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가스를 이용한 살상은 설비 비용이나 관리 유지가 어렵습니다.
살상용 가스가 새면 대참사가 벌어지지요. 유대인만 골라죽이는 가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독일과 일본의 악명높은 생체 실험에서 사용되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만...
대량학살 수단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갑니다.
보통 나치에서는 독방에 넣고 굶겨죽이는 방식의 처형을 했다는 기록은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가스시설은 소문만 무성하고, 막상 뒤져보니 수용소에서 처형용으로 가스를 사용했다는 근거는 거의 없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처형당해서 성인이 된 폴란드 신부 막시밀리안 콜베도 굶겨 죽이는 형벌로 죽었다고 합니다. 오랜시간 독방에 가둬 굶겨 죽이는 방식이 가스실 처형보다 인도적이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데릭윌슨의 (가난한아빠 부자아들)-동서문확사 출판/이 마이어 로스차일드 부터 그의 다섯 아들들 암셀(프랑크프르트의 로스차일드 본가.) 잘로몬(오스트리아), 네이선(런던), 카를(나폴리), 제임스(파리)등이 유럽각국에 로스차일드형제 상회를 설립 한 후, 유럽에서 가장 유력한 다섯 도시와 각국의 유동적인 정보의 선점과 활용과 마이어 로스차일드에게 어용상인으로 임명한 독일프랑크프르트지역의 선제후 빌헤름(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빌헤름 이세의 선조)의 재산을 관리 하면서 네이선이 그 재산을 종자돈 삼아 부를 축척하게 됩니다.
로스차일드 다섯형제의 리더가 장자인 암셀이 아니라 셋째인 네이선이었고, 네이선은 워털루전쟁에서 정보의 선점(나폴레옹의 패배)으로 런던 주식시장에서 국채를 적은 돈으로 독점하게 됬습니다.
이후 이들 가족의 결혼은 다섯형제들의 근친혼, 유대인들과의 결혼으로 늘 이어졌습니다.
그 이유가 자신들이 재산이 다른 가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고 타 종교인과의 결혼을 한 사라은 족보에서 제외할 정도로 보수적이었습니다.
또한 네이선 사후 가문의 리더가 된 막내 제임스는 둘째 형 잘로몬의 딸, 말하자면 자신의 친 조카 베티와 결혼을 하게 되죠.
이후 프랑크프르트와 오스트리아 마지막으로 나폴리의 세집안은 자손이 끊기면서 가문의 영향력이 줄어 들었고 런던과 파리의 두 가문은 각기 자신의 길을 걸어 가게 됩니다.
근대에 007로도 유명한 영국의 첩보기관 MI6의 설립자 중 하나인 런던가문의 가주 빅터 로스차일드는
아들인 제이콥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겨 무일푼으로 가문에서 내 쫓지만 제이콥은 미국으로 건너가 주식으로 돈을 벌게 되죠.
그 전까지 로스차일드 가문은 미국에 진출 할 수 있는 기회를 번번히 놓치게 되고 프랑스 가문의 에드몽이 가업인 은행업 보다 유럽의 유대인정책에 관심이 많았고 게토에서 벗어난 몇 몇 유대인들을 후원하여 중동 팔레스테인 지방에 유대인공동체를 설립하게 지원을 해주게 됩니다.
보수적인 유대인 가문과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록펠러와의 결합은....
로스차일드 관련의 근거 없는 카더라류의 가십저널이나 음모론자들의 저서에나 나오는 뜬 소문입니다.
가난한 아빠 부자아들의 말미에 다섯가문의 족보가 나오는데, 유대인이 아닌 사람과 결혼한 근래의 일이고 그것도 평범한 프랑스의 미망인이라더군요.
사족으로 와인애호가인 이수만이 무통 로칠드의 가주에게 기사작위를 받았다는 기사를 몇 해 전 본 기억이 있는데 무통 로칠드가 프랑스 파리의 로스차일드가문의 소유입니다.
또한 위에 언급한 근래에 유대인이 아니고 그것도 그리스도교도와 결혼 한 로스차일드의 인물이 프랑스 가문의 가주인 기 드 로스차일드라죠.
슈퍼리치 패밀리 - 한국 경제신문사 출판/요코야마 산시로
초대 마이어 암셀은 아들 다섯 외에도 딸 다섯을 낳았다. 딸들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었지만 규벌閨閥을 확대하여 또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아편전쟁을 통해 대재벌이 되어 인도와 홍콩을 중심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바그다드 출신의 데이비드 사순 일가도 로스차일드 가문과 혼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국의 록펠러 가문이나 쉬프Schiff 가문 역시 결혼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가족 중심의 경영은 위험을 최대한 분산시키고, 수익을 최대화시키는 네트워크 경영의 요체가 되었다.
록펠러가 성공을 한 것은 이십세기 초였고, 그당시 로스차일드 가문은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나폴리의 세 가문이 무너지면서 영향력이 약화됩니다. 더욱이 미국에 보낸 로스차이드은행의 대리인이 이들의 이름을 팔아 사기를 치므로 미국에서 추방당하고요. 또한 초대가주 마이어의 다섯 딸들은 결혼과 동시에 마이어의 결정에 따라 로스차일드가문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었으며 그녀들의 부군들 역시 로스차일드의 힘을 쓸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임스 사후 로스차일드가문이 영향력이 급속히 쇠락하면서 일 이차 세계대전에서 자신들의 재산의 반 이상을 수탈당하기도 하죠.
이상은 탈무드 황급율이란 우리나라의 유태인전문가가 저술한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기억님께서 언급하신 슈퍼리치패밀리란 책도 보았고 이리류카바 최가 저술한 그림자정부의 정치편, 경제편, 미래과학편의 삼부작 역시 다 보았습니다.
솔직히 위에 열거한 서적들 중에 객관적으로 그리고 문서화된 기록들과 로스차일드 패밀리의 인터뷰, 그들이 인정하는 자신들의 허울들을 냉철한 눈으로 저술한 서적은 데릭윌슨의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이 유일하더군요.
아! 근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화패전쟁 역시 다 보았습니다만 패자의 투덜거림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서 씁쓸했습니다.
슈퍼리치 패밀리는 일본인이 저술한 책이고 화폐전쟁은 중국인이 그림자정부는... 언급할 가치가 없는 책이고요.(뭐 나름 상상력과 음모론으로 본다면 흥미있기도 합니다만...) 파리에서 직접 기 드 로스차일드 남작과 인터뷰를 한 이희영교수의 탈무드황급율비법의 내용이 객관적이면서도 유대인에 대한 중립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서 볼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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