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음악에서도 비틀즈 이래로 새로운 음악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죠. 판에 박혔다, 판에 박혔다하지만 사실 모든 이야기는 사람사는 이야기고 사람살이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처럼 특별할게 없지요. 그 와중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사람들이 이 세계 탑클래스에 올라가는 사람들입니다.
클리셰들을 쓰는 것은 문제될 것이 아니지만 가끔 이런저런 커뮤니티에서 글 쓴다는 사람들 보면 마치 소설을 조각퍼즐 맞추기 내지는 체스나 장기말 두는 것 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간혹 있더군요. 구조적으로 극적인 사건들을 알맞게 배열하는 것은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소설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대운님의 작품만큼 대단한 소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온갖 클리셰는 다 들어있지만 누구도 군림천하를 구태하고 진부하다 하지 않으니까요.
배경 즉, 세계관은 판타지나 무협의 장르를 규정하는 그런 방식입니다. 단순히 배경이 유사하다고, 이를 양판소라고 판단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글의 배경은 주제에 따라 구성이 됩니다. 주제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주제와 상관없이 남의 글을 차용한 의미없는 세계관은 말그대로 양판소의 양산된 배경일 뿐이죠.
김정률 소설과 휘긴 소설의 큰 차이점은 이 배경에 있죠.
주제는 문학이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방식입니다. 산문, 수필, 소설 등 대부분의 글은 모두 주제라는 틀 안에서 존재하죠. 하다못해 일기도 주제를 가지고 씁니다.
입체적이지 않고, 개연성이 부족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글 중에 데로드 엔 데블랑이 있죠.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지만 최소한 양판소 소리를 듣지는 않죠.
2세대 부터 난립한 주제없이 양적으로 확대된 글을 보며, 양판소라는 이야기가 퍼진만큼 글의 존재 의의가 없이 시간을 때운다는 목적에서 읽히는 것을 양판소라고 보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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