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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Comment ' 18

  • 작성자
    Personacon 윈드데빌改
    작성일
    13.01.30 20:14
    No. 1

    오늘 세번 정도 본듯;
    근데 조선시대 저런면이 있다는건 좋은데
    비교를 하려면 동시대 다른 나라를 하지 왜 고대 그리스를 했는지 -_-;;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양산형A
    작성일
    13.01.30 20:26
    No. 2

    동시대 유럽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장애를 신에게 받은 징벌로 삼아서 들판에 버리거나 했죠.

    관련된 전승이나 동화[..]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조선이라고해서 먹고 살기 힘든 장애를 가진 아이를 버린 경우가 없진 않았겠지만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냐 그건 중요한 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양산형A
    작성일
    13.01.30 20:28
    No. 3

    신체의 완전함을 인간성의 완전함으로 본 오랜 전통이 있는 것이죠. 기독교가 뿌리를 두고 있던 유대교나 그리스,로마의 신앙 모두 신체의 완전함을 강조했던 덕분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1.30 20:49
    No. 4

    사실 조선시대는 굉장히 선진화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재야 사학에서 주장하는데로 그것이 일본에 의해 왜곡되고 부정적인 면만 부각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현대와 비교해도 훨씬 괜찮았던 면도 많았죠.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께서 명하시니 아이를 낳은 노비 부부에게 여자는 1년간, 남자는 한달간 출산 휴가를 주라 하신 부분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참여가 제한되어서 그렇지 가정내에서 여자의 위치는 매우 높았습니다. 가정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것은 여인의 일이고 가정 외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것이 사내의 일이라는 구분하에 여자가 결정한 가정의 일을 남자가 관여하고자 하면 주변에서 욕을 먹기도 했지요. 서양에서 여자를 개보다 못한 취급한 것과는 상반된 일입니다. 서양의 여성 멸시 풍조는 대표적으로 결혼 후 여자가 남자의 성을 따르는 풍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조선에서 고려로 올라가면 더 굉장했죠. 중국에서 온 역관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고려 사람들은 아침 6시가 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냇가로 나와 알몸으로 모두 목욕을 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적 개방성이 대단했단 말이죠. 또한 고려시대때는 장녀에게 재산을 주고 장녀가 조상의 재사를 지내는 것을 당연시 하는 풍조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미처 이루지 못한 남녀평등이나 성적인 개방성, 소수에 대한 차별 금지까지 과거의 동양쪽은 서양에 비해서 월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서양에 비해서 조금 딸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조금 슬프네요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1.30 21:17
    No. 5

    그러나 현실은.... 현대 사회는 .... 어찌 거꾸로 간다는 생각이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조원종
    작성일
    13.01.30 21:22
    No. 6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시디
    작성일
    13.01.30 21:46
    No. 7

    서양의 과거는 정점으로 오르지만 우리나라는 정점에서 하락하는추세인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고검(孤劒)
    작성일
    13.01.30 21:46
    No. 8

    우리나라의 유교가 달라지게 된 것은
    사대주의와 배금주의에 영향에 따른 명리학을 받아들이면서
    확 달라졌다고 보시면 쉽습니다.
    쉽게 말해서 킹 세종느님 께서 계셨을때는 정치를 유교로하시고
    종교도 유교로 바꾸셨습니다.
    (승유억불 정책이라고 들어보셨죠? 그 정책 때문에
    절들이 다 산으로 도망간겁니다.)
    그떄까지만 하더라도 성리학 자체가 말 그대로 이와 기에 관한
    논점도 있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이유를 근본으로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장자의 사상에 항심있기에 항산도 있다 라는
    말을 쉽게 풀이하자면 광에서 인심난다라는 소리처럼
    백성이 배부르게 잘 먹어야지 교육받고 말 알아듣는다라는
    소리였답니다. 하지만 명나라때 최고로 발달되었던
    이기론이란게 점차 풍요롭게 되어가면서 자신들의
    당파를 위한 이기론으로 변질 됩니다.
    쉽게말해서 이와 기를 지들 맘대로 정의하는데
    그게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가되면서
    자신들의 권력도구의 핵심으로 자리잡는 와중에
    자기들끼리 찢어먹으니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6 다운타운
    작성일
    13.01.31 06:18
    No. 9

    조선이 꽉막힌 사회가 되는건 송시열부터입니다. 주자학을 숭상한 송시열은
    주자이후 모든학문을 사문난적으로 규정해서 자기 죽마고우도 죽이면서 까지
    거부했죠. 동시대 중국은 그때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넘어갔고 조선은 망하고
    대한민국들어가서도 양명학을 못받아들였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고검(孤劒)
    작성일
    13.01.30 21:48
    No. 10

    나라는 개판이 되가고 그렇다보니까 우리나라는 이기론이
    그렇게 발달된 상국이자 대국인 이기론을 보고 배우면서
    이게 성리학이 아니라 명리학이라는 이상한걸로
    바뀔정도랍니다. 그런데 왠걸..
    갑자기 금이 뙇! 하니 뜨기 시작합니다.
    사대주의와 배금주의.. 이걸 시작으로
    점차 우리나라의 유교문화가 이상하게 변질됬다고
    보시면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강찬强璨
    작성일
    13.01.30 21:48
    No. 11

    성범죄자 처벌도 조선시대가 훨씬 낫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명련
    작성일
    13.01.30 21:56
    No. 12

    조선 그냥 호군줄 알았는데 말이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트래픽가이
    작성일
    13.01.30 22:00
    No. 13

    임진란 이후로 신조어로 치면 병신력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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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0 황신
    작성일
    13.01.30 22:09
    No. 14

    남녀도 조선중기까지는 엄청 평등했었죠. 임진왜란,병자호란이후 사회가 급속도로 보수화되서 요모양이 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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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0 요하네
    작성일
    13.01.30 22:41
    No. 15

    호옹이.. 잘보고 갑니다.

    인조가 조선을 망쳤다는데 생각이 급작스레 든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9 수라염제
    작성일
    13.01.30 23:23
    No. 16

    사실 세조가 쿠데타 일으켜서 한번 썩게 만들고 선조가 쓸만한애들 다 팽시키고 광해군때 조금 신경 좀 써서 나아지나 했더니 인조가 와장창 말아먹고 정조가 겨우겨우 재건해놓으니 세도정치 대원군등이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은 셈이라고 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원월
    작성일
    13.01.31 00:14
    No. 17

    조선시대에 이런 선진적인 제도를 시행한 것도 있다니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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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9 그믐달아래
    작성일
    13.01.31 03:18
    No. 18

    조선에서 여자가 출가하면 외인이라는 말의 출처도 웃깁니다.
    원래 조선 초만 하더라도 여자는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게 되면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건 신사임당이 했던 행동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평안해야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정 기간에 한 번씩 친정으로 가서 사는 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들 입장에서 날마다 고생해야 하는 시가보다 친가가 편하니 너무 많은 여자들이 친가로만 가는 경향이 있어서 남자를 낳는 것이 손해라는 느낌을 줄 지경이 되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당시는 농경사회고 남자의 노동력이라는 것은 상당한 재산임에도 아들이 결혼해 아내집으로 가버리고 그곳에서 일을 많이 하니 손해가 많았겠지요. 그래서 위에 언급한 일정기간 친정에서 사는 법이라는 것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댁을 보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절정기는 조선시대초라고 볼 수 도 있습니다.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된 비결은 안정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불평 불만보다 이득이 클 때에 형성됩니다. 어디나 불평불만이 없는 사회는 없지만 그것보다 대다수가 좋다고 생각해야 오랫동안 유지되는 법이니깐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배우게 되는 조선의 참담함과 어리석음과 불평등과 개념없음은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하는 그 왕조의 말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의 발현에 다름아닙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이 모든 단점들은 국가가 시운이 다해 부조리들이 극에 이른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결국 일본애들이나 대한민국을 세우면서 조선을 무시하는 자들에 의해서 자기들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무시당했을 뿐이지 조선 전체로 본다면 굉장한 국가였음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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