로 번역하면 '같이 쥐고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텐데. 권력도 이해 관계에 따라 여럿이서 나눠서 먹는 체제입니다. 뭐 하나 삐딱하다 잘못하면 나라가 뿔뿔이 찢기고는 하죠.

    이는 서양은 예전 도시국가에서부터 점점 발전하면서 로마를 거치고 여러 나라로 분화한 것에서 시작되는데요.
    알랙산더대왕 이전에 서양은 시민 민주주의 체제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시민이란 근대적 개념의 시민이 아니죠. 즉 좀 가진자들만 시민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리고 알랙산더 대왕이 이곳저곳 찌르고 다니면서 전제왕권처럼 가는 순간!
    젊은 나이에 댕기열인가로 사망하면서 다시 뿔뿔이 분해된다죠.
    그리고 나중에 요걸 로마가 낼름 하는데, 로마는 원로원과 황제 의장 등등 여러가지로 권력이 분산화되있던 나라고, 로마에서 유명한놈이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져라 알고 있는 그사람인데...
    여하튼 황권과 원로원이 균형을 이루는 전제왕권은 아니죠. 그리고 네론가 하는 미친 황제도 있었다는데.. 여하튼 툭하면 칼맞고 죽어요.

    나중에 게르만인들이 침입해서 뿔뿔이 흩어지고 나라들이 생겨나고 뭐 카톨릭이라는(종교얘기 아닙니다. 그냥 역사얘기임) 이름하에 하나이되 하나는 아니고, 다들 나라다 왕이다 귀족이다 해서...
    봉건시대, 중세시대가 시작되죠.
    그 중세시대 특징은...
    왕이 있긴 한데, 말이 왕이지 그냥 뭐 영토 조금 넓은 귀족정도? 그냥 가장 센 귀족정도로 보시면 될겁니다. 여차하면 칼맞고 독먹고 암살당하고, 강한놈이 나왔다가
    이리저리 뒤집히다 보니 밖에서 보기 뭐해서
    애이 그냥 한놈 왕시켜서 이놈 계속하게 하자.
    이렇게 해서 이제 나중에는 왕보다 센 귀족도 있지만 왕은 왕인 상황이 되겠죠.
    물론 이들 중에서도 위에 강림주의님 말씀대로 강한 귀족들이 있기도 했고, 강한 왕도 있긴 했지만, 왕이나 귀족 약해지면 또 달라붙어서 물어뜯고 막 그럽니다.
    그러다가 시밪군 전쟁으로 귀족권력도 많이 약해지고 더불어 왕권도 좀 약해지고...
    이것저것 왕이 시도를 하는데...
    권리장전이니 청원이니에 뭐 이것저것... 있는데 그냥 귀족노름이고.
    그 이제 대항해시대라고하나요?
    바스코다가마가 인도 서회항로인가를 발견하던가? ...
    아닌가? 여하튼 희망봉 발견하고, 인도로 범선 쏴주고 하던 시절이 됩니다.
    이제 그 때부터 주로 탐사의 우군이 되준 왕족이나 귀족에 '금력'이 편중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부터 비로소 왕이 강해집니다.
    그리고 화약무기등의 발견/발전으로 인해(동양에 있던걸 서양 입장에서 '발견'하고 나중에 '발전'시키죠.) 기사계급이 몰락하고 국왕에게로 더 큰 힘이 쏠리고요.
    뭐 스페인 무적함대다 영국 바이킹 해적단이다 이것저것 바다에서 싸우다가 결국 탐험도 흐지부지 해지고 본격적으로 식민지 확장 정책이 일어나기 전에...
    이 금력으로 인해 강한 왕권을 손에 넣은 국왕들이
    '짐은 태양이다.'
    같은 소리를 해대기 시작하죠.
    물론 이것은 철학적인 기반이 강화되고(왕권신수설이니 뭐니 이런거, 제가 보기엔 그냥 동양에서 넘어온 서적 번역해낸 책입니다.) 그만큼 부르조아 계급들이 자기보다 가난한 귀족따위가 깝대는 것 보다는 왕에 집중해주는게 더 큰 힘을 얻는 것 같아서 세금 꼬박꼬박 내고 선물 갖다 바치니까 왕이 중이병에 걸려서
    내가 킹 왕 짱이다!
    라고 하기 시작... 대표적으로 루이 18세죠.
    근데 결국 루이 18세는 중앙집권을 이루지 못하고 큰소리만 치는 중이병 환자로 전락해서 다음대 왕인 아들놈이 말아먹고 프랑스 대혁명 등등을 거치면서 시민 사회가 성장하고...
    어떻게 보면 중앙집권도 하기 전에 민주주의로 다시 회귀하는데
    여기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황제가 떡 나오면서...
    역시 서양은 전쟁을 하고, 군사력이 집중되어야만 뭔가 대단한 왕이 나오나봅니다.
    그러면서 중앙집권화가 되기는 하는데...
    러시아정벌 실패, 즉 군사력이 약해지니 물어뜯기죠.

    뭐...
    생각하시는데로 서양에 전제군주, 물론 시민들 목은 봉건시대에도 '포도 따먹듯' 벨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식의
    '반역이다'라는 명분이면 구족을 몰살하고 이런건 없었습니다.

    이제 그 뒤로 무쏠리니나 히틀러 처칠등이 그나마 좀 강한 군주이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처칠은 군주라기는 좀 무리가 있고.. 나폴레옹, 히틀러 정도가 가장 강한 군주가 되겠군요...

    그나저나 서양사에 묻혀서 빛을 바라지는 못하지만, 페르시아의 네부카트 몇세 뭐 이런애들이나 이집트 쪽을 보면 생각하시던 전재군주, 강한 군주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잘 나가다가도 동양 서양 막론하고 신하들이 독쓰고 칼놔서 죽이곤 했지만요...

    ...
    뭔 소릴 하려고 했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일
    13.10.03 03:04
    No. 5

    위에 말했지만, 케바케입니다. 당장 샤를마뉴 대제를 보자면 자신이 땅을 점령해서 귀족과 기사들에게 나눠주는 형식이였고 지방분권적인 중앙집권제(좀 역설적이긴 하지만)와 어느정도 비슷했습니다. 왜냐하면 샤를마뉴 대제는 단순히 강한 귀족이 아니라 모든 땅을 나눠주는 정복군주이자 귀족과 기사들에게 부와 땅을 안겨준 자였으니까요.

    다른 경우를 보자면 훗날 서프랑크 왕국에서 카롤링거 왕조가 끝난 후에 영주들이 만만한 왕을 한명 골라서 얼굴마담으로 대충 세워놓고 자기들은 자기들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잘 전쟁하기로 결정했고 그게 바로 위그 카펫입니다. 위그 카펫이 못난 이라면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의 부친은 일 드 프랑스 지역을 다스리는 프랑스 공작 대 위그였고 모친은 독일왕 하인리히의 딸인 작센의 헤드위그였습니다. 다만 그는 약 1000km^2정도 되는 그의 작은 영지 밖으로 벗어난다면 지역 영주에게 포로로 잡혀 몸값을 요구받을지도 모를만큼 지방에 대한 통제권이 없었습니다. 이게 바로 흔히 아는 왕권약한 중세 왕의 대표적 이미지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강한 정복군주나 카리스마 넘치는 봉건군주는 지역에 대해 완벽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필립 2세의 경우에는 13세기에 툴루즈를 향해 십자군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네, 툴루즈는 바로 그 프랑스 남부의 그 툴루즈 맞습니다. 자기 봉신을 상대로 십자군을 이끈것이지요. 그 툴루즈는 카타르라는 크리스트교 종파를 믿고 있었는대 교황청은 이걸 이단으로 선포했고 왕권을 강화시킬 기회만 노리고 있던 필립 2세는 말 안 듣는 프랑스 남부의 대귀족인 툴루즈 백을 완전히 끝장내고 자기 말 잘 듣는 꼬마 백작들 많이 많이 만들기 위해 카타르 십자군을 이끌었으며 입신양명의 기회와 자신만의 영지를 간절히 원하는 북부의 귀족들이 다수 모여서 함께 남하하여 용맹을 뽐냈고 영지를 얻었습니다. 이 필립 2세는 왕실직할지를 어마어마한 넓이로 증강시켰고 그뿐만 아니라 사실상 왕국 전체에 자신의 카리스마와 영향력을 강대하게 뽐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항상 말하는 말이지만, 중세는 케바케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 다릅니다. 그냥 하나의 대체적인 예를 들어서 '이때는 뭐 이랬어'라 말하는건 엄밀히 말해 좀 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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